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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승용의 해양책략… ③ 영국 총리와 이집트 시시 대통령의 <수에즈운하 책략 Ⅱ>

유태인 자본 앞세운 영국, 1875년 수에즈 운하 소유권 장악 ‘해 지지 않는 대영제국’ 발판
  • 제2의 수에즈운하
수에즈 운하개통으로 런던과 싱가포르 간의 항로는 아프리카 남쪽 끝인 케이프타운 경유 시 2만 4500km에서 1만 5025km로 단축되었다. 시간상으로는 24일이나 단축됐다. 한마디로 혁명적 고속 수로였다. 운하는 개통 당시 수심이 8m이었고, 폭은 바닥에서 약 22m, 수면에서 57m이었다. 1964~1967년의 확장공사를 거쳐 수심은 운하 전체가 일정하게 12m 정도, 수면의 폭은 60~100m에서 160~200m로 확장되었다. 통과 소요시간은 15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운하는 1967년 6월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 중에 일시 폐쇄되었으나 1975년 다시 개통되었다. 세계운하의 아버지인 드 레셉스와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왕후인 외제니 드 몽티조가 없었다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수에즈 운하는 시도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한 프랑스 외교관의 집념과 추진력에 의해 인도양에서 지중해와 대서양으로 가는 최단 항로가 탄생되었다. 레셉스 개인에게는 ‘신념이 이끈 거대한 성공’으로, 그리고 이집트인들에게는 자국의 자주독립을 실현할 역사적인 공사였다. 그러나 운하건설이 무리하게 진행되면서 이집트 정부는 재정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막대한 예산 투입으로 재정이 파산 지경에 이른 이집트 정부는 국가 소유의 수에즈운하회사 주식 지분을 영국에 매각했다. 운하건설과 외교적 문제해결 그리고 자본조달의 고생은 프랑스와 이집트가 하고, 호시탐탐 지켜보던 영국이 유태인 자본을 앞세워 막판에 삼켜먹은 것이다. 드 레셉스의 수에즈 운하책략이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수에즈 운하책략으로 바뀐 것이다.

당시 빅토리아 번영시대를 이끌던 영국수상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 수상 재임기간은 두 차례로 1869년과 1874~1880년임)는 1875년 유대계 금융자본 로스차일드로부터 400만 파운드의 자금을 빌려 매입을 결정한다. 당초에는 수에즈운하 건설에 반대 입장이었던 영국이 제국주의 금융전략으로 힘을 발휘한 사례이다. 수에즈운하 없이는 이집트 진출도,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건설도 불가했을 것이다. 유태계 출신으로 빅토리아 시대에 세 차례 재무장관과 두 차례 수상을 역임한 디즈레일리는 현재의 영국 보수당의 아버지이다. 그는 1876년 ‘왕실 칭호법’을 제정하여, 영국의 식민지이던 인도와 미얀마 등을 엮어 탄생한 영국령 인도 제국(1877년)과 영국을 다스리는 황제 칭호를 빅토리아여왕에게 헌납했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추구하면서 적극적인 제국주의 정책을 펼쳐 빅토리아 여왕 시기 영국을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올려놓았다. 디즈레일리 수상의 책략으로 수에즈 운하와 인도는 영국의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노릇을 하게 되었다.

영국은 1875년에 이집트 소유의 주를 매입했고 1914년에는 이집트를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수에즈 운하의 실질적 소유권은 프랑스와 영국이 양분하게 되었다. 결국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 주식을 영국에 팔아넘겨야 했고, 경영권까지 빼앗기며 이집트 내정에도 간섭을 받게 되었다. 세계 1차 대전을 거치면서 1922년 이집트는 입헌 군주국으로 영국으로부터 자주독립을 하게 되었지만, 수에즈 운하에 대한 권리는 아직까지 영국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권리는 1956년까지 계속되어 이권침탈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56년 7월 26일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대통령 재임 1956~ 1970년)가 운하의 국유화를 선포함으로써 운하의 소유권은 이집트로 넘어갔다. 수에즈운하 제1 주주였던 영국에서 이집트로 소유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영국 총리 앤소니 에덴 경(총리재임 1955~1957년)의 전략은 유명한 실패사례로 손꼽힌다. 영국총리를 세 차례 역임한 노련한 윈스턴 처칠의 후임은 처칠 총리 내각에서 외교부장관을 역임(재임 1951~1957년)한 앤소니 에덴 경이었다. 그는 총리로 취임하자마자 수에즈운하 문제에 봉착했다. 당시 상황은 이집트의 나세르 군부 측은 소련과 우호관계를 맺으면서 군수물자 수입을 증대시키고 있었다. 반면 영국 측은 점진적인 수에즈 운하 철수계획을 추진 중이었고, 미국은 아스완 댐 건설 투자를 철회했다. 나세르 대통령은 1956년 영국과 미국이 아스완 댐 건설 원조를 취소하자,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명분으로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포하였다. 그 후 아스완 댐은 소련의 원조로 1968년 완공되었다.



