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지배했던 주류 ‘보수 산업화 세력’이 ‘진보 민주화 세력’으로 교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시민당 이종걸 상임선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이해찬 대표, 더불어시민당 우희종 공동상임선대위원장.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집권 중반 들어서 치러진 ‘중간평가’ 성격의 총선에서 민주당이 전례 없는 압승을 했다. 민주당과 위성정당인 더불어 시민당이 국회 전체의석(300석)의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지역구(253석)에서 163석(64.4%), 더불어 시민당은 비례대표(47석)에서 33.3%로 17석을 획득했다.

이해찬 대표는 16일 국회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서 “선거 결과를 보면 선거 승리 기쁨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지금 민주당은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라고 오히려 고개를 숙였다. “국정을 맡은 무거운 책임감을 먼저 가져야 한다. 더욱 겸손한 자세로 민심을 살피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각별하게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대표가 180석 성적표 받아 들고도 고개를 숙인 것은 선거 승리에 도취한 교만한 정당은 반드시 응징된다는 것을 오랜 정치 경험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미래통합당은 지역구에서 84석, 미래한국당은 비례대표에서 33.8%로 19석을 얻어 총 103석을 획득하면서 그야말로 대참패를 당했다. 황교안 대표는 투표 당일 오후 11시 40분쯤 미래통합당 상황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나라가 잘못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며 “모두 대표인 제 불찰이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다”고 밝혔다. “총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모든 당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소수 정당들도 몰락했다. 정의당은 지역구에서 심상정 대표만 나 홀로 당선됐고, 비례대표에서 9.67%로 5석을 차지해 총 6석을 얻는데 그쳤다.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원내교섭단체(20석) 지위 확보를 꿈꿨지만 일장춘몽이 됐다. 심 대표는 16일 정의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고단한 정의당의 길을 함께 개척해온 우리 후보들을 더 많이 당선시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은 국민의 당은 비례대표에서 6.79% 득표로 3석만을 얻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26.7%의 정당 득표로 민주당(25.5%)보다 더 많이 득표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민생당도 지역구와 비례구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하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정동영, 천정배, 박지원 등 현역의원 11명 모두 낙선했다. 한편, 통합당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 홍준표(대구), 김태호(경남), 윤상현(인천), 권성동(강원)은 승리했다. 전북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용호 후보도 당선됐다. 총선 결과를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더 충격적이다. 수도권(121석)에서 민주당은 103석(85.1%)을 차지했다. 서울 41석(87.2%), 인천 11석(84.6%), 경기 51석(96.4%)이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수도권(122석)에서 82석(67.2%)을 차지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승리다. 미래통합당은 수도권에서 고작 16석(13.2%)에 얻었다. 서울 8석, 인천 1석, 경기 7석이다. 지난 2016년 총선당시 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이 지역에서 35석(28.7%)을 얻은 것과 비교하면 너무 초라했다.


민주당 수도권서 103석 85%

민주당의 수도권 대승 이외에 이번 총선의 큰 특징은 영^호남 지역주의의 부활이다. 민주당은 호남(28석)에서 27석(96.4%)을 얻어 거의 싹쓸이를 했다. 지난 2016년 당시 국민의 당이 이 지역에서 얻은 23석을 크게 능가하는 것이다. 한편, 통합당은 대구(12석)와 경북(13석)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홍준표를 제외한 24석을 석권했다. 2016년엔 민주당이 대구서 2석(김부겸, 홍희락)을 얻었지만 이번에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통합당은 부산(18석) 15석, 울산(6석) 5석, 경남(16석) 12석 등 총 32석을 얻었다. 2016년 총선에서 얻은 27석보다 5석 더 많았다. 반면, 민주당은 부산 3석, 울산 1석, 경남 3석 등 총 7석만을 얻었다. 이번 선거에서 특이 사항은 충청권 총 28석 중 민주당이 20석을 석권한 것이다. 지난 2016년 총선(27석)에선 13석밖에 얻지 못한 것과 비교하며 큰 변화다. 한편 통합당은 대전에선 한 석도 얻지 못했고 충북(8석) 3석, 충남(11석) 5석을 얻었다. 2016년 총선에서는 14석을 얻은 것과 비교하면 큰 손실이다. 2016년 총선에서 통합당은 강원(8석)에서 7석을 얻었지만 이번엔 4석을 얻는 데 그쳤다. 민주당은 1석에서 3석으로 늘었다. 이번 총선에서 3% 이내에서 승부가 난 곳은 총 22곳이었다. 그 중 민주당 11곳, 통합당 7곳, 무소속 4곳이었다.

