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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착상태 북미 핵협상 '돌파구'는

北-美간 핵 줄다리기 팽팽/ 北, 북러회담 통해 대미 협상력 제고 노려 / 북한의 시간끌기, 제재망에 구멍낼 수 있나 / “남북 정상회담이 북한을 전향적으로 이끌 외교수단 될 수 있을 것”
북한이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한은 남북연락사무소의 북측 인력을 전격 철수하고 대남비난공세를 강화하는 등 돌발 행동을 이어왔다.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비핵화의) 큰 진전을 이루고자 노력했지만 미국이 받아들일 만한 것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비핵화 협상의 결렬 이유를 밝혔다. 이어 “시간이 지나면 의견차가 좁혀질 것”이라며 대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로 차기 회담이 곧 열릴 것이냐는 질문엔 “곧 열리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미 간 핵협상 줄다리기가 이어지면서 언제 다시 3차 북미회담이 열릴지는 미지수다. 이 가운데 북한은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향후 북미간 핵 협상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짚어봤다.

‘밀고 당기는’ 北 -美 핵 줄다리기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처럼 북미 간 대화가 조만간 열리긴 쉽지 않아 보인다. 회담 결렬 후 미국 재무부는 지난 3월 21일(현지시간) 추가 대북제재를 발표했다. 곧 이어 북한은 지난 3월 22일 갑작스런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인원을 철수시켰다. 미 재무부의 추가제재 조치 발표 후 양국이 강대 강으로 맞붙는 형국이어서 대화국면은 급속하게 경색되는 듯했다.

실제로 미 중앙정보부(CIA)의 코리아미션 센터장을 지냈던 앤드루 김은 한 동문모임에서 ‘미국의 전략자산 철수를 요구하는 모습에서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볼 수 없다’는 뜻의 발언을 했다. 이는 볼턴 보좌관의 대북 태도와 비슷한 입장이며 워싱턴의 대북강경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최선희 외무상 부상도 볼턴의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는 등의 발언을 겨냥해 “고약한 발언들이 연발되고 있다”며 “그런 식으로 우리 최고 지도부와 우리 인민의 감정을 상하게 할 때 그 후과(대가)가 어떠할 것인지 과연 감당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있는지 참으로 우려스렵다”고 말했다. 최근 양국 간 대화 분위기에선 보기 힘든 강경한 외교적 수사다. 실제 지난 3월 15일 최선희 부상은 “조만간 김 위원장이 결심할 것”이라며 서해 로켓 발사장에서 인공위성 발사를 언제든지 할 수 있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인공위성 발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과 직접 관련돼 있어 미국이 민감해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미 재무부의 추가 대북제재 발표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대규모의 추가 대북 제재를 중지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하루 만에 긴장-완화 분위기를 반복하며 비핵화 협상을 밀고 당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지시킨 제재가 실제로 존재한 것이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재무부가 새롭게 예정한 추가제재가 맞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
미국이 다시 협상의 불을 댕기자 북한도 반응했다. 지난 3월 25일 연락사무소의 인력을 원래대로 남기기로 결정하며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연락사무소 인원이 철수는 북한이 다시금 인공위성을 발사를 감행할 것이라는 의도로 보였다. 하지만 연락사무소가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위성 발사라는 ‘도발’을 벌일 가능성은 낮아졌다. 북한의 이번 조치들은 대남·대미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이지만 협상의 여지는 남겨둔 것으로 해석된다. 하노이 회담 후 강대 강으로 치닫는 분위기에서 다시 대화의 끈도 이어지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금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톱다운 방식’으로 돌파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이에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은 “톱다운 방식이라는 것은 사실 저널리즘 용어”라며 “모든 정상회담이라는 것이 다 위에서 아래로 행하는 구조는 아니다. 실무협상으로 실질적 합의를 끝마치고 정상들이 모여서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톱다운이란 용어가 새롭게 나온 것일 뿐 사실 북한과 미국은 항상 톱다운 방식으로 정상회담을 해왔단 소리다. 중요한 결정은 결국 정상이 내리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하노이 회담의 결정과정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제대로 된 회담이었다는 것이다. 류 전 장관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서 우리의 시각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며 “트럼프대통령의 자의적인 생각과 개인적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해서 보다 보니 정상회담 결과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합
러시아로 핵 돌파구 찾는다?

