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잠룡들의 대선 전초전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연합
대권 잠룡들의 운명을 가를 ‘미니 대선’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미니대선이라 불릴 정도로 정치적 주목도가 높다. 대선이 1년여밖에 남지 않았을 뿐더러 대권 잠룡으로 꼽히는 인사들이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잠룡들의 출사표가 이어지면서 서울ㆍ부산지장의 결과에 따라 내년 대선의 판도까지 흔들어 놓을 것으로 보인다. 범야권에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부산에서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박형준 국민의힘 예비후보의 부각도 눈길을 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이 곧 최종 결심을 할 태세이고, 김영춘 전 국회 사무총장은 이미 출사표를 던졌다. 새로운 변수도 등장했다. 국민의힘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온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올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갑자기 나온 김동연 카드…지도부는 “흘러간 소설” 일축
김 전 부총리는 재임 시절 여당과의 잇따른 의견 충돌이 화제가 될 정도로 소신이 강한 경제관료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개천에서 나온 용’으로 대변되는 그의 입지전적인 성공 신화는 대권잠룡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스토리’가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퇴임한 이후 국민의힘에서는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영입 1순위 잠룡군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 판세가 시간이 지날수록 여권에 불리한 상황으로 빠져들자 민주당이 역공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낌새가 노출된 것이다. 오 전 시장과의 양자대결에서도 열세를 보인 박 장관 대신 김 전 부총리를 투입하겠다는 모양새로 보인다.

원내대표를 지낸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불씨를 당겼다. 우 의원은 지난 14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김 전 부총리가) 역량이 참 대단한 분이신데 대안이 없다면 내가 검토하겠다는 얘기를 하셨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지난주 전후로 민주당의 김 전 부총리 접촉설이 떠돌았는데 이를 공개적으로 확인해준 셈이다.

자연히 박 장관의 불출마설도 여권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확실한 점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어서 김 전 부총리 카드가 현실화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당내 기반이 없는 김 전 부총리의 경선 경쟁력이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지도부는 ‘흘러간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박 장관이 불출마하고 김 전 부총리가 나올 수 있다는 그런 인과관계는 '소설 같은 이야기'라는 언급이 있었다"고 전했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연합
후보자 난립, 잠룡에겐 독
“누가 나가도 이긴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나온 농담이다. 하지만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농담이 진담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지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에서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인사만 해도 10명이 넘는다. ‘정권심판론’이 먹힐 것이라는 확신이 후보자 난립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총선 이후로 문재인 정권은 실책을 거듭해왔다. 서울ㆍ부산시장의 연이은 성추문 파문,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 사태, 부동산 실책, 백신 수급 문제 등으로 정권에 대한 민심은 싸늘해졌다. 지난해 말 여권의 40%대 콘크리트 지지율이 무너진 이후 반등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후보가 난립하는 반면 민주당 후보는 현재까지 우상호 의원이 유일한 까닭이다.

야권의 후보자가 대거 참여할수록 잠룡에겐 불리하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진흙탕 싸움이 전개될 경우 당 지지율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보 단일화 과정도 순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강상호 국민대 교수는 “네거티브는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며 “국민들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보수를 기대하고 있다”고 조언했다.

후보자 난립이 유권자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의힘 예비후보의 한 선거캠프 관계자는 “인지도만 믿고 출마하는 후보자들이 많은 탓에 정작 이길 수 있는 후보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지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의힘이 큰 코 다치게 돼 있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거세지는 안철수 ‘비토’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경우 안 대표와 오 전 서울시장이 잠룡으로 거론된다. 중량급 보수인사인 나 전 의원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잠룡들과 어깨를 겨누게 됐다. 하지만 범야권의 후보 단일화 논의는 마냥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여전히 안 대표와의 거리두기에 여념이 없다. 국민의힘 예비후보들도 안 대표에 대한 공세가 점점 거칠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7일 오 전 시장은 “안 대표가 입당 혹은 합당하지 않으면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래가 없는 오 전 시장의 ‘조건부 출마론’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출마 선언”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나 전 의원은 네거티브 공세를 시작했다. 그는 지난 13일 안 대표를 겨냥해 ”쉽게 물러서고 유불리를 따지는 사람에겐 이 중대한 선거를 맡길 수 없다“며 “중요한 정치 변곡점마다 결국 이 정권에 도움을 준 사람이 어떻게 야권을 대표할 수 있단 말이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발끈한 안 대표는 직접 역공에 나섰다. 안 대표는 지난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야권의) 단일후보 결정은 이 정권에 분노하는 서울시민들이 하면 된다”고 일갈했다. 사실상 국민의힘 입당을 거부하면서 시민후보 성격의 단일화를 재차 촉구한 것이다.

야권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대해 강상호 국민대 교수는 “야권이 판세를 잘못 읽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광역지자체장 보궐선거는 대선, 총선보다 투표율이 낮다”며 “투표율이 낮을수록 지역 조직력이 승패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후보 개인 역량과 정당 지지도는 선거 판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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