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지지율도 대부분 지역과 계층서 하락... 한국당 지지율 정체, 무당층만 늘어나는 형국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으로 흔들리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추석 이후에 더 악화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조국 장관 임명(9일) 이후 추석 직전에 실시한 SBS^칸타코리아 여론조사(9~11일)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서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45.1%, ‘잘 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51.6%로 나타났다. 한 달 전 조사에서 50%대를 회복했던 긍정 평가가 이번 조사에서 5.7% 포인트 줄면서 긍정과 부정이 역전됐다. 부정 평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야로는 ‘경제 정책’ 39.6%, ‘인사 정책’ 30%, ‘대북 정책’ 19.6%로 나타났다. 긍정 평가 45.1%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SBS가 실시한 6차례 여론조사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비슷한 시기에 실시한 KBS^한국리서치 조사(10~11일)에서도 비슷했다.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는 53.3%, 긍정 평가는 44.8%로 나타났다. KBS 여론조사에서도 문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을 앞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해서는 ‘잘못했다'가 51%, ‘잘했다’는 38.9%로 나타났다. 청와대와 여당은 조국 장관이 검찰 개혁의 적임자인데 검찰이 개혁에 저항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조 장관을 수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런 주장에 국민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SBS 조사에서 조국 장관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정당한 수사다’라는 응답이 60.2%, ‘무리한 정치개입’이라는 답변은 35.6%였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

더구나, ‘조 장관이 검찰 개혁의 적임자여서 ‘잘 될 것’이라는 응답은 겨우 18.9%에 불과했다. 반면, ‘조 장관에게 흠이 많아서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35.9%, ‘입법사항인데 야당 반발이 커서 잘 안 될 것’은 19.9%였다. 국민 10명중 6명(55.8%) 정도가 조국 장관의 검찰 개혁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KBS 조사에서는 조 장관이 장관으로서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미칠지 묻는 질문에 대해 '영향을 미칠 것'이란 답변이 66.9%로 '영향 미치지 않을 것'(28.2%)이란 답변의 두 배가 넘었다. 조국 장관이 오히려 검찰 수사에 개입하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돼 검찰 개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MBC^코리아리서치가 추석 연휴(14~15일)에 실시한 조사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부정 평가는 51.7%, 긍정 평가는 44.5%였다. 한 달 전 조사와 비교해 긍정 평가는 5.7% 포인트 떨어지고, 부정평가는 7% 포인트 오르면서 MBC 조사에서도 처음으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섰다.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해 '잘한 일'이라는 답이 36.3%, '잘못한 일'이라는 답이 57.1%로 나타났다. 한편, 추석이후 실시된 리얼미터^tbs 조사(16~18일) 결과, 문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이후 가장 낮은 43.8%를 기록했다. ‘국정수행을 잘 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53.0%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조국 지명 뒤 6주동안 7%p 가까이 빠졌다. 리얼미터는 “조 장관 가족과 관련한 구체적인 검찰 수사 내용이 언론 보도를 통해 지속 확산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했다.

여론조사에서는 수치보다 추이가 중요하다. 추석 전후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것은 추석이 지나고 민심은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중파 방송 3사 조사에서 문 대통령 국정 운영 부정 평가가 모두 50%를 넘었고, 조국 장관 임명에 대해 ‘잘못했다’는 부정 평가가 ‘잘했다’는 긍정 평가보다 훨씬 많았다. 조국 장관이 검찰 개혁의 적임자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더구나, 여당이 비판하는 윤석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아주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4일 전·현직 대학교수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사회정의와 윤리가 무너졌다’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공개한 뒤 연대 서명을 받아왔다.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은 1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국 법무부 장관 교체를 요구하는 시국 선언을 발표했다. 정교모는 지난 18일 오후 2시 기준 전국 290개 대학 교수 3396명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지난 2016년 11월 최순실 사태 당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전국 교수·연구자 시국선언에 참여한 2234명을 훌쩍 넘는 규모다. 19일 정교모 기자회견에선 8명의 교수가 대표 발언을 통해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들은 “모두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지키고 우리나라가 더 이상 거짓말의 나라가 되어선 안 된다는 분연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고 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앞 광장 ‘아크로’에서 참석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

