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협상의 게임체인저 기대”

정부가 대북식량지원을 공식화하고 각계와 여론의 의견을 수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식량지원 시기와 방식, 규모 등은 아직까지 세부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 북한의 시급한 식량 사정을 보면 ‘식량 지원’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현실적인 조건을 맞추고 조만간 대북식량 지원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미국에게도 대북식량지원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동의와 지지를 얻었다고 홍보한다. 잇따른 미사일 도발로 비핵화 정세가 다시금 긴장상태로 접어드는 가운데 왜 우리 정부는 대북식량 지원 카드를 적극적으로 내밀고 있는 것일까.

지난 16일 통일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실무적 차원의 내부회의 등은 계속 하고 있지만 결정된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대북식량 지원의 시기와 방식, 규모와 관련한 결정된 사안이 아직까진 없다는 뜻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식량사정 보고서를 예로 들며 “올가을 수확기까지, 5~9월을 지원이 필요한 시기라고 적시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세계식량계획 관계자를 직접 청와대로 초청해 대북식량지원에 관한 논의를 하면서 식량지원에 대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추진 배경

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이후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다. 극심한 가뭄 때문에 가뜩이나 좋지 않은 농업사정이 극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해마다 반복되는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감자나 옥수수와 같은 밭농사를 장려해왔고, 메기 양식 등을 통한 어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펼쳐왔다. 특히 바다에서의 어류 포획을 무분별하게 펼치며 바다의 씨를 말리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북한의 곡물 사정은 녹록지 않다.

현재 북한은 전방위적인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됐다. 북한의 주요 수출품목인 석탄 및 광물자원까지 막혀버리면서 식량 사정은 훨씬 극심해졌다. 얼마 전 북한 적십자사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한 것도 식량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식량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등의 선전구호를 내걸며 주민 결속에 나섰다.

식량지원 왜 집착하나

우리 정부의 대북식량지원은 과거부터 이어져온 대북사업 중 하나다. 과거 식량으로 지원한 쌀이 군량미로 들어간다는 국내외 비판은 꾸준히 있었지만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상당기간 지속돼 온 것이 식량지원 사업이다. 식량지원은 약품, 구호품 등과 같은 인도적 지원 범주에 포함돼 정치와 무관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 아래 정치적 목적도 분명히 내재돼 있다. 대북식량지원에 대해 한 북한 협상전략 전문가는 “이름은 인도적 지원이지만 분명한 정치적 의도도 깔려 있다”며 “인도적 지원을 통해 경색된 정치 상황을 풀고 대화 국면을 살리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관에서 열린 대북식량지원을 위한 종교ㆍ민간단체 합동 기자회견에서 정인성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남북교류위원장(오른쪽)이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

정부의 쌀 지원은 민간차원의 인도주의 성격과는 약간 다르다. 대북 식량 지원은 정부가 직접적인 주체가 되기 때문에 상당 규모의 지원이 이뤄진다. 민간단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이기에 금액도 높은 수준이다. 김영삼정부부터 시작된 대북 쌀지원은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총 265만 5000톤이며, 1조 1015억 원 정도로 환산된다. 상당한 액수다 보니 항상 식량 지원은 쌀의 ‘정치화’로 이어졌다. 정부는 대북식량 지원을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중요한 지렛대로 여기고 있다. 대북 협상전략 전문가는 “촘촘한 대북제재 망에서도 식량지원의 ‘성의’를 보인다면 북한도 교착된 현 비핵화 국면에서 반응을 보일 가능성도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봤다.

대북식량 실현 가능성은

대북 식량지원은 정부차원의 사업이기 때문에 상당 규모의 예산 편성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인도주의 차원의 식량 지원 사업이 국내 정치 상황과 밀접하게 연동돼 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사실상 핵 무장 완성단계에 이르렀고 대북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쌀 지원은 사실상 금기시되는 사업이었다. 하노이 핵담판이 결렬되고 북한이 미사일을 쏘며 다시 긴장국면에 접어든 시점엥서 쌀 지원 논의가 나오는 것도 ‘의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북한도 관영매체들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들을 밀어놓고 ‘인도주의’니 하며 공허한 말치레와 생색내기를 한다”, “남조선 당국이 북남선언들을 철저히 이행하려는 입장과 자세부터 바로 가지지 않는다면 북남관계의 전진이나 평화번영의 그 어떤 결실도 기대할 수 없다”는 등의 직접적인 비난 공세를 펼치고 있다. 비핵화 협상에 쌀 지원을 끌어들였다는 사실에 불편한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다. 현 시점에서는 우리가 쌀을 지원한다 해도 북한이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대북제재에 반한다는 국내외 비판 여론도 우리 정부에겐 부담이다.

대북식량, 비핵화 협상 물꼬틀까

현재 북한의 완강한 태도를 비춰보면 식량지원과 비핵화 협상과는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비정치 분야의 파급효과를 충분히 기대해봄직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 지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후로 남북 간 대화가 급물살을 탄 것이 근거다. 스포츠, 경제 분야에서의 교류가 정치·군사 분야로 파급된 사례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대북 식량지원 카드는 비핵화 협상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비핵화 협상이 지난 하노이 회담 이후로 구체적인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으로 협상에 훈풍을 불어다 넣는다면 비핵화 협상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한 대북사업 민간단체 대표는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포괄적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남북 경협의 특수성을 활용하는 것은 북한을 움직이게 할 만한 충분한 동력”이라고 말했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