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다문화정책, 단기적이고 획일적…문재인 정부의 ‘우수인재 비자’ 정책은 탁상공론"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은 다른 이주여성들과 달리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이주 여성들이 시부모, 남편 등의 반대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지만 이 전 의원은 오히려 가족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치를 시작할 수 있었다. 2012년 의원 배지를 달았을 때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의 응원을 떠올리며 의정활동에 임했다. 남편은 생전에 이 전 의원에게 “당신의 능력을 믿는다”며 정치활동을 독려했다는 것이다.

이 전 의원은 최근 정의당 입장으로 다시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11월 27일 만난 이 전 의원은 한국 다문화정책의 고질적인 문제, 정서적 문제, 그리고 현 정부의 실책까지 세세하게 비판했다. 핵심은 세 가지다. "다문화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단기적이고 획일적이다", "이주민에 대한 인식 개선은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고학력자 우대 정책에 집중돼 있다" 등이다.


-19대 국회 종료 후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나.
“작년부터 교통방송에서 영어방송 진행자로 일하고 있다. 가끔씩 이주 여성 관련 강연을 하기도 한다. 의원연금은 19대 국회 때 폐지됐기 때문에 받지 못했다. 대신 모아놓은 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은 시부모님, 시동생 내외, 조카 둘, 그리고 대학생 아들, 고등학생 딸과 함께 살고 있다(남편은 2010년 사고로 숨졌다). 총 9명인 대가족이다. 돈 들어갈 일은 많지 않았다. 시부모님 부양을 시동생 내외가 하고 있고 대학생 아들은 작년에 제대했기 때문에 학비로 인해 고민할 일이 없었다.”

-학창시절에도 대외활동에 적극적이었나.
“공부만 열심히 했다. 리더의 성향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됐다. 나를 왕따시켰던 사람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 나도 뭔가 잘하는 게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공부뿐만 아니라 운동도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영어·수학·과학 대회도 나가고 달리기·높이뛰기· 멀리뛰기 선수로도 활약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 와서 성격이 변한 건가.
“한국 가족으로부터 뭐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받았다. 사람들이 정치 제안을 할 때마다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정치권 러브콜을 받았던 이유는 한국에 있는 이주민 중 오래된 편에 속했고 언어적인 부분에서도 앞섰기 때문이었다. 시부모님, 남편 모두가 내 능력을 믿어줬고 자신감을 북돋아줬다. 물론 난 이주 여성 중 특이 케이스다. 대부분 이주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시부모나 남편이 사회생활을 방해해 자존감을 꺾는 경우다.”

-정치권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한국여성정치연구소’라는 시민단체에서 내가 출연했던 KBS 프로그램 ‘러브 인 아시아’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더니 PD가 나와 스리랑카 친구를 추천했던 모양이다. 그 단체는 ‘2010년 첫 이주여성 지방의원 만들기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었다. 당시 방송에 여념이 없던 나는 정치 관련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스리랑카 친구의 권유도 있었고 그 단체에서 시간 될 때마다 수업만 들으면 된다고 했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자 ‘우리나라에서도 이주민이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사회 전반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내가 속해 있는 프로젝트에 관심을 기울였고 한국어를 잘했던 내가 프로젝트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인터뷰를 여러 차례 하게 됐다.”

-한나라당의 러브콜이 있었는데.
“2010년에 한나라당으로부터 경기도의원과 서울시의원 비례대표를 제의받았다. 모두 거절하자 2년 뒤 새누리당으로부터 국회의원 비례대표직을 권유받았다. 경기도의원의 경우는 비례 1번이었기 때문에 제의를 받아들이는 순간 당선은 확실했다. 하지만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살아왔던 내가 경기도 비례대표 의원이 된다면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분의 의원직을 뺏는 것 같았다. 이왕이면 첫 단추를 잘 끼우자는 생각에 거절했다. 서울시의원의 경우는 비례대표 5번밖에 주지 못한다고 했다. 난 1번 또는 2번을 기대하고 있었다. 1, 2번이 주는 상징성이 있지 않나. 내가 나서는 건 한국에 이주 여성들이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함이었다. 당시엔 내 도전이 정치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2012년에는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15번을 받아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의원직에서 나온 뒤 어떻게 지냈는지.
“국회에 있던 2013년부터 ‘꿈드림학교’라는 걸 했다. 이주 여성의 학교인데 올해 7기다.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년에는 ‘한국문화다양성기구’라는 단체를 만들어 이주민에 대한 인식 변화 개선과 관련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다문화 2세와 관련한 사업도 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운영중인 이중언어 사업에 참여 중인데, 올해는 필리핀에서 온 아이들이 모국어와 한국어 모두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아이들이 한국에 적응하도록 돕는 한편 모국어를 잃지 않게끔 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춤,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중언어 교육 방식을 뮤지컬로 바꿨다. 언어는 책상머리에서 배우면 잘 안되지만 뮤지컬로 배우면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 이중언어 뮤지컬은 현재 트레이닝 중이고 12월에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를 차용했고 대사는 필리핀어이며 노래는 한국어로 구성했다. 아이들이 흥미롭게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이혜영 기자

