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후반기 ‘부정 평가’가 더 높아... 조국 사태로 도덕성 무너진게 가장 큰 이유

문희상 국회의장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가결하고 있다. 연합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이른바 ‘4+1’ 협의체는 23일 공직선거법 개정안 수정안에 합의했다.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에 비례 30석은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안이다. 비례대표 47석 중 나머지 17석은 현행 방식대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한다. 지난 4월 심상정 의원이 대표 발의해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원안과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원안에는 지역구 225석, 비례구 75석이었지만 수정안에는 지역구 의석을 단 1석도 줄이지 못했다. 정당지지율에 따른 비례성을 높여 연합정치가 가능한 다당제 구조를 만들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해야 한다는 애초 주장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지역구도를 타파하자”며 지역구 낙선자를 비례대표로 부활시키는 석패율 제도도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민주당이 ‘중진 구제용’이라고 강력 반발 하자 군소 정당들이 막판에 이를 포기했다. 각 정당이 6개 권역별로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로 했던 것도 없던 일로 했다.

한마디로 내년 4월 총선에 적용될 선거법 개정안은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변질되어 누더기 법안이 됐다. 결국 “다양한 정책과 이념에 기반한 정당의 의회 진출을 촉진한다”는 선거법 개정도 유명무실해졌다. 개혁은 없고 밥그릇 싸움만 있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선거 개혁 초심과 취지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고 너무나 미흡한 안을 국민께 내놓게 돼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고 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국민들은 자신이 던진 표가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투표를 해야 한다. 지난 2016년 총선 당시 지역구 선거에서 새누리당과 더불어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던 유권자들의 각각 30%와 28%가 정당 투표에서 국민의 당을 지지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당은 정당 투표에서 26.7%를 득표해 민주당(25.5%)보다 더 많이 얻었다. 유권자의 이런 전략적 투표는 비례 배분 방식의 복잡성 때문에 내년 총선에서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또한, 지역구 의석수가 많은 제1, 제2 정당의 비례대표 수가 줄어드는 대신, 군소 정당들의 비례대표 의석수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한 고육책으로 자유한국당은 24일 이른바 ‘비례한국당’ 창당을 선언했다. 비례대표용 정당 창당 이후 내년 총선 이후 한국당과의 합당 계획도 밝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지역구 의석수가 많은 한국당의 경우 정의당보다 비례의석 수 확보에 불리하기 때문에 비례대표 후보만 내는 위성 정당을 새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김재원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비례한국당’으로 옮기는 구상에 대해 “적어도 투표 기호가 상위에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라고 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비례한국당을) 등록하려고 하면 이틀 만에도 한다”며 “(선거) 다음날 합당 조치를 해 곧바로 우리 당 소속 의원이 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비례대표 후보만 내는 위성 정당

최근 리얼미터,YTN가 실시한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12월 16일-20일), 민주당 39.9%, 한국당 30.9%, 바른미래당 4.8%, 정의당 6.6%, 민주평화당 1.4%, 우리공화당 1.7%였다. 현재 지역구 의석은 민주당 118석, 한국당 91석, 바른미래당 15석, 정의당 2석, 민주평화당 4석, 민주당 1석, 대안 신당 7석이다. 이중에 한국당 소속으로 최근 당선 무효형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한 5명은 그대로 한국당 의석으로 계산해 범여권의 선거법을 적용해보면 50% 연동률이 적용되는 비례대표 의석 30석은 민주당 13석, 한국당 7석, 정의당 9석을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종전 비례대표 의석 배분 방식(병립형)에 따른 17석은 민주당 8석, 한국당은 7석, 바른미래당은 1석, 정의당은 1석을 얻게 된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민주당은 137석, 한국당은 110석, 바른미래당은 17석, 정의당은 12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의석수에서 민주당은 8석, 정의당은 6석이 늘어 선거법 개정의 최대 수혜자가 된다. 반면, 한국당은 2석이 줄어든다. 그러나, 한국당이 위성정당인 비례 한국당을 만들어 정당 득표를 몰아줄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비례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 의석 30석 중 20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지역구에서 얻을 의석이 단 1석도 없기 때문에 큰 혜택을 보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6석, 정의당은 4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됐고, 바른미래당이 가져갈 의석은 없다. 병립형 비례대표 17석은 민주당 8석, 비례한국당 7석, 바른미래당 1석, 정의당 1석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민주당 130석, 한국당 96석, 비례한국당 27석, 바른미래당 16석, 정의당 7석 등으로 나타났다. 한국당과 비례한국당 의석을 합치면 123석으로, 민주당과의 의석 수 차는 27석에서 7석으로 줄어든다. 반면 정의당은 현재(6석)보다 불과 1석 늘어나는 데 그친다.


