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외교적 협력 통한 장기전 대비하고 대북제재 균열 모색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통해 정책과 조직 측면에서 김정은 체제 2기를 구축한 후 러시아로의 첫 외교행보를 보였다. 지난 2월 북·미 정상 간 하노이 회담 노딜 이후 첫 정상 간 외교행보이기도 하다. 미국의 북·미 협상라인 폼페이오와 볼턴에 대한 직접적 비난과 함께, 2018년 4월 27일 이루어진 남북 간의 <판문점 선언> 1주기를 외면하고 러시아로 향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 중요하고 복잡한 정세 속에서 러시아행을 택하였는가? 그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
전체적으로 보면, ‘자력갱생의 장기전’ 대비 위한 북·러 간 협력 모색, 러시아의 외교적 경제적 대북지원, 미국에 대한 공세, 중국에 대한 견제와 견인, 중국보다 러시아의 외교적 영향력이 큰 중앙아시아와 유럽(특히 동유럽) 및 중동 지역 국가들과의 협력 모색, 북^중^러 간 군사협력을 포함한 연대 강화, 동북아지역에 새로운 외교^안보 체계 논의, 러시아가 중재하며 대북제재를 회피할 수 있는 남^북^러 3자 경제협력 방안 모색 등 다양한 의도와 목적이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모든 주제를 다루기에는 지면상 제약이 있다. 따라서 북한입장에서 당면한 주요 사안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김정은 수행단’을 통해 본 의미
지난 4월 24일 새벽 김정은의 러시아행에 동행한 고위직 수행단을 통해 그 의미를 살펴보자. 첫째, 당 경제부 부장이자 국가 예산위원회 위원장인 오수용이 동행하였다. 이는 금번 러시아행의 주요 목적이 대북제재 지속 하에서 북한 경제의 활로 모색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외무상 리용호 및 외무성 제1부상인 최선희의 동행이다. 이 둘은 지난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시 정비된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현 시기 북한 외교계의 핵심인물이다. 특히 대미외교에 주력하던 고위직들이다. 따라서 금번 러시아 행의 또 다른 목적이 하노이 회담 노딜 이후 ‘북한 외교의 새로운 길’ 모색 및 ‘트럼프행정부 옥죄기’에 있음을 추정하게 한다.
셋째, 북한군 총참모장인 리영길(육군대장)의 동행이다. 김정은의 러시아행 이틀 전인 지난 4월 22일 인민무력상 노광철(육군대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제8차 국제안전에 관한 모스크바토론회>에 참가를 공식 명분으로 먼저 출발했다. 그런데 금번 김정은 수행단에도 총참모부 책임자가 동행한 것이다. 북한의 총참모부는 한국의 합동참모본부 격으로 북한 무력의 전반을 총지휘하는 군 최고집행기관이다. 북한의 육·해·공군의 군사작전 종합계획을 통솔하며 군령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금번 러시아 행에는 동북아시아 지역 국방안보 관련 북·러 간 협력 의도가 보인다.
넷째, 의외의 인물인 당 간부부 부장 김평해의 동행이다. 올해 78세인 김평해는 북한 군수산업 밀집지역인 자강도 출생이자 평안북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출신으로, 김정일 정권시기부터 북한 군수산업 발전에 긴밀히 관여한 인물이다. 또한 2019년 4월 말 현재 당 정치국위원이자 당부위원장으로, 2010년 이래 중앙당 간부부 부장을 20여 년간 역임하여 오랜 경륜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중앙당에서 고위직 간부사업을 20여 년간 책임진 인물로, 금번 당 제7기 4차 전원회의와 제14기 제1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발표한 김정은 2기 고위직 구축 이후 향후 간부정책에 대해 김정은에게 조언해 줄 수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전체 수행단 구성을 볼 때 김평해는 수행단 대표이자 어른격으로, 김일성-김정일 시대 북^러관계에 기초하여 수행단에 도움을 주고, 장시간의 열차이동 과정에서 김정은을 수행하며 향후 간부사업에 대해 조언할 수 있는 인물이다.
‘장기전’ 대비 위한 북한 경제 다변화와 대북제재 균열 모색
북한은 2016년 7차 당대회 후 자립적 국가경제발전전략에 입각해 경제 및 무역 활동을 다변화하는 행보를 보였다. 중국에 너무 의존해 있는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해 국산화 정책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또한 중국편중의 무역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러시아와 동남아시아, 중동지역 등 북한과 우호적인 국가들과의 경제교류 및 무역 등을 꾀하였다. 따라서 지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제시한 ‘장기전’ 대비 차원에서 북한 경제와 무역의 다양화 및 다각화를 위해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거래에서 중국 다음으로 높은 무역액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이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유럽지역, 그리고 중동지역에 영향력이 중국보다 큰 국가이다.
