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연합

■심리적 마지노선 오락가락하는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오바마의 야당과의 협치,
MB의 인적쇄신·경제집중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을 필요

역대 최저치까지 내려갔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난 주 2%포인트 상승한 41%로 나타났다(한국 갤럽 기준). 문 대통령 지지율은 10월 3주차에 39%를 기록해 ‘조기 레임덕’ 우려를 낳았다. 상승폭이 오차범위 ±3.1% 내이기 때문에 물론 안심하기엔 이르다.

심리적 마지노선을 회복했다는 의견도 있다. 보통 당선시 득표율을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잡는다. 문 대통령이 대선에서 얻은 득표율은 41.1%다. 하지만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 대통령과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을 합쳐야 범진보가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알 수 있다”며 “실제 심리적 마지노선은 41.1%에 심 후보의 6.17%를 더한 47.27%”라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문 대통령 지지율은 이미 2년차 4분기에 심리적 마지노선 밑으로 내려간 셈이다.

문 대통령은 내년 제21대 총선 전까지 지지율을 더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대통령의 지지율 부진이 집권여당의 총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에서는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을 두고 갈림길이 시작되는 시점을 보통 집권 3년차 3분기로 본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역대 대통령의 집권 하반기에는 지지율이 40%를 넘지 못할 만큼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높은 지지율로 시작한 문 대통령, 적폐청산 길어지며 주춤

문 대통령은 촛불 정국의 힘을 받아 국민 81%의 지지를 받으며 임기를 시작했다. 집권 2년차 2분기까지는 긍정률이 부정률에 비해 높았다.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아직 식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정 운영의 성과가 나타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2년차 2분기부터 부정 평가 비율(부정률)이 30%였다는 점은 되짚어볼 대목이다. 임기 초반 부정률은 11%에 불과했다. 강상호 국민대 교수는 “적폐청산이란 명분하에 추진한 개혁이 장기화되고 기준 역시 자의적인 것으로 드러나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평양 남북정상회담으로 이를 만회했다.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2년차 2분기에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60%였다. 이후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남북 화해 무드로 인한 감성 지지율은 효과가 오래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측근 비리가 지지율 하락의 ‘촉매제’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올해 8월 9일 문 대통령은 조국 전 장관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는데, 8월 4주차 여론조사에서 데드크로스가 나타났다.

데드크로스 이후 10월 4주차까지 부정률은 긍정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신 교수는 “조국 사태 때 국민의 즉각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거나 조 전 장관을 퇴임시키지 않았던 것은 큰 무리수였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 역시 “조국 사태라는 측근 비리는 중도층이 돌아서는 결정적 계기였다”며 “권력을 독점하려는 코드 인사가 측근 비리를 불러온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문 정부는 권력 독점과 집권을 동일시하고 있다”며 “현대사회에서 권력의 독점은 결과적으로 커다란 저항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지지율에 신경 안 쓴 노 전 대통령, 업적 남겨