명지대 한 교수는 “조국은 적폐청산의 적임자가 아니라, 검찰개혁의 적임자가 아니라 적폐일 뿐”이라며 “문재인 정권은 불법과 위선, 탈법과 불의가 난무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다 함께 소통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학가에서도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19일에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서 동시에 열렸다. 고려대 집회 집행부는 성명서에서 “우리 대학생들은 당장 검찰 조사와 연루된 장관님의 손에 대한민국의 법, 검찰의 정의로움을 맡길 수 없다”면서 “공정과 평등이 사라지는 지금, 우리는 일어나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집회 참가자들은 '조국 청산 적폐 청산', '법무장관 자격 없다', '나는 되고 너는 안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현재까지 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온 합동 집회는 참가 대상을 전국 대학으로 넓혀 각 대학 캠퍼스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치르는 방향으로 계획하고 있다. 왜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했을까?

다양한 가설이 존재하다. 첫째, 문 대통령 주변의 ‘보이지 않는 세력의 힘’이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여론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조국을 임명한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제기되는 가설이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재야 세력과 86운동권세력, 그리고 참여연대, 민노총, 전교조 등 진보 단체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들 세력들을 대표하는 핵심 인사들이 조국 장관과 오랜 기간 동안 밀접한 연대를 형성했고, 이들이 ‘조국 구하기’에 나서 문 대통령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추론이다. 그 이면에는 조국 사태에 문재인 정권의 여러 사람이 관련되어 있어 조국을 보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가설이 맞다면 심각하다. 문 대통령이 이들 보이지 않는 세력과 집단 결정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잘못하면 국정농단 세력이 될 수 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 오판’ 가설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문 대통령의 특유의 변호사적 기질이 작동됐다는 가설이다. 변호사는 통상 자신이 변호하는 사람에 대해 늘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이런 태도 때문에 문 대통령은 9일 조국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경우 의혹 제기가 많았고, 배우자가 기소되기도 했으며 임명 찬성과 반대의 격렬한 대립이 있었다”며 “자칫 국민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보면서 대통령으로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저는 원칙과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인사청문회까지 마친 절차적 요건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된다”고 판단했다.

이런 메시지는 설득력이 약하다. 현 정부 들어 국회 인준 투표에서 부결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을 제외하고 고위 공직 후보자 6명이 낙마했다. 1명은 청문회 전 사퇴, 4명은 청문회 후 사퇴, 1명은 청문회 후 지명 철회됐다. 그렇다면 이들은 의혹이 사실로 확인돼 물러났는가. 모두가 위법성이 아니라 도덕성이 무너져서 물러났다. 또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데 무슨 근거로 ‘명백한 위반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셋째, 진보 세력의 ‘사회 변혁 완성’ 가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새로운 정치 체제를 구축하려고 하는데 이런 변화의 적임자가 조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조국은 권력기관(검찰) 개혁 공약을 완수하는 것 못지않게 대한민국 사회 변혁의 중추적 역할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법무부 장관으로 밀어붙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조국 장관은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인 2018년 3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차에 걸쳐 문 대통령의 헌법 개헌안을 직접 발표했다. 보수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범진보 세력이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200석 이상을 얻으면 반드시 개헌을 단행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런데 사회주의 개헌을 위해서는 법무부 장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현 정부가 조국에 집착한다는 주장을 편다. 조 장관은 19일 국회에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를 예방한 지리에서 “사회적 형벌을 감내하면서 제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넷째, ‘핵심 지지층 지키기’ 가설이다. 정부와 여당이 조 장관 카드를 밀어붙인 것은 참여정부 시절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이다. 지난 참여 정부 시절,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체결,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추진, 제주 해군 기지 건설 등 진보 세력이 반대하는 것을 여론에 밀려 추진함으로써 핵심 지지층의 대거 이탈로 정권을 뺏기고 9년간의 ‘민주당의 암흑기’가 됐다는 판단이다. 이런 경험과 학습을 토대로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는 생각과 ‘장관 철회 혹은 자진 사퇴’보다는 ‘임명 강행’이 정치적으로 잃을 게 더 적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상징인 조 장관을 낙마시키면 이 정부의 정통성에 균열이 생기고 그 동안 추진한 각종 개혁 정책도 흔들릴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가설도 설득력이 약하다. 위선과 거짓의 조국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촛불 정부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국 사태가 향후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무엇보다 정당 지지도 변화 여부가 큰 관심사다. 그동안 민주당은 내년 4월 총선에서 무난히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50%에 육박하고 민주당 지지도도 야당과 큰 폭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국 사태가 흐름을 바꾸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과 관련한 의혹이 확산되면서 추석 연휴 이후 중도층과 무당층 민심이 민주당과 정의당에서 보수 야당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tbs의 9월 3주 여론 조사(16~18일) 결과, 민주당과 정의당 지지도는 추락하고, 한국당과 바른 미래당은 상승했다. 민주당은 추석 전 대비 1.3% 포인트 내린 38.2%, 자유 한국당은 2.0% 포인트 오른 32.1%로 조사됐다. 그 뒤를 바른 미래당이 0.8%포인트 오른 6.0%, 정의당은 1.0%포인트 내린 5.2%였다. 우리공화당은 1.6%, 민주평화당 1.5%였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민주당 지지율이 대부분의 지역과 계층에서 하락했고, 자신의 핵심 지지층에서도 요동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광주·전라에서 6.5%p 하락( 62.1%→55.6%), 30대에서 8.2%p 하락(54.4%→46.2%), 진보층에서 2.2%p 하락(64.2%→62.0%)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지지율 격차가 6.1% 포인트 차이로 줄어들었다. 중도층 지지율에서 민주당(36.3%)과 한국당(32.0%)의 격차는 4.3%p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당층의 경우도 민주당(33.3%)과 한국당(30.4%)의 격차가 2.9%p로 줄었다.