또한 러시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을 중심으로 북한 노동자들이 많이 파견되어 있다. 러시아 최고지도자 푸틴의 동방정책 거점 도시인 블라디보스톡은 대대적 건설사업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노동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북한 외화벌이 회사를 비롯해 노동자들이 건설업과 북한 식당 등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노동자 송출은 북한 정권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다. 그런데 2017년 유엔의 대북제재가 전면화되면서 북한의 외화벌이 활동이 어려워졌다. 따라서 북한은 미·중 간 무역전쟁으로 위축되어 있는 중국에 비해, 각종 편법 동원이 용이한 러시아에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러한 흐름은 현실화되고 있는 듯하다.
최근 러시아에 대북제재로 한동안 잘 보이지 않던 북한 노동자들이 자주 목격된다. 북한 노동자와 식당 종업원들이 러시아 지역에 새로 파견되고 있다는 소식들도 보도되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노동비자 대신 교육연수 비자를 발급받아 건설업계나 식당들에서 일하고 있다. 편법적인 노동활동이지만 각종 편법이 일반화된 러시아 사회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러시아 극동지역은 경제활동인구 공동화 현상으로 젊은 노동력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극동지역 건설 및 발전을 위해 저렴한 노동력인 북한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높다. 따라서 금번 북^러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의 노동력 송출을 포함해 유엔 대북제재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방안들이 모색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대한 불만과 견제
북한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는 단연 중국이다. 그러나 1990년대 개혁개방 이후 중국 중앙정부는 단 한반도 북한에 과감한 지원을 해준 적이 없다. 북한체제가 붕괴되지 않는 데 일조하는 최소한의 선에서 원유 50만톤을 지원하는 수준이었다. 북중 무역과 교류가 활성화된 것은 중국 중앙정부가 아니라 향진기업을 중심으로 급속히 성장한 중국 지방산업과 지방정부의 역할이 컸다. 특히 노동력이 부족한 동북 3성 기업들의 필요와 북한의 시장화 과정에서 확장된 북한측의 필요가 맞물리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국경을 맞대고 사회주의권 연대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북^중 간 균열은 1990년대 극적으로 드러났다.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의 수많은 주민들이 기아에 허덕이던 ‘고난의 행군’ 시기, 중국은 자국의 국가이익에 충실하여 한국과 수교를 맺으며 북한을 외면하였다. 북한정권은 아직도 그 시기 중국의 행태를 잊지 않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서로 간의 필요에 따라 ‘긴밀한 우방’으로써의 행보를 보인다. 그러나 국가 정체성 측면에서 볼 때 북한정권의 고위급들은 아직도 당시 ‘중국의 배신’을 잊지 않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애증의 한^일 관계’와 유사한 측면도 있다.
더욱이 대북제재가 민생영역으로 확장된 이후 중국 중앙정부가 이에 합류하고, 미국의 ‘중국 쪼이기’와 함께 중국 중앙정부가 ‘북핵 불용’ 정책을 강화하면서, 북한의 중국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다. 이는 2017년 10월 북한 노동당 제7차 2차 전원회의 시 극명히 드러났다. 즉, 1960년대 중국이 핵국가로 인정받으려 할 때 구소련 등 많은 국가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찬성하고 도와주었는데 중국은 위기에 빠진 북한을 외면한다는 인식이다.
‘열강 간 갈등’ 활용 및 중국 견인
또한 최근 미^중 간 무역전쟁 과정에서 중국은 자국의 이익에 집중하고 있다. 상징적 지표로 2019년 초 현재 북·중 간 무역량이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2월 중국의 대북 수출액은 8,900만 달러 수준으로 김정은 집권 이후 최저치였다. 하노이 회담이 있기 전인 지난 1월 대북 수출액이 1억 6,700만 달러였던 것에 비해 1/2 수준으로 급락하였다. 중국의 대북 수입액 역시 1월 2,010만 달러, 2월 1,800만 달러 수준으로 2018년에 이어 최저 수준이다. 2018년 같은 기간에 비해 올해 1~2월 중국의 북한지역에 수출은 약 5% 감소하였고 북한으로부터의 수입은 약 16% 감소하였다.
이는 중국 중앙정부가 지역과 기업 중심의 북^중 간 무역 단속을 강화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외교에 집중하고 있다. 이와 연동되어 일본과의 외교도 강화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중국의 북한 지원은 러시아 보다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올 들어 중국의 대북 정제유 지원량이 러시아에 비해 매우 낮아졌다. 러시아가 올 1~2월 북한에 정제유 10,358톤을 공급한 반면 중국은 1/9 수준인 1,117톤을 공급한 수준이다. 이러한 흐름으로 보아 북한의 비핵화에 진전이 없다면 북^중 무역량은 더 줄어들고 단속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게 중국은 미국과의 협상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장기전’을 대비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국가이다. 따라서 북한은 러시아를 매개로 한 중국 견인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즉, 동북아의 ‘복잡한 정세와 열강의 갈등’ 활용이다. 북^러 정상회담 직후인 2019년 4월 26~27일 간 베이징에서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연결하겠다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對一路) 정상포럼이 개최된다. 이 포럼에는 북한의 대외경제상 뿐 아니라 북^러 정상회담 직후 푸틴도 참석한다. 이들을 통해 김정은의 메시지가 시진핑에게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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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숙명여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북한 체제를 연구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통일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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