이런 ‘슈퍼여당’이 탄생 배경에는 국민들이 코로나 국난 앞에 ‘견제’보다 ‘안정’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런 조짐은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고공행진하면서 예상되었다. 한국갤럽의 2월 4주째 문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42%, 부정 평가는 51%였다. 그런데 3월 2주째 긍정 49%, 부정 45%로 골든크로스가 발생했다. 선거 1주일 전인 4월 둘째 주(7~8일) 조사에서 문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해 긍정 평가(57%)가 부정 평가(35%)를 압도했다. 긍정 평가자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결과, 가장 많은 59%가 ‘코로나19’ 대처’라고 응답했다. 6주 만에 코로나 민심이 완전히 변했다. 여기엔 코로나19가 팬데믹(감염병 세계유행) 단계에 이르자 오히려 한국 정부가 ‘방역 모범 국가’로 평가받으면서 반전이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4월 둘째 주 조사에서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51%)는 안정론이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40%)는 견제론보다 높게 나타났다. 분명, 코로나 사태는 정부심판론이 먹혀 들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 것 이외에 유권자 후보 선택 기준도 바꾸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총선 직전에 실시한 제2차 유권자 의식조사(4월 4~5일)에서 후보를 선택하는데 고려하는 사항으로 ‘소속 정당’이 31.1%로 가장 높았다. 4넌 전과 비교해 12.2%p 높았다. 코로나19 사태로 후보와 공약 등 기존 선거의 관심사들이 모두 묻혀버리고 후보자와 유권자간의 접촉이 최대한 억제되는 ‘비대면 선거’가 전개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선 갤럽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44%로 통합당(23%)을 압도하고 있다. 당연히 집권당에게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 졌다.

또한, 야당 대권 후보들의 지지도가 여권 대권 후보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것도 정권 심판론이 작동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갤럽 조사에서 “다음 번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는지 물은 결과, 이낙연 전 국무총리(26%), 이재명 경기 도지사(11%),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8%),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5%),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2%), 오세훈 전 서울시장, 윤석열 검찰총장(이상 1%) 순으로 나타났다. 황 대표의 지지도가 이 전 총리의 3분의 1 수준이고, 이재명 지사보다 낮다는 것은 선거에서 통합당에겐 치명적이었다. 여기에 선거 막판에 터진 통합당 막말 파문은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김대호 통합당 후보(서울 관악갑)는 3040 세대와 노인 폄하 발언으로 제명되었다. 그는 6일 서울 선대위 회의에서 “60~70대에 끼어 있는 50대들의 문제의식에는 논리가 있다. 그런데 30 중반, 40대는 논리가 아니다. 거대한 무지와 착각”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다음날인 7일에는 관악갑 총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장애인들은 다양하다. 1급, 2급, 3급...나이가 들면 다 장애인이 된다”는 발언으로 ‘노인 비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차명진 통합당 후보(경기 부천병)는 ‘세월호 텐트 속 문란한 행위’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지난 6일 OBS 주최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XXX사건이라고 아시나”라며 “그야말로 세월호 자원봉사자와 세월호 유가족이 텐트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문란한 행위를 했다는 기사를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해 논란을 촉발했다. 전국 곳곳에서 예측불허의 접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런 막말 논란은 통합당 입장에서 악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차 후보의 막말은 총 59곳에서 승부가 펼쳐지는 경기 지역에서 직격탄을 맞았다는 말이 나왔다. 중도층과 부동층의 막판 민심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론이 기능하다.

제21대 총선에서 패배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1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 마련된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개표상황실에서 사퇴를 밝히고 있다. 연합

진보 민주화 세력으로 주류 교체

지난 2012년 총선때 야권 단일 후보로 서울 노원갑 지역에 출마한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가 과거 한 인터넷 방송에서 막말과 성희롱성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그는 2004년 인터넷방송 라디오21의 ‘김구라·한이의 플러스18’ 코너에 출연해 ‘테러 대책’이라며 “미국에 대해서 테러를 하는 거예요. 유영철을 풀어가지고 부시, 럼스펠드, 라이스는 아예 XX(성폭행)을 해가지고 죽이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은 패배했는데 김용민의 막말이 수도권 선거를 망쳤다는 분석이 많았다. 민주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에서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포함해 네 차례 연속 승리한 최초의 정당이 됐다. 180석의 ‘슈퍼 여당’이 된 민주당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국회까지 독차지하면서 개헌 빼고는 다 할 수 있게 됐다. 모든 법안·예산·정책을 정부,여당 마음대로 추진할 수 있고, 단독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가 가능해 국회선진화법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번 총선 결과가 주는 함의는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주류 세력인 보수 산업화 세력이 진보 민주화세력으로 교체되었다. 기존의 ‘보수ㆍ진보 양당 체제’가 무너지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진보 좌파 1.5 정당 체제’가 구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회에서 민주당이 차지하는 의석은 1이고, 그 이외 정당들은 모두 합쳐도 0.5 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다. 일본 자민당이 1955년 창당부터 50년간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 이런 정당체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2018년 8월 5일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국 순회 연설회에서 “2020년 압도적 총선 승리와 2022년 재집권을 통해 앞으로 20~30년은 집권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힌 적이 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서 벗어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용어는 미국의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기업의 M&A 경쟁에서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에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에 많이 사용된다. 특정 정당이 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결과적으로 패배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을 빗대어 사용될 수 있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공천 파동에도 불구하고 153석을 획득했다.