정의당은 2주 연속 하락하면서 2018년 중반 이후 지켜왔던 지지율 3위 정당 자리를 바른 미래당에게 내주었다. 민주당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조국 이슈를 전환하기 위해 내년 4월 총선에서 불출마와 물갈이 공천을 포함해 16대 총선 이후 최대 규모의 인적 교체작업을 단행할 것이라는 이슈를 띄웠다. 현재 친문계 핵심 인사(양정철 민주연구원 원장, 백원우 부원장, 강기정 정무수석)들과 현역 의원 출신 장관들(박영선, 진영, 유은혜, 김현미)을 비롯해 당내 다선 중진(이해찬 대표, 문희상 의장, 원혜영 의원)·비례대표 의원 등 약 15명이 불출마를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1월 4일부터 시작되는 ‘현역 의원 최종평가’에서 추려질 하위 평가자(20%, 약 26명)를 합하면 본선 전 당내 경선에서 최대 40명(약 31%)이 교체되는 것이다. 이해찬 대표는 민주당 창당 64주년 기념식에서 “총선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그 힘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를 성공시키고 재집권해 우리의 정책이 완전히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내년 총선 승리가 우리로서는 아주 시급한 과제”라며 “모든 당원이 일치단결해 함께 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나경원 원내대표. 연합

