선거제 개혁^북한 비핵화 방식 놓고 여야 첨예한 대립^갈등 ‘가시밭길’

김형준 교수

올해 들어 가까스로 열린 3월 임시국회가 첫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문 파문, 북한 비핵화 방식 이견 등의 민감한 이슈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국회가 가시밭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소수 야3당은 큰 틀속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의견 일치를 이루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정당 투표로 총 의석을 결정한 후, 당선인은 지역구 의석을 먼저 배당한 뒤 그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민주당은 지난 7일 의원총회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각각 225석과 75석으로 배분하고 준연동제·복합연동제·보정연동제 등 ‘한국식 연동형 비례제 3모델’ 중 하나를 바탕으로 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지역구에서 최다 득표로 낙선한 의원을 비례구에서 구제)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채택했다.

준연동제는 정당 투표의 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수를 정하되, 그중 절반만 우선 배분하고 나머지 비례대표 의석은 현행 제도처럼 정당 득표율에 따라 병립식으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복합 연동제는 지역구 투표에서 얻은 정당의 득표율과 정당 투표에서 얻은 정당 득표율을 더한 뒤 그 총합을 기준으로 전체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보정연동제는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율의 차이에서 생기는 불(不) 비례성을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의 격차를 기준으로 보정하는 제도다. 다만, 민주당과 야3당은 정당 득표율과 의석 배분을 연동시키는 방식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 5선 중진인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은 공개 발언을 통해 “지금 정부여당이 제시한 선거제 개혁안을 보면 반쪽짜리 연동형 비례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자유한국당은 ‘의원정수 10% 감축’과 ‘비례대표제 폐지’ 카드를 들고 반격에 나섰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내 손으로 뽑을 수 없는 비례대표를 폐지하고 내 손으로 뽑을 수 있는 의원으로 의원정수를 10% 줄인 270석으로 할 것을 제안했다. 연동형비례제에 대해서는 “대통령 권력 분권을 위한 내각제 개헌 없는 연동형비례제 도입에 찬성 못한다”며 “이를 위해선 권력구조개편과 선거제 개편을 동시에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아래)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던 중 정부가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식의 발언을 하자 강하게 항의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나 원내대표를 옹호하는 한국당 의원들을 문희상 국회의장이 진정시키고 있다. 연합

민주당과 야3당은 한국당의 이 같은 입장을 일제히 비판하면서 기존 일정대로 선거제와 개혁법안 패키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추진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선거법 개혁안과 3개 개혁법안(공수처 설치법, 검경수사권조정법, 5^18왜곡처벌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야3당에게 제안했다. 이것이 진행될 경우 3월 국회는 한국당이 ‘의원직 총사퇴’와 같은 초강경 대처로 결국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다. 나 원내대표는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린다면 국회가 그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길로 갈 것”이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저지하겠다”고 경고했다.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정당이 얻은 득표만큼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성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다. 그런데 ‘소선구제 단수 다수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선거제도는 거대 정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지난 2016년 총선의 경우, 더불어 민주당과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은 정당 득표에서 각각 25.5%와 35.5%를 득표했다. 그런데 실제 의석율은 각각 41.0%와 40.5%였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44석, 새누리당은 18석을 더 많이 획득했다.

한편, 소수 정당인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정당 득표에서 각각 26.7%와 7.2%를 얻었지만 의석율은 12.7%와 2.0%에 불과했다. 국민의 당은 무려 45석, 정의당은 17석 적게 배당받았다. 이런 맥락에서 소수 야3당은 표의 등가성을 높이기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고 있다.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 비례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무엇보다 의원정수의 과다한 증가다. 의원 정수가 기존의 300석으로 유지되어도 초과 의석이 발생해 실제로 350명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

지역구 의석이 정당에 배분된 의석보다 많을 경우, 초과 의석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 지난 2017년 9월에 치러진 연방 의회 선거 결과, 명목상 의원 정수는 598명이었지만 초과 의석이 무려 111석이 발생해 총 709명이 선출되었다. 더욱이 지역구에서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한 정당이 비례구에서만 80석을 배당받았다. 과연 이런 결과들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국당이 주장하는 비례대표제 폐지도 국민들이 공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정치적 약자인 여성의 국회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비례대표제 폐지는 여성 대표성 제고를 무력화시키는 처사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혁안을 330일이나 소요되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선거법 개혁안을 다른 개혁 법안과 패키지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은 제1야당을 고립시켜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손학규 대표가 “선거제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면서 이것저것(개혁법안)을 가져다 한꺼번에 얹어놓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이해 당사자인 국회의원에게 선거제 개혁을 맡기는 것은 끝내야 한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위원회에 ‘선거제도개혁 위원회’를 발족시켜 개혁안을 도출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 국회 의석을 가진 정당은 의석 규모와 상관없이 단 1명만 위원회에 참석시키고 과반수 이상은 중립적인 외부 전문가로 구성해 국민이 공감하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도출하면 된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다”라며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민주당 의원들은 나 원내대표의 연설 도중 고성을 지르고 심지어 퇴장까지 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국회 의장석에 뛰어 올라가 문희상 의장에게 강력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간에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민주당은 연설 직후엔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나 의원 발언이 “국가원수 모독죄”라며 윤리위 제소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청와대도 “나 대표의 발언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정작 ‘김정은 수석 대변인’ 발언은 지난해 9월 26일 미국의 통신사 블룸버그 기사에서 처음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는 기사에서 “김정은이 유엔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동안, 그에게는 사실상 대변인처럼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때 이 기사에 대해 청와대는 강력하게 항의하지도 않았고 민주당은 침묵했다.

