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의원 당권·대권 독식론 대두에 김부겸·우원식·홍영표 강력 견제 나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4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소득ㆍ물질적 자유’ 등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가 지난달 27일 통합당 전국위원회에서 승인을 받아 출범했다. 김 위원장은 “변화 없이는 당의 생존이 불가능하다”며 “2022년 3월 9일 대선까지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보수·자유 우파를 더는 강조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경제 민주화보다 더 새로운 것을 내놓아도 놀라지 말라”고까지 말했다. 지난 9일 당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창조적 파괴와 과감한 혁신을 통해 우리 당을 진취적인 정당으로 만들어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큰 방향은 ‘좌클릭’을 통한 ‘제3의 길이다. 노동·복지 등 진보·좌파의 어젠다를 선점, 주도해 나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보수정당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에 기인한 정책만 집착할 경우 진보 진영에 맞대응하기 힘든 만큼 보수의 색깔을 빼는데 중점을 둘 것으로 관측된다. 김 위원장은 통합당의 총선 참패가 중도층과 30~40대가 외면한 때문이라고 보고 이들의 마음을 잡지 못한다면 생존 자체가 힘들어진다는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 포문으로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 논쟁에 불을 댕겼다. 기본소득은 재산·소득·고용 여부에 관계없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속적으로 지급하는 돈이다. 그는 지난 3일 배고픈 사람이 빵은 먹을 수 있는 물질적 자유 극대화가 정치의 목표라며 기본 소득제 도입을 공론화했다. 코로나19 긴급 재난지원금이 당초 우려와는 달리 경기부양 효과로 이어지고 여론의 호평이 나오면서 기본소득제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있다. 기본소득 논쟁에 여권의 유력 대권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도 가세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이해한다. 그에 관한 찬반 논의도 환영한다”며 “다만 기본소득제의 개념은 무엇인지, 우리가 추진해 온 복지체제를 대체하자는 것인지 보완하자는 것인지, 그 재원 확보 방안과 지속가능한 실천 방안은 무엇인지 등의 논의와 점검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경기 도지사는 “기본소득 도입은 피할 수 없다. 가능한 범위에서 시작해 효과를 보고 서서히 확대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지사가 제시하는 기본소득 계획은 20년 장기 목표를 세워 1인당 월 50만원씩 지급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분기별 15만원(월 5만원)을 단기목표로 삼되 우선 연 1회, 다음에는 반기 1회 정도 시행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 지사는 성남 시장이던 2016년 기본소득 개념을 반영한 청년배당 정책을 도입하면서 전국 이슈로 부각시켰다.

반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 국민 기본소득보다 훨씬 더 정의로운 전 국민 고용보험이 전면적으로 실시돼야 한다”며 반론을 폈다. 특이한 것은 민주당 최대 계파 모임인 ‘더좋은 미래’의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가 ‘진보’의 이슈라고 할 수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기본소득제도가 기존 복지제도와 통폐합돼 복지혜택을 오히려 하향 평준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재정을 고려하면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야권에서도 대권 주자들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기본소득제는 사회적 배급주의”라며 “실시되려면 세금의 파격적 인상을 국민들이 수용하고 지금의 복지체계를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며 불가론을 폈다. 이에 대해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이 사회주의 배급제도면, 기본소득 주장하는 빌 게이츠는 종북이냐”고 홍 의원에게 물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지난 4일 “정부의 가용 복지 자원이 어려운 계층에 우선 배분돼야 한다는 개념에 따라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 방안을 집중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통합당 유승민 전 의원은 최근 김 위원장을 겨냥해 “보수의 가치는 유효하다”고 밝혀 기본소득에 반대 입장이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기본 소득에 대한 민심은 팽팽하다. 리얼미터^YTN이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한 입장을 조사(6월 5일)한 결과, 응답자의 48.6%가 찬성, 42.8%가 반대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서울(42.1%)보다 인천경기(57.0%) 지역에서 찬성 비율이 훨씬 높다. 재난기본소득을 가장 먼저 시행한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책을 제일 먼저 접한 이 지역 주민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에 따르면 1인당 15만원에서 최대 50만원까지 재난기본소득이 지급된 4월 둘째 주부터 도내 신용카드 사용률이 가파르게 올라 코로나19로 전년대비 70% 수준에 머물던 것에서 107%로 회복했다. 특히 재난기본소득을 사용할 수 있는 연매출 10억원 미만 중소 영업장 매출이 24% 가량 증가했다. 이 지사는 “재난기본소득에 집행한 2조3000억원 중 7000~8000억원 즉 3분의1 가량이 결제된 것만으로도 경제효과가 뚜렷한 숫자로 확인된다”며 “지역 상인들과 주민들이 명절 대목을 다시 맞은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고 했다. 조사결과, 여성(42.0%)보다 남성(55.0%)에서 상대적으로 높았고, 젊은 세대인 18~39세(53.1%)에서 60대 이상(41.8%)보다 높았다. 보수층에서는 찬성 비율이 31.0%에 불과했지만 진보층에서는 그 비율이 무려 63.4%였다. 기본 소득 이슈는 본질적으로 진보 이슈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여하튼 기본소득의 쟁점은 지급방식이고 관건은 재원마련이다. 