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는 제자리고 미사일 도발은 여전

지난 19일 ‘9.19 평양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청와대는 “평양공동선언이 향후 재개가 기대되는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을 포함해 북미 대화의 동력이 유지되는데 일종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평양선언 1주년을 맞아 통일부와 국방부를 비롯한 각 부처는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며 평양선언 1주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는 상황에도 안정적으로 상황이 관리되는 이유로 “평양공동선언 정신이 여전히 남북 간에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의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발전한 배경엔 평양선언의 공이 컸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남북대화는 사실상 단절된 상태고 비핵화 문제도 제자리걸음이다. 북한은 연일 신형 무기를 시험하며 도발하고 있고 남측을 맹비난하던 자세로 돌아섰다. 청와대는 이런 상황에도 한반도 정세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막을 수 있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개설됐고 군사당국 간 상시 연락 채널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북한이 북측 연락사무소에서 돌발적인 철수를 감행하는 등 안정적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위원장이 나란히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

靑 “전보다 안정적으로 정세 관리되고 있다”

청와대는 평양선언의 가장 큰 성과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영구폐기 의사를 표명한 5조2항을 꼽았다. 평양선언의 부속합의서인 9.19 군사합의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하는 남북 경계병은 무장을 해제하고 마주보고 있으며 화기 전력도 철수됐다. 우발적인 무력충돌에 의한 확전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군사분계선 상공에서의 비행금지 등은 정보 수집에 필수적인 공군 능력을 스스로 제한한 것이라는 안보전문가들의 지적도 잇따랐다. 육군의 1차 방어선으로 활용되는 최전선 GP 초소 철수도 여전히 논란이 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한반도 정세를 “다소 안정화된 상황”이라 평하며 “항구적 평화와 완전한 비핵화로 연결시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호열 고려대 통일외교안보학부 교수는 정부의 평양선언 1주년에 대해 “그렇게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이니만큼 우려스러운 점이나 불완전한 부분은 보완해나가겠다고 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안보 이슈는 북핵”이라며 “북핵 문제는 제자리걸음인데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 청와대의 긍정적인 평가엔 동의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아직 직접적인 성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평양선언의 잠재적 성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경제 협력, 인도적 협력, 민간 교류 분야에서 구체적인 협력 상황을 확인했다”며 “물론 진전이 잘 안된다”고 현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실제 남북 철도 착공식이 개최된 것과 체육 분야에서의 협력이 진행된 것 외에는 구체적인 남북 교류가 없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상황이 개선되면 남북 간에 무엇이 이뤄져야 할지는 이미 확인됐고 그 점을 중심으로 진행할 수 있는 로드맵을 확보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연락사무소가 개설된 이후에도 사실상 남북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이런 장밋빛 청사진을 잠재적 성과로 부각시키기엔 아직은 무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의 목소리도 뒤따른다.


미사일 릴레이 도발

하노이 핵담판이 결렬되긴 했지만 판문점 회동으로 대화의 불씨가 되살아났고 실제로 북미 간 실무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비핵화 문제가 실질적으로 진전이 된 것은 없으나 꾸준히 대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평양선언의 성과로 볼 수 있다. 서영수 교수는 “남북 정상이 공동선언을 한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역사적인 일이지만 실천을 뒷받침할 만한 후속타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평양선언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많이 담아냈지만 그것을 이행하는 후속작업이 없어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며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실무협상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평양선언 1주년을 맞은 2019년엔 북한이 이례적으로 잇따른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지난 10일 평안남도 개천에서 발사체를 쏘아올린 것을 합치면 무려 10번의 도발이다. 앞으로 두 번의 도발이 추가되면 연간 12회 도발을 했던 2017년의 기록을 넘어서게 된다. 결과물만 놓고 보자면 사상 최악의 안보 대치 국면 중 하나로 불리던 2017년과 다르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최근에는 ‘대한민국 지번을 가진 인천 강화군 함박도에 군사시설을 지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북한은 우리 지번인 인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97에 군사시설인 레이더와 관측소 등을 설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국방부는 “함박도는 서해 북방한계선 북쪽에 위치한 도서로 북쪽 관할”이라며 “(수정을 위한) 국토부와 해양수산부 등과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지만 ‘우리 지번’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유호열 교수는 “현재 남북관계에서 대화가 중단됐기 때문에 정부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데 신중해야 한다”며 “성과를 꼽자면 남북 상시 대화채널이 가동된 것인데 그것도 아직 안정적으로 제도화되지 못했다.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는 상황에 대해 남북이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그것도 실질적인 성과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낙관적인 전망과 긍정적인 평가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