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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분 ‘판문점 회동’ 평가와 의미

결과물 나와야 ‘성공’으로 평가… ‘스몰딜’ 얘기도 스멀스멀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의 역사적인 회동이 있었다.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방한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기 하루 전 공식 외교채널이 아닌 트위터로 ‘김정은과 만나길 희망한다’고 밝혔고 결국 역사적인 판문점 회동이 완성됐다. 지난해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남북경계선을 넘어가 기념촬영을 했던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 땅을 밟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됐다. 이 모습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며 다소 과장된 의미부여를 하기도 했다.

지난 1일 청와대는 판문점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미국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후 문 대통령에게 회담 일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국 측의 상세한 브리핑으로 대강의 판문점 회담 내용이 우리 정부에 전달됐다. 현 단계에서는 북미 간에 어떤 구체적인 의제가 오갔는지, 북미 정상 간에 우리가 어떤 의견과 아이디어를 내놨는지 등은 아직까지 알 수 없다.

판문점 회동으로 핵협상은 ‘반전’

분명한 것은 앞으로 1~2주 안에 북미 양국이 실무팀을 꾸려 본격적인 3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담금질에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하노이 회담 이후 몇 달 간 북미 양국은 실질적인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보이지 못했고 최근에는 북한이 “미국의 정책실무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본격적인 비난 공세에 들어간 바 있다. 교착된 비핵화 협상이 경색국면에 접어들 찰나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했고 즉흥적인 판문점 회동에 비핵화 국면이 완전히 ‘반전’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김정은 위원장과 진행한 약 53분 간의 단독 회담을 마치고 취재진에 “북미는 각각 대표를 지정해 포괄적 협상을 하는데 합의했다”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주도로 2~3주 내에 실무팀을 구성해 실무협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노이 협상 이후 실제적인 대화를 주고받지 못한 북미 양국에게 새로운 북핵협상 테이블이 마련된 셈이다.

“‘사실상의 종전’은 지나친 해석”

이번 이벤트의 단면만 보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순풍을 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북협상에 있어 원칙론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그대로 북핵협상의 실무자로 거론됐다는 점과 비핵화 조치 없이는 제재완화도 없다는 미국의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어 상황을 낙관하긴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판문점 회담을 두고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고 규정하며 한반도 평화체제까지도 염두에 둔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에 이어 북미 간에도 문서상의 서명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은 판문점 회담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나서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이런 과도한 낙관적인 태도는 조급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며 “북한 비핵화는 아직 어떤 실질적인 진전도 없는 상황에서 판문점 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실무협상이 재개된다는 정도만 합의됐다”고 지적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 센터장은 “종전선언이란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치적 선언인데, 이번에 정전체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거나 평화체제와 관련한 구두 합의 같은 것도 없었다”며 “사실상 종전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으며 그 의지에 대한 양 정상의 입장 발표도 없었기에 단지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한 진일보된 만남을 가졌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의 사실상의 종전선언 발언은 이 상황에 부합하지 않으며 실제보다 과장된 표현이라는 해석이다.

김정은, 트럼프 단독으로 만나면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노딜 이후 위상이 크게 흔들린 것으로 알려졌다. 핵을 포기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말에 군부 내 강경파는 불만을 드러내고 있고, 하노이 회담에서 별다른 소득이 없자 노동당 간부들 사이에서도 회의론이 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제안을 듣고 만 하루 만에 판문점 행보를 결행했다.

톱다운 방식을 여전히 선호하는 김정은 위원장에겐 이번 기회가 절호의 찬스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으로서는 실무선에서 극적인 반전과 미국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오기 어렵다는 인식을 하는 것 같다”며 “판문점 회동으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를 생각했을 텐데 참모진 없이 트럼프와 단독으로 만난다면 분명히 이득을 얻을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협상방식을 30여 년 간 연구해온 한 북핵협상 전문가는 “트럼프가 김정은을 두고 ‘He is very good man’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김정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노동당 지도층을 설득해야 하는 김정은은 시간을 벌면서 충분한 명분을 제시하고 있고, 트럼프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김정은의 입장을 받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 연합
남북미 국내정치 이해관계 맞아떨어진 결과물

이번 판문점 회동은 남북미 3국의 국내 정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재선을 위해 ‘비핵화 실적’으로 국민들의 표심을 확실하게 끌어 모으려는 심산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최대 실적 중 하나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공공연하게 언급하며 과거 정부와 비교하며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의 여론도 북한이 추가적인 핵실험이나 ICBM 발사를 하지 않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그것이 트럼프의 지지율과도 직접적인 연관관계로 작용한다.