여하튼 비례한국당 창당은 보수 성향 지지자들이 지역구에선 한국당 후보를 찍고, 정당 지지율 투표에선 한국당의 위성정당 격인 ‘비례한국당’에 투표하게 해서 의석수를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실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독일에서는 비례대표 선거에만 나서는 이른바 ‘자매정당(Schwesterpartei)’이란 게 있다. 창당이 현실화하면 만만치 않은 정치적 파장이 예상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해괴망측한 망상” “기괴하고 비정상적” “반개혁적 꼼수” 등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위성 정당 논란은 해외에서도 있었다. 알바니아는 2005년 총선에서 군소정당에 힘을 실어준다는 명분 등으로 연동형 비례제를 실시했다. 그런데, 양대 거대 정당인 사회당과 민주당에서 꼼수를 썼다. 민주당은 지역구 100석 가운데 56석, 사회당은 42석을 각각 가져갈 정도로 유력 정당들이었다. 하지만 알바니아 민주당·사회당의 정당 득표율은 각각 7.7%와 8.9%에 그쳤다. ‘비례대표용’ 위성 정당을 4~5개씩 만들어서 표를 휩쓸었다.

과연 비례 한국당 창당은 가능할까? 창당되면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향후 위성정당이 생겼을 때 한국당 지지자들이 어느 정도 이를 정확히 인지하고 실제 투표로 이어질지 여부가 최대 관건이다. 위성정당이 창당되더라도 한국당이 지원할 수 있는 선거운동은 제한적이라 실제 파괴력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88조는 ‘후보자, 선거 사무장 등은 다른 정당이나 선거구가 같거나 일부 겹치는 다른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근거로 범여 정당들은 한국당이 ‘비례한국당’을 위해 선거운동을 하면 사실상 불법이라며 법적 문제까지 제기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확인한 결과 한국당이 비례한국당의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등록을 전면 포기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선거운동도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보수 통합 어떻게 전개될까

