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분에게 죄송…화장해 달라” 유언,
내년 4월 재보궐선거 판 커지는 모양새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시민운동가이자 인권변호사, 그리고 최초 3선 서울시장이라는 신화를 만들었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어느덧 차기 유력 대선후보 중 한 명으로까지 올라선 그가 제시하는 여러 정책들은 국가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지난주 들려온 박 전 시장의 실종 소식, 그리고 곧이어 전해진 사망 소식은 전국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당장 서울시장 자리의 공백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미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권한 대행을 맡고 있다. 서울, 부산 등으로 인해 내년 4월 보궐선거는 대규모로 진행될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데다 귀책사유가 자당에 있으면 후보를 배출하지 않도록 하는 민주당 당헌까지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사진 서울시)

실종부터 사망까지 ‘막전막후’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 신고된 지 7시간 만인 지난 10일 자정 숨진 채 발견돼 전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박 전 시장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경찰에 최초로 접수된 시각은 지난 9일 오후 5시 17분이었다.

박 전 시장 딸이 ‘4∼5시간 전에 아버지가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내용으로 112에 신고했고 신고를 받은 경찰은 박 전 시장 휴대전화 신호가 성북구 길상사 인근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된 것을 토대로 북악산 자락인 길상사 주변과 와룡공원 일대부터 주변을 집중 수색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대규모 인원과 장비를 투입해 수색을 벌였다. 투입된 인원만 경찰 635명, 소방 138명 등 총 773명이었고 수색견 9마리와 드론 6대, 야간 수색용 장비인 서치라이트 등도 동원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지난 9일 오전 10시 44분쯤 종로구 가회동 시장 공관에서 나와 외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그는 등산로와 연결된 와룡공원에 10시 53분쯤 도착한 모습이 포착됐다. 공원을 지나서부터는 CCTV가 없어 정확한 동선이 확인되지 않았다.

박 전 시장은 사망 당일 몸이 좋지 않다며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출근하지 않은 뒤 연락이 두절됐다. 박 전 시장은 이날 오후 4시 40분에 시장실에서 김사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과 만나 서울-지역 간 상생을 화두로 지역균형발전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결국 그는 최초 신고 접수 이후 약 7시간 만에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시장실에서 근무했던 전직 비서 A씨로부터 최근 경찰에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바 있어 사망과 피소 사실 간 관련이 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A씨는 박 전 시장 사망 전 이미 경찰에 출석해 고소장을 제출하고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한편 박 시장 공관 책상에서 발견된 자필 유언장도 공개됐다. 박 전 시장은 유언장에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며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시민운동가에서 3선 서울시장으로

시민운동가이자 최초 3선 서울시장이었던 박 전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 재학 당시 박정희 정권 유신체제에 항거한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 참석한 후 구속, 제적당한 바 있다. 이후 1979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한 후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문재인 대통령 등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박 전 시장은 대구지검에서 검사로 법조인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사임하고 인권변호사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박 전 시장은 참여연대 결성을 주도하면서 국내 시민운동 정착에 주력했다. 참여연대를 주축으로 재벌개혁, 사법개혁 등의 운동을 이끌었고 2002년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기부문화를 조성하기도 했다. 이후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을 설립, 실험적인 운동들을 선보였다.

박 전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 당선으로 정계에 진출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강행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부결되면서 전격 사퇴, 보궐선거로 박 전 시장이 당선된 것. 이후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경합 중 사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박 시장은 2018년 6o13 지방선거에서 사상 첫 3선 서울시장 고지에 올라 차기 대선 도전이 가능했던 유력 여권 후보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박 시장마저 성추행 의혹에 사망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차기 민주당 내 대선 판도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권한대행 체제…내년 4월 보궐선거 영향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공백이 불가피한 서울시장 자리는 내년 4월 보궐선거까지 서울시 행정1부시장인 서정협 권한대행이 맡게 된다.

현재 상황으로만 보면 광역단체 중에서 부산과 서울 두 곳의 보궐선거가 확정됐다.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직원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며 자진 사퇴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등 다른 광역단체장들도 재판을 받고 있어 결과에 따라 재보궐 지역이 더 늘어날 수 있다.