김영삼 전 대통령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지지율로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무려 국민의 71%가 그를 옹호했다. 하지만 퇴임할 때는 지지율이 단 6%였다. 김 교수는 “공약이었던 금융실명제에 대한 기대감으로 출발했지만 IMF 외환위기로 지지율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1997년 한보사태와 차남 현철씨의 구속 수감 역시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대외전략으로 지지율을 반등시키려 했다. 그가 첫 번째로 꺼내 든 것은 ‘한반도 평화’ 카드다. 1996년 4월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 4자회담을 공식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이 4자회담에 앞서 대화가 아닌 주장만을 펼치는 동시에 무장공비를 남파한 것이 탄로나면서 지지율은 또다시 하락했다. ‘한ㆍ일 월드컵 공동 유치’ 카드 역시 지지율 상승에 일조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우리나라가 이제 동등한 입장에서 국제 행사를 치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은 국민적 자긍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역시 효과가 오래 가지 못했다. 신 교수는 “반일 감정으로 끌어올린 감성 지지율은 약발이 오래 못 간다”며 “민족주의를 자극해도 국민들은 시간이 지나면 원래 생활패턴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도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높은 지지율(71%)로 임기를 시작했다. 퇴임시 지지율은 24%로 약한 수준의 레임덕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에 비해 IMF 극복 노력,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노벨 평화상 수상 등 업적이 많은 대통령으로 꼽힌다. 세 아들의 비리 연루 역시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끼쳤다. 레임덕을 극복하지 못한 김 전 대통령은 결국 고향인 집권 5년차에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다. 신 교수는 “집권여당은 대통령을 버릴 수 있어도 대통령은 집권여당을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은 자신 때문에 당의 지지율이 떨어져 정권이 바뀌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 역시 “일반적으로 집권 4년차부터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충돌하는 양상이 나타난다”며 “집권 여당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여당이 레임덕 조짐을 보이는 대통령을 안고 가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우선 총선에서 패배해 여소야대 정국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지지율이 저조한 대통령과 차별성을 둬야 한다. 김 교수는 “집권당 프리미엄이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여당은 지지율이 저조한 대통령과 거리를 둔다”며 “대통령으로부터 자율성, 독립성을 확보한 여당은 정당 지지도를 유지하거나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득표율 48.9%보다 높은 60%의 지지율로 임기를 시작했지만 조기 레임덕을 톡톡히 겪은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60%이던 지지율이 1년차 2분기에 40%로 떨어진 뒤 단 한 번도 골든크로스(지지율 역전 현상)를 보지 못했다. 이 같은 지지율 부진의 원인으로는 형 건평씨의 인사개입 의혹, 대북송금사건 특검 수용, 이라크 파병, 열린우리당 창당 등이 꼽힌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여당 주류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3년 대북송금사건 특검을 수용했다. 결국 그 해 9월 노 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두 달 뒤인 11월 노 전 대통령을 위시한 47명의 의원들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지만 미니여당은 탄핵 사태에서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지지율을 신경 쓰지 않고 대한민국에 필요한 일을 하겠다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체결은 국론 분열을 야기할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었지만 지지율에 예민하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은 이른바 ‘업적’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물론 국정 장악력이 없기에 여야에 도움을 요청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연정 제안 역시 지지율 상승을 위한 전략은 아니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 ‘반일감정’ 등 대외 전략 없이 골든크로스에 성공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레임덕과 골든크로스 모두 가장 빨리 나타난 대통령이다. '광우병 사태'로 집권 1년차 2분기에 데드크로스가 나타면서 1분기에 52%였던 지지율은 21%로 떨어졌다. 조기 레임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전 대통령이 택한 방법은 강력한 인적 쇄신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인위적 인적 쇄신은 없다”고 했지만 2009년 4ㆍ29 재ㆍ보선 참패 이후 예상을 벗어나는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2009년 6월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인선은 파격인사로 호평을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이에 멈추지 않고 그 해 9월 야권 대선주자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내정하는 탕평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제에 집중한 점 역시 지지율 상승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전문위원은 2011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경제위기이후 체감경제를 비교적 잘 관리해온 측면이 크다"며 "체감경제의 상승은 그 동안 대통령 지지율 상승을 떠받치는 한 축으로 작동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4년차 1분기까지 콘크리트 지지층이 40%대 지지율을 받쳐주고 있었다. 3년차 1분기에서 3년차 3분기까지 30% 지지율을 보였지만 3분기에 40%대를 회복하면서 콘크리트 지지층의 위력을 보여줬다. 집권 3년차에 지지율이 떨어졌던 원인으로는 담뱃세 인상과 건강보험료 개편 등이 꼽힌다. 무당층이 지지를 철회하는 현상이 발생하자 박 전 대통령은 방향을 돌려 추가 세제 개편을 접었다. 신 교수는 “대통령이 직접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한 것 역시 지지율 반등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데드크로스 탈출 키워드는 민생, 경제, 인적쇄신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데드크로스 탈출 전략으로 ‘민생’ ‘경제’ ‘인적 쇄신’을 키워드로 꼽았다. 긍정률이 부정률을 앞서고 지지율이 심리적 마지노선 위로 올라서야 레임덕을 피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경제 문제의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민생 정책에서 성과가 없으면 대통령 지지율이 20%까지 떨어질 것”이라며 “지지율 추이로 봤을 때 문 대통령에게 위기를 알리는 신호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박 평론가는 “경제 총력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며 “문 정부 임기 후반기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 역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실행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IMF 극복을 위해 힘썼듯이 문 대통령도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적 쇄신에 있어서는 예상 밖 인사를 영입하는 방법과 ‘탕평책’이 거론됐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권이 과감한 인적 쇄신, 지도체제 개편 등을 보여준다면 데드크로스가 골든크로스로 바뀔 수 있다”며 “코드 인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탕평책은 문 정권에서는 불가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신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들은 야당 사람들을 과도하게 잡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문 정권에서는 적폐청산이란 이유로 야당의 다수가 검찰에 넘겨졌고 현재 대통령의 지지율도 낮기 때문에 탕평책에 동의할 야당 인사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과의 접촉을 늘리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신 교수는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며 “늦은 감이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을 여당보다 우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협소한 인재 풀 속에 갇혀 있기보다 시야를 넓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