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블랙홀’에 빠져 나라가 두 동강 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우리 현실 안타까워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둘째)이 9월 30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왼쪽 둘째)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

조국 사태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과 간의 갈등이 ‘대통령 대 검찰’ 구도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검찰을 향해 “엄정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의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성찰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여하튼 대통령이 진행 중인 수사와 관련해 자신이 임명한 검찰에 이런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은 이례적이다. 더구나, 문 대통령이 윤석열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당부한 말과는 크게 상충된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기 바란다. 그래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국민이 체감하게 되고 권력 부패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의 검찰 압박은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조국 장관 첫 업무 보고 자리에서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검찰총장에게 지시한다”며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검찰 내부의 젊은 검사들, 여성 검사들, 형사부^공판부 검사들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하라”고 했다. 대통령이 배석하지도 않은 검찰총장을 지목하며 검찰개혁안을 전격 지시한 것은 조국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검찰을 압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 장관에 대한 수사가 검찰개혁을 막기 위한 불순한 음모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또한, 검찰의 미온적인 태도로는 검찰개혁이 무산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야권은 대통령이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조국 수사를 중단하라고 압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국 사태 3가지 본질적인 질문

이 대목에서 조국 사태와 관련해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첫째, 대통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은 국민의 공복이고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정부를 통치한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고 갈등을 조정하여 국민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다. 이것을 토대로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전략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 모두에게 책임을 진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하면서 자신이 꿈꾸는 대통령의 표상에 대해 다양한 약속을 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통령”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심지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끝내야 한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조국 퇴진’과 ‘조국 수호’를 외치는 이념적 대립으로 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 국민통합에 앞장서야 할 대통령이 비상식적인 장관 임명으로 분열의 최전선에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대통령은 줄곧 “사람이 먼저다”라고 외쳤지만 이제는 “조국이 먼저다”로 방향을 튼 것 같다. 이렇다 보니 항간에는 문 대통령이 조국에게 무슨 약점이 잡혔거나, 아니면 조국 수사를 막아야 할 무슨 절박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온다. 야당은 조국 사태는 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 실세들이 관련된 ‘권력 게이트’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들이 현 시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취임사에서 밝힌 약속을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상식과 도덕, 윤리와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둘째, 검찰 개혁의 본질은 무엇인가? 검찰 개혁과 관련, 청와대와 여권은 심각한 모순과 착각에 빠져 있다. 이들은 ‘조국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고 의심하는 것 같다. 여권은 검찰이 조국 장관과 관련된 의혹을 수사하니까 느닷없이 ‘개혁 저항’, ‘정치 검찰’, ‘과잉 수사’, ‘고의적 피의 사실 유출’ 등 온갖 비난을 퍼붓고 있다. 윤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뿐만 아니라 그동안 검찰 개혁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밝혀왔다. 가령, 윤 총장은 7월 8일 인사 청문회에서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나 국회에서 거의 성안이 다 된 법을 검찰이 틀린 것이라는 식으로 폄훼한다거나 저항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민주당조차 윤 총장을 “검찰 개혁의 최고 적임자”로 치켜세웠지 않았는가. 더구나, 윤 총장은 문 대통령이 30일 “검찰개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하라”고 지시한 지 하루 만에 자체 개혁안을 발표했다. 서울중앙지검 등 검찰청 3곳을 제외하고, 전국 모든 검찰청에 설치된 특수부를 폐지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검찰 밖의 ‘외부기관 파견검사’들을 전원 복귀시켜 형사부·공판부 등에 투입해 민생범죄를 담당하도록 했다. “검찰권 행사의 방식, 수사관행, 조직문화 등에 관해 국민과 검찰 구성원 의견을 수렴해 인권보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검찰개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검찰은 “법률 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결정을 충실히 받들고 법무부 등 관계기관과 적극 협력해 나가며, 검찰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개혁방안은 우선 실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이렇게 신속하게 대통령의 검찰 개혁 지시에 대응한 것은 상당히 전략적인 측면이 강하다. 