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당시 허점 많아…대상 범위 좁히고 기간도 단축해야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 참가자들이 본청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연합
지난 16일 국회의사당이 보수단체 회원 1만여명(자유한국당 추산)에 의해 봉쇄당했다. 회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날리며 의사당을 누볐고 그들의 외침은 확성기를 통해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회원 일부는 국회의사당 본청 진입을 시도하려다 경찰의 저지를 받기도 했다. 광장 정치가 의회 정치를 침범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제도)'이 지목되고 있다. 의회 정치는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신해 대화와 타협으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이 같은 협치를 실종시킨 주범이 패스트트랙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보수단체가 저지하려는 법안들은 모두 패스트트랙에 올라있다. 특히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발의부터 본회의 상정까지 여야의 깊은 논의가 없었다는 비판이 있다. 패스트트랙 의결정족수를 충족하기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소관 위원회 전체위원 60%의 찬성을 얻으면 안건은 패스트트랙에 오를 수 있다. 이 같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최장 330일에 걸쳐 심사하고, 심사 기간이 끝나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된 시점은 지난 4월 24일이다. 한국당을 뺀 여야 4당 원내대표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위원 17명 명의로,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대표발의 했다. 이후 일주일이 채 안된 4월 30일 정개특위는 또다시 한국당을 제외하고서 신속처리안건지정 동의의건 무기명투표를 강행했고 선거법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문제는 이때 발의된 개정안이 최종본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야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는 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에 오른 뒤부터 수정안을 내놓으며 조율에 들어갔다. 개정안이 발의된 후 약 8개월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비례대표에 적용할 연동률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미 패스트트랙의 이같은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전진영 입법조사관은 2018년 ‘이슈와 논점’이란 자료를 통해 “소관위원회에서 법안에 대한 충분한 심의가 이루어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다음단계로 회부되는 것은 ‘토론과 숙의’를 거쳐서 의사결정에 도달하는 의회정치의 근본적 가치와 부합되지 않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홍익대 임종훈 교수도 패스트트랙과 관련해 입법이 부실했던 점을 꼬집었다. 임 교수는 “구체적으로 패스트트랙 운영을 살펴보면 입법의 미비가 많이 보인다”며 “이번 공수처법안과 관련,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서 신속처리대상 안건으로 지정된 후 123일만에 사개특위의 활동기간이 종료되었는데, 이 경우 소관위원회 심사 기간 중 남은 57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회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고 했다.

패스트트랙의 허술함은 패스트트랙이 명시된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던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패스트트랙 조항 신설 취지는 국회의장의 무분별한 직권상정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서울대 김현진 박사는 “직권상정을 제한하는 대신 (입법의 간소화를 위한) 퇴로를 만들어 준 것이 패스트트랙”이라며 “취지는 좋지만 5분의 3이란 의결정족수에 대한 근거가 미비하고 패스트트랙 대상에 제한이 없다는 것은 문제”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경우 패스트트랙에 태울 수 있는 법안이 한정돼 있다. 예산결의안이나 예산조정법안에 대한 심의는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다. 군사안보, 외교통상, 정부조직과 관련한 법안도 가능하다. 그외의 것은 패스트트랙을 적용할 수 없다. 의원내각제를 기반으로 한 영국도 패스트트랙과 유사한 제도가 구축돼 있다. 김 박사는 “영국은 국민적 관심사를 대상으로 한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랐다”며“우리나라가 국민적 관심사보다 당리당략, 권력다툼과 관련한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것과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패스트트랙 대상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진영 입법조사관은 과거 “국가안보나 외교분야, 또는 위헌결정에 따라 신속한 법률개정이 필요한 사항 등으로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 박사 역시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는 법안을 한정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그는 “국가안보뿐 아니라 금융 관련 일몰법 역시 신속한 의사결정이 요구되므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패스트’트랙이 ‘슬로우’하다는 문제인식 하에 심의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임종훈 교수는 “미국의 무역 관련법의 경우 신속처리기간이 아주 단기간으로 설정돼 있다”며 “우리 제도의 문제점은 이름과 달리 신속처리대상 안건으로 지정되어도 본회의에 부의되기까지 너무 길게 걸린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7년 노회찬 전 의원은 최장 330일이 소요되는 현행 패스트트랙 기간을 단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국회법을 개정해 각 상임위별 최소 심의 기간을 명시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 박사는 “법안이 상임위 단계에서 아예 논의조차 안될 경우 자동 폐기를 시키는 등 엄격한 제한을 둬서 상임위에서 논의가 진행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