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영입, 이미지 쇄신에는 도움...선거구도·정권심판·대형이슈에는 무력

인재 영입도 선거 전략이다. 선거철이면 여야 모두 인물 경쟁에 나선다. 당의 약점을 보완하고 이미지를 쇄신하기에는 인재 영입만한 것이 없다. 민주화 이후 역대 총선을 살펴보면 여야는 경쟁력 있는 인사를 등용하기 위해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인재 영입이 선거 승리를 담보하진 않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과감한 인재 영입을 시도했지만 지역주의 앞에서 선거 패배를 맛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정권 심판론이 인재 영입 이슈를 압도했다. 반면 16대 총선에선 강한 리더십과 대규모 물갈이가 한나라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론 ‘이회창 키즈’, ‘박근혜 키즈’ 등 소규모 인재 영입만 있었다. 20대 총선 땐 더불어민주당에서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의 지휘 아래 대규모 인재 영입이 있었다.

YS의 승부수...보수 분열 극복 못해
1996년 15대 총선 무렵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재 영입은 파격이었다. 하지만 보수 분열과 지역주의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중반에 이른바 ‘김현철 사건’으로 조기 레임덕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창당으로 보수 진영은 분열된 상태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미지 쇄신을 위해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새로운 인물을 영입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김문수, 이재오 등 재야 운동권 인사까지 발탁하는 등 외연을 확장하는 파격 인사였다”고 평가했다. 강상호 국민대 교수도 “정치력은 있지만 빛을 못 본 사람들을 스카우트했던 영입이었다”고 말했다.


YS는 유명인사를 등용해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했던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이때 정치권에 입성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영입한 사람도 YS였다. 이 전 총재는 당시 총리 시절 YS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YS의 인재 영입은 수도권 표심 잡기에는 성공했지만 전체 과반 득표에는 실패했다. 김현진 서울대 정치학 박사는 “신한국당은 수도권, 영남 지역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충청권을 자민련에게 내줘야 했다”며 “지역주의 정치에 변화가 없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정권 심판 앞에 무력한 인재 영입
199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1차 인재 영입은 ‘세대 교체’로 요약된다. 1992년 정계 은퇴 선언을 뒤집고 3년 만에 정치권에 돌아온 김 전 대통령은 새정치국민회의(이후 새천년민주당)를 창당했다. 김 전 대통령에겐 ‘고령’이라는 약점도 있었다. 대권 도전의 횟수도 어느새 네 번째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젊고 새로운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다. 강 교수는 “사회적으로 3김에 대한 염증이 만연해 있어 세대교체도 시급했던 때”라며 “DJ는 젊은 피를 수혈에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때 영입된 인사로는 정세균 국무총리, 추미애 법무부 장관,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등이 있다. 당시 정 총리는 쌍용그룹 상무이사였고 추 장관은 판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정 대표는 MBC 간판 앵커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다. 강 교수는 “당시엔 사회 각 분야 엘리트들에게 성공의 징표로서 마치 훈장을 주듯이 공천을 줬다”며 “정당 정치가 뿌리 내리지 못한 결과 잘못된 관행이 당연시 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DJ는 대통령 임기 중에도 새로운 인물 영입에 힘썼다. 임기 중반에 치러질 16대 총선이 낙관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국회의원 선거는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가진다”며 “당시 김대중 정부는 옷 로비 의혹 사건으로 어려운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때 DJ는 우상호 의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386 운동권 인사’들을 영입했다.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 133석, 새천년민주당 115석으로, 인재 영입 효과는 미미했다. 김 박사는 “정권 심판 이슈가 신인에 대한 기대치를 잠식한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한나라당의 공천학살
같은 시기 한나라당은 ‘공천 학살’이라 불릴 정도로 대규모 물갈이를 실행했다. DJ의 인재영입에 대한 맞불 성격이기도 했지만 점진적으로 낮아지는 지지도에 대한 대응이었다. 강 교수는 “DJ의 인재 영입이 일부분에 그쳤다면 한나라당은 당 차원에서 전체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회창 총재와 윤여준 여의도연구소장은 원로 정치인들을 대거 공천에서 배제하고 젊은 전문가 그룹과 학생 운동권 출신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당의 대표적 중진이었던 김윤환 전 의원과 이기택 전 민주당 대표를 포함해 총 43명의 현역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대신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정병국 새로운보수당 의원 등이 이때 정계에 입문했다. 강 교수는 “리더십을 발휘할 때 중요한 것은 타이밍과 과감함”이라며 한나라당 개혁 공천을 평가했다.


