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기관 개혁법 통과…민주당 입법독주 속 “개혁입법 취지 퇴색” 오점

야당의 비토(거부)권을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기립해 항의하고 있는 가운데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경찰법 등 이른바 권력기관 개혁 법안이 9일과 10일 각각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권력기관 개혁 드라이브에 힘이 실리게 됐다. 이번 국회에서 압도적 힘의 우위를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등 거센 반발에도 주요 입법과제 중 상당수를 통과시키는 데 성공, ‘입법독주’라는 평가를 얻으며 오히려 개혁입법의 취지를 퇴색시켰다는 오점도 남겼다.

이에 국민의힘은 초선 의원 58명 전원이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에 나서기로 해 10일 오후부터 국회 본회의서 무제한 토론을 진행중이다.

반면 민주당으로서는 문 대통령의 ‘레임덕’이 다가올 내년으로 개혁 법안이 밀릴 경우 입법 동력이 떨어질 수 있고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지지층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권력기관 개혁법안 통과에 사활을 건 것으로 평가된다.

먼저 민주당의 최우선 과제였던 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9일 밤부터 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를 진행했지만 정기국회 회기가 3시간 뒤에 종료됐고, 이날 새로 소집된 임시국회 본회의에 공수처법 개정안이 자동 상정돼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이날 통과된 공수처법 개정안은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추천 거부권(비토권) 축소를 핵심으로 공수처장 추천위원회의 의결 정족수를 애초 ‘7명 가운데 6명 이상’에서 ‘3분의 2 이상’(5명 이상)으로 완화하고, 정당이 열흘 이내에 추천위원을 선정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학계 인사를 대신 추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또 ‘변호사 자격 10년 이상 보유하고 재판·수사·조사 실무 경력 5년 이상’이었던 공수처 검사 자격요건을 ‘변호사 자격 7년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국민의힘은 본회의장에서 “독재로 흥한 자, 독재로 망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강하게 저항했지만 민주당은 압도적인 수적 우위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에 따라 민주당은 공수처 출범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즉각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를 재소집해 대통령에게 추천할 공수처장 후보 2명을 선정하는 등 연내 공수처 출범을 목표로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된 데 대해 “공수처가 신속하게 출범할 길이 열려 다행”이라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소감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 설치는 대통령과 특수관계자를 비롯해 권력형 비리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 사정·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부패없는 사회로 가기 위한 오랜 숙원이자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생각하면 야당이 적극적이고 여당이 소극적이어야 하는데, 논의가 이상하게 흘러왔다"며 "기약 없이 공수처 출범이 미뤄져 안타까웠다"고 언급했다. 또 “늦었지만 약속을 지키게 돼 감회가 깊다”며 “공수처장 후보 추천과 임명, 청문회 등 나머지 절차를 신속하고 차질없이 진행해 2021년 새해 벽두에는 공수처가 정식으로 출범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경찰을 국가·자치·수사경찰로 나누는 내용을 담은 경찰법 전부개정안은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내년 경찰 조직에 일대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가경찰은 자치경찰 사무를 제외한 정보·보안·외사·경비 등 임무를 맡고, 자치경찰은 관할지역 주민의 생활과 밀접한 생활안전·교통·학교폭력 업무·다중 운집 행사 안전관리 등을 담당하며 수사경찰은 범죄 수사를 맡는다. 이에 따라 지휘·감독 체계에 큰 변화가 생긴다. 국가경찰은 원래대로 경찰청장의 지시를 받지만, 자치경찰은 시·도별 독립 행정기관인 시·도자치경찰위원회의 관리를, 수사경찰은 국가수사본부장의 지휘·감독을 받게 된다.

또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치안행정을 담당하는 일반 경찰과 분리돼 수사 업무를 전담하게 된다. 국수본은 경찰청 산하 조직으로, 본부장은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 계급인 치안정감이 맡는다. 이번 법 개정 목적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비대해지는 경찰 권력을 분산·통제하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제대로 된 견제 장치가 없다는 비판도 시민사회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일반적으로 법 개정시 통과 후 시행까지 몇 달의 유예기간이 있는 것이 통례지만 개정된 경찰법은 당장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라 법을 접하는 일반 시민들의 혼선도 예상되고 있다.

대공수사권 이관을 골자로 하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은 10일부터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로 저지에 나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권력기관 개혁 법안 중 하나인 국정원법 개정안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행 시기는 3년 유예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을 금지하기 위해 국정원 직무 범위에서 국내보안정보, 대공, 대정부전복 등 불명확한 개념을 삭제하고 직무 범위를 국외 및 북한에 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위성자산 정보 등의 수집·작성·배포 등으로 규정하는 내용들이 포함됐다. 이밖에 국정원의 정치개입 근절을 목표로 정치 관여의 우려가 있는 정보 등을 수집·분석하기 위한 조직 설치를 금지하고 특정 정당, 정치단체, 정치인을 위한 기업의 자금 이용 행위를 금지하도록 했다. 국정원법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은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될 경우 국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경찰의 권한이 커질 것을 우려해 반대했다. 이에 10일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국민의힘은 초선의원 전원이 필리버스터에 나서기로 하면서 ‘필리버스터 정국’은 연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 58명이 1명당 4시간씩만 발언해도 열흘 가량 걸리는 데다 민주당 의원들도 1~2시간씩 찬성토론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