무엇보다 검찰 개혁 방향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조국 장관을 둘러싼 수사가 검찰 개혁과는 무관한 것으로 수사를 절차대로 계속 진행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대통령 지시는 지시고, 조국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하겠다는 ‘윤석열식 정공법’을 보여 준 것이다. 민심은 이런 윤석열 총장의 편이다. 최근 KBS 여론 조사(10월 26-27일) 결과, ‘조 장관 가족 수사와 관련해 ‘지나치지 않다’(49%)가 ‘지나치다’(41%)보다 훨씬 많았다. 황희석 법무부 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은 1일 피의사실 공표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으로 “결국 하나의 본보기가 있어야 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KBS 조사에서는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에 대해 ‘허용돼야 한다’(64%)가 ‘금지돼야 한다’(‘24%)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리얼미터^YTN 조사(9월 27일)에서는 57.8%가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이 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해당 고위공직자는 공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본인이 법을 위반하지 않았으면 공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37.5%에 그쳤다.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국민은 없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화다.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검찰 개혁의 출발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권에 아부하지 않고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살아 있는 권력인 조국 장관을 강도 높게 수사를 하고 있는 윤석열 총장이 검찰 개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검찰 개혁은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반면, 거짓과 위선, 각종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장관을 수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따라서 조국 수호가 검찰 개혁의 시작이라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조 장관 가족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을 전두환 신군부에 비유했다. 그는 “윤석열 총장이 대통령하고 맞대결 양상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두른 것”이라며 “(논란이) 이렇게 커진 근본 원인은 초기 내사 자료에 의거한 윤 총장의 확신 또는 예단을 적절한 방식으로 국정에 반영하지 않고 매우 정치적인 방식으로 자기 의지를 관철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이어 “이것은 총칼은 안 들었지만 검찰의 난, 윤석열의 난”이라며 “완전히 정승화한테 대든 신군부랑 비슷한 정서”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한 유력 언론사 논설실장의 지적처럼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 이사장은 정치인에서 자유인으로 돌아와 첫 번째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저술했다. 그는 삶의 기쁨, 존재의 의미. 인생의 품격을 찾으려고 고민하면서 책을 썼다고 했다. 책 내용 중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하면서,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품위 있는 어른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밉상 짓’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 이사장 행태가 지금 딱 그렇다. 그는 평소 ‘어용 지식인’으로 살겠다고 했다. 조국 사태에서 보여준 그의 최근 언행은 ‘어용 지식인 유시민’이라는 이름을 남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주장처럼 “이름 남기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행위는 자칫 악명을 남길 뿐”이다.

셋째,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있는가? 지난달 28일 서초동 대검찰청 인근에서는 검찰 개혁을 촉구하고 조 장관을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여권은 200만명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통제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폭주에 보다 못한 국민이 나섰다면서 검찰 개혁이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이라고 밝혔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검찰 개혁 집회에 여당은 크게 고무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27일 검찰을 향한 이례적인 경고 메시지가 집회 참여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 같다. 통상 시위는 권력에 대한 힘없는 대중의 항의 수단인데 집권 세력이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 총장 아웃’을 외치는 군중집회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일각에서 ‘관제 데모’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반면, 야당은 서초동 검찰 개혁 집회 규모는 5만명에 불과한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다. 한국당은 “조국 장관이 법무부 장관으로서 부적격하다는 것은 법리를 떠나 상식의 문제인데 정부·여당의 조국 지키기와 검찰 때리기는 상식을 요구하는 민심에 대한 저항이다”고 꼬집었다. 한편, 자유 한국당과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소속 보수단체들이 개천절에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고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지난달 28일 서초동 검찰 개혁 집회에 대한 맞불 형태를 띠고 있는데 한국당은 “참석 인원이 총 300만명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역대 최대 규모 집회로 평가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정국 당시 촛불집회 규모보다도 많은 수치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개천절에 광화문 광장의 분열은 역사 앞에 부끄럽다”는 논평을 냈다. 집회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가 둘로 나뉘어 광장과 거리에 모여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은 참여 민주주의와 광장 민주주의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양극단으로 분열되어 대립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근본 원인은 결국 조국 장관 임명에서 시작되었다. 