이 규정대로 하면, 한국당 황교안 대표 등 주요 간부들은 지역구 후보 등록을 포기하지 않는 한 비례한국당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당의 총선 출마자는 비례한국당을 위해 직접 선거운동을 해선 안 되지만, 출마하지 않는 한국당 인사는 지원 활동을 해도 된다는 취지로도 해석된다. 더구나, 과거 선거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특정 정당 후보가 다른 당이나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요청하는 건 여러 차례 있었다. 가령, 지난 4·3 경남 창원성산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선거 유세 때 “(정의당) 여영국 후보는 정의당 후보임과 동시에 민주당 후보”라며 지지 발언을 했다. 민주당과 정의당 간 후보 단일화가 성사됐기 때문이다. 모정당이 위성정당 선거운동을 해도 처벌 가능한 조항이 없어 창당을 막을 방법은 없다. 문제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모두 위성정당을 만들면 연동형비례제 효과는 사라지게 된다. 영남대 정준표 교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허울을 쓴 ‘비(非)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거법 통과 시 10석 이상의 비례 의석을 기대하는 정의당이 비례한국당 창당 시도에 대해 격렬하게 비판하고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지어 보수진영 소수 정당들도 반발하고 있다. 비례한국당이 창당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하에서 비례 의석을 상당수 한국당 측에 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위성 정당인 비례 한국당이 만들어지면 보수 통합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창당을 준비 중인 ‘새로운 보수당’ 관계자는 “이런 관계에서 어떻게 보수통합을 논할 수 있겠느냐”고 성토했다. 이를 의식해서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26일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에서 “우리가 분열해서는 이 싸움을 이길 수 없다. 선거법 저지, 좌파독재 저지를 위해 머릿속에 있는 다른 생각들은 다 비우자”며 “저 황교안과 함께 여기에서 자유우파의 방어막을 함께 만들자.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자유대한민국이 무너지는데 당의 울타리가 무슨 소용인가. 다 걷어내고 함께 맞서 싸우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황 대표가 보수 통합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선 당위성을 넘어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새로운 보수당의 유승민 의원과의 회동뿐만 아니라 당내 경쟁 상대인 홍준표 전 대표, 오세훈 전 시장과도 만나야 한다. 최근 보수 통합의 구심력을 만들려는 일환으로 친이명박(친이)계 인사들과 비박근혜(비박)계 보수 인사들이 주축이 된 재야 시민단체 ‘국민통합연대’가 지난 23일 창립대회를 열고 출범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김진홍 목사, 최병국 전 의원, 권영빈 전 중앙일보 사장, 이문열 작가 등 5인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재오 국민통합연대 창립준비위원장은 보도 자료를 통해 “국민의 갈등과 분열을 통합하고 정치판을 객토(客土)해 새판을 만든다”며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민통합연대를 창립한다”고 취지를 전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국민통합연대가 오히려 통합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홍준표 전 대표는 27일 “국민통합연대는 절대 신당으로 가는 조직이 아니다”라며 “보수우파 통합이 첫째 목표이고, 두번째로 친북좌파 문재인 집단을 뺀 국민들이 모인 시민단체라고 저는 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약 정당 조직이 되어 국민 분열을 지향 한다면 우선 저부터 탈퇴를 하겠다”고 했다. 그는 “거악에 맞서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을 것으로 안다”고 전제한 뒤 “위기 탈출용 보수·우파 통합이 아닌 나를 내려놓는 진정성 있는 보수·우파 통합 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동형 선거법 개정과 이에 따른 한국당의 위성 정당 창당이 향후 보수 통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서 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

文 대통령 지지도 40%대 고착

2019년 기해년 한 해를 보내면서 현 정부에 대한 평가를 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가 40%대에서 고착화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보듯이, 올해 전반기엔 문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 한다’는 긍정 평가와 ‘잘 못한다’는 부정 평가가 40%대에서 거의 비슷했다. 그런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높았다. 조국 사태로 현 정권의 도덕성이 무너진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이런 추세는 작년 1년 내내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높았던 것과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여야가 12월에 들어서면서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 개정을 둘러싸고 극한 대립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오히려 긍정이 부정을 앞섰다. 문 대통령이 정치권의 극한 대립으로 오히려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현상은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 2대 악법 처리를 막겠다고 황교안 대표가 8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고, 14일간의 국회 농성을 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규탄대회를 연 한국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한국당이 향후 ‘전략적 대전환’을 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 정부 핵심 정책들 성과 못내

둘째, 현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 정책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한국갤럽이 문재인 정부 집권 2년 6개월 시점(11월 12~14일)에 실시한 분야별 정책 평가 결과, 대북 정책에 대한 긍정률은 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작년 5월 83%에 달했지만, 이후 하락해 올해 8월과 11월에는 38%에 머물러 남북 관계에 대한 기대와 실망의 간극을 반영했다. 공직자 인사는 작년 8월 긍·부정 첫 역전 후 부정률이 지속적으로 늘어 ‘잘하고 있다’는 26%에 불과하고 ‘잘못한다’는 부정 평가는 55%에 달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평가가 부진했던 경제 분야에서의 긍정률은 올해 네 차례 조사에서 모두 20%대 중반, 부정률은 60% 내외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체감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문 대통령은 지난 12월 19일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우리 경제는 꾸준히 정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찐 된 일인가? 실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에선 “한국 경제가 궤도를 상당히 이탈해 있다는 절박감이 담겨 있다”고 했다. 1%대 경제 성장률, 13개월째 수출 감소세, 40대와 제조업 고용률 추락 등 경제가 침체된 상황을 두고 ‘궤도 이탈’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떠한가? 문 대통령은 지난달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은 안정됐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군사 작전을 펼치듯 규제 일변도의 18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냉정하다. 한국리서치·KBS의 여론조사(2019년 12월 5일~6일) 결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민은 27%에 불과했다. 여하튼 경제 현실을 놓고 대통령과 실무 부처가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헌법정신과 법 절차 지켜지지 않아

