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 지위 강화 ‘새로운 길’ 모색… 美 군사옵션·제재 강도 높일 것

북한이 비핵화 대신 재핵화의 길로 가고 있다. 북한은 ‘믿음직한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Reliable strategic nuclear deterrent)’을 확보했다고 공언했다. 동창리에서 ICBM 엔진 실험을 한지 6일 만에 다시 중대시험을 진행하며 1톤급 핵탄두를 미 본토 사정권인 1만 25000km까지 보낼 능력도 갖추고 있다. 대화 재개를 위해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빈손으로 돌아갔다. 미 상원의 민주당 지도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화염과 분노’보다 협상 테이블이 낫다는 의견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크리스마스 도발 가능성을 내비치며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다.

北, 벼랑 끝에서 ‘묵묵부답’

박정천 북한군 총참모장은 지난 14일 담화에서 ICBM 능력을 고도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박 총참모장은 “(새로운 기술들은) 미국의 핵위협을 확고하고도 믿음직하게 견제, 제압하기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또 다른 전략무기개발에 그대로 적용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담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우리를 자극하는 그 어떤 언행도 삼가야 연말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미국과 한국의 태도에 따라 추가 도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비건 대표는 지난주 한국을 방문해 17일 출국할 때까지 북한과의 접촉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빈손으로 떠났다. 지난 12일 “미국이 입만 벌리면 대화타령을 늘어놓고 있는데 설사 대화를 한다고 해도 미국이 우리에게 내놓을 것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고 밝힌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의 흐름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비건 대표는 19일 베이징을 방문해 뤄자오후이 외교부 부부장과 만났다. 북한과의 협상 재개를 위한 적극적인 행보로 해석된다. 실제 중국 외교부는 회동 직후 보도문을 통해 ‘북미 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희망했다.

북한의 도발 거점. 그래픽 = 주간한국

크리스마스 도발 가능성

북-미 간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에 대북제재를 일부 완화할 것을 주장했다. 중·러가 대북제재 완화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극적인 도발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북한의 해외노동자 송환 제재와 관련한 중국의 태도에 따라 북한의 도발 수위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뜻이다. 대중관계에 힘을 쏟아온 김정은 위원장도 중국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적정수준의 도발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탄도미사일을 곧 보게 될 것’이라는 북한의 발언도 도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미국과의 핵협상을 중단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강화하는 ‘새로운 길’로 나아가면서 군부의 위상도 다시 높아졌다”며 “향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더욱 고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북한이 도발 수위를 조절하며 미국 국내 정치에 개입하고자 한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이라며 “북한의 도발은 트럼프 재선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 여부는 미국의 탄핵이나 재선 레이스와는 별개라는 분석이다.

北, 도발 시엔 경제제재 강화 및 군사적 압박 수위 높일 듯

북한이 ICBM 발사, 핵실험과 같은 도발을 재개한다면 유엔 안보리 추가제재와 군사 압박 등 강경한 대응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제재국면에서 유연성을 발휘해 줄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도 받기 힘들어진다. 트리거 조항(북한의 추가 도발 시 자동 적용되는 제재 조항)이 발동되는 것은 물론 미국의 세컨더리 제재 강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 상원의원들은 1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에 세컨더리 제재 강화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전날 상원을 통과했다. 북한과 거래하는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중국에 있다.

북한 외무성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관광 금지나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과 같은 초강력 제재 카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 센터장은 “11일에 유엔안보리에서 북한 지도부가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하기로 돼 있었지만 북한 미사일 안건으로 바꾼 것은 김정은 입장을 고려한 것”이라면서 “다만 일정 수위를 넘어서는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미국이 가공할만한 위협을 느낀다면 ICBM 발사조차 하지 못하도록 실제적인 군사행동을 할 수도 있다”며 “실제 미 의회에서는 도발 조짐이 있으면 선제 공격할 수 있다는 법안을 통과시켜 놨고 미 행정부도 군사옵션의 충분한 명분을 쌓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미사일 실험 ‘유예’ 뒤집는 ‘새로운 길’로?

북한은 과거부터 외쳐온 ‘자력갱생’을 새로운 길로 모색하고 있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청년들이 백두산을 줄이어 오르는 것도 자력갱생의 길로 가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자위적인 국방력 강화로 스스로 체제보장을 이루겠다는 의지다. 미국과의 협상을 중단하고 중·러에 편승하는 전략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핵 동결과 같은 제한적인 비핵화를 선택하며 중·러와 정치·외교·군사·경제 차원에서 폭넓게 협력하는 방향이다.

정 센터장은 “북 외무성은 어떻게 해서든지 핵보유국 지위를 강화하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한 결정을 정당화하려고 할 것”이라며 “‘새로운 길’은 북미 간 조성된 데탕트(긴장완화·화해)의 막을 내리고 적대적인 북미관계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결의 길’이 아닌 ‘대화와 협상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