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갱생’ 배수진, 인적 진용 재구축... 대남압박 확대하면서 열강 갈등 활용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이슈의 숨가쁜 전개 속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박영자의 북한읽기’를 통해 북한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분야별로 살펴보고, 변화의 양상을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편집자 주>

연이은 고위급 정치회의의 의미

최근 북한에서는 4월 9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이하 당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 4월 10일 당중앙위 제7기 제4차 전원회의, 4월 11~12일 한국의 정기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연이은 정치회의를 통해 지난 2월 북미 간 하노이 회담 노딜 이후 북한의 선택이 드러났다. 이를 한 문장으로 평가하면, 대내적으로 ‘자력갱생’이란 배수진을 치고 김정은 정권 2기의 인적 진용을 재구축하며, 대외적으로 남한정부 압박 및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 간의 갈등 활용 전략의 제시이다.

특히 금번 제14기 1차 최고인민회의는,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란 김정일의 전략적 선택이 드러난 2000년 이후, 19년 만에 2차 회의 이상 이틀 간 연속 개최되었다. 그리고 김일성 시대 이후 29년 만에 최고지도자의 시정연설이 이루어진 회의이다. 또한 당중앙위 정치국회의 및 전원회의를 거쳐 의제를 정당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

5대 특징과 전망

금번 연이은 정치회의의 결과를 향후 북한의 행보와 관련된 핵심 특징을 중심으로 총평해보면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자력갱생’이란 배수진 치고 국가기구(인민정권기관)의 역할을 강화하며 대외 환경변화 요구이다. 둘째, 김정은 중심 세대교체와 ‘당-국가 일체화’ 방향에서 인적 진용 재구축이다. 셋째, 북미협상 문열어 놓은 채 대미·국제외교 라인을 정비하고 ‘장기전’ 돌입이다. 넷째, 열강 간 각축을 활용한 ‘자주 외교력’ 강화 전략 하에 중·러 외교 및 ‘북중러 삼각동맹’과 반제국주의 연대 강화가 전망된다. 다섯째, 남북관계 및 대남사업에 북한이 남한정부에 대한 기대치를 높일 전망이다.

향후 전망과 연계된 핵심 특징은, 대내적으로 북한의 국가경제발전전략 5개년계획의 마지막 해이자 미국 대선 등 국제환경 변화가 이루어질 2020년을 기점으로 한 북한 국가정책의 전략 변화를 준비하기 위해, ‘국가기구 정비 및 인적 진용을 재구축하며 과도기 전략을 제시’한 회의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정은 ‘호칭’과 권력구조 변화

금번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재추대된 김정은의 호칭에 변화가 드러났다. 당위원장이나 국무위원장이란 직책 외에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이란 호명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기존에는 “최고령도자” 및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란 호명이 사용되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는 국가 주권과 관련된 호명이다. 따라서 북한의 국가 주권이 김정은으로 집결되어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은 국가의 공권력과 관련된 호명이다.

북한의 권력구조를 시기별로 살펴보면, 김일성 시대에는 당과 정(국가기구)으로 구분된다. 그러다 김정일 시대에 선군정치가 본격화되면서 군부가 강화되어 당, 군, 정으로 구분되었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은 집권 7년 동안 당과 국가기구를 강화시키면서 군부를 약화시키는 행보를 보였다. 그 결과가 ‘국가의 군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이란 호명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를 향해, ‘민족’을 넘어선 국가주의 리더십

이러한 호명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한편으론 북한이 국제사회로 정치의 폭을 확대하기 위해 국가체계를 강화하려는 김정은 정권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론 ‘민족’을 넘어서 ‘국가’를 중시하는 김정은의 국가관이 투영된 것이다. 그 맥락을 그간 김정은의 통치 양상 및 향후 전망과 연계하여 살펴보자.

먼저 그간 김정은은 노동당을 중심으로 정권 안정화에 집중하였다. 그러면서 점차 국가기구와 외교활동을 강화하는 양상이었다. 따라서 김정은은 대내적 최고지도자를 넘어서 국제사회를 향한 대외적 최고지도자로서 위상과 역할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으로 금번 김정은의 시정연설 및 회의결과에서는 ‘국가’ 및 ‘국기’ 강조가 두드러졌다. 이러한 국가주의적 선전은 이미 2018년 이후 북한의 전면적 외교 활동 과정에서 노동신문이나 각종 북한의 공식매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따라서 이는 김정일의 “우리민족제일주의”를 넘어서려는 김정은의 “우리국가제일주의”식 국가중심적 의식의 반영이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은 한국의 국회의원 격이다. 총 687명으로 북한의 각 지역별로 주민들에 의해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되어 주민들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따라서 선출직 공무원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북한체제 특성상 이들은 대부분 관료들로 당과 국가기구의 간부 직위에 있으며 북한체제를 운영한다. 올해 선출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5년 임기) 687명의 인적 특징을 중심으로 김정은 정권 2기 관료 구성을 살펴보자. 특히 평가와 전망을 위해 김정은 정권 1기 관료라 평할 수 있는 2014년 4월 구성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들과 비교해 보자.

