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없애는 게 내 소명”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광주 서구 을 당선인/양향자 캠프 제공
21대 총선에서 승리한 양향자 당선인(광주 서구을)은 ‘고졸 출신 삼성 임원’ 신화로 유명하다. 여자상업고등학교 출신이었던 양 당선인은 삼성전자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상무이사라는 임원직에까지 올랐다. 이후 그는 약 30년간 몸 담았던 삼성전자에 사표를 냈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질문이 결정적이었다. 양 당선인을 찾아간 문 대표는 대뜸 ‘꿈’이 뭐냐고 물었다. 양 당선인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고 한다. 그는 “삼성 이후의 삶을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며 “정치 영역에서 쓸모가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해 양 당선인은 민주당 간판을 달고 20대 총선에 도전했다.

지난달 29일 양 당선인은 전화 인터뷰에서 “경제 위기는 기업과 국가가 하나가 돼야 극복할 수 있다”며 “실물경제와 현장 분위기를 잘 아는 경제인으로서 기업과 국가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정치에 대해서는 “이념간 갈등, 세대간 갈등, 계층간 갈등 등 사회에는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정치는 여러 갈등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긴급재난지원금 이슈와 관련해서는 “재난 구제는 속도가 생명”이라며 “지원금이 타이밍에 맞게 지급돼야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대기업 출신과 민주당의 경제 철학은 다르지 않나.
“삶의 궤적에서 보이는 노동의 가치관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노동자를 규정할 때는 격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는 단계에 따라 조금씩 성장한다. 부속품 같았던 내 출발이 하루아침에 글로벌 임원이 된 건 아니었다. 나는 하루하루 성장하며 품격을 달리했다.

물론 나는 친노동에 가깝다. 임원이었던 시기를 제외하면 28년 동안 노동자였다. 그런데 진보든 보수든 친노동이 아닌 곳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노동에 대한 가치와 철학은 똑같다고 본다.”

-보수와 진보는 어떤 차이가 있나.
“열 자식이 있는데 한두 명만 뛰어날 경우를 가정해보자. 그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도록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는 부모도 있다. 이와 달리 나머지 자식들의 공평한 행복을 중요시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보수와 진보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둘 다 맞다고 본다. 정치는 한정된 예산의 합리적 분배다. 예산의 파이를 키우면서 동시에 예산을 합리적으로 분배해야 한다. 두 수레바퀴가 함께 잘 굴러가야 하는 것이다.”

-삼성을 그만두고 정계에 입문했다.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의 질문이 계기가 됐다. 내가 정치영역에서 쓸모가 있는지, 내가 왜 정치를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했다. 난 성별의 유리천장, 학벌의 유리천장 등을 모두 겪었다. 내 후배들이 나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호남 사람이자 경제인이자 여성으로서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메신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삼성전자에서의 30년이 정치인 양향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트레이닝이 아니었나 싶다.”

-비례대표 제안은 없었나
“있었지만 고려하지 않았다. 광주 출마에 대해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당시 민주당은 호남 지지세력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호남은 민주당의 정치적 고향이고 중심인데 이곳 지지세력을 잃는다는 것은 민주당의 존립기반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호남에서의 민주당을 다시 일으켜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리고 그 역할을 내가 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민주당 정권을 창출하는 데에 작은 쓰임이라도 되고 싶었다.”

-4년 만에 지지율이 역전됐다. 이유는 뭔가.
“4년 전 호남에선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이뤄낼 수 있겠냐는 의견이 팽배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호남의 바람에 화답했다. 그 중심에 20대 총선에서 낙선했음에도 선거를 두 차례나 승리로 이끈 양향자가 있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마침내 민주당은 ‘이기는 민주당’, ‘집권당 민주당’으로서 호남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 19 극복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이 같은 정부를 더욱 뒷받침하면 이후 오게 될 경제 위기까지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또한 보수와 진보세력의 수레바퀴가 잘 굴러가야 하는데 보수는 지금 무너진 상태다. 한정된 예산을 두고 보수는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진보는 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수레바퀴가 잘 굴러가야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한정된 예산의 파이를 키우는 쪽이 무너졌다. 이번에 국민들이 민주당에 180석을 몰아준 것은 민주당이 두 수레바퀴의 역할을 다 하라는 의미다. 시스템 정당으로서, 향후 미래가 있는 정당으로서 인정을 해준 것이다.”

-평사원에서 한 단계씩 올라가며 임원이 됐다. 반면 요즘 청년들은 끈기가 부족해 이직률, 퇴사율이 높다는 의견이 있다.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후배들에게 멘토링할 때 그대들은 나와 같지 않다고 말한다. 가진 것도 없고 배움도 짧은 나는 회사에서 버텨야만 했다. 회사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많이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 것이다. 후배들이 지금 이 회사에 계속 있어야 하나 의문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동기부여가 됐던 것은.
“유리천장이란 한계에 봉착할 때마다 내가 한계를 깨지 못하면 후배가 그 한계 앞에서 울고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유리천장을 없애줘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강했다. 난 두 아이를 키우고 시어머니를 모시면서도 공부를 쉬지 않는 등 긴 터널을 지나왔다. 내가 터널을 지나왔듯이 후배들도 똑같이 어려운 터널을 지나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터널을 치워주거나 터널 안에 무엇이 있을지 알려줘야 한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