현재 이 경기지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최종심을 앞두고 있다. 2심에서는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300만원 벌금을 받았다. 김 경남지사도 드루킹 대선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항소심 중이다. 이밖에 20대 국회에서 벌어진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당선인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고 21대 총선 선거법 위반 재판까지 감안하면 대규모 재보궐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민주당은 혁신방안 일환으로 해당 당헌을 2015년 7월 개정한 바 있는데, 이후 5년간 기초의원 선거에서 이를 적용한 바 있다. 다만 성추문으로 사퇴한 안 전 충남지사 공석에는 현 양승조 지사를 공천했고, 부산시장 공천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민주당은 보선 귀책사유가 자당에 있으면 후보를 배출하지 않도록 당헌에 명시하고 있다. 당헌 96조 2항에 따르면,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o보궐 선거를 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 박원순 시장의 유언장. (사진 서울시)

안희정·오거돈 이어 여권 광역단체장 세 번째 ‘미투’

이번 박 전 시장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사건으로, 성폭력 사건에 연루된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 단체장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물론 박 전 시장 사망으로 이번 성추행 고소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다.

안 전 지사의 성폭력 사실은 2018년 3월 그의 비서였던 김지은씨가 방송에 출연해 직접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긴급 당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안 지사에 대한 출당과 제명 조치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이후 안 전 지사는 같은 해 8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풀려났지만 지난해 2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돼 법정 구속됐다. 그의 형량은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고 이후 광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오 전 시장은 지난 4월 한 여성 공무원을 5분간 면담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있었다며 전격 사퇴했다. 오 전 시장은 사퇴 선언 나흘 만에 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았다. 부산지검은 5월 강제추행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부산지법이 이를 기각했고 오 전 시장은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후 모습을 감춘 박 시장과 달리 앞선 미투 사건에 연루된 두 사람은 수사기관에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오 전 시장은 사퇴 선언 직후 약 한달 동안 잠적을 하면서 경남 거제 한 펜션 등에서 목격되기도 했는데, 결국 지난 5월 부산경찰청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안 전 지사의 경우 김씨 폭로 나흘 뒤에 바로 서울서부지검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권 광역단체장의 잇따른 성추문 악재에 민주당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입장이다. 박 전 시장과 안 전 지사는 유력한 대권 주자로 분류됐었고 오 전 시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특히 박 전 시장은 거의 10년째 서울시정을 이끌어 차기 대선 도전과 별개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로 평가받았다.

박 전 시장은 ‘기본소득’을 부각시키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경쟁하듯 ‘전국민고용보험제’를 제시했고 최근까지도 여권 의제인 ‘그린뉴딜’과 ‘부동산 정책’에서 대권 후보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박 전 시장이 안 전 지사와 오 전 시장 성추문과 거의 유사한 사건으로 고소당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민주당으로서는 표정관리가 쉽지 않은 상태다. 민주당은 야권은 물론이고 여성 단체 등을 중심으로 미투 문제가 선거 쟁점으로 부각할 경우 치명타를 입을 수 있어 향후 대응책 마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박 전 시장 성추행 고소건은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함으로써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기 때문에 생각보다 크게 부각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박 전 시장의 사망이 확인되고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국민적인 ‘동정론’도 수면 위로 급격하게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박 전 시장 고소건은 더 이상 수사가 진행되지 않을 것이고 사망과 피소 사실 간 관련이 있을 개연성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유언장에 그와 관련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아 녹취나 증언 등 추가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추측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서울 성북경찰서가 서울 북악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박 전 시장의 사망 경위를 밝히기 위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물론 현재까지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박 전 시장이 숨지게 된 정확한 경위를 밝히기 위해 사망 직전 전화 통화내역과 동선 등을 확인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밖에 기본 사실관계가 정리되면 박 전 시장 유족을 상대로 조사하고 시신 부검 여부도 유족과 협의할 예정이다. 물론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타살 등의 다른 사망 경위가 드러난다면 이번 박 전 시장 사망 건은 지금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파장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