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보다는 대선 대비한 야권 정계개편 나설까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범야권 서울시장 단일후보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최종 결정되면서, 정치권에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거취가 커다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일찍이 당내 후보의 서울시장 출마를 주장해온 그의 뜻이 현실화하면서 오 후보의 승리는 사실상 김 위원장의 승리라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국민의힘 차기 당권까지 거머쥐고 대선에 임하는 것 아니냐는 시나리오가 벌써부터 회자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은 “선거 다음 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갈 것”이라며 “가능성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그가 ‘추대 형식’을 거쳐 당 대표를 맡아 차기 대선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야권의 ‘정계 대재편’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최근 김 위원장이 광주를 방문한 것도 차기 대선에서 호남 민심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김 위원장이 국민의힘만이 아닌 국민의힘을 포함한 외연확대를 통해 제 3지대를 만들어 놓고 정계 개편을 통해 정권교체를 시도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선거판 ‘미다스의 손’ 입증
사실상 김종인의 승리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사진=연합뉴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김 위원장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는 올해 초부터 “3자 대결로도 국민의힘이 승리한다”, “범야권 단일화 경선에서도 우리 당이 이긴다”는 취지의 주장을 되풀이 해왔다. 그러면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향한 날선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다. 단일화를 방해한다는 당내 반발에도 개의치 않았다. 결국 지난 23일 국민의힘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오 후보는 안 대표를 누르고 범야권 서울시장 출사표를 거머쥐었다. 오세훈의 승리보다는 김종인의 승리라는 평가가 속속 나왔다.
김 위원장은 이번 서울시장 단일화 경선을 통해 선거판의 ‘미다스 손’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가다.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최근의 결과는 앞서 김 위원장을 비판했던 쪽을 민망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는 비단 김 위원장의 예측이 들어맞았다는 의미에만 그치진 않는다. 당초 국민의힘 내부의 우려와 달리 김 위원장 관측대로 당내 후보가 서울시장에 도전하게 됐다는 뜻은 남다르다. 즉, 국민의힘 자체의 역량이나 조직력이 아니라 오롯이 ‘김종인’이라는 노회한 정객의 개인기가 발휘돼 결과를 가져왔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까지 이어진다면 국민의힘 내부에 미치는 김 위원장의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차기 당권 노리는 당내 반발 세력과 거리두기?
(왼쪽부터)김무성, 이재오, 김문수 야당 원로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촉구했다.
당장 김 위원장은 차기 당권에 욕심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그는 오 후보가 단일후보로 확정된 뒤 기자들과 국회에서 만나 “오 후보가 단일후보가 됨으로써 내가 국민의힘에서 할 수 있는 기여의 90%는 했다”며 “그 외 10%를 더 해서 오세훈 시장을 당선시키면, 그것으로써 내가 국민의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궐선거가 끝난 후 더 이상 국민의힘에 남을 이유가 없다는 의미의 발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 같은 발언의 진의를 의심하는 시각도 나온다. 지난 18일 당의 원로들이 국회에 찾아와 김 위원장 퇴진을 요구한 배경 역시 이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재차 당권을 쥘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그의 퇴진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날 ‘더 좋은 세상으로 포럼(마포포럼)’ 공동대표인 김무성 전 의원과 이재오 ‘폭정종식비상시국연대’ 공동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보수야권 원로 인사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위원장이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의 걸림돌이 돼 왔다”며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가 힘을 모으게 된 자체가 차기 당권 경쟁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전언에 따르면 마포포럼 등을 포함한 ‘정권교체를위한국민행동’(국민행동) 등은 김 위원장이 계속 당내 후보를 고집해온 것을 두고 당권을 염두에 둔 행보로 의심하고 있다.(지난 2월 7일 본지 보도/'킹 메이커' 김무성, 김종인 견제 나선다)
국민행동의 한 관계자는 “이대로 간다면 초선과 재선 의원들 사이에서 김 위원장 추대론은 충분히 일 것으로 보인다”며 “이 시기 직전까지 김 위원장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는 봐야겠으나, 그를 향한 견제는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기 당권 도전자로는 김무성 전 의원과 주호영 원내대표 및 정진석 의원 등 여럿이 거론되지만 아직은 아무도 모를 일”이라고 전했다.
‘윤석열 변수’로 야권 정계재편 큰 그림 그릴까
김 위원장은 지난 24일 광주에 가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오 후보가 서울시장 단일후보로 확정된 바로 다음날이다. 이를 두고도 정치권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왔다. 보궐선거를 앞둔 만큼 호남출신 서울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던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더 나아가 차기 대선까지 고려한 일정이었다는 시선 역시 따른다.
이는 김 위원장이 더 큰 그림을 내다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거취를 두고 국민의힘 당내에서 반발하는 것을 무릅쓰고 당권을 잡기보다는 차기 대선에서 야권을 대대적으로 재편하는 일에 관심을 보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소위 ‘김종인 역할론’에 힘을 싣는 당내 세력과 국민의힘 밖 제3지대 세력이 힘을 합쳐 범야권 정계를 대폭 개편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돌고 있다.
보궐 선거의 결과와 상관 없이 과연 김 위원장의 거취가 어떻게 결정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김 위원장이 대선을 치르기 위한 국민의힘 대표직에 관심을 기울일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 탓이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