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임종건의 드라이펜] 트럼피즘과 한국정치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 14일 백악관 인근 ‘프리덤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는 지난 11월 3일 치러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현직 대통령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이길 것이라는 미국 내 여론이 맞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지난 4년 동안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세계의 여러 나라들과 불화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 미덥지 않았다.

거기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1300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코로나19에 감염돼 25만 명이 넘게 죽었다. 세계에서 최다 확진자, 최다 사망자의 나라가 됐다. 세계 최강국의 위상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구호였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미국을 가장 비참하게’로 추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에서 그는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져도 대패할 것으로 여겼으나, 나의 그런 예측은 크게 벗어났다. 개표 중반까지도 그가 우세했고, 막판에 접어들어 경합 주의 우편투표와 부재자투표에서 바이든 몰표가 나와 아깝게 역전패했다.

미국 언론들은 선거 나흘 뒤 바이든 후보가 30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 232명 확보에 그친 트럼프 후보에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유권자 투표에서도 바이든 후보는 7900여만 표, 트럼프 후보는 7300여만 표를 얻어 바이든 후보가 600여만 표를 이겼다.

트럼프 후보 측이 선거부정을 주장하며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아 최종결과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그들이 주장하는 선거부정이나 투개표 조작 혐의에 대한 고소고발은 법원에서 증거부족으로 잇달아 기각되었다. 경합주인 조지아에선 트럼프 측의 요구에 따라 전체 투표를 손으로 재검표까지 했으나 결과는 뒤집히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집권당이 선거를 통해서 패배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미국은 그런 제도를 건국 이후 200년 넘게 지켜온 나라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모범국으로 인정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불복은 미국의 민주적 전통과 명예를 크게 훼손했다.

따지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승리했던 2016년 선거에 비겨 그가 크게 억울해 할 것도 없었다. 그는 당시 선거인단 투표에서 공교롭게도 이번 선거에서와 똑같이 306명 대 232명으로 이겼지만, 전체 유권자투표에서는 200만 표 이상 힐러리 후보에게 졌다.

트럼프 후보 측은 바이든 후보의 몰표가 쏟아진 우편투표에서 선거부정이 저질러졌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편투표가 코로나19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투표였다는 점에서 코로나 대응에 실패한 트럼프 후보에게 불리할 것으로 예상됐던 것이다.

따라서 궁금한 것은 트럼프의 패배가 아니라, 코로나19의 악조건 속에서 그가 7300만 표가 넘게 득표한 선전의 배경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트럼프 정치를 특징짓는 것은 편가르기를 통한 지지자 결속, 이른바 트럼피즘(Trumpism)이다. 이번 선거는 그것의 종결판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코로나19 대책이었다. 그는 마스크 착용이 코로나19 감염 예방에 중요하다는 의학자 및 과학자들의 권고를 무시하면서, 그것은 개인의 선택의 자유에 해당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태도로 인해 본인 스스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되었음에도 그는 마스크 착용을 조롱했고, 그의 유세장에 몰려든 지지자들도 그를 따라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 미국 전역을 휩쓰는 3차 대유행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는 선거 기간 중 주요 이슈가 되었던 인종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법과 질서를 강조하면서 흑백대결을 조장했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이슬람 이민을 거부함으로써 이민자 또한 대결의 도구로 썼다.

동맹은 가치보다 거래의 대상이었다.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선 한국과 독일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독일에선 주독 미군 철수사태가 빚어졌고, 주한 미군 철수설도 무성했다.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탈퇴함으로써 다자주의 질서도 거부했다.

그가 이 같은 일련의 대결 전략을 ‘국익 우선주의’로 포장해 유권자들에게 선전해 성공을 거둔 것이 이번 선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만 없었더라면 그가 가볍게 재선에 성공할 뻔했던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얻은 7300만 표는 전체 투표의 47%로 절반에 가깝다. 상당수 공화당 의원들과 행정부 고위인사들에겐 그들의 정치적인 미래를 좌우할 위협적인 표다. 그들이 트럼프의 근거 없는 부정선거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이번 사태가 미국 제도의 결함이라기보다는 트럼프 후보 개인의 성격에서 상당 부분 기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선거 구호 ‘보다 나은 미국 건설(Build Back Better)’은 트럼프가 망가뜨린 미국 위상의 원상회복을 지향하고 있다.

바이든의 포용정책은 트럼프의 양극화 정치가 남긴 폐해를 하나씩 바로잡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로 확인된 여론의 양극화는 선거불복 과정에서 한층 심화됐다. 치유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등장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트럼피즘이 한국 정치에 주는 시사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편가르기에 능한 정부로 평가된다. 그들은 그런 방법으로 행정부와 입법부, 대법원을 장악해, ‘20년, 30년 집권’ 운운하고 있다. 이를 저지할 능력을 잃은 야당은 여당의 분열전략에 말려들어 자중지란이나 벌이고, 일부 야권세력은 트럼프 측이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4·15부정선거 함정에 빠져 있다. 한국의 양극화 정치는 트럼피즘보다 훨씬 위태롭다.





● 임종건 칼럼니스트 프로필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에서 편집국 국차장, 논설위원, 사장을 지내는 등 36년 동안 언론에 몸담았다. 사실과 경험에 입각해 글을 쓰겠다는 다짐에서 ‘드라이 펜(Dry Pen)’을 필명으로 삼았다. 한국일보 시절에 주간한국 기자와 부장을 지낸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1년 01월 제2861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1년 01월 제2861호
    • 2021년 01월 제2860호
    • 2020년 12월 제2859호
    • 2020년 12월 제2858호
    • 2020년 12월 제2857호
    • 2020년 12월 제2856호
    • 2020년 11월 제2855호
    • 2020년 11월 제2854호
    • 2020년 11월 제2853호
    • 2020년 11월 제2852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정이안의 건강노트

우울감 해소에 도움되는 음식은?  우울감 해소에 도움되는 음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