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24 조치 해제할 절호의 기회…北 굶주림 해결, 북미ㆍ남북관계 회복 가능
트럼프 정부, 3차 북미정상회담 위해 5ㆍ24 조치 해제 ‘선물’로 쓸 수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한국시간)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사진은 2018년 5월 22일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만난 한ㆍ미 정상.(연합)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1박 3일 일정으로 이뤄지는 이번 방미에서 문 대통령은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간 협상의 동력을 살리고, 굳게 닫힌 남북 대화의 문을 여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한미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정착’이라고 밝혔다. 미국 역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이를 달성하는 로드맵에 대해 한미 간 의견을 조율하는데 역점을 둔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긋난 북미정상회담을 재개시키는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북한의 현 상황과 동떨어진 기대와 분석이다. 북한은 핵보유국인 만큼 비핵화(핵폐기)는 더 이상 논의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또한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미국과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워낙 커 대화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관심을 가질만한 카드를 제시하지 못하면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도 정체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자주적 외교에 나서지 못하고 미국의 대리인 역할에 그칠 경우 향후 대북 관계를 풀어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북한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이고 , ‘굶주림 해결’이다. 유엔과 미국의 제재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을 전제할 때 북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한국의 인도주의적 지원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모든 대북 지원은 이명박 정부 때의 ‘5ㆍ24 대북 제재 조치’로 인해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대화에 나서게 하고 굶주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5ㆍ24조치를 해제하는 것이다. 이에 따른 국내의 반대여론과 미국의 강경 입장을 누그러뜨리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몫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문재인 정부에 한미관계뿐 아니라 남북관계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선택과 결단이 주목된다.

北, ‘북핵 원칙(핵군축)’ 고수… 한ㆍ미 ‘비핵화(핵폐기)’ 험난

문재인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을 낙관했다. 미국을 방문해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고 돌아온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5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아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종 차장은 문 대통령의 방미 전날인 9일 브리핑에서 “비핵화의 최종 목적지나 로드맵에 대해서 우리(한미)의 의견은 다 일치한다”며 “이번 정상회담은 톱다운 접근을 지속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차장에 따르면 한미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북한의 비핵화이고, 그 목표와 과정에 대해 한미 간에 의견이 일치하므로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한미정상회담에서 대외용으로 김 차장의 발언과 근접한 발표가 나올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미국과 한국 모두 북한의 비핵화(핵폐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1ㆍ2차 북미정상회담 과정을 통해 북한이 현재ㆍ미래 핵은 포기할 수 있어도 기존의 보유핵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닳았다.

그럼에도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의제로 삼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차기 대선 전략과 관련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계적 비핵화와 이에 상응하는 대북제재 완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평화협정, 체제보장, 대북제재 해제 등을 조건으로 사실상의 비핵화를 이끌어내려 한다. 그리고 비핵화 성과를 차기 대선의 최대 카드로 활용하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은 핵보유국인 만큼 비핵화(핵폐기)는 더 이상 논의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또한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미국과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워낙 커 대화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설령 트럼프 정부가 비핵화를 전제로 확실한 체제보장과 대북제재를 해제한다고 해도 북한은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나온 비핵화 방안을 북한에 제시할 경우 남북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수 있다. 현재로선 북한이 가장 원하는 카드를 제시하는 것이 북미대화는 물론, 남북대화도 재개될 수 있다.

한미정상회담, 5ㆍ24 조치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따른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훼손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된 것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왔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미국이 약속한 대북 지원이 지켜지지 않은데 있다.

미국의 주장과 많은 보도는 북한이 회담 의제에 이의를 달거나 무리한 요구를 해 중도에 막을 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AP 통신과 로이터 통신, 미국 정부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밝혔듯 트럼프 대통령이 의제와 다른 요구를 하고 북한이 이행하기 어려운 주장을 편 게 회담 결렬의 직접적인 이유였다. 본지는 제2768호(3월 11일 자) ‘2차 북미회담 결렬 진짜’ 제목의 기사에서 2차 회담이 무산된 배경을 미국의 ‘트릭’과 일본의 ‘딴지’ 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기사의 요체는 미국이 2차 북미회담을 위해 제시한 ‘새로운 제안’에 대북 제재 완화 외에 대북 지원에 관한 부분도 있고, 이것을 일본의 대북 자금 지원으로 대신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즉, 미국이 대북 지원을 일본 재원으로 하려 했고, 그 대가로 일본의 요청(일본인 납치 문제 등)을 2차 북미회담에 반영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2차 북미회담 전날인 2월 26일 일본은 대북 지원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2차 북미회담 조건으로 북한에 줄 선물이 사라진 셈이다. 전술한 추정에 따르면 2차 북미회담은 시작 전부터 ‘파행’이 예고됐다. APㆍ로이터 통신 등이 밝혔듯 트럼프 대통령이 의제를 벗어나 북한이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을 잇따라 제시한 것은 처음부터 회담을 무산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2차 북미회담은 파행으로 막을 내렸고, 양국은 불신의 골만 깊어진 채 대립하고 있다.

2차 북미회담 결렬은 남북관계도 틀어지게 했다. 북한은 대놓고 문재인 정부의 비자주적 외교를 비난했고, 미국의 대리인 역할을 한 것에 분노했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남측은 중재자(arbiter)가 아니다”며 미국에 따라 움직이는 플레이어(player)라고 지적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관계 소식통 등에 따르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정부는 3차 북미회담을 포함해 대북 루트를 새롭게 열기 위해 한국 정부에 모종의 역할을 맡길 것이라고 한다. 소식통들은 지난 2차 북미회담에 북한이 나선 것이 대북 지원(재원) 때문이었던 만큼, 미국이 문 대통령에게 맡길 역할이 ‘재원(자금)’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고 전망한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한미정상회담 의제조율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것도 ‘재원’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미국과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어떠한 제안을 해도 북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당사국 간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현재 함경도 내륙 지역에 중국에서 널이 들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굶어서 죽은 사람들을 처리하기 위한 것으로 그만큼 북한 식량 사정이 심각하다는 것”이라며 “굶주림을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면 북이 응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소식통이 전하는 북한 사정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당시 천안함 사건과 결부해 발표한 5ㆍ24 대북 제재 조치를 재고하는 것이 북한과 미국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5ㆍ24 조치는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까지 막아놓아 유엔과 미국 제재와 무관하게 국내에서 북한 주민을 도와줄 방도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5ㆍ24조치를 해제한다면 북한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고, 대화 재개도 가능해질 수 있다.

베이징 소식통은 “5ㆍ24 조치 해제는 북이 오래전부터 남한 정부에 원한 것으로 실제 그렇게 된다면 북이 대화에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5ㆍ24 조치 해제와 관련해선 대북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제동을 걸 수 있다. 그러나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과 대화를 원하는 트럼프 정부 입장에선 무언가 ‘선물’을 제시해야 하는데 유엔이나 미국의 제재를 완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한국이 5ㆍ24조치를 해제하는 것에 반대를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북한이 제3차 북미정상회담에 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미회담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5ㆍ24조치 해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스캔들 등 국내 문제와 비핵화 해법에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5ㆍ24조치를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5ㆍ24 조치 해제에 대해 국내 보수 진영 등의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정권 차원이 아닌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굶어 죽어가는 북한 주민을 위한 것이라면 오히려 국내외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5ㆍ24 조치 해제의 해법을 찾아 남북관계와 북미대화의 새로운 길을 열어 갈 절호의 기회를 살릴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박종진 논설실장



박종진 논설실장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