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부적격’ 공세…정의당도 ‘데스노트’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바짝 엎드렸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등에 관한 ‘막말 논란’에 거듭 사과하며 허리를 굽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또 말실수를 낳아 해명을 다시 해명하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공기업 사장 재직 시절 ‘낙하산’ 인사 채용 및 딸의 ‘아빠찬스’ 의혹에는 거세게 항변했다. 야당의 우직한 펀치는 없었다. ‘변창흠표 부동산 정책’도 커다란 관심사였는데 그는 ‘1가구 1주택’ 법안 취지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자세히는 못 봤다’는 전제를 달았으나 실은 그가 10여 년 전부터 주장해온 사항이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지난 23일 열렸다.
막말에 대한 막말 사과

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지난 23일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일정이 야당 의원들의 ‘자진사퇴’ 고성과 함께 약 40분 늦게 시작해서 끝맺음은 다음날 자정을 넘겨서야 이뤄졌다. 가까스로 검증대에 오른 변 후보자는 14시간 넘게 각종 논란과 의혹에 사과하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죄송하다면서 고개만 10차례 이상 숙였다.

변 후보자는 모두발언에서 “청문회를 준비하며 저의 지난 삶과 인생 전반을 무겁고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등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때인 2016년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에 대해 “엄밀히 말해 서울시 산하 메트로로부터 위탁받은 업체 직원(김군)이 실수로 죽은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대가는 혹독했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범여권 인사들조차 관련 문제를 집요하게 쏘아붙였다. 변 후보자는 구의역 사고 외에도 공유주택(셰어하우스) 거주자들을 겨냥해 “못 사는 사람들이 미쳤다고 밥을 사 먹냐”는 등의 발언을 한 사실도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처럼 부적절한 말들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그는 재차 막말 논란을 일으켰다. 셰어하우스 관련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여성은 화장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아침을 먹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워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에 여당 소속인 진선미 국토교통위원장마저 “여성에 대한 편견을 줄 수 있는 발언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정의당 데스노트’에 변 후보자 이름이 오르게 된 단초가 됐다. 정의당은 지난 24일 당 상무위원회에서 변 후보자에 대한 당의 입장을 부적격으로 최종 결정했다. 심상정 의원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그의 발언이 단순한 말실수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부적격 사유를 설명했다. 정의당의 한 당직자는 “변 후보자에 대한 당내 기류가 이전부터 썩 좋지만은 않았다”고 전했다.

정의당은 변 후보자의 장관 임명에 대한 당론을 부적격으로 결론지었다.
낯선 듯 친숙한 ‘도시연구소’와 ‘환경정의’

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는 공기업 사장 시절 낙하산 채용 및 딸의 아빠찬스 의혹도 있었다. 낙하산 의혹 핵심은 그가 2014년 서울도시주택공사(SH) 사장 당시 고위직 전문가를 채용, 서울대 동문 및 그가 속한 연구단체 지인들을 주로 뽑았다는 것이다. 또 장녀의 특목고 입시를 돕고자 변 후보자가 활동한 NGO단체 봉사경력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뒤따랐다.

변 후보자는 거세게 항변했다. 낙하산 채용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그럴 수가 있겠나”라며 “채용 과정에는 노동조합 위원장까지 심사에 참석한다”고 반박했다. 딸의 입시 문제에 관해서는 “입학지원서 초안에만 쓰고 실제로는 안 썼다”며 “지원한 고교에 떨어졌으므로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는 변 후보자가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국민의힘 등 야당이 가장 날을 세우려던 대목이 이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변 후보자는 2015년 SH도시연구원장에 공간환경학회 출신 장모씨를, SH 주거복지처장과 개발사업부 사무기술전문가에 한국도시연구소 출신 서모씨와 방모씨를 앉혔다. 또 딸의 봉사경력 인정 단체는 변 후보자가 센터장을 지낸 시민단체 ‘환경정의’라는 점이 지적됐다.

공간환경학회와 한국도시연구소는 현 정부 인사가 다수 포진한 단체다. 공간환경학회에는 조명래 환경부 장관(환경정의 공동대표 출신), 김용창 국토부 주거정책심의위원(민주당 미래거주추진단 자문위원) 등이 소속됐다. 한국도시연구소에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강현수·박신영·김용창 국토부 주거정책심의위원이 속해있다. 변 후보자는 이들 단체에서 모두 활동했다.

이런 배경을 토대로 현 정부 인사들끼리의 인맥 정치를 꼬집는다는 게 국민의힘의 큰 그림이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럴 듯한 한 방은 없었다. 이들 단체를 가까이서 지켜봐 온 한 인사는 “한국도시연구소는 빈민운동에 열심이었던 고(故) 제정구 의원이 설립해 현재도 활동가 다수가 제 전 의원 철학을 많이 따른다”며 “이들이 약진할 경우 토지공개념 등 급진적 정책의 기조가 뚜렷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1가구 1주택’ 10여년 전 주장

변 후보자의 주거 철학 및 정책검증도 주요 관전 포인트였다. 그는 용적률 등 도심규제를 완화해 공급을 늘리고,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증액과 개발이익환수 등을 추진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1가구 1주택’을 골자로 발의된 ‘주거기본법 개정안’(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의 취지에 공감한다고도 밝혔다.

단연 눈길을 끈 부분은 주거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찬성 의견이었다. 이 개정안은 지난 22일 기본법으로 발의됐으며 ▲1가구 1주택 보유·거주 ▲무주택자 및 실거주자 주택 우선 공급 ▲주택의 투기목적 활용 금지를 ‘주거 정의 3원칙’으로 삼는 게 뼈대다. 국민의힘 등 보수 야당에서는 1가구 1주택 항목이 사유재산 침해 규정이라며 ‘공산주의법’이란 딱지를 붙인 상태다.

변 후보자는 “1가구 1주택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주택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취지로 법안을 만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해당 개정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나온 대답이었다. 다만 변 후보자는 “법안 자체를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며 향후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는 듯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변 후보자의 1가구 1주택 ‘신념’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다. 그는 2007년 국정 홍보사이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주택정책 1가구 1주택주의’란 제목의 칼럼을 쓰기도 했다. <주간한국>이 입수한 ‘주거불평등과 욕망의 정치’란 제목의 발제문(2008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학술대토론회 당시)에서도 그는 1가구 1주택 의견을 피력했다.

발제문은 “주택정책의 기본방향은 1가구 1주택 실현으로 설정하고 주택의 공급, 세제, 금융 등에 동일하게 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며 “부동산의 개발, 건축, 보상, 소유, 이전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은 철저히 환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공공토지 개발권을 공유화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이밖에도 변 후보자는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1세대 1주택자에 비해 높은 세율의 양도소득세가 부과될 필요가 있다”고 청문회에서 밝혔다. 또 “역세권 용적률이 평균 160%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를 300% 이상으로 높이면 저렴하고 질 좋은 역세권 주택공급이 가능할 것”이라고도 진단했다.

한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4일 먼저 임기를 시작했다. 두 사람 청문회는 이틀 전인 지난 22일 진행됐다. 23일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됐고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 재가가 이뤄졌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