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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북·중 수교 70주년... 북·중 관계 어땠나

한국·미국 상대하기 위해 군사적.경제적 밀착
올해는 북·중 수교 7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주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방북해 김정은의 방중을 논의하는 등 양국은 최근 더욱 긴밀한 유대관계를 보이고 있다. 북한과 중국은 1961년 7월 맺어진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통해 ‘군사 혈맹’임을 공고히 했다. 북한에게 있어 중국과의 군사적 경제적 협력은 체제 유지 차원에서 필수불가결하다. 냉전시대 북한은 체제 보존과 적화통일 기치 아래 대중국 외교에 집중했다. 탈냉전기엔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며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됐다. 당시 북한은 중국의 경제 지원을 유도하는 등 경제 분야에서도 중국에 더욱 밀착하는 행보를 보였다. 김정은 정권에서도 북·중 양국은 ‘안보’와 ‘경제’라는 서로의 필요와 이익에 따라 밀월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필수적인 국가이익으로 체제 유지와 경제적 번영, 그리고 공산화 통일을 꼽고 있다. 북한의 최고 규범인 ‘조선로동당 규약’에 명시된 내용이다. 북한은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외교정책을 펼치는데 있어 ‘군사적 행동’을 적극 활용해왔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북한이 군사 도발과 경제적 보상을 연결지어 온 것이 그 결과다.

고(故) 유광진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저서 ‘북한의 통일외교’에서 “북한의 외교정책 목표가 체제안보, 경제발전, 그리고 통일에 있다고 한다면, 대중국 외교정책도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정학적으로 중국은 북한을 완충지대로 여기며 ‘순치(脣齒)’로 여긴다. 순치란 입술과 이처럼 이해관계가 밀접한 사이를 말한다. 북한은 중국을 한국전쟁 맺어진 ‘혈맹’으로 본다. 이러한 인식은 양국이 ‘밀월관계’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됐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됐지만 아직까지도 북중 양국은 같은 체제와 이념을 공유하며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일성 정권의 대중국 외교

냉전시대 북한의 대중국외교의 목표는 중국의 ‘강력한 지원’에 있었다. 실제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은 북한의 전후 복구사업을 크게 지원하며 영향력을 키워갔다. 1954년부터 1957년까지 중국은 3억 2000만 달러의 무상원조를 제공했다. 이 기간 북중 양국은 김일성·마오쩌둥, 김일성·저우언라이 등 15차례에 걸친 정상급 회담을 진행했다.

1960년대 후반 들어 북중관계는 일시적으로 멀어졌지만 곧 회복됐다. 당시 북한은 국방·경제 병진노선에 따라 소련과도 밀착했다. 1966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 중국 지도부는 북한을 ‘기회주의’로 비판하기도 했다. 북중 갈등은 1969년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미국이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며 데탕트 시대가 열렸고, 소련의 내정간섭에 북한이 반발하며 중국과 다시 가까워진 것이다. 1969년 10월엔 5년 여 만에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방중했다. 마침내 1970년 저우언라이가 평양을 방문하며 양국관계가 정상화됐다. 당시 김일성은 같은 해 베이징을 비공식 방문해 경제, 군사, 친선, 과학기술 등의 분야에서의 상호교류를 복원시키며 북중관계를 완전히 복원시켰다.

  • 지난 6월 진행된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6월 20일 저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환영하는 연회를 열었다. 사진은 조선중앙TV가 21일 공개한 것으로 두 정상이 연회장에서 통역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고 있다. 연합
탈냉전 이후 대중국외교

사회주의국가들이 몰락하자 북한은 외교적으로 고립됐다. 또한 심각한 경제난으로 체제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당시 북한은 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했고, 북·일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자 북한은 중국을 ‘배신자’, ‘변절자’로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북중 군사대표단 간의 교류는 원활하게 진행되며 북중 ‘군사동맹’은 굳건한 모습을 보였다.

1990년대 들어 북한은 경제난이 극심해지자 중국에 경제원조를 요청했다. 중국은 1996년 ‘경제기술합작협정’, ‘상품차관협정’, ‘경제군사원조협정’ 등을 맺고 본격적으로 대북경제 지원에 들어갔다. 결국 북중관계는 북한이 ‘1999년 북중 수교 50주년 친선사절단’을 보내며 극적으로 개선됐다. 이는 김정일 정권 이후 북 대표단의 첫 공식적인 방중이었다.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한지 8년만의 일이었다. 2000년 5월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비공식 방문해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렇게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대중국 외교를 적극 활용했으며 경제 분야에서는 상황에 따라 선택적인 협력을 하며 중국의 지원을 받아왔다.

김정은 정권과 북중관계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김정은 체제가 본격화됐지만 시진핑 주석이 김 위원장과 만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비핵화협상에서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감지되자 시진핑은 김정은을 급히 만나며 북한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중국도 미국과의 패권다툼에서 북한이 필요하고, 북한도 북미회담에서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과거처럼 서로의 필요와 이익에 따라 북중 밀월관계가 이어져왔다는 분석이다.

문 센터장은 “북중 수교 70주년을 맞아 북중 관계가 끈끈하게 보이지만 모두 전략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며 “비핵화를 위한 대화 국면에서 북한의 선택지는 제한적인 상황이고, 중국도 북한을 활용해 역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으로서는 한국의 대중국 의존도를 높이기 위해 북한이라는 ‘카드’도 유효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중 양국이 70년 동안 서로의 이익에 따라 여전히 밀착된 행보를 보이는 배경이다.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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