먼저 직업으로 보면 여전히 군인이 가장 다수를 차지하나, ‘자력갱생’ 기조에 따라 경제건설과 생산을 책임질 노동자가 증대한 반면 농민층은 축소되었다.

즉, 북한 혁명의 3대 주력군이라는 공장^기업소 노동자가 16.2%, 협동농장원이 9.6%, 군인이 17.2%를 차지한다. 그 이전 관료들로 2014년 선출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이하 13기 대의원)들의 경우, 군인 17.2%, 노동자 12.7%, 협동농장원 11.1% 였다.

실리 중시, 청년층과 여성 증대

다음으로 주요 경력 또는 이력을 중심으로 볼 때 혁명세대 또는 현직 관료들로 훈장을 받은 이들이 10% 가량 대폭 축소되고, 영웅칭호자와 지식엘리트 계층 중에는 김정은 시대 성과를 낸 인물 중심으로 다소 증대했거나 이전과 유사한 규모이다. 전체적으로 인사에서도 ‘명분보다 실리 중시’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즉, 훈장(김일성훈장과 김정일훈장, 김일성상과 김정일상)을 수여받은 성원이 20.7%, 영웅(공화국영웅, 로력영웅) 칭호를 수여받은 성원이 13.5%이고, 교수·박사 외 기술자·전문가자격 소유자들이 92%이며 대의원의 94.8%가 대학졸업 정도의 지식을 소유했다. 반면 13기 대의원들의 경우, 훈장을 받은 이들이 30.2%, 영웅칭호를 받은 이들이 14.6%, 교수·박사 및 과학자·기술자·전문가들이 91.7%이고, 대의원의 94.2%가 대학졸업 정도의 지식 소유자들이다.

마지막으로, 세대의 경우 김정은 세대라 칭할 수 있는 39살 이하가 증대한 반면 장년층과 노년층은 축소하였다. 그리고 성별로 보면 여성 비율이 증대하였다. 금번 14기 대의원들의 연령대는 39살 이하 4.8%, 40살부터 59살까지 63.9%, 60살 이상 31.3%이며 여성은 17.6%로 구성되었다. 한편, 이전 13기 대의원들의 경우, 39살 이하 3.9%, 40~59살 66.9%, 60살 이상 29.2%이며 여성은 16.3% 였다.

고위직 인적 개편의 특징

금번 당 전원회의 및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발표된 김정은 정권 2기 고위직 인적 개편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세대교체이다. 북한의 전통적 인사원칙은 ‘노장청 배합원칙은 지속’되나 고위직 엘리트 평균연령이 10~20세 정도 젊어졌다. 고위직 엘리트 세대구조가 기존 70~80대 엘리트들로부터 평균 60~70대 엘리트들로 전환되었다. 이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북한은 2017년 9월 3일 제6차 북핵실험 이후 대북제재가 전면화되고 대외적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2017년 10월 7일 당중앙위 제7기 2차 전원회의를 진행하였다. 이때 김정은 시대 노동당 고위직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이후 지난 2년 간 고위직에 대한 부분적 인물 교체가 이루어지다가 금번 4차 전원회의에서 이를 공식화하였다. 2018년 4월 20일 개최된 당중앙위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는 ‘경제발전총력전’을 선언한 것 외에 대규모 인사이동은 없었다.