북한은 3차 회담에 앞서 북러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고위급인사인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은 은밀하게 러시아를 방문해 북러정상회담을 위한 물밑작업을 마쳤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가 임박했다는 소식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현재로선 북러정상회담의 유력한 개최지는 블라디보스토크나 모스크바로 예상된다. 지난 3월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은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 시기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 없으며, 양국 간에 이에 대한 외교적 협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김정은이 어떤 대외노선을 취하느냐에 따라 북미대화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한은 오는 11일 제14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 대외노선의 방향을 정한다. 과거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와 연대하거나 자력갱생 기조로 외교적 고립을 벗어나려 했다. 이번 북러정상회담이 향후 비핵화 협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되는 배경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러시아와 중국이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는 아니라고 전제한 뒤 “북한이 러시아와 협상하면서 대미협상력을 제고하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북방 국가와의 유대를 강조하면서 미국의 경제적 압박을 우회하는 노력도 있다는 뜻이다. 신 센터장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제재를 위반하면서 공식적으로 북한을 지원하지는 않겠지만 협상력 제고 차원에서 중·러와의 협력을 이어가려는 태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한 ‘시간벌기’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류길재 전 장관은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협상에 대한 응원을 받겠다든지 그런 심리적 차원의 효과라면 모르겠지만, 과거 북미 간 핵협상에서 러시아의 도움을 받은 경험이 별로 없다. 이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정상국가의 이미지를 회복해 비핵화 협상력을 제고한다는 분석에 대해선 “김정은이 은둔의 지도자에서 국제사회의 지도자로 나왔다는 사실은 전에 김일성, 김정일도 러시아를 방문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며 “오히려 김정은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하면 김일성의 방러를 연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대내적으로 체제결속과 같은 효과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
이번 북러정상회담 성사는 러시아의 실리외교도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러시아는 한국정부와의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북러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경우 러시아의 한반도와의 경제협력은 물론 유라시아 구상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러시아는 이번 회담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취하는 장기적인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비핵화 협상이 급물살을 탈 경우 북한을 통한 한·러 간 경제교류도 적잖이 기대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때문에 민감한 대북제재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대북제재에 구멍을 내는데 있어 러시아의 역할이 크다고 여길 수도 있다. 북한도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에서 실리를 챙길 수 있다는 전략이 이번 북러정상회담 추진 배경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 러시아는 북한과 연결된 철도를 통해 인도적 차원의 직간접적으로 지원할 여력도 있다. 박 연구위원은 “그런 것들이 러시아에겐 굉장히 실용적인 것”이라며 “자신이 나서서 남북관계나 북중관계나, 북미관계 등을 조율할 수 있는 촉진제나 중재자 역할은 물론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양거일득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촘촘한 제재망에 구멍을 내는 등 대북제재 완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 정권으로선 살인적인 대북제재로 협상테이블로 나왔음에도 제재완화라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범철 센터장은 “대북제제를 어떻게 감시하고 단속하느냐가 문제이긴 하지만, 러시아가 철도를 통해서 구호물자는 주는 것은 다 막을 수 없다”며 “실제로 얼마 전 러시아가 밀 4000톤을 인도적으로 지원했다. 이것을 보고 북러정상회담이 준비되고 있다고 봤다. 그런 식의 지원으로 북한 경제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북한의 의도대로 제재망에 구멍을 내며 시간을 끄는 것은 대미 협상력을 제고하는 전략이다. 즉 북한에겐 러시아와의 관계가 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러시아와의 협상으로 북한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인다면 북미회담은 더 지연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북한에게 완전한 비핵화 로드맵을 요구할 것이고 북한은 아직까지 견딜 만하다는 의지를 보이며 시간을 더 끌 수 있다. 박영자 연구위원은 “북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 북한이 러시아에 더 기대는 모양새”라며 “유엔안보리 이사국이기도 한 러시아에게 더 이상의 대북제재나 추가제재 조치를 막아달라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 위원은 “그럭저럭 위기는 넘기는 상황이 될 순 있어도 오랫동안 견디지는 못할 것”이라고 봤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완전히 북한 쪽으로 기울 가능성은 적다는 의미다.

반면 러시아도 대북제재가 극심한 상황에서 북한의 말을 들어주기엔 큰 부담이 따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류길재 전 장관은 “러시아의 경우는 원유나 노동자 수입 등 북한과 큰 거래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다 제재에 걸리게 돼있다. 러시아가 어기게 되면 미국이 특히나 러시아 관련 특검사건으로 민감한 상태인데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제재와 보복조치를 견딜 만한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비핵화 협상의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도 풀기 어려운 문제인데 한국도 아닌 러시아가 끼어들기는 더더욱 어렵다”며 “김정은이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은 단순히 북·러 간의 차원에서 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이 협상에서 우위를 가져가려는 의도나 바람은 있을 수 있지만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 문재인 대통령. 연합
비핵화 협상의 비대상자인 한국의 역할

지금까지 북한이 보여온 비핵화 협상에서의 태도를 보면 완전한 핵폐기 의사는 없어 보인다. 우리 정부와의 대화는 ‘대북제재 완화’와 ‘남북경협’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협상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핵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을 진정한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신범철 센터장은 “북한의 행보를 보면 그렇게 보인다. 완전한 핵폐기 의사는 밝히지 않으면서 핵심적인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한다”며 “향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처럼, 주한미군 철수 이후 핵폐기를 하겠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우리로서는 북한에게 핵폐기를 위한 전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내놓으라고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종적 핵폐기를 위한 핵무기 신고와 프로그램 폐지를 담은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핵을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북한은 한국을 비핵화의 핵심 당사자로 여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북정상회담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정상 간의 회담을 통해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신 센터장은 “북한체제에서는 김정은의 결단이 독보적인 영향을 미친다. 북한은 체제 경직성 때문에 김정은과 다른 의견을 낼 수 없다”며 “김정은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을 전향적인 태도로 이끌 수 있는 주요한 외교수단이 될 수 있다는 풀이다.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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