여기에 ’친박 연대‘ 14석과 ’친박 무소속 연대‘ 13명을 더하면 범여 의석은 180석을 차지하게 됐다. 그런데 총선에서 승리한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현재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과 미래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와 내전이 시작됐다. 필자가 2010년 10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소속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권교체라는 응답이 무려 33.6%나 됐다. 박 전 대표는 전략적으로 국민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시종일관 ‘여당 속의 야당’이라는 이미지 마케팅을 구사했다. 현직 대통령과의 이런 차별화 전략이 2012년 대선에서 인기 없는 여당인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 51.6%의 득표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안철수 국민의 당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승리하면 세 가지가 일어날 것으로 예견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끌어내리기 위한 온갖 공작과 술수를 다 동원할 것이고, 울산시장 부정선거, 라임사태, 신라젠 사태 등 대형 금융사건과 버닝 썬 사건의 등 정권의 4대 권력형 비리의혹이 묻힐 가능성이 높으며, “소득주도성장, 기계적인 주52시간, 탈원전 등 우리 경제를 망가뜨리는 망국적인 경제정책의 오류는 계속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국민의당 대선 후보였던 안 대표는 대선 당시인 2017년 5월 1일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국민이 반으로 나뉘어서 분열되고 사생결단하면서 5년 내내 싸울 것”,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이 돼서 계파 세력은 끼리끼리 나눠먹을 것”,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개념 없이 옛날 사고방식 국정운영으로 대한민국을 가장 뒤처지는 나라로 만들 것” 등을 전망한 바 있다. 그의 이런 예견은 거의 적중했다.

이번 총선에서 절대 반지를 끼는 압승을 한 민주당은 역설적으로 집권 세력 내에서 갈등과 대립 전선이 만들어 질 수 있다. 무엇보다 미래 권력과 현재 권력과의 힘겨루기가 시작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대거 당선(18명)되면서 민주당의 친문 색채가 강화 될 것으로 보인다. 수석비서관급 출신은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 이용선 전 시민사회수석,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 한병도 전 정무수석 등 4명이다. 비서관급으로는 문재인 대통령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전 국정기획상황실장, 고민정 전 대변인 등이다. 조국, 임종석 등과 같은 현재 권력인 대통령 세력(친문)과 현재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며 미니 대선인 종로에서 낙승한 이낙연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미래 권력(친이)간에 대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첨예화 될 수 있다. 이런 갈등은 문재인 정부 3년 6개월이 끝나는 시점인 올 연말부터 본격화 될 개연성이 있다.

미래 권력-현재 권력의 힘겨루기

지난 1996년 4월 총선 직전 김영삼(YS) 대통령이 총재로 있던 집권당인 신한국당은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선거결과, 신한국당은 139석을 획득 해 원내 제1당 지위는 지키는데 성공했지만 과반수는 미달했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당계 지지가 강한 서울(47석)에서 27석(57.4%) 차지해서 집권여당이 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승리했다. 그 이후 현재 권력인 YS와 미래권력인 이회창 세력간에 갈등이 불붙었다. 결과적으로 YS와 이회창간의 갈등 심화로 1997년 대선에서 정권이 야당으로 교체됐다. 2012년 총선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진두지휘한 새누리당은 과반 승리(152석)를 일궈냈다. 하지만 현 대통령 세력인 친이계와 미래 권력인 친박 세력간의 내전은 심화되었다. 이런 갈등이 민주당에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만약, 친문 세력이 이낙연 전 총리를 대권 후보로 추대하면 갈등은 최소화 될 수 있다. 그러나 범친문으로 거론되는 정세균 총리와 민주당의 험지로 꼽히는 경남 양산을에서 재선에 성공한 김두관 의원 역시 대권 행보를 구상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여기에 지난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주요 격전지 지원 유세를 통해 이번 총선 승리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향후 대권 경쟁에 가세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집권 세력의 또 다른 갈등 가능성은 친문재인^친조국 세력과 전통적인 진보 진영 세력간의 대립이다. 민주당 위성정당 창당 과정에서 이런 갈등은 시작되었다. 원로 진보 인사들이 주축이 된 정치개혁연합은 당초 더불어민주당이 참여하는 범여권 비례연합정당을 추진했고, 녹색당·미래당·민중당 등이 참여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과 정치개혁연합은 의석 수 배분 등을 놓고 갈등을 빚다 협상이 불발됐다. 민주당은 정치개혁연합 대신에 더불어 시민당과 연대했다. 한마디로 정치개혁연합이 민주당에게 팽 당한 것이다. 지난 3월 24일 정치개혁연합은 ”활동을 중단하고 해산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들 원로 진보 인사들과 친문^친조국 세력 간의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

