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완전 폐기', 北 '동결' ... '모호'한 한국의 태도 / 북핵 완전 폐기 vs 조선반도의 비핵화 / 비핵화 용어부터 통일해야 / 靑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어떻게?

지난 2월에 열린 ‘세기의 핵담판’은 결렬됐다. ‘비핵화’라는 목표를 향해 남,북,미는 여러 차례의 정상회담을 열었지만 결과는 없었다. 의미 있는 성과를 꼽자면 비핵화 인식의 차이를 확인했다는 점이다.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라는 용어를 각기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북한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를 주장한다. 우리 정부는 미국처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 조치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비핵화 원칙 ‘북핵 완전 폐기’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원한다. 핵물질과 같은 미래의 핵능력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은 물론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까지도 완벽하게 폐기하는 것을 포함한다. 미국은 조지 부시 행정부 1기 때부터 북핵폐기의 원칙으로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강조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7월엔 미국 국무부가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을 앞두고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를 제시했다.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 의지를 담은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원칙을 염두에 두고 북한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괄타결’을 통해 완전한 핵폐기와 경제보상을 ‘빅딜’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북한의 ‘조선반도의 비핵화’란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미국의 ‘핵 전략자산’도 없는 것을 포함한다. 이것은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과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에 꾸준히 밝혀온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년 12월엔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분명히 명시했다. 미국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강도적 요구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북한이 핵을 개발한 명분은 미국의 핵위협이다. 자위적 차원의 핵이기 때문에 조선반도(한반도)에서 미국의 핵전력도 철수해야 한다는 논리다.

북한은 통일문제의 원인을 ‘미제의 남조선 강점’에 있다고 단정한다. 따라서 민족의 자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통일의 본질이라고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조국통일은 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을 조선반도에서 완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이는 북한이 발표한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에서 실제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비핵화 협상과 주한미군 철수 거론이 무관치 않은 이유다.

북한은 과거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핵무력 건설’의 완성과 ‘핵보유’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또한 핵무력을 적화통일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본다. 사회주의 헌법에서 정한 공식 통일노선이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며 ‘핵경제병진노선’이 채택됐다. 핵을 지닌채로 경제 발전에 집중한다는 소리다. 보유하고 있는 핵을 포기한다는 말과 행동은 실제로 없다. 김정은 정권이 비핵화 협상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미국과 우리가 원하는 뚜렷한 비핵화 성과가 없는 까닭이다.

지난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 연합

북한의 의도대로 ‘핵동결’ 수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미군의 최첨단 핵전력이다. 체제보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북한에게 미군의 전략자산은 가장 큰 위협 요소다. 북한은 협상에서 단계적 비핵화 조치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전략적 이익을 취하고자 한다. 실제 협상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연합훈련 폐지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단계적 비핵화 조치의 등가성으로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북한은 과거 비핵화 협상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이유로 협상을 연기하거나 취소시킨 적이 있다.

다만 북한이 주장하는 살라미 협상(단계적 비핵화조치와 상응조치 교환)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비핵화 협상에서 뚜렷한 진전이 없고, 미국은 그런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하노이에서 ‘비핵화 성과’ 없이 돌아간 배경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트럼프는 나쁜거래 (Bad deal)를 하지 않겠다고 했고 북한의 의도대로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양쪽 리더들이 비핵화 용어 차이를 확인했으니 실무협상이든 각자 개념이 다른 상태로든 상대의 요구를 파악하는 협상을 마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 (한국국가전략연구원 , 전 남북군사 실무회담 수석대표)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회담에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일괄타결식 협상으로 빠른 시간 내에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북한의 계산대로 갈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제재완화나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같은 상응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핵화 용어부터 통일해야

‘비핵화’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남,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다. 출발점부터 다르다보니 협상의 결과를 내긴 어려웠다. ‘비핵화’의 정의를 새로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남성욱 교수는 “최선희는 뜬금없는 미국의 계산법이라는 표현을 쓰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며 “협상에서 비핵화라는 단어의 해석부터 새롭게 하지 않으면 3,4차 정상회담을 해도 답을 찾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문성묵 센터장도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도록 후속 합의를 통해서라도 개념 정의를 했어야 했다”며 “새로운 협상을 한다면 그것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의 ‘비핵화’ 입장은

우리 정부는 완전한 비핵화를 말하고 있다. 미국과 같은 입장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지만 보유핵까지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하거나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고 대화의 끈을 이어가게 하려는 전략적 포석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이에 문 센터장은 “현 정부는 미국의 주장처럼 포괄적으로 타결해야 한다고는 말하지만 단번에 하긴 어려우니 단계적으로 하자는 입장”이라며 “그건 북한의 단계적 조치와 맥을 같이 하는데 미국은 그것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북한도 포괄적 타결이라는 목표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비핵화 로드맵이 북미 간 대화를 촉진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남 교수는 “우리가 북한의 단계적 조치에 동의하는 것은 미국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인 우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