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본연의 색깔 잃는다” vs “중도로 외연 확장하는데 필요”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의 ‘좌클릭’이 매섭다. 강하면서도 발빠르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연일 정치권에 화두를 던지며 진보 정당보다 발빠르게 이슈를 선점하고 있다. ‘약자와의 동행’,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등은 평소 진보담론으로 여겨져왔다. 보수정당에서 이 같은 의제가 나왔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이다. 통합당 내부에서는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수의 정체성, 보수의 가치와 거리가 멀다는 이유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김 위원장에게 유리하게 나타났다. 김 위원장의 좌클릭이 단기적으로 통합당에 ‘득’이 된다는 해석이다.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보수보다 진취 강조
6월 3주차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도층의 통합당 지지율은 김종인 비대위 출범일과 비교해 7%포인트 상승했다(리얼미터 기준). 김 위원장의 좌클릭 효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 출범 이후 줄곧 진보담론을 언급하며 정치권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약자와의 동행’을 슬로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지난 1일 첫 비대위회의에서는 “진취적 정당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드러냈고 국립서울현충원 방명록에도 ‘진취적으로 국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김 위원장은 ‘진취’라는 표현에 대해 “진보보다 더 국민 마음을 사는 것”, “진보보다 더 앞서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보수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3일 초선의원 공부모임에서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인 자유는 끝까지 사수해야 한다”면서도 “보수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통합당이 보수정당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인식하기 때문에 굳이 보수를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진보 전유물, 보수가 선점
김 위원장은 4일 비대위 회의에서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비상한 각오로 정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국민의 안정과 사회공동체를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제도를 사실상 1호 담론으로 내세운 것이다. 기본소득제는 정부가 국민에게 일정 규모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해 기본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김 위원장은 “지금 기본소득 문제를 거론한 건 인공지능(AI) 시대가 오면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 어떻게 할 것인지, 기본소득을 실행한다면 국가재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정치권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기본소득을 얘기하는데 정책이란 건 지속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날 “정치의 근본적 목표는 물질적 자유의 극대화”라며 “배고픈 사람이 빵을 사먹을 수 있는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언급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진보의 전유물이었던 복지 아젠다를 선점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일 당 비공개회의에서 초·중등생 대상 '전일보육제'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본소득제, 전일보육제 등은 보수의 ‘선별적 복지’와 거리가 멀다. 김 위원장의 의도에 대해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좌클릭을 통해 당 외연을 확장하려는 전략”이라며 “집토끼가 떠나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기 때문에 산토끼를 잡는 데 적극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수 정체성은 어디로
보수 인사들은 김 위원장의 좌클릭에 반발하고 있는 모양새다. 보수의 정체성을 잃고 진보의 아류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대표는 지난달 SNS를 통해 “좌파 2중대 흉내내기를 개혁으로 포장해서는 우리는 좌파 정당의 위성정당이 될 뿐”이라고 전했다. 장제원 통합당 의원도 2일 SNS를 통해 “보수의 핵심 가치는 자유와 공정, 책임이다. 법치를 구현하고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공동체에 헌신하는 것”이라며 “보수의 소중한 가치마저 부정하며 보수라는 단어에 화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의견은 ‘대안 없는 비판’이란 분석도 있다. 강상호 국민대 교수는 “통합당이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한 것은 당내 철학이 공백 상태였기 때문”이라며 “현재 통합당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사상적 체계를 빌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의원들은 대안 없는 비판으로 또다시 좌우 이념논쟁을 시작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의 좌클릭 효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평론가는 “김 위원장의 목표는 다음 대선 승리”라며 “단기적으로 지지율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좌클릭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복지 아젠다를 거론했을 뿐이지 당론으로 확정한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우선 이슈를 선점한 뒤에 리더십을 통해 당내 갈등을 봉합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