최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강준만 전북대 교수, 좌파경제학자 우석훈 등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이던 진보 성향 지식인들이 지난해 조국 사태를 계기로 정부의 독선과 오만, 무능과 위선을 향한 비판의 강도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강준만 교수는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라는 신간에서 “문재인은 최소한의 상(商)도덕을 지키지 않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고 약속한 취임사와 달리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 비판의 기저에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인지도가 높은 이들 진보 성향 지식인들의 친문 정부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진보 진영의 분열과 갈등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이번 총선은 2022년 대선 전초전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압승한 민주당은 오는 202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계파 간 치열한 물밑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차기 당권 경쟁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당내 주류 세력인 친문과 비문 중진들이 당권을 놓고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해찬 대표의 임기는 오는 8월 24일로 끝난다. 그 전에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 미니 대선전에서 승리한 이낙연 전 총리의 거취가 주목된다. 이 전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공동 선대위원장 자격으로 전국 격전지를 누비며 잠재적 ‘우군’도 확보했다. 이낙연 대망론에 힘입어 마음만 먹으면 당권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당 대표는 대권 후보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 대표는 선거일 1년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당권·대권 분리 규정이다. 이로 인해 이 전 총리가 당 대표에 오르더라도 2021년 3월 전에는 사퇴해야 한다. 따라서 본인이 직접 당권에 도전하기 보다는 친문계 당권 주자와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도 있다.

참패 미래 통합당 앞날 순탄치 않아

전대미문의 기록적인 참패를 당한 미래 통합당의 앞날은 순탄치 않다. 통합당 당헌 당규상 당 대표 유고 시에는 원내대표가 당 대표 대행을 맡게 되어 있다. 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2016년 총선 패배 직후 김무성 대표가 사퇴하자 원유철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을 맡아 당선인 신분이던 정진석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한 바 있다. 이후 정 원내대표 주도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8월에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선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당 재건 방식을 이번엔 적용하기가 어렵게 됐다. 심재철 원내대표를 포함한 지도부가 무더기로 낙선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 지도부의 일괄 사퇴와 함께 당 내외의 신망 있는 인사를 내세워 곧바로 비대위로 전환하거나, 유일하게 당선된 조경태 최고위원이 당 대표 대행을 맡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기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박형준 전 공동선대위원장은 “지금 당장 전당대회를 하는 것은 권력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혁신을 해놓은 다음 전당대회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라면서 김 위원장이 적임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요청이 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것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아직’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여지를 남겼다.

향후 지도부 구성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된 홍준표·김태호·윤상현·권성동의 복당 여부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당선자는 “16일 미래통합당 총선 참패 원인에 대해 “정치 초보자의 대권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황교안 대표가) 공천 과정을 경쟁자를 배제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기회로 악용했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 복당 계획에 대해 “지금 미래통합당은 개헌 저지도 힘든 상황이어서 무소속 당선자들에 대한 조기 복당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명, 절대 권력은 절대 분열될 수 있다.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민주당이 이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긴 것이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압승은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간 성과에 대해 심판받았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위험하다. 민주당이 승리에 도취해 ‘협치와 포용’보다 극단과 배제의 정치에 몰입해 갈등과 분열을 가져 오면 그것이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 그동안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보여준 행태를 봐서 정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위험이 크다. 승리한 집권세력이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무시하고 법에 규정된(또는 금지되지 않은) 권한을 최대한 휘두르면서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대 혼돈에 빠져들 수도 있다.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야당은 사사건건 극단적으로 대결할 것이다. 민주당은 이제부터 통합과 공존의 정치에 앞장서야 미래가 있다. 미래통합당의 경우, 혁신적인 변화 없이는 위기를 극복 할 수 없다. ‘선 비대위 구성 후 당 대표 선출전당대회 방식’으론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미래통합당을 해체하는 수준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새로 시작해 크게 변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생존 방식이다. 또한 과거와 같이 투쟁을 통한 정권 교체 방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이런 정치 실험은 이번 총선에서 참패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

●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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