그런데, 여당이 사전에 배포된 제1야당 원내 대표의 ‘수석 대변인’ 발언에 거칠게 항의하고 윤리위에 제소한 것은 청와대를 의식한 지나친 과잉 충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국가 모독죄’는 1988년 12월에 폐지되었지만 ‘국가원수 모독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조국 민정수석은 5년 전에 기고한 한 신문 칼럼에서 “국가원수 모독죄는 황당한 죄목, 유신의 추억”이라고도 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나 원내대표의 연설에 대해 “야당 대표로서 비판을 했지만 과한 면이 있었다”면서도 “국회는 그런 얘기들을 들어야하는 자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민주당의 전략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잔다르크로 만들어 주고 있다”고 SNS를 통해 꼬집었다. 이어 “판단은 국민 몫이다”이라고 했다. 하버드 대학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가 저술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온 비공식적이며 성문화되지 않은 강력한 보이지 않는 두 가지 규범으로 ‘상호 관용(mutual tolerance)’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를 지적했다.

상호 관용은 자신과 다른 집단과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를 뜻하며, 제도적 자제는 주어진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뜻한다. 정부 여당은 유독 촛불 민주주의를 강조하지만 과연 자신들과 다른 집단의 의견을 인정하는 관용을 베풀고 주어진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오죽하면 문희상 국회의장은 민주당 의원들의 국회 소동에 대해 ‘청와대 스피커’란 소리를 듣고도 참았다”면서 “경청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했겠는가. 여하튼 정부 여당이 제1야당 원내 대표의 국회 발언을 윤리위에 제소한 것은 ‘상호 관용’을 포기한 것이고 ‘제도적 자제’를 잃은 처사다. 똑같은 이유로 한국당이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 대표를 윤리위에 맞제소한 것은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갖고 있는 민주당의 이런 독선적 태도는 향후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에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높은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또 발생했다. YTN과 리얼미터의 3월 1주(4일-8일) 조사 결과, 문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 한다’는 긍정 평가(46.3%)가 ‘잘 못한다’는 부정 평가(46.8%)보다 오차 범위내에서 낮았다. 전주 대비 긍정 평가는 3.1%p 하락했고, 부정 평가는 2.4%p 상승했다. 위 <표>에서 보듯이 작년 12월 4주 때 1차 데드크로스(긍정 45.9% 부정 49.7%)가 발생한지 2주 만에 골든크로스(긍정 49.6%, 부정 44.8%)가 일어났다. 그런데 8주만에 다시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것이다. 1차 데드크로스때와 유사한 구조를 드러냈다.

PK, 50대, 중도층에서 부정이 긍정을 압도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가령, 중도층에선 1차째 부정이 긍정보다 11.6%p 높았다. 2차때도 부정이 9.7%p 높았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학생층에서의 이탈이 2차땐 심각한 수준이다. 부정(53.7%)이 긍정(37.9%)보다 무려 19.0%p 높았다. 1차땐 긍정(47.9%)과 부정(46.8%)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20대 젊은 세대의 반란이 데드크로스의 핵심 요인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3월 1주 YTN/리얼미터 조사 결과, 20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43.5%로 부정 평가(45.3%)보다 낮았고 전체 평균(46.3%)보다도 낮았다. 1차 데드크로스땐 20대에서 긍정(50.8%)이 부정(42.7%)보다 훨씬 높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TBS와 리얼미터가 2018년 지방선거 직후 실시한 조사(6월18-20일)에서 20대의 대통령 국정 운영 긍정 평가는 78.9%, 부정 평가는 14.0%였다. 그런데, 9개월 만에 20대 대통령 지지율이 거의 반 토막이 났다.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독선과 오만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고 응징한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민주당의 나경원 연설 소란 행태에 대해 “그야말로 선출된 독재의 전형적 모습이다. 자기들만이 정의고 자기들 듣기 싫은 말은 재갈을 물리며 독재적 행태를 서슴지 않는 모습은 용납되어선 안된다”고 비판했다. 여하튼 정부 여당이 경직된 사고 속에서 지나친 과잉 충성과 오만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또 다른 골든크로스는 요원할지 모른다.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한미간, 북미간에 미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직후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당부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튿날인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연합

