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연일 군사압박...강 대 강 대치

북미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협상의 동력을 잃으면서 최근 북미 행보는 대결 국면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추가 도발 움직임을 겨냥하며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나서자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늙다리 망령이 되살아났다”며 받아쳤다. 2년여 전 북미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던 분위기가 재현되면서 군사적 긴장감도 높아졌다. 지금과 같은 흐름이라면 북한이 데드라인으로 정한 연말까지 비핵화 협상에서 성과를 얻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美, 비건 방한에 앞서 군사적 압박 높여

지난 8일 백악관은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한이 확정적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지난 7일 폐기하기로 합의한 동창리 서해위성시험장에서 ‘중대한 실험’을 했다고 발표한 지 하루만이다. 북한이 실험한 것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쓰이는 로켓엔진으로 추정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한 데드라인을 넘는 것으로 미국이 극도로 민감해 하는 부분이다. 그는 “김정은이 우리 선거에 개입하길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외교적 성과가 헛수고로 돌아갈 것을 우려했다.

북한의 ICBM 실험이 현실화되자 미국 내에서도 “최대압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경한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인 코리 가드너 의원은 “북한은 국제법 위반과 인권 침해, 공격의 긴 역사에서 경로를 바꾸지 않는 한 국제적인 미아 신세를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되는 인권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켜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려는 의도다. 지난 11일엔 비건 대표가 뉴욕 맨해튼에서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과 회동했다. 그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일치된 목소리로 기존의 대북정책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전해진다.

북의 ICBM 시험 이후 미국의 군사적 압박도 높아지고 있다. 미군의 전략자산인 B-52 전략폭격기가 한반도 주변 상공에서 작전을 펼친 것은 물론 최첨단 정찰기가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며 대북 감시 태세를 강화했다. 미간항공추적 사이트 ‘에어크래프트 스폿’에 따르면 미 공군 지상감시정찰기 ‘E-8C’은 한반도 상공 2만9000피트(8839.2m)를 비행했다. 이 정찰기는 북한군의 해안포 및 장사정포 기지는 물론 병력과 장비의 이동까지 정밀하게 감시할 수 있는 첨단 자산이다. 지난 11일엔 30cm의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어 첩보 위성급 감시 장비로 불리는 글로벌호크가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미군은 정찰 비행을 의도적으로 노출하며 강력한 대북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북한의 동창리 '중대한 시험' 이후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까지 한반도에서 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

北 벼랑끝전술 이번에도 통할까

북한은 과거 핵협상에서 극적인 도발을 벌인 뒤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내곤 했다. 이번에도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ICBM 시험을 하는 등 긴장 수위를 높였다. 북한은 연말까지 협상 시한을 정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비유한 도발을 예고하며 미국에게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고 있다. 문성묵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김정은이 공언한대로 자신이 말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행동을 하긴 할 것”이라며 “다만 트럼프가 정한 레드라인을 넘는 행동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수위 조절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은 똑똑한 사람”이라는 우회적인 경고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의미다. 북한도 도발에 따른 결과를 유념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도 “북한이 물러설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의 압박도 높아지는 속에 공언한대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미국이 제재완화, 친서전달 등과 같은 제스처를 보인다면 달라지겠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쏟아내는 표현만 보면 뭔가 극단적인 결심을 한 것처럼 보인다. 벼랑끝 전술의 반복이다. 하지만 지금의 국제정세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평가 나온다. 과거의 경우 국제사회는 북한을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으나 지금은 강력한 제재수단이 마련됐다.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북한을 두둔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북한은 핵강국, 우주강국을 강조해왔다. 인공위성 발사체로 포장한 ICBM 발사 가능성을 높게 보는 배경이다. 문 센터장은 “북한은 관련 시험을 두고 자위적·주권적 조치라고 주장할텐데, 국제사회의 틈새를 노리며 자신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 할 것”이라며 “다만 북한의 그러한 셈법을 받아주기엔 국제사회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고 오히려 제재와 압박 명분만 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北, 단계적 합의 노리며 ‘시간끌기’ 전략

북한은 미국에게 연말까지 만나자며 기한을 제시했지만 핵협상에서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북미 정상 간 약속한 비핵화 의지를 전면적으로 뒤집기에도 부담이 따른다. 대화로 단계적 합의에 이르자는 주장이 반복되는 배경이다. 김 전 차관은 “미국이 그것을 들어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며 미국의 의지를 변수로 짚었다. 김 전 차관은 “북한의 해외노동자 귀국과 같은 덜 민감한 부분을 보류해준다면 다시 대화의 장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주고받기 식의 단계적 조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또한 협상 중단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면서도 대화의 문은 유효하다는 논리를 편다. 김 전 차관은 “미국으로선 북한이 대화의 판을 완전히 깬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제재일변도로 가기에도 명분이 약해졌다”며 “안보리 추가제재 등의 카드도 남아있지만 북한의 의도대로 ‘시간 끌기’ 전략에 말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