문제는 집권당의 인위적인 공천 배제는 종종 역풍을 가져왔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 파동이 좋은 사례다. 당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안철수, 호남계 중진 의원들이 탈당해서 창당한 국민의 당과 정의당까지 1여3야의 야권 분열 상황 속에서 선거가 치러졌다. 그러나 집권당 새누리당은 공천 파동 등 내부 계파 갈등에 휩싸이며 제2당(122석)으로 전락했다. 조국 사태가 진정되지 않은 채 확산되면서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추락하면 ‘이해찬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집권당이 흔들릴 수 있다. 여하튼 문 대통령 지지율 40%선이 붕괴되면 위기다. 이것은 중간에 있는 스윙보터들이 이탈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취약한 이해찬 대표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기류가 확산되면 올해 연말쯤 지도체제 개편이 부상될 수도 있다. 한국당에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다른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SBS^칸타코리아 여론조사(9~11일)에 따르면,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 민주당 31.3%, 자유한국당 18.8%, 정의당 6.3%, 바른미래당 4.1% 순인데, 무당층이 38.5%로 가장 두터웠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무당층이 늘어나고 있는데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며 “사활을 건 투쟁을 통해 무당층을 한국당이 반드시 흡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에서 이탈한 민심이 한국당으로 향하지 않고 무당층으로 이동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추석 민심의 핵심은 무당층이 40%까지 치솟았다는 것에 있는데 더불어민주당에는 민주가 없고 바른미래당엔 미래가 없으며 정의당에는 정의가 없고 자유한국당엔 자유가 없어 무당층이 더 늘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무엇이 문제인지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야당은 특단의 대책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의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찬반을 두고 내홍을 겪었다. 그런데 심상정 대표가 지난 7일 “사법개혁의 대의 차원에서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하겠다”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사실상 임명 찬성 입장을 밝혔다. 심 대표는 지난달 22일 조 후보자에 대해 “20·30대는 상실감과 분노를, 40·50대는 상대적 박탈감을, 60·70대는 진보 진영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고 했는데 상황이 바뀐 것이다. 민주당이 8월 29일 정치개혁특위에서 한국당의 반발속에서 이른바 '심상정 선거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한 후 태도가 바뀌었다. 임명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노회찬 의원이 살아있었다면 이번처럼 비겁하게 굴지 못하게 했을 것” “정의당이 진보 정당 맞느냐”며 비판했다. 큰 틀속에서 보면 정의당은 소탐대실한 痼甄? 정의당은 선거제도 개편으로 이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정의당의 정체성을 지켜야 승리할 수 있다. 최근 정의당은 경선 제도를 두고 당내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중앙당이 ‘총선 개방형 경선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상당수 당원이 이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형상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조국 사태로 손잡으면서 보수통합론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18일 자유한국당(110명)과 바른미래당(18명)이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를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공동 제출하기도 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지난 16일 '삭발 투쟁'으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반대를 위한 대여 투쟁의 승부수를 띄웠다. 삭발을 마친 황 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문재인 정권의 헌정 유린과 조국의 사법유린 폭거가 더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제1야당 대표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권에 항거하는 제 뜻과 의지를 삭발로 다짐하고자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역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대표이던 시절 단식 투쟁을 한 적은 있어도 제1 야당의 대표가 '삭발 투쟁'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황 대표의 삭발 투쟁은 다목적용으로 보인다. 그동안 당 안팎에서 불거진 리더십 비판 여론을 불식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또한, 보수진영의 주도권 경쟁을 황 대표를 중심으로 재편하는 동시에 총선을 앞두고 정국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전략도 있다. 황 대표가 보수재편 작업의 속도를 내기 위해 반(反)조국 국민연대를 제안했지만, 상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보수 통합을 결정짓는 변수는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손학규 대표 체제의 바른 미래당에서는 당대당 통합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따라서, 보수통합을 둘러싼 혼란한 분위기는 조국 사태 속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향후 보수 통합은 선거법 개정과 각 정당의 공천 과정 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황교안 대표는 최근 보수 통합 추진 문제와 관련해 준(準)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제 도입 여부를 지켜본 뒤 판단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법사위에 넘겨진 선거법 개정안은 11월 27일 이후 본회의 상정될 수 있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4월 총선부터 적용되면 앞으로 특정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황 대표는 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통합보다는 범(汎)보수 다당 구도를 만들어 선거연대를 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한국당을 중심으로 바른미래당 유승민·안철수계 의원 등과의 통합을 통해 자유 우파 통합정당으로 내년 총선에 임한다는 구상은 물 건너간다. 여하튼 선거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개정된다면 보수 통합은 원점에서 전략을 다시 짜야 할지도 모른다. 야권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플랜B를 준비해야 한다. 최고의 전략은 조국 사태 계기로 ‘반문반조’ 연대를 구축하고 이것을 통해 선거법 개정을 막는 것일지 모른다.