영국의 에덴 총리는 ‘삼총사 작전(Operation Musketeer)’을 강행했다. 프랑스와 함께 수에즈 운하 북단인 사이드 항으로 진입했고,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를 침공했다. 미국의 협력을 절실히 요청했지만, 미국은 동일한 시기에 감행한 소련의 헝가리 유혈침공에 대해 유엔에서 야만적 비난이라고 맹공했던 때였다. 미국은 소련의 야만적 침공을 비난하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이집트 무력침공을 도울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미국 지원 없는 ‘삼총사 작전’은 실패했고, 에덴 총리의 지도력은 추락했다. 외교적 능력이 탁월했기에 총리로 발탁됐지만, 정작 에덴 총리를 쓰러뜨린 것은 그의 건강 때문이라는 평가다. 그는 총리 발탁 전에 담석증 수술을 했지만, 수술의사가 실수로 담관을 터트리는 바람에 수술 이후 조급증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약물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건강 상태가 된 것이다. 그가 건강상 자메이카에서 휴양 중에도 수에즈운하 문제와 유엔 외교전은 악화되었다. 결국 유엔의 중재로 수에즈운하는 이집트로 넘어가게 되었다. 1875년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의 지략으로 이집트로부터 가로채다시피 한 수에즈운하 소유권은 1956년 에덴 총리의 전략 실패로 종결되었다.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의 마지막 관문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후 1967년 6일 전쟁으로 운하가 폐쇄되었다가, 1973년 사다트 대통령의 시나이 반도 탈환과 더불어, 이 운하는 폐쇄 8년 만인 1975년 재개통되었다. 운하 실패사례는 한 나라의 지도자에게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준다.

이집트 법인인 ‘만국 수에즈 해양운하회사’는 주주와의 관계에서는 프랑스법의 적용을 받았다. 후에 대주주가 된 영국이 이집트를 군사점령한 후, 터키의 콘스탄티노플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러시아, 네덜란드, 터키 등 9개국 간에 『콘스탄티노플 조약』을 체결했다. 수에즈운하의 자유항행을 규정한 이 조약의 핵심은 전시나 평시를 불문하고 모든 군함과 상선의 자유항행이 보장되어 운하폐쇄와 운하지역에서의 적대행위가 금지되도록 하였다. 특히 전시에 있어서 운하와 출입항 및 출입항에서 3해리 이내의 해역에서 전투 행위를 하지 않고 운하를 봉쇄권의 행사의 대상으로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 조약은 1888년 10월 29일 체결되어 1888년 12월 22일 발효했다. 그 후 ‘베르사유 조약’(1919년)과 ‘로잔느 조약’(1923년)을 거쳐 영국은 이집트와의 ‘동맹조약’(1936년)을 체결하고 이집트 군과의 운하의 공동방위를 결정하였다. 1954년 10월 수정조약에 의해 영국군이 철수하게 되었지만 항행의 자유는 보장되었다. 그 후 20세기 역사에서 보듯이 『콘스탄티노플 조약』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집트의 독립 후에도 군대를 계속 주둔시킨 영국은 자유항행의 보장이 자국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부심했고, 제1, 2차 세계대전 시에는 터키와 독일을 포함한 적측의 공격에 대항하여 운하를 실질적으로 봉쇄하였다. 이집트도 또한 이스라엘의 함선에 대해 운하를 봉쇄하였다. 즉, 콘스탄티노플조약의 제 규정은 운하를 현실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국가의 정책과 관계되는 범위에서만 이행되어 왔다.

2013년 7월 군부쿠데타로 집권하고 2014년 대통령이 된 ‘압둘 팟타흐 시시(Abdel Fattah el-Sisi)’ 대통령은 제2 수에즈운하 건설 사업인 《발라 바이패스(Ballah Bypass) 확장사업》을 발표했다. 제2 수에즈운하 건설 사업에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공사비를 조달하는 문제였다. 당초 이집트는 군사혁명정부에 대한 국내 비판여론 등을 감안, 최대한 국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구상을 했지만 어려움을 겪었다. 제2 수에즈 운하 건설에 나선 이집트는 최대 80억 달러의 막대한 사업투입자금 조달을 위해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2014년 12월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수에즈 운하 확장과 수에즈 경제무역지구 사업 등에 중국의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3조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중국에게 이 돈은 큰 문제가 아니며, ‘불감청 고소원’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시 주석으로도 ‘일대일로’전략의 실현을 위해선 수에즈운하를 보유한 이집트와 손을 잡는 것이 절실했다. 시시 대통령은 외환보유액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채까지 발행해 가며 총 80억 달러(약 8조 5000억 원) 규모의 ‘제2 수에즈운하’ 공사를 감행했다.

이집트정부는 새 운하가 개통되면 현재 연간 약 50억 달러 수입이 2023년에는 연간 130억 달러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착공 1년 만인 2015년 8월 새 운하가 완공됐다. 제2 수에즈 운하는 기존 193㎞ 구간에서 중간 72㎞ 구간을 새로 건설·확장했다. 이 중 35㎞는 폭 61m에서 312m의 새 물길을 만들었고, 나머지 37㎞는 기존 물길을 깊고 넓게 확장했다. 이로 인해 쌍방향 통행이 가능해지면서 선박의 운하 통과 시간은 18시간에서 11시간, 대기시간은 8~11시간에서 3시간 단축됐다. 제2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2015년 운항 선박의 순톤수는 역대 최고치인 9억9865만 톤을 기록했고, 2018년에는 11억 3963만 톤으로 증대했다. ‘수에즈운하관리청’에 따르면, 2015년 수에즈운하를 통과한 선박 수는 1만 7483척에서 2018년에는 1만 8174척으로 증가했다. 운항선박수가 정점에 달했던 2008년 2만 1415척의 회복이 언제 될 것인지와 파나마운하와의 경쟁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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