-한국의 다문화사업을 어떻게 보는가.
“단기적이고 천편일률적이다. 다문화사업은 한 가지 틀만 강요하면 무너진다. 예를 들어 중도입국한 아이들은 해외에서 살다가 왔기 때문에 이미 정체성이 확립돼 있다. 언어적인 장벽, 문화적인 장벽이 있어서 공부 하라고 하면 역효과만 불러일으킨다. 이럴 땐 각자의 강점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앞서 말했던 이중언어 뮤지컬 아이들도 8세 이상인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한 반에 넣어서 ‘한국 사람처럼 김치를 만들어라’, ‘한국 사람처럼 이렇게 해라’라고 주입식 교육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다문화 2세들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다보는 정책이 부실하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것, 우리나라 다문화정책의 가장 잘못된 점이라고 본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예를 든다면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다문화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다문화가정이 있는 학교에는 다문화 담당 선생님이 생겼고 그 선생님은 해당 가정을 관리하게 됐다. 그때 다문화가정은 전 학교에서 아들 혼자였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다문화 담당 선생님이 ‘정부정책이니 경복궁을 다녀오라’고 아들에게 시켰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은 경복궁에 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아들이 ‘나도 여기서 태어났는데 왜 나는 친구들보다 더 자주 경복궁을 다녀와야 해?’라고 물었다. 이렇게 다문화가정이지만 현실적으로 필요 없는 정책도 있다. 탁상공론 때문에 맞춤형 정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다문화사업은 많은 예산이 드는 분야가 아님에도 까다롭고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다고 보는지.
“다문화와 관련한 ‘독립된’ 위원회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다문화정책이 장기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자리잡지도 못하는 이유는 공무원의 인사이동이 잦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 담당 직원에게 다문화 관련 정책이나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더라도 6개월에서 1년 뒤에 새로운 사람이 인수인계 받는다. 하지만 일은 인수인계 할 수 있어도 다문화에 대한 이해, 마인드는 전달할 수 없다. 안타깝다. 이 같은 경우는 지자체든 중앙이든 똑같다. 사업 시작 후 한 달 만에 담당자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다문화 관련 '독립된' 위원회가 있어서 고정적으로 다문화 이슈에 대해 의논했으면 좋겠다. 총리실 산하 위원회는 일 년에 한두 번 형식상 회의하는 걸로 끝날 공산이 크다. 독립 위원회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 실효성 있는 정책이 논의돼야 한다. 특히 해외 벤치마킹을 하는 건 반드시 피해야 한다. 미국에서, 독일에서 잘됐다는 정책은 우리나라의 정서적·문화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 정부의 정책 중 아쉬운 것을 꼽자면.
“문재인 정부에서 지난 9월 ‘우수인재 비자’를 신설했다. 고학력자를 대상으로 비자 취득 및 장기체류 조건을 완화해 주는 것인데 독일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대학진학률이 30%도 안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취업난이다. 독일은 고학력자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는 고학력자가 이미 많은데 또 고학력자를 데려오면 과부하가 걸린다. 이 정책에 대해 불만을 갖는 한국 국민은 많지 않다.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다. 공부 못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소위 말해 ‘모셔오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본인들 일자리를 빼앗기는 건 생각 못하는 것이다. 정책의 취지는 좋다. 유능한 인재가 가족과 함께 한국에 올 수 있기 때문에 국가 경쟁력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제조업은 지금 구인난이다. 정작 필요한 인력을 위한 정책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정책을 도입했을까?
“동남아에서 사람을 데려오는 것보다 반감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저학력자를 데려오는 것보다 부자 나라에서 고학력자를 데려온다고 했을 때 반감이 더 낮다. 한국 문화에는 고학력자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과연 취업난인 지금, ‘그런 사람들이 한국사회에 필요할까’ 이런 질문을 던져 봤었는지 의문이 든다. 또한 우수인재가 가족을 데려온다고 해도 자신들의 자녀를 한국에서 교육시키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한국의 교육과정을 보면 모국에서 교육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할 것이다. 아니면 국제학교에 보내는 방법도 있다. 또한 한국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데 아이를 유럽에 못 보낼 이유도 없다.

정부가 말하는 우수 인재들은 한국에서 받은 높은 연봉을 한국 바깥에서 쓰는 것이다. 여기서는 돈만 벌고 다른 곳에서 쓰는 것이다. 사람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돈을 쓰지 않고 자기나라에 돈을 보낸다고, 그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버는 돈의 액수와 우수인재가 버는 연봉을 비교하는 게 우선이다.”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이주민들에게 쌀을 준다고 해서 될 게 아니다. 이들에게 먹고 사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이주민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공무원식 성과위주 방식은 안 된다. 축제 한 번 개최한다고 해서 인식이 확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공약이라 여기까지만 얘기하겠다(웃음).”

노유선 기자
사진=이혜영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