한국당이 조국 정국에 대한 집중으로 오히려 내년 총선 준비가 미흡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를 의식해 황교안 대표는 최근 당협위원장 교체 여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당무감사위원 9명 전원을 전격 교체했다. 황 대표는 “당무감사에 만전을 기하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준비하는 좋은 모멘텀으로 삼겠다”고 했다. 이는 황 대표가 공천 물갈이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당무감사위는 10월부터 전국 당협에 대한 당무감사에 들어가 11월쯤 감사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탄핵에 책임이 있는 친박과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당협위원장들을 대거 교체할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황 대표에게는 세 개의 모델이 존재한다. 첫째, ‘2000년 이회창 모델’이다. 지난 2000년 총선당시 제1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이화창 총재는 자신의 최측근인 김윤환, 이기택 등 거물 정치인들을 공천에서 배제하면서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급기야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이 영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민국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결과는 한나라당이 133석을 얻어 원내 제1당이 되었다. 영남권 65석 중 64석을 싹쓸이했다. 민국당은 영남에서 전멸했고, 강원 춘천에서 1석, 비례대표(3.9%)에서 1석 등 2석을 얻는데 그쳤다. TK가 전략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황 대표가 우리공화당 중심의 TK 친박 신당을 두려워하면서 적당히 타합하면 내년 총선에서 ‘보수 통합’은 요원해진다. 황 대표는 19일 “사람에 대해 물갈이라는 표현은 쓰기 싫다”면서도 “이미 불출마 선언을 한 분들이 있고 변화 과정에서 각자 판단해서 자연스럽게 (용퇴)하실 분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어 “총선에서 이기는 공천, 공정한 공천, 경제를 살리고 헌법 가치를 공유하는 '혁신 공천'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유능한 소상공인, 중소기업·대기업 인사와 시민사회 인사 등 새 인물을 모셔오기 위해 영입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회창 전 총재와 같이 황 대표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혁신 공천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둘째, 2016년 김종인 모델이다. 2015년 12월 13일 제3세력과 중도세력을 표방한 정당 창당을 선언한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중심으로 문재인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던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 세력이 대거 탈당했다. 위기에 몰린 문재인 대표는 2015년 12월 28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그 후 2016년 1월 27일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가 구축되고 공천 물갈이를 단행했다. 김 위원장은 인위적인 공천배제(컷오프)와 전략공천, 단수후보 남발 등 사실상 전권을 휘둘렀다. 그 과정에서 이해찬, 정청래 등 강성 친노 인사를 배제했다. 민주당은 야권 분열에도 불구하고 이런 개혁 과정을 거쳐 2016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122석)을 제치고 123석(지역구 110석+ 비례구 13석)을 얻어 원내 제1당이 됐다. 마찬가지로 황교안 대표도 자유한국당 당명을 바꾸고 외부 비대위원장을 영입해 전권을 줘서 혁신 공천을 하는 것이다. 핵심은 탄핵에 책임있는 친박을 제거하고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다.

셋째,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한국당 밖에 ‘우파 빅텐트’를 치는 모델이다. 황 대표는 19일 한 유력 보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국 파면과 자유·민주 회복을 위한 국민연대를 적극 추진하겠다”면서 “모든 정당·시민사회 세력과 함께하겠다”고 했다. 필요하면 “한나라당 밖에 빅텐트를 치고 대표를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윤리위원회는 18일 전체회의를 열고 손학규 대표를 향해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한다'고 말해 제소된 하태경 최고위원을 당직 직무 정지 6개월 징계에 처했다. 이를 계기로 이미 손학규 대표의 거취를 놓고 둘로 쪼개진 바른 미래당의 내홍이 격화될 조짐이다. 하 최고위원은 손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비당권파'의 대표적인 인물이고, 비당권파는 바른정당 출신의 유승민계와 국민의당 출신의 안철수계 의원들로 구성됐다. 손 대표는 추석 전 당 지지율이 10%를 넘지 못하면 사퇴하겠다고 한 약속을 사실상 번복했다. '조국 정국'에서 비당권파 일부가 자유 한국당과의 연대를 꾀하는 등 독자 행동에 나서자 당권파가 숙청 작업에 나선 것이다. 하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는 바른미래당의 진로를 결정 짓는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다. 비당권파 의원 11명은 19일 긴급 의원총회를 ‘새로운 지도체제 구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활동 중인 바른미래당 의원 24명 중 비당권파가 15명으로 당권파 9명을 웃돌고 있어 비당권파만의 독자 행보가 가능하다.

만약 황 대표가 친박을 제거하고 한나라당 밖에 빅 텐트를 친 다음 바른미래당 비당권파를 끌어 안으면 중도 보수 통합 또는 선거 연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빅덴트에 차기 대권 후보들은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아 수도권 등 취약지역에 출마하고 그들이 합의한 비대위원장에게 공천 전권을 줘 개혁을 하는 방안이다. 황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내년 총선에서 ‘이기는 보수’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지금은 황교안의 시간도 한국당의 시간도 아니다. 검찰의 시간이다. 윤석열 검찰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정치권은 크게 요동칠 것이다. 조 장관 부인이 구소되고, 조 장관이 '피의자'가 되어 '기소'까지 되는 상황이 도래하면 여권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맞이하는 11월 10일까지 약 50일이 고비다.

●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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