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출범 밀어붙이는 더불어민주당
”개혁입법 첫째과제”…야권 비토권 무력화시키는 공수처법 개정안도 발의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소수 정당들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절차를 통해 강행 처리했다. ‘머릿수 싸움’에서 패배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공수처법은 위헌이라며 장외투쟁을 이어갔지만 법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총선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의 의원수는 103석. 174석으로 과반을 넘긴 민주당은 소수 정당과의 공조 없이도 법안을 단독 처리할 수 있다. 공수처 개정안을 두고 여야의 기싸움은 팽팽하다. 하지만 결국 거대 여당의 뜻대로 공수처 출범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지난해처럼 또다시 무력한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민주당은 공수처 출범을 서두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대표는 연일 공수처 출범을 강조하며 국민의힘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지난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서 열린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공수처 출범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성역 없는 수사와 권력기관 개혁이란 국민의 여망이 담긴 공수처의 출범 지연도 이제 끝내주시기 바란다”며 “진정한 ‘민생 국회’의 모습을 보여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날 이 대표도 의원총회에서 당면 과제로 공수처 설치 등을 꼽았다. 특히 공수처 설치는 “개혁입법 첫째 과제”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올해 안에 공수처를 출범시키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공수처 설치를 최대한 미루겠다는 입장이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나올 때까지 공수처 출범을 지연시키겠다는 것이다. 방법은 ‘비토권’이다. 공수처장 예비후보 2명은 추천위원 7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최종 후보가 된다. 이후 대통령은 최종후보들 중에서 공수처장으로 한 명을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선택은 한없이 미뤄질 수 있다. 야당 추천위원 2명 모두가 예비후보에 대해 거듭 반대표를 행사하면 최종후보 추천은 이뤄질 수 없다. 허영 민주당 대변인은 “국민의힘이 선정한 추천위원들이 비토권을 악용해 공수처 출범을 방해한다면 민주당은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말하는 단호한 대응은 공수처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추천위원 추천권과 의결요건에 대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야가 각각 2명씩 선정하기로 한 추천위원을 국회가 4명을 지명하는 것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이다. 의결 요건도 7명 중 6명 찬성이 아니라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수정한다.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야당의 비토권은 유명무실해진다. 이는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한 비토권을 삭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당초 민주당은 추천위원 7명 중 6명이 찬성해야 최종후보가 결정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며 여당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다수결로 처리하자는 것은 공수처가 ‘정권 방탄부대’, ‘대통령 친위대’라고 인정하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국민의힘 추천위원 2명 모두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의 경력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추천위원으로 대검 차장 출신의 임정혁 변호사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지낸 이헌 변호사를 내정했다. 임 변호사는 대구지검 공안부장,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대검 공안부장을 거친 ‘공안통’이다. 이 변호사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추천으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 박근혜 정부 시절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를 두고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일을 망치는 전문가로 보이는 사람을 추천했는데 방해 의도가 명백히 보인다”며 “국회 차원에서 다시 한번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여당이 자기들 마음에 드는 공수처장을 만드려고 한다”고 말했고 주호영 원내대표도 “민주당이 오만방자하게 우리 당 추천까지 자기들이 하려는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공수처법 내 ‘독소조항’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기소권, 범죄수사 강제 이첩권, 재정신청권 등이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또한 공수처 수사대상에 직무 범죄를 포함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김 의원은 “고위공직자들의 비위에 대해 수사하는 공수처가 직무 범죄까지 다루게 됐다”며 “자신들(여권 인사들)에게 불리하게 나오는 검사와 판사를 수사하는 등 공수처법을 남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장외집회’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원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국민의힘의 김 위원장은 "의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면 자연스럽게 '원(국회) 밖 야당'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장외집회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지난해 장외집회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공수처법이 본회의에서 통과된 결정적 계기 중 하나는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당 대표의 무리한 장외집회”라며 “국회 내에서 협상을 통해 최대한 (야권의) 의견을 공수처법 개정안에 반영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이 무도한 행동을 할 수 없도록 최대한 충실하게 입법심의와 예산심의에 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도 장외집회에 신중한 입장이다. 김 의원은 “국민들은 공수처법이 민생과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장외집회가 그들(국회의원들)만의 리그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 사기이자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알려진 ‘라임·옵티머스 사건’은 국민적 관심이 높다”며 “중립적이지 못한 공수처가 이 사건을 뭉개버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