재원이 충분치 않은 만큼 지급대상과 지급액을 두고 이견이 엇갈릴 수 있다.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시작해 점차 전국민으로 확대해나가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지급액이 작더라도 전국민에게 지급해야 기본소득 취지에 맞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재명 지사는 “재원마련 방법으로 초기에는 기존 예산 조정으로, 다음에는 연 50조원 가량의 각종 세금감면 축소 및 폐지로, 마지막에는 기본소득목적세를 신설하면 된다”고 했다. 기본소득목적세 명목으로 국토보유세, 탄소세 등 환경세, 로봇세, 데이터세 등을 이 지사는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신중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최근 국회에 출석해 “기본소득은 여러 나라가 시도했지만 정착된 나라는 없었다”며 “재정당국 입장에선 굉장히 신중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자본과 이데올로기’라는 신간을 내놓은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 교수는 ‘기본소득’이라는 어휘보다는 ‘최저소득’이라는 어휘를 선호한다고 했다. “기본소득이라는 어휘는 마치 그것이 모든 복지와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생존을 지탱할 수 있게 하는 기초생활비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나라마다 그 비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500유로에서 600유로 정도를 넘지 않는다. 이 정도 금액은 기본소득이라고 부르기보다 최저소득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했다. 그러면서 “적정한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소득을 지급한다는 게 별다른 의미가 없다”면서 그 보다는 ‘최저소득’ 수혜자의 범위가 좀 더 넓게 확대 되고 체계화 되는 것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하튼 기본 소득은 향후 대선 과정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통합당내에선 “이슈 선점을 경쟁적으로 하다가는 퍼주기 경쟁이 된다. 어느 순간 멈추지 않으면 재원 조달 문제에 봉착해 남미식이나 그리스·이탈리아식 모라토리엄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슈를 보수 성향이 강한 통합당이 먼저 선점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통합당이 “변화 그 이상의 변화”를 이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제 뿐만 아니라 지난 8일 저출생 문제와 교육 불평등을 해결할 방안이라면서 오전부터 저녁까지 초등학교 1학년생부터 중학교 3학년생까지 국가가 교육과 보육을 책임지는 ‘전일보육제’ 실시를 제안했다. 그는 “공교육이 아이를 책임지지 않으면 부모의 경제력, 즉 사교육 여부에 따라 교육 불평등이 고착화된다”면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회복하자는 차원에서 공교육 강화 대책으로 전일보육제를 제시했다. 또한, 김 위원장은 11일 “초격차를 해소하려고 한다면 대학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종인 위원장의 광폭 행보에 대해 통합당내에서 여러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장제원 의원은 6일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일주일은 ‘화려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던’ 일주일”이라고 혹평했다. 또 “(김 위원장이) 당의 마이크를 완전히 독점했고 무척 제왕적”이라며 “1년 후 대통령 경선이라는 링에 오를 후보를 키우려면 독점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마이크를 나눠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수를 부정하는 것이 개혁과 변화가 될 수는 없다”며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통합당은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SNS에도 글을 올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들어온 이후, 대여 투쟁력이 현격하게 약화되고 있다”며 “야성을 상실했다. 비대위 회의에서는 아예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라는 말은 사라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젠다 선점도 중요하다”며 “그러나 야당은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결코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야권의 차기 대권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원희룡 제주 지사도 9일 미래통합당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서 “진보의 아류가 되어서는 영원한 2등이고 영원히 집권할 수 없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외부의 히딩크 감독에 의해 변화를 강요받는 현실이 초현실인지 머리를 뭔가로 얻어맞은 기분”이라고 했다. 이어 “요즘 고뇌를 거듭하면서 느낀 첫 번째 결론은 대한민국 보수의 이름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유전자라는 점”이라며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담대한 변화를 주도했던 보수의 역동성을 발견하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원 지사의 발언은 김종인 위원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비판만 있는 것은 아니고 긍정 평가도 있다. 하태경 의원은 9일 SNS를 통해 “김종인 비대위가 들어서고 당 지지율이 조금 오르고 민주당 지지율은 떨어졌다”며 “주된 원인은 민주당은 과거사 재탕하는 후진 세력, 통합당은 새로운 담론 제시하는 미래세력 이미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라며 김종인 체제 출발이 좋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이 사회주의적이라 하더라도 김종인 위원장이 우리 체제를 뒤엎자는 게 아니라 일부 요소를 받아들이자는 것”이라며 “충분히 논의해볼 만한 주제”라고 강조했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 컨설턴드 박성민 민 기획 대표는 크게 ①보수 색채 싹 지우고 당 개혁 완수 ②기득권 저항으로 비대위 좌초 ③ ‘보수 세력 이탈’, 독자 정당 창당 등 세 가지 시나라오를 제시했다. 