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당전원회의 보도문으로 신년사 대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 이래 처음으로 ‘육성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 노동신문은 1일 1면에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 결과 소식을 실었다. 김 위원장이 2013년 국무위원회 최고 권력자 지위에 오른 후 노동신문에 신년사가 게재되지 않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올해는 4일간 이어진 마라톤 전원회의 결산 내용이 신년사를 대체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곧 새로운 전략무기를 보게 될 것”이라고 미국을 압박하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모양새다.

작년에는 육성신년사가 당일 오전 9시에 있었지만 올해엔 신년사 예고 방송도 없었다. 보통 북한의 신년사는 새해 과업을 분야별로 제시한다. 대내정책을 분야별로 늘어놓고 대남메시지, 대외정책 등이 순서대로 제시되는 형식이다. 신년사에 나온 목표와 과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지침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형식은 개인 서재에서 1인용 소파에 앉아 신년사를 낭독하는 파격적인 형식을 보였다. 보통 여러 개의 마이크가 놓인 단상에서 신년사를 진행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였다.

특히 올해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비핵화 문제가 진전하지 못하고 갈등이 고조되면서 김 위원장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더 주목받았었다. 하지만 1년간 절대적 지침으로 여겨지는 신년사가 생략되고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 결과가 신년사를 대신했다. 위기 국면에서 신년사를 건너뛴 김일성 방식을 따라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민복에 뿔테 안경을 쓰고 전원회의 나흘 내내 연단에 선 김정은의 모습도 김일성을 따라했다는 근거다. 지난 1987년 김일성 주석이 신년사를 1986년 12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로 대체했었고, 1966~1968년에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사설로 신년사를 대신한 적이 있다.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할 것”

북한은 풍계리 핵시험장 폐기와 핵·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중단 등과 같은 신뢰 구축을 위한 선제적 중대조치들이 있었음에도 한미군사훈련, 첨단무기 도입, 추가제재 등으로 응답했다며 한·미를 비난했다. 노동신문은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제사회는 곧 북한이 보유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는 결코 파렴치한 미국이 조미대화를 불순한 목적실현에 악용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적대적 행위와 핵위협 공갈이 증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가시적 경제성과와 복락만을 보고 미래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다”며 “곧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지도했다고 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

노동신문은 “우리 제도를 압살하려는 야망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세계 앞에 증명해보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지켜주는 대방(상대방)도 없는 공약에 우리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매여 있을 근거가 없어졌다”며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사실상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엄(유예) 파기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정성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은 “비록 김정은이 미국과의 ‘협상 중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적으로는 비핵화 협상 무용론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과의 협상 중단을 선언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우리는 우리 국가의 안전과 존엄 그리고 미래의 안전을 그 무엇과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임을 더 굳게 결심하였다”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의 전략무기를 제재완화나 다른 어떠한 조치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군사정치적 위협이 끝나지 않고 있다며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무용론’을 주장했다.

정면돌파노선 선택한 北

북한에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당 대회 다음으로 중요한 정치행사다. 이 회의에서 경제 핵 병진노선, 경제총력집중노선과 같은 새로운 노선을 발표하거나 대규모 인사교체를 발표하곤 했다. 1월 1일자 노동신문에 나온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 관한 보도’는 지난 2019년 신년사보다 1.5배나 긴 내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당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현 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정면돌파전을 벌릴 데 대한 혁명적 노선”을 천명했다. 일명 정면돌파노선이다. 이 보도에서 북한은 ‘정면돌파’는 23회, ‘자력부흥’은 5회, ‘자력번영’은 4회 언급했다. 핵심 키워드는 ‘정면돌파’다. 정성장 위원은 “북한의 새로운 정면돌파노선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 북미 교착상태와 대북 제재 장기화를 기정사실화하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및 자강력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미국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조미관계의 결산을 주저하면 할수록 예측할 수 없이 강대해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으며 더욱더 막다른 처지에 빠져들게 되어 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대미 정책 전환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당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시간은 북한 편’이라는 시각을 드러냈다. 정 위원은 “북한이 향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며 “향후 북한이 신형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하거나 다탄두 ICBM 시험발사 등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