셋째, 헌법정신과 법 절차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시세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서는 대출을 전면 금지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12·16 부동산 대책은 헌법적 가치인 시장경제의 기본정신을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충분한 상환 능력이 있는데 고가 주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산 가치를 완전히 무시하고, 공급을 늘리는 대책 없이 수요만 잡겠다는 것은 반시장적이고 기본권 침해 소지가 크다. 더구나, 경제부총리 말 한마디로 갑자기 대출을 금지한다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촉발된 교육 공정성 강화에 대한 대통령 지시에 교육부는 지난 11월 7일 2025년부터 자사고와 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관련된 사립학교 법인들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끝내 폐지를 강행할 경우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을 국회 논의도, 사회적 합의도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시행령을 하나 바꿔 서둘러 추진한다는 것은 ‘행정 독재’나 다름없다. 국가의 교육정책은 정치적 중립성과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연구가 이뤄진 다음에 진행돼야 한다. 현 정부는 국가교육위원회·국가교육회의가 이런 뜻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검찰이 직권남용 혐의가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청와대는 정무적 판단과 결정을 일일이 검찰의 허락을 받고 일하는 기관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 검찰이 조 전 장관에게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에 대해 청와대가 사실상 검찰을 압박하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명백한 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여하튼 정부는 유독 올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드 레일과도 같은 ‘법치와 제도적 자제’를 무시한 채 목적을 위해 수단이나 절차를 가볍게 여기며 중요 현안을 힘으로 밀어부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공정과 자유의 촛불 민주주의로 탄생했다는 현 정부의 정체성은 무너졌다. 진보 정치학계의 대표적 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은 한국 진보의 도덕적, 정신적 파탄”이라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비리 의혹 집중 제기돼

넷째, 역대 정부에선 집권 말기에 부상되는 청와대 비리 의혹이 집권 2년이 끝나는 시점부터 집중 제기되고 있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청와대의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국장 비리 감찰 무마 의혹과 작년 울산시장 선거 개입과 후보 매수 의혹이 터져 나왔다. 이런 의혹들의 중심에 박근혜 정부 시절 최순실과 같은 비선 실세가 아니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현실 실세가 자립잡고 있다. 27일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사건과 관련,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영장심사를 맡은 권덕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직권을 남용해 감찰을 중단한 결과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후퇴시켰다”며 “범죄의 혐의가 소명됐다”고 밝혔다. 법원이 언론에 배포한 기각 사유에는 ‘이 사건 범행은 그 죄질이 좋지 않다’고 요약했다. 그럼에도 “증거를 인멸할 염려와 도망할 염려가 없다” “구속하여야 할 정도로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이 정권의 도덕성에는 큰 상처를 주었다. 한국 리서치의 12월 정기 여론조사 결과, 국민 10명중 3명 정도(36%)만이 우리나라 국정방향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라는 뜻의 ‘공명지조(共命之鳥)’가 선정됐다. 어느 한쪽이 없어져도 자기만 살 것처럼 생각되지만 동시에 죽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극심한 좌우 분열을 겪으면서 공멸로 가는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임기 중반을 넘긴 정부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졌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공존의 정치로 거듭나야 한다. 헌법 정신과 법 절차를 준수하고 천하의 인재를 영입 민생 경제를 살리고 정직하게 국정에 임하고 잃어버린 도덕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고 현재 처한 국정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내년 총선이후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 도 있다.

●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