그는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으로 ②, ③, ①의 순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럴 경우, 미래통합당은 영남을 중심으로 보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정당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 대한 1차 평가는 9월 정기 국회 전인 ‘출범 100일’내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김 위원장이 제시한 새로운 정책 어젠다들이 국민과 여론의 관심을 끌면서 통합당의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당내 중진들과의 불협화음도 최소화시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초선 의원 58명(지역구 40명 + 비례 대표 18명)을 우군화시킬 수 있을지 여부가 최대 관건이 될 것이다. 특히, 부산(9명), 대구(5명), 울산(3명), 경북(7명), 경남(4명) 등 영남권 28명 초선 의원의 지지를 이끌어 낼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지금 통합당은 폭망해서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바닥에서 튀어 올라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야 하는 통합당은 전략적 인내심을 갖고 일단 비대위 체제가 소프트랜딩 할 수 있도록 분열하지 말고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비판과 평가는 그 다음이다. 최근 정부 여당에서 혼란스럽고 우려스러운 일들이 분출되고 있다. 177석의 슈퍼 여당인 된 민주당은 지난 6월 5일 21대 국회를 53년만에 사실상 단독 개원해서 국회의장(6선 박병석 의원)과 여당 몫의 국회 부의장(4선 김상희 의원)을 선출했다. 그 이후 국회법에 따라 6월 8일까지 원구성을 마쳐야 했지만 국회 법사위원장을 배분을 놓고 여야간에 대립이 격화되면서 원 구성이 지연됐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10일 의원총회에서 “원 구성을 더는 늦출 수 없다. 12일 상임위원장 선출을 끝내더라도 법정시한보다 4일 늦은 것”이라며 “법이 정한 날짜에 국회를 열고 일하는 것은 최소한의 책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아니고 국회법”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통합당이 시간 끌며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국회 개원을 방해하면 민주당으로서는 단독으로라도 개원할 수밖에 없다”며 엄포를 놨다.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이낙연 위원장이 3일 오후 청주 SB플라자에서 열린 충청권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

그러나 국회 오랜 관행상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법사위원장 자리는 야당이 차지했다. 여당은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고쳐야 하며 과거와 달리 자신들이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엔 법사위원장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런데 여당의 이런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153석, 통합민주당(민주당 전신)은 81석을 차지했다. 두 정당간의 차이는 72석이었다. 현재 민주당(177석)과 통합당(103석)간 차이(74석)와 비슷했다. 더구나, 친박연대 14석, 무소속 친박 연대 13석을 합치면 범여권 의석은 180석이었다. 그런데 당시 통합민주당의 강력한 반대로 원구성까지 88일이나 소요됐다. 그렇다면 왜 그때 민주당은 국회법을 지키지 않았는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2009년 민주당 대변인 시절 “몇 되지도 않은 야당 몫의 상임위원장까지 독식해서 의회 독재를 꿈꾸는 것입니까?”라고 여당을 비판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 박영선 장관은 2012년 민주통합당 의원 시절 “집권 여당이 법사위를 장악하게 되면 검찰이나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당권 경쟁에 나선 우원식 민주당 의원도 지난 2012년 민주통합당 원내 대변인 시절 “견제와 균형이라는 국회 역할을 위해 법사위원장은 야당의 것이 맞다”고 했다. 과거 민주당이 야당 시절 이렇게 얘기해 놓고 지금은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오겠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여당이 힘을 가졌다고 자제하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자신들이 주장하는 ‘일하는 국회’는 물 건너간다. 통상 힘 있는 여당이 관용을 베푸는 것이지 힘 없는 야당에게 양보하라는 것은 협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 올해 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에 기권 표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민주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최근 경고 처분을 받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강제 당론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꼰대 입장을 밝혔다. 국회의원의 소신을 징계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 이를 정당화시키는 민주당의 행태는 민주 정당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의원의 소신과 양심을 당론으로 짓밟는 것은 헌법과 국회법을 위반하는 독재적 발상이다. 헌법에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제46조 2항)고 규정되어 있다. 국회법 제114조의2(자유투표)에서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되어 있다. 의회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동등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구속력 있는 법을 제정하는 회의체다. 따라서 독립적인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을 당론으로 강제하고 처벌하는 것은 반의회적이고 반민주적이다. 더구나 민주당의 이런 조치는 자신의 정체성과 정신을 훼손시켰다. 민주당은 입만 열면 김대중 정신을 계승한다고 말한다. 위에 언급한 국회법 자유 투표 규정은 지난 2002년 김대중 정부 시절 민주당의 전신인 새천년민주당이 주도해서 신설됐다. 