더불어,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광장 민주주의가 만병통치는 아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광장의 시민 목소리가 통상적인 국가 운영, 통치를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광장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주변이 자유한국당 관계자와 범보수단체 등이 각각 개최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연합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 교수도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정당정치의 부재를 광장 민주주의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장 민주주의가 왜곡되면 대중독재로 이어져 결국 민주주의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하버드대 레비츠키와 지블렛 교수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요소라고 주장한다. 전자는 “정치인들이 서로를 적인 아닌 경쟁자로 인정하는 규범”을 일컫는 것이다. 관용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상대방의 역할과 기능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당은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야당은 여당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관용이 생기고 민주주의는 발전한다. 한편, ‘제도적 자제’는 “합법적인 권한이라 할지라도 정치인은 주어진 권한을 무리하게 활용해 제도의 안정성을 흔들어선 안 된다.”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다. 따라서 ‘권력 남용’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두 요소는 민주주의를 일탈로부터 보호하는 ‘규범의 가드레일’인데 서로 밀접히 연관돼 있다. 그러나 사회 양극화가 커질 때 이런 민주주의 규범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분명, 우리 사회도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징후가 감지된다.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면서 상호 관용대신 상호불신이 판을 치고, 제도적 자제보다는 선동적 비이성적 진영대결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양극단의 정치를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은 국정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에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공권력은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하며 권력기관일수록 더 강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현재 무소불위의 힘을 구사하고 있는 문 대통령은 민주적 통제를 받고 있는가? 서로 적대하는 정당, 양극화된 정치, 무너지는 도덕적 규범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작동되지 않으면서 어떠한 민주적 통제도 받고 있지 않다. 최장집 명예교수는 “대통령이 법과 제도, 나아가 정당정치의 규범들을 무시하고 뛰어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넘어서는 권력 남용 내지는 초법적 권력 행사”라고 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를 받을 처지에 몰린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검찰을 압박하면서 야당을 무시하는 것은 ‘선출된 독재자’로 갈 수 있는 위험 신호다. 집권 여당이 검찰에 수사 검사를 고발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2일 ‘조국 법무부 장관 친인척 수사 담당 검사 및 검찰관계자’를 피의사실공표 및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처벌해 달라는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냈다. 검찰은 지난 3일 조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비공개 소환했다. 검찰은 “최근 정씨 소환을 두고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정씨의 건강도 좋지 않은 상황을 감안해 소환 방식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검찰이 기존의 공개 소환 입장을 바꾼 것은 문 대통령이 27일 밝힌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 지시를 따르고, 여권의 검찰 공격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대응으로 보인다. 검찰권 행사 방식과 수사 관행상 피의자에 대한 공개소환, 포토라인 세우기, 심야 조사 등은 피의사실 공표와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 교수에 대한 비공개 소환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보편적 원칙을 깬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명박 전 대통령도 예외 없이 공개 소환되어 포토라인에 섰다. 왜 소환 방식이 이 시점에서 갑자기 바뀌고, 그 혜택을 정 교수가 제일 먼저 받아야 하나? 대통령과 여권의 검찰에 대한 압박이 먹혀들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야당은 ‘특혜 소환’이고, ‘황제 소환’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제 조국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검찰 수사가 정경심 교수 소환으로 반환점을 돌아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조만간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조 장관과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 “엄정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며 “사실 관계 규명이나 조 장관이 책임져야 할 일이 있는지도 검찰의 수사 등 사법절차에 의해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조 장관이 기소되더라도 확정판결 이전까지 사퇴시키지 않겠다는 해석과 검찰 수사 결과 조 장관과 가족의 위법 사실이 드러난다면 문 대통령도 과감하게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런데 검찰총장이 없는 자리에서 법무부 장관을 통해 지시 사항을 전달하는 최근 문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전자에 가까운 것 같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조국 정국 속에서 정당 재편과 관련해 물밑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바른 미래당이 포문을 열었다. 손학규 대표 체제를 반대하는 유승민계·안철수계 등 비당권파의원 15명이 지난달 30일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모임을 공식 출범했다. 유승민 의원이 모임의 대표를 맡았다. 유 의원은 “당 위기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선택을 하고 중지를 모으는 모임이고 목표에 달성할 때까지 대표직을 제 모든 것 바쳐서 수행하겠다”고 했다. “(창당)1년8개월 이상 지났지만 당이 어려움 겪는 시점에 여전히 바른미래당 창당 정신인 개혁적 중도보수 정신이 여전히 중요하다. 