그런데 문 대통령이 성공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회담 결렬 원인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가 쟁점이었다”라면서 “북한에서는 제재완화를 요구했지만, 저희는 그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비핵화 의지가 있었지만, 완전하게 제재를 완화할 준비는 안 돼 있었다”면서 “(북한이) 제재완화를 원했지만 우리가 원했던 것을 주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북-미가 지금까지 밝힌 회담 결렬 이유를 분석해 보면, 북한은 핵개발의 상징인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시행되고 있는 민수 경제와 관련된 5개 제재의 해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영변보다 더 많은 것”, 즉 북한이 감추는 것으로 추정되는 추가 핵시설을 비핵화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북한에 추가 제안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회담은 결렬됐다”고 한다. 그런데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해보면 회담 결렬의 핵심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축약된다.

우선, 비핵화 개념에 대한 합의 부재다. 볼턴 국가안보 보좌관은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과 관련해 노후한 원자로와 일부 우라늄 농축시설,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 등 매우 제한적인 양보를 하면서, 제재의 실질적 해제를 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핵과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을 포기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혀 비핵화 대상이 북한의 모든 대량파괴무기(WMD)라는 미국의 입장을 분명하게 나타냈다. 그런데, 북한은 영변 핵 시설과 플러스 알파를 폐기하는 것을 비핵화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둘째, 비핵화 방식의 불일치다. 회담전에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동결 혹은 폐기 등의 조처를 취하는 대가로 미국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재개를 허용하고 상호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등 이른바 ‘스몰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은 정작 2차 회담에선 비핵화와 제재해제를 한꺼번에 주고받는 일괄 타격 방식의 빅딜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핵 관련 전부를 폐기 대상에 포함했고 여기에 대량살상무기, 생화학 무기까지 다 폐기해야 제재 해제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 동시 행동’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셋째, 회담 방식의 내재적 한계다. 북미 정상은 실무 협상보다는 탑다운(top-down) 방식을 선호했다.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 말처럼 “북한의 의사결정 체계에서 중요한 결정은 김정은 위원장만이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탑다운 방식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방식이 지난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통했다. 당시에는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보다는 상징적인 선언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실무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한미 연합훈련 중지 카드를 꺼내든 것은 바로 탑다운 방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최고 의사결정자의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회담이 결렬될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가령, 회담직전 미국 연방 하원에서 트럼프 대통령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헨을 상대로 한 청문회가 개최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오자 섣부른 북미 합의를 할 수 없게 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내정치로 위기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상대로 획기적으로 합의하는 것을 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실무진에서 논의됐던 스몰딜(부분 타결)을 버리고 빅딜(일괄 타결)로 급선회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 회담 직후 “몇 가지 합의한 상태로 타결 지을 수 있었지만 나쁜 딜이라 안했다”고 발언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회담 결렬 후 북한이 우라늄 농축 시설을 정상 가동해 핵물질 생산을 이어가려는 징후가 포착되었다. 동창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장을 재건하려는 움직임도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복구가 사실이라면 매우 실망할 것”이라며 추가 제재에 나설 가능성도 흘렸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미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4단계 접근법’을 제안했다. ①남북 실무자 접촉 ②중재안 마련 ③남북 정상회담 ④한-미 정상회담 순으로 북-미 대화 재개 물꼬를 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단계적 접근은 최근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한 미국측 입장이 명확하고 공식화되면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미국의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2일 “북한 舟謨??단계적으로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FFVD)에서 변한 적이 없다”며 “핵연료 사이클의 모든 영역과 핵무기 프로그램에 더해 생화학무기까지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한꺼번에 주고받는 빅딜을 공개적으로 꺼내든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온 단계적 해법, 행동대 행동 식의 협상을 하지 안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회담 결렬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 성공적인 중재자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과 미국 중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회담 결렬직후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제재 해제를 거론하며 북한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인데 대해 워싱턴의 반발 기류가 심상치 않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 대사는 6일 싱크탱크 포럼에서 “한국은 좀 진정하고 천천히 움직이라”고 주문했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선의만 믿지 말고 현실을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 북·미 간 대화를 살려나갈 유일한 방법은 비핵화 개념을 명확하게 하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완전한 비핵화’에 가장 근접한 결단을 설득하는 것이다. 현 상황에선 어떤 경우든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역주행 카드를 조급하게 꺼내 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가 완전한 비핵화전에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어주자고 주장하면 미국에게 “비핵화를 포기하겠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 될 수 있다. 여하튼 한-미간에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개념과 방식에 이견이 증폭될 경우 3월 국회는 여야 간에 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싸움만 하다 끝나는 3월 임시국회가 될까 봐 걱정된다. 국민 보기에도 부끄러운 일이다. 정치권의 각성이 필요할 때다.

●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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