다음으로 당중앙위 제7기 4차 전원회의 인적 개편 결과가 국가기관에 반영되었다. 당정치국을 중심으로 한 당고위직과 국무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국가고위직 간부들이 겸직하는 중첩성이 고도화되었다. 또한 당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국 위원 증대(13명→18명, 후보위원 1명 증대)와 함께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국무위원회 성원도 증대(12명→14명)하였다.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대표되는 핵심 정책결정수뇌부를 3인체제로 압축(김영남 탈락)한 것에 비해, 당과 국가의 주요 권력기구 운영 핵심엘리트를 증대시켜 정책 집행과 관리, 성과에 책임성을 강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력갱생의 장기전’ 전략과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내각 전문가들의 당으로 이동이다. 먼저 박봉주가 내각(총리)에서 당(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음에도 당 정치국 상무위원 직위를 유지하고, 당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에 국가정책과 경제행정기구 관리 경험이 많은 내각 부총리 출신들이 다수 포진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군수공업 분야 지역 인물의 약진이다. 북한 군수산업 밀집지역인 자강도와 평안북도 당위원장 출신인 김재룡 신임 내각총리 및 리만건 당 부위원장 등의 약진이 주목된다.

고위직 ‘인적 진용 재구축’ 의미1, 김정은의 세대코드에 조응

앞선 고위직 인적 개편의 특징에 기초하여 금번 4월 변화된 고위직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살펴보자. 이는 향후 북한의 대내외 주요 정책 방향을 예측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전체적으로 주요 3대 특징을 짚어 보면, 첫째, 김정은의 세대코드에 맞추어 보다 발빠르고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고위직 세대교체이다. 둘째, ‘자력갱생’의 장기전에 맞춘 군수산업 분야 전문가들의 고위직 배치이다. 셋째, 국제사회 및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한 외교력 향상을 의도한 고위직 배치이다.

먼저 고위직 세대교체를 통해 ‘김정은 세대 정치’에 보다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적 진용을 구축했다.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최태복(89세)에서 박태성(64세, 당 과학교육 부위원장)으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김영남(91세)에서 최룡해(69세, 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로 변화되었다. 그 외 김정은, 최룡해와 함께 당 상무위원 및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을 유지한 박봉주(80세)의 내각총리 역할은 신임 당 정치국 위원 김재룡(50~60대 추정)으로 이전되었다.

고위직 ‘인적 진용 재구축’ 의미2, 장기전 준비 군수산업 출신 약진

다음으로 대북제재 상황에서 장기전을 준비하는 정책방향과 긴밀히 연결된 것으로 추정되는 군수산업 지역 출신들의 약진이다. 북한 군수산업 밀집지역인 자강도와 평안북도 당위원장 출신인 김재룡 신임 내각총리 및 리만건(74세) 당 부위원장 등의 약진이다. 신임 내각총리에 자강도 당위원장이었던 김재룡이 신임된 것을 비롯해, 평안북도 당위원장이었던 리만건이 당 정치국 위원·당중앙군사위 위원에 보선 및 당 부위원장·전문부서 부장(조직지도부 추정)으로 임명되었다.

리만건은 김평해(78세, 행정인사 분야 당 부위원장)에 이어 2010년 평안북도 당위원장 및 2016년 당 군수공업부장 직을 맡다가, 2017년 10월 2차 전원회의 이후 공식석장에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금번 리만건의 화려한 등장은 향후 북한의 국방정책, 군대 조직사업, 군수산업 중심의 자력갱생, 그리고 대북제재 상황에서 북한의 무기 생산과 수출 등과도 연계하여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고위직 ‘인적 진용 재구축’ 의미3, 외교활동 강화

마지막으로 향후 북한의 외교활동 강화 및 국가의 외교력 향상을 의도한 고위직 배치이다. 중국·러시아 등 사회주의권 국가와의 외교경험이 풍부한 최룡해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자 신설된 국무위원회 제1부의원장에 임명되었다. 그의 활동 경력과 신임 직위를 고려할 때, 향후 북한은 최룡해를 중심으로 구 사회주의권 국가 및 반미권 국가들과의 외교를 강화하면서 대북제재 무력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무위원회에 ‘리수용-김영철-리용호-최선희 라인업’으로 대미·국제기구·유럽지역 외교 활동 및 (인도적) 대북지원 관련 사업과 활동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외 주목해야 할 고위직 엘리트는 조용원과 김조국이다. 금번 인사에서 조용원은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제1부부장으로 승진하고 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신임되었다. 이로 보아 조용원은 조연준의 뒤를 이은 조직지도부 내 실세 역할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번 인사에서 새롭게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며 당중앙위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어 급부상한 김조국이 주목된다. 그는 당중앙위 위원과 제1부부장뿐 아니라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도 보선되었다. 따라서 당에서 군사 또는 군수공업 관련 부서 제1부부장인 것으로 추정된다.

2004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숙명여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북한 체제를 연구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통일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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