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세력과 맞선 이회창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별의 순간’을 잡으려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새 역사를 쓸 수 있을까. 1993년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이래 의회 내 정치경력 없이 대권을 거머쥔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대중적 호감을 산 이들이 혜성처럼 등장, 기성 정치 세력을 위협한 일들은 많았지만 결과는 한결 같았다. 아무도 대권에 성공한 이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윤 전 총장을 둘러싼 차기 대권의 판도는 단연 커다란 관심사다. 실패의 흑역사가 재현될지, 아니면 과거를 뛰어넘는 새로운 막이 오를지가 윤 전 총장 곁에 있는 선택지다.
‘공직자 출신’ 고건과 반기문의 한계
(왼쪽부터)반기문 전 UN사무총장과 고건 전 국무총리(사진=YTN 뉴스 갈무리)
윤 전 총장이 약 1년 남은 차기 대권에서 유력 주자로 떠오르자 다시 소환된 인물들이 있다. 문민정부와 참여정부 당시 행정부 2인자를 지낸 고건 전 국무총리와 2007년부터 약 10년 간 거대한 유엔(UN)을 이끌었던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다. 두 사람은 한때 강력한 대권 잠룡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정작 낙마의 쓴 맛을 본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이 두 사람의 전철을 밟을지가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윤 전 총장과 그들 간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직접 대권 도전 의사를 내비치기도 전에 대중적 인지도 및 지지를 바탕으로 대권 잠룡으로 부상한 배경이 그렇다. 그 다음은 공직자 출신이란 점이다.
이 가운데서도 주목되는 대목은 공직자 출신이라는 공통 분모이다. 제 아무리 유능한 공직자라도 선출직으로 나가는 일은 냉혹한 현실 정치의 세계를 감안할 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다수 의견이다. 매뉴얼로 작동하는 행정조직보다는,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암투 속에서도 대중의 감성을 파악하고 시대정신까지 제시해야 하는 정치권에서 살아남기가 훨씬 힘들다는 뜻이다.
실제로 고 전 총리와 반 전 총장은 이력과 행정 등 업무능력만으로는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고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권항대행으로서 혼란한 국면을 차분히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 전 총장은 이전 정치 지도자들이 갖지 못한 글로벌 지도자로서의 경험 자체가 큰 자산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이 같은 장점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 전 총리는 현실 정치의 벽에 가로막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불출마의 변을 통해 “현실 정치의 한계를 느꼈다”고 토로했다. 반 전 총장은 언행에서 사소한 실수를 연발하며 잇단 구설에 휩싸였다. 지하철 매표 자동발권기에 2만 원을 밀어 넣는 등의 단순한 실수를 반복한 행위로 대중적 이질감만 불러일으켰다. 결국 반 전 총장도 귀국 후 3주만에 불출마를 선언하며 두 손을 들었다.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으로 지지자들의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성 정치세력의 외곽에서부터 돌풍을 일으킨 인물들은 또 있다.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두 사람은 새 정치를 열망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정계에 입문, 대선 무대까지 밟았다. 그러나 이들은 새 정치의 구체성이 미흡하다는 지적과 함께 이른바 ‘제3세력’의 확장에 실패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윤 전 총장에게도 이 같은 변수들은 언제든 따를 수 있다. 내세울 슬로건과 프레임 등 정치공학적 계산과 대중의 호감을 얻는 전략이 치밀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윤 전 총장 역시 반짝 스타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그런 점 때문에 윤 전 총장도 멘토를 구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정책 구상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전했다.
‘발광체’와 ‘반사체’ 간극
결국 윤석열 스스로 선택이 중요
(왼쪽부터)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윤 전 총장은 이제 막 자연인 신분이 된 만큼, 그의 최종 결말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다만 윤 전 총장이 공직자 출신이라는 점 외에는 고 전 총리와 반 전 사무총장 등과 뚜렷한 차별성이 존재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문 전 대표와 안 대표와의 공통분모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견이 많다.
국민의힘의 한 원내 당직자는 “고 전 총리 등은 비록 공무원 출신이지만 입각을 통해 정부를 도왔던 만큼, 실질적으로 정치 경험이 많았지만 윤 전 총장은 정 반대로 검찰총장으로서 현 정부에 저항한 반면 정치경험은 전무하다”며 “이 두 요소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정부에 맞섰다는 게 뛰어난 정치력의 역량을 입증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부연했다.
윤 전 총장의 상징성이 집권 세력에 맞서 저항한 결기의 이미지가 크다는 점에서 그의 비교 대상은 오히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라는 분석도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현 정권과 대척점에 서 법과 원칙을 말하고,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는 상징성을 보면 윤 전 대표는 이 전 총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전 총재는 당시 제1야당의 사령탑이자 유력 대선 후보로서 보수진영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반면 윤 전 총장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 때문에 현재 제1야당인 국민의힘과 손을 잡는데 난관이 닥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이 전 총재와 달리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을 선택할 때 세력화가 어렵다는 진단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요즘 시대에 세력은 중요하지 않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민심으로, 당심도 그에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짜 관건은 윤 전 총리가 어떤 결심을 하느냐일 텐데 민주당하고는 너무 멀어졌고, 국민의힘에 가면 적폐청산 수사 이력 때문에 자기정체성을 부정한다는 모순이 발생하므로 (윤 전 총장)스스로 고심이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 전 총장이 ‘발광체’가 아닌 ‘반사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과거 문국현, 안철수 현상의 밑바탕에는 새정치에 대한 ‘희망’이 깔려 있어 그들은 발광체적 특징을 지녔었다”며 “반면 윤 전 총장은 현 정부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반사체’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윤 전 총장은 검찰에서만 경력을 쌓아 온 만큼, 다소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이미지가 구축돼 있다”며 “이는 새 정치를 기대하는 시민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경우에 따라 윤 전 총장이 야당의 대선후보까지는 될 수도 있겠으나, 실제 국가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보이려면 갈고 닦아야 할 게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