김정은은 어린 나이에 빠르게 독재 권력을 확립했지만 ‘어린 나이’는 여전한 아킬레스건이다. 강경한 군부에 밀리지 않는 배짱, 정적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김일성의 행보를 따라하는 까닭이다. 김 위원장은 이제 핵경제병진노선에서 경제 중심 기조로 이동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으려 하고 있다. 1인 독재체제에서도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중요한 요소다. 김정은은 70~80년 간 이어져온 ‘미 제국주의’와의 피비린내 나는 대치를 청산함으로써 안보불안을 해소하고자 한다. ‘경제’ 때문이다. 북한이 그토록 제재완화에 집착하는 이유다.

문재인정부는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서 지지율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고, 성과도 북핵이슈외에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단시간에 분위기를 바꾸고 국정수행 동력을 높일 카드로 비핵화 이슈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실제로 국민들은 이번 판문점 회담을 10명 중 7명이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문재인정부의 지지율도 소폭 반등세로 돌아섰다.

대화 동력의 부활

트럼프 대통령이 최초로 분단의 선을 넘었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런 평가에 부합하는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 두 차례의 북미회담에서 북미 양국은 뚜렷한 결과물을 가져오지 못했다. 때문에 이번 판문점 회담이 비핵화 문제를 새 출발선에 다시 올려 놓은 셈이 됐다. 신범철 센터장은 “이번 사건은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꺼져가는 대화의 동력이 이어진 것은 분명한 의미가 있지만, 그것으로 종전선언이 됐다거나 비핵화의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했다.

북미는 실무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했지만 비핵화의 길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정통 ‘매파’로 통하는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고 “비핵화 조치 없는 제재완화는 없다”는 폼페이오 장관도 건재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단순히 트위터에 올린 글에 한달음에 달려온 김정은 위원장을 보면 핵협상은 미국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핵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갔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안보학부 교수는 “북한은 1인 독재체제 특유의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정상 간의 단독회담에서 달콤한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며 “미국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기보다는 협상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북한도 이것이 이득이 있다고 판단했기에 이뤄진 만남”이라고 평가했다. 북핵협상을 30년 이상 연구해온 한 전문가는 “미국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이다. 김정은이 그와 단독회담하는 것만으로도 대외과시용, 체제결속에 효과가 있다”며 “북한은 협상의 자리에 자신의 이득이 보이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 이번 회동도 그런 의미”라고 분석했다.

“핵협상이 잘 풀리면 정치쇼 플러스 알파가 될 것”

북미 양국은 하노이 노딜 이후 서로에게 ‘셈법을 바꾸라’는 자세를 취하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왔다. 그러나 이번 회동으로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한 것은 가시적인 성과로 볼 수 있다. 양국 정상은 서로 워싱턴과 평양으로 오라고 초청했다. 여지껏 핵문제에 있어 광폭행보를 보인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에겐 전혀 가능성이 없는 시나리오도 아니다. 다만 이런 제안이 성사됐을 경우 분명한 성과를 가져와야 하는 ‘부담감’도 뒤따른다. 실무협상이 조금 더 촘촘하고 세밀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까닭이다.

3차 북미회담은 남북미 모두에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확실한 ‘비핵화 결과물’을 바라는 여론의 압박이 훨씬 더 커졌기 때문이다. 잘 되지 않으면 ‘한낱 정치쇼에 불과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남성욱 교수는 “이번 일이 결과론적으로 잘 풀리면 정치쇼 플러스 알파가 되는 것”이라며 “향후 비핵화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게 된다면 남북미 3국은 손해 보지 않은 장사를 한 셈이지만 실무적인 결과물을 또다시 가져오지 못한다면 비난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에선 ‘스몰딜’ 솔솔

비핵화 협상이 재개됐다고 해서 상황을 낙관하긴 이르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30년 이상 지속된 북핵문제에 굉장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북한을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차츰 힘을 얻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핵을 가져도 핵탄두를 미 본토로 발사할 수 있는 ICBM 개발만 막으면 된다는 일종의 ‘핵동결’ 논의도 크게 나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물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하게 되면 한국, 일본, 대만의 핵 무장을 촉발하는 ‘핵 도미노’ 현상을 우려하는 주장이 여전히 강하다.

북한의 핵동결은 미국에겐 차선책이 될 수는 있지만 우리 안보에는 ‘최악’의 상황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는 물론 워싱턴 조야의 움직임을 세심히 살피고 적극적인 로비활동을 통해 완전한 북핵폐기 여론을 환기시키는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북핵협상 분야 한 전문가는 “미국 내 여론과 국회, 오피니언 리더들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며 “외교적 상황에 따라 미국의 입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촉각을 세우고 우리의 목적을 일관된 자세로 관철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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