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협상 지연 배경으로 직접 언급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사진=연합뉴스 제공)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꺼내들었던 '3자 구도 필승론'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 비해 열세를 보였던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최근 상승 기세를 타면서 안 후보와의 단일화 기싸움에도 3자 구도론이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안 후보는 지난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힘과의 단일화 협상에 대해 “후보 뒤에 ‘상왕’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상왕의 의지가 3자 대결로 가는 것 같아 염려되는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 우려가 가장 크다"고 답했다.

여기에서 상왕은 김 위원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안 후보를 겨냥해 “토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은 서울시장 후보가 될 수 없다”고 비난해 야권 후보 단일화에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급기야 국민의당은 대변인까지 나서서 ‘3자 구도’를 거론하며 우려를 표했다. 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은 지난 17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김 위원장이) 최근 들어서는 3자 구도까지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하신다"며 "세간에서는 민주당에서 보낸 엑스맨이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현하는 분도 계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대변인은 이어 국민의힘측이 협상을 지연하는 모습을 겪었다면서 "(국민의힘측이) 정말 3자 구도를 염두에 두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하는 분들이 생겨났다. 그 책임을 국민의당에 전가할 공산도 크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대립구도에 대해 정치권 일각은 김 위원장의 시나리오가 작용하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유리한 시점에 협상을 시작해 자당 후보로 단일화하는 시나리오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21일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나는 안 대표에게 단일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며 “하나는 우리 당에 입당해서 단일화 하는 것, 나머지 방법은 우리 당 후보가 확정된 이후 3월초쯤 누가 적합한 후보인지 국민에게 물어서 결정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당은 김 위원장이 제시한 단일화 방법 중 두 번째 선택지대로 움직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타이밍을 놓쳤다”며 “안 후보는 자신이 우세한 지위에 있을 때 단일화를 성사시켰어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는 차기 서울시장 지지율 1위를 유지해왔다. 지난 1월 1일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각 언론 신년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일관되게 서울시장 후보 선두에 안철수 대표가 자리한다”며 안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내자고 당에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상황 변화를 주시할 뿐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과거 서울시장 선거를 처음부터 쭉 관찰해보면 여론조사가 지금 당장 높다고 해서 시장이 되는 게 아니다”라며 “당내에서 경선 과정에 있고 우리 당 후보가 한 사람으로 몰려있지 않으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 당 후보가 하나로 합쳐지면 여론조사 결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국민의힘은 계획대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경선을 치렀고 오 후보가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

연초 각종 여론조사 1위를 싹쓸이하던 안 후보는 차츰 오 후보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지난 15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간 가상대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 후보는 3자 대결에서 지지율 35.6%로 1위를 기록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3.3%, 안 후보가 25.1%로 뒤를 이었다. 양자 대결에서도 오 후보(54.5%)는 박 후보(37.4%)보다 앞섰다. 55.3%를 얻은 안 후보도 박 후보(37.8%)를 무난하게 제쳤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단일화를 하지 않더라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도 지난 1월부터 3자 구도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12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단일화 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단일화를 못 하겠다고 하면 할 수 없는 것”이라며 “그래도 (승리를) 확신한다”고 단언했다. 이 평론가는 “제1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한다면 국민의힘은 ‘불임 정당’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은 이 같은 상황을 일찌감치 대비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