2002년 대선 기간에는 ‘이회창 키즈’가 이슈를 선점했다. 당시 이회창 총재는 여성 특보에 나경원 판사, 정책 특보에 조윤선 변호사, 선대위 대변인에 이혜훈 한국개발연구원을 임명했다. 각 분야 젊은 전문가들을 영입해 외연을 확장하고 이미지를 쇄신하겠다는 의도였다. 이들은 17대, 18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17~19대...미미했던 인재영입
17대 총선에선 여야 모두 인재를 영입할 겨를이 없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탄핵 정국 앞에 무기력했고, 한나라당은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심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했다. 김 박사는 “대통령 탄핵과 불법정치자금 수수라는 대형 이슈가 혼재된 상황에서 인재 영입이 이슈가 되기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강 교수 역시 “당시 여야는 탄핵, 차떼기 등으로 대립각이 극에 달했다”며 “여야의 구도 싸움이 치열할 때는 인재 영입이 있더라도 그 효과는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인재 영입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강 교수는 “18대 총선은 2007년 대선 바로 다음 해에 치러졌다. 이럴 경우 대선 동반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며 “집권 여당은 승리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굳이 인재 영입에 나설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대 총선에선 이른바 ‘박근혜 키즈’가 이슈를 선점했다. 이준석 새로운보수당 젊은정당비전위원장과 손수조 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중앙미래세대위원장은 새누리당에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심어줬다. 이자스민 전 의원도 이때 영입된 인사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세 사람은 가벼운 인재 영입이었을 뿐 득표율 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적었다”며 “스윙보터의 표심을 잡을 만한 인재 영입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깜짝인사로 점철된 20대 총선
20대 총선은 더불어민주당의 인재 영입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던 선거였다. 강상호 교수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당권싸움으로 이미지가 실추된 상황에서 선거 패배를 예견하고 있었다”며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전권을 몰아주는 파격을 선보임으로써 김 위원장이 대규모 인재영입을 하는 등 실력 행사를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재 영입의 성격이 바뀐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19대 총선까지 영입된 인사는 대부분 현역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20대 총선 때 발탁된 인사들 중 일부는 지난해부터 4·15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정계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형준 교수는 “정치와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람들, 최소한의 정치 학습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을 영입해서 반짝 효과를 누렸다”며 “‘보여주기식 영입’은 정치를 상품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인재 영입보다 인재 육성
21대 총선을 앞두고 영입된 인사들은 ‘새로움’, ‘도전’, ‘감성주의’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각 당은 역경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거나 자신의 영역에서 전문가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을 인재로 모셔왔다. 김 박사는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되면서 ‘청년’이란 상징성을 가진 인물을 영입하고 있는 점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입 인사에 대한 기대감은 높지 않아 보인다. 김 교수는 “정치 학습이 없는 이들이 국회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의정활동을 제대로 할지 확신이 없다”며 “추후 영입하는 인재는 감성적이기보다 정치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도 “정치적 소양이 없는 인사들은 정치공학적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재 영입에 치중하기보다는 당내에 인재 육성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 교수는 “핀란드 총리가 34세인 것은 10대부터 정치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각 당은 인재 영입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청년 정치인 육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모종린 연세대 교수도 2002년에 발표한 연구자료에서 “미래의 정치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과 더불어서 미래 정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