창당 정신을 회복하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데 비상행동이 갈 길이 있다고 본다”라고 의지를 다졌다. 그는 2일 국회에서 비상행동 공개회의를 열고 “저의 역할은 국회의원·원외위원장 등 당 안팎의 의견을 수렴해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냐에 대해 결론을 빠른 시일 내에 내리는 것”이라며 “사즉생의 각오로 새로운 선택을 위한 의견을 수렴해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원외 지역위원장과 당 청년정치학교 수료생 등 당내외 인사들을 만나 의견 수렴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이제 최대 관심은 당 지도부와 별도로 세력 구축에 나선 바른 미래당 비당권파가 분당에 돌입할지 여부다. 이처럼 바른 미래당의 분열상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보수통합 메시지를 내놓았다. 그는 “문호를 활짝 열고 우리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한 자유민주 세력의 대통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을 열어놓고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친박이 건재하고 당 혁신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승민 의원이 자유한국당에 동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유승민당을 만들어 독자적인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조국 사태로 이념과 진영의 논리에 빠져 극단과 대립의 정치가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에 체류 중인 안철수 전 바른 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의 정계 복귀설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안 전 위원장이 지난 2017년 대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나왔던 당시 인천 남구에서 행한 유세 내용이 SNS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는 “문재인 후보를 뽑으면 3가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첫째, 국민들이 반으로 나뉘어 분열되고 사생결단을 하는 등 5년 내내 싸우게 될 것이다.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이를 적폐라고 말하며 국민을 적과 악으로 삼는데 어떻게 나라가 통합되겠느냐”고 말했다. “둘째,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이 된다. 계파 세력은 끼리끼리 나눠먹는다”면서 “정말 유능한 사람은 뒷전이고 줄을 잘 서고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출세하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셋째,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개념이 없이 옛날 사고방식으로 국정운영을 해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가장 뒤처지는 나라로 만들 것이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바른미래당도 사실상 분당 수순에 들어간 상황에서 안 전 위원장의 거취는 야권발 정계개편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안 전 위원장은 내달 9일 자신의 마라톤 도전기를 그린 책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을 출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계복귀에 대해서는 아직 별다른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민주평화당에서 탈당한 대안정치연대가 의원총회를 통해 대안신당(가칭)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당 창당 의지를 높여가고 있다. 유성엽 대안신당 대표는 1일 의원총회 직후 “(제3세력이) 총선 전에 크게 뭉쳐야 할 필요가 있다”며 “대통합으로 가되 이런저런 이유로 대통합이 어렵다면 소통합을 먼저 이루는 것도 방법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제3지대 신당’이 어떻게 결말날지는 향후 선거법 개정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만약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최종 채택되면 통합도 제3신당도 사라지고 유승민당, 안철수당, 대안 신당 등이 자신의 정당 득표만 믿고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검찰을 향해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국 임명 반대’와 ‘조국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국민 목소리가 높아지고, 만명 이상의 전^현직 대학 교수가 ‘조국 파면’ 시국 선언을 하고, 서울대 등 수 많은 대학생들이 ‘조국 아웃’을 외치며 촛불 집회를 여는 현실을 왜 외면하는가? 보수 진영뿐 아니라 진보 세력 내에서도 조 장관 사퇴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대표적인 진보진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김경율 전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국 장관과 진보시민 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조 장관 가족 사모펀드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권력형 범죄일 가능성이 드러났는데도 참여연대가 입을 다물었다”고 비판했다. 최순실씨를 고발해 국정농단 사건을 촉발시켰던 진보성향 경제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는 2일 조 장관과 조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공직자윤리법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2일 “현 상황에서 대중을 동원하는 경쟁은 그만두고 정부와 여당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조국 법무장관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라고 사퇴를 촉구했다.

조 장관이 물러나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조국 장관은 2017년 1월 자신의 SNS에 조윤선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이 장관직을 내려놓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 수사를 받는 것에 대해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느냐”며 비판했다. 여론과 진보 진영의 사퇴 요구를 살피고 과거 자신의 발언을 성찰한다면 조국 장관은 더 이상 버티지 말고 물러나야 한다. 거짓과 위선, 선동과 극단이 판을 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산문이 문득 떠오른다. 작금의 조국 사태와 결부시킨다면, 장관 한명이 임명되면서 나라가 두 동강 나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경제와 안보가 위기 상황인데 ‘조국 블랙홀’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윤리와 정의는 실종되고 거짓과 선동이 지배하며 미쳐 날 뛰는 사회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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