사실상 당론이 정해지면 국회의원이 당의 거수기로 전락하는 일이 빈번해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둔 11월 ‘정당의 의사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며, 강제적 당론을 지양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국회의원 징계 사유에 당론 위반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한, 민주당 강령에는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정당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당이 되겠다”고 되어 있다. 분명 금 전의원에 대한 징계는 김대중 정신을 망각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개혁 구상을 무시하며, 민주당의 당헌^당규를 위반하는 참 나쁜 행태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랜 침묵을 깨고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8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며 “피해자 할머니의 존엄과 명예까?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시도는) 반인륜적 전쟁범죄 고발과 여성인권 옹호에 헌신한 위안부 운동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피해자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했고 진정한 사과와 화해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더 나아가 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없는 위안부 운동을 생각할 수 없다”며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정의연 사태로 위안부 관련 단체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사이의 갈등이 지속돼서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위안부 운동 논란의 본질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사태는 지난 달 7일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윤미향에게 30년 동안 이용만 당했다”고 문제 제기를 하면서 불거졌다. 보조금과 기부금으로 조성된 위안부 기금이 피해자를 돕는 본래의 목적 대신 엉뚱한 곳에 쓰인 것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이 핵심이다. 정의연을 운영했던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의 횡령이 있었는지, 개인적인 치부가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주요 쟁점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윤 의원 의혹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지난 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판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남한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할 경우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폐쇄, 개성공단 완전 철거,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고 경고하면서 “대북 전단 살포 금지 법이라도 만들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즉각적으로 전단 살포를 “백해무익한 행위”로 규정하고, 정부는 4시간 만에 “법을 만들겠다”고 기민하게 대응했다. 북한 통일전선부는 지난 5일 대변인 담화에서 “할 일도 없이 개성공단지구에 틀고 앉아 있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부터 결단코 철폐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김여정 담화 닷새만인 지난 9일 북한은 “대남 사업을 대적 사업으로 전환하겠다”며 청와대 핫 라인을 포함한 남북간의 모든 통신연락선을 완전히 차단·폐기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조선 중앙통신은 이번 통신선 차단 조치는 “남조선 것들과의 일체의 접촉 공간을 완전 격폐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첫 단계의 행동이다”고 했다. 남북 관계가 2018년 평창 올림픽 이전으로 회귀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권은 남북합의 파기에 대한 항의나 유감 표명 없이 전단 살포 금지 방침만을 밝혔다. 청와대는 11일 “정부는 앞으로 대북 전단 및 물품 등의 살포 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고 위반 시 법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통일부도 11일 대북 전단·페트병을 살포해온 탈북 단체 2곳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 의뢰하고, 법인 설립 허가 취소 절차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무리한 법 해석이라는 의견이 많다. 무엇보다 전단 살포는 남북교류협력법이 규정한 반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남북교류협력법 제13조 1항은 ‘물품 등을 반출 또는 반입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물품의 품목, 거래형태 및 대금결제 방법 등에 관해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그리고 같은 법 2조는 반출·반입을 ‘매매, 교환, 임대차, 사용대차, 증여, 사용 등을 목적으로 하는 남북한 간의 물품 이동’이라고 규정해 놓았다. 따라서, “전단을 날리는 행위만으로는 반출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남북 정상 간 합의인 ‘판문점선언’엔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판문점선언은 국회의 비준을 받지 않아 법적 효력이 없다. 또한, 선언을 위반했을 경우 어떤 처벌이 내려진다는 규정도 없다. 따라서, 법조계에서는 이런 선언을 근거로 처벌을 시도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이런 강경 행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작년 북^미 간에 하노이 노딜 이후 한국에 대해 쌓인 불만^불신감이 폭발한 것이리고 해석했다. 하지만 지배적인 견해는 대북 전단은 핑계일 뿐이고 장기간에 대북 제재 장기화와 코로나 사태로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발생한 내부의 불만을 단속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로 하여금 ‘제재를 허물라’는 신호로 보인다. 만약 이런 의도가 먹혀들지 않으면 북한은 다음 조치로 9^19 남북 군사합의를 폐기할 뿐만 아니라 국지적인 군사 도발을 할지 모른다. 과거처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도 재추진할지도 모른다.

