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전문가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인터뷰

한일 관계가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의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소강상태로 접어들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고, 양국의 무역 전쟁은 복잡하게 이어지는 모양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 정치권이 ‘톤다운’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양 교수는 일본기업의 현금화 조치를 막는 방안을 만드는 것에서 협상의 출발점이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일본의 추가적인 보복 조치를 막기 위해 WTO를 활용한 국제여론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 한일관계가 어쩌다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고 보나.

“정상 간 신뢰를 구축하지 못한 것이 실패한 이유다. 상호불신이 당정청을 막론하고 잠복해 있었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회담을 해왔지만 만날 때마다 충돌했다. 한반도 비핵화 이슈에서 일본은 나름대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호불신 속에서 역사문제가 터졌다. 일본은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수출규제를 시작했다. 반도체는 우리의 숨통과 직결되는 분야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로서는 양국 간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조치가 어떤 파장으로 이어질까.

“일본이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부품을 개별허가로 바꾼 것은 의미가 크다. 일본은 90일 간 수출을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단기간에 국산화할 수 없는 소재부품도 많다. 일본이 기술력을 무기 삼아 통상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불신감이 생겼다. 기본적으로 한일간 신뢰관계가 크게 훼손됐다. 처음엔 역사갈등이었는데 경제마찰로 이어졌고 통상마찰이 안보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자유민주경제를 공유하는 이웃나라로서의 한국이 아니고 언제든지 적대적 관계로 갈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 미국의 중재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현실성 있나.

“미국은 양자 간에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우리가 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내는 것도 미국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는 안 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논리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일본이 깼다는 것이다. 즉 안보상의 이유로 수출통제를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지소미아를 유지하고 있냐는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당분간 중재에 나설 것 같지는 않다. 이 문제는 양자간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이 입장이다. 볼턴이 한국의 입장을 일본에 가서 많이 이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안보상의 이유로 한국을 규제하면 한미일 안보협력이 흔들리는데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자유무역체제와 한미일 안보협력을 저해하고 있다고 강조하면 미국은 이해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중재도 필요하고 여론전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하는 것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사진=조은정 기자

- 우리 정부가 어떤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게 좋다고 보는가.

“압류한 일본기업 자산을 현금화하는 사태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의 입장이다. 여기부터 접근해야 한다. 포스코 같은 곳에서 먼저 돈을 내는 것이다. 기금을 내서 56억원 정도를 지급하고 나중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정부 간 충돌이 강하니 재계에서 푸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정부가 현금화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일본이 한국의 조치를 신뢰한다면 그 지점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일본도 수출규제 3개 품목에 대해 보다 더 유연한 자세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일본에 특사를 보내자는 의견이 나온다.

“특사를 아무리 보내도 압류한 일본기업 자산의 현금화를 막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일본의 주장은 이 문제를 국내 입법으로 처리하라는 것이다. 그 방안을 가져오지 않으면 어떤 제안도 안 받는다는 입장이다. 중간지점을 만들어야 한다. 현금화를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만들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 특사를 받아들일 것이다.”

- 우리 정부가 내놓을 8.15 메시지가 현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일관계에 관한 긍정적인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대화창구를 열어놓는 그런 메시지는 있을지 몰라도 대일 화해 메시지는 안 나올 것이다.”

- 한일 갈등을 확전시키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

“양국 정치권이 톤다운을 해야 한다. 양국은 일단 서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국민과 국회가 강성으로 가고 있는데, 자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삼권분립 원칙을 지키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검토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는 것이 최상일 것이다.”

- 일본의 수출규제를 WTO를 통해 국제적 이슈로 부각시키는 게 효과적일 수 있을까.

“일본의 추가적인 보복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 국제사회가 자유무역에 관해 압박하지 않으면 추가보복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맞대응 조치도 WTO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지 검토하고 제소해야 한다. 국제여론전 차원에서 효과적일 것이다.”

- 우리 정부가 맞대응카드로 지소미아 폐기론을 말하는데, 안보 역풍에 대한 우려가 많이 나오고 있다.

“지소미아라는 상징성 자체가 크니까 이것을 파기하면 미국의 반발을 고려해야 한다. 일본에게 ‘한국 때리기’ 명분을 제공하는 측면도 생각해봐야 한다. 국내 보수 언론과 야당의 비판도 클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소미아 파기는 우리에게 실익이 별로 없다. 재검토 카드를 꺼낸 정도로 충분하다고 본다. 정작 지소미아를 파기하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가장 우려하는 중국이 환영할 것이다. 우리가 얻을 알맹이는 별로 많지 않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