물론 성동격서의 성격도 있다.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남한 때리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국무부는 북한의 이런 강경 행보에 대해 “미국은 남북관계 진전을 지지해왔다”면서 이례적으로 “북한의 최근 행보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국 현지 언론들도 북한이 강도 높은 도발을 시작하기에 앞서 의도적으로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AP통신은 “북한의 이번 경고는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미국 주도의 제재에 맞서 의도적으로 긴장을 조성하는 것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평양은 미국과의 대화가 실패한 이래 강경한 언어를 구사해왔다”며 “최근 긴장 격화는 대북관계 개선에 대한 한국 정부의 열망을 이용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정권 내에서 김여정의 위치와 권한을 부각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정부가 국내외에서 “헌법 정신 위반” “인권 침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북한이 요구한 전단 금지를 밀어붙이는 것은 북한에 너무 굴종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다. 이와 같이 국내외적으로 복잡한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한 당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유력한 당 대표 후보인 이낙연 의원을 향한 경쟁자들의 견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김부겸 전 의원이 불을 댕겼다. 그는 지난 9일 당대표 출마를 준비 중인 우원식 의원을 만나 당대표 출마 결심과 함께 당권을 잡을 경우 대권에는 도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력 대권주자이자 당권주자인 이낙연 의원을 압박하기 위해 배수진을 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대권 주자들의 당권 도전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자 이를 불식하기 위한 의도로도 보인다. 김 전의원은 정세균 총리, 박원순 시장, 이재명 지사 세력과 연대를 하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당 대표 출마를 사실상 선언한 홍영표 의원은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과거에 보면 당권과 대권을 같이 가지고 있어 줄 세우기라든가, 사당화 시비, 대선 경선의 불공정 시비로 많은 갈등을 겪었다”며 “그래서 현재의 당헌으로 개정할 때 당권과 대권 분리를 명확하게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낙연 의원을 겨냥해 “당권과 대권에 대한 명확한 분리를 왜 하게 됐는지 보면서 판단했으면 한다”고 날을 세웠다. 김두관 의원도 8일 “7개월짜리 당 대표를 뽑으면 1년에 전당대회를 3번 하게 될 것”이라며 이 의원에게 견제구를 날렸다. 이런 견제에도 불구하고 이낙연 의원의 행보는 빨라지고 있다. 이 의원은 최근 당내 최대 규모의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 의원들과 만나 자신의 당권 출마와 관련해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어기는 것도 아니고 특권을 달라는 것도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는 9일 첫 회의를 열고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경선 규칙을 확정하고 혼란을 최소화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전준위는 당 대표 사퇴와 상관없이 최고위원 임기를 2년으로 보장해주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또한, 대선 규칙을 8월 전당대회 전에 확정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 주자가 당 대표가 되면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당권 경쟁의 최대 변수는 결국 김부겸 전 의원의 결정이다. 김 전 의원이 대선 출마 포기를 전제로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 이 의원을 둘러싼 당권·대권 독식론 비판이 더욱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친여 세력은 종종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 2기’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노^문 정부의 뿌리는 같지만 정치 열매는 전혀 다르다. 첫째, 노무현 정부는 ‘실용적 진보’를 표방한 반면, 문재인 정부는 ‘교조적 진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 노무현 정부에서는 ‘협치 실천‘이 돋보인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협치 절벽‘이 지배했다. 셋째, 노 전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핵심 원리로 당^정 분리를 강조했다. 따라서 청와대와 집권당 간에 수평적인 관계가 구축되면서 겸손한 권력이 만들어졌다.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당^정 일치가 강조되면서 청와대가 집권당을 수직, 통치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넷째, 노무현 정부에선 진보 시민단체를 거버넌스의 일환으로 정부의 각종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시켰다.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진보 시민단체가 권력화되고 정부 비판 대신 권력과 유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 여당이 진정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면 ‘실용 강화 원칙과 상식’, ‘행동하는 협치’, ‘당정 분리’, ‘진보 시민단체와의 정치적 거리두기’ 등을 실천해야 한다. 단언컨대, 국정 안정은 국회 의석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집권 세력의 무한 책임, 제도적 자제와 관용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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