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대선주자 없는 국민의힘 갈림길
자체 후보 키울까, 윤석열 등 외부 인물 세울까

윤석열 전 검찰총장(사진=연합뉴스)
4·7 재보궐 선거 압승으로 국민의힘은 제1야당으로서 위상을 회복했다. 내년 대통령 선거까지 정당 지지율 상승세를 유지한다면 정권 교체도 가능해 보인다. 문제는 마땅한 대선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선 승리는 당의 구심력과 후보의 정치 철학으로 결정된다. 강상호 국민대 교수는 “자신만의 정치 철학에 따라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한 사람이 대선 후보로 추대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대선까지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구심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경쟁력 있는 후보를 배출해 정권 교체를 성사시킬 수 있을까. 대선은 11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승리에 도취해 있기에는 시간이 촉박해 보인다.

압승의 단초는 여당의 몰락…스스로 경쟁력 확보가 관건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한 데는 ‘정권심판론’이 작용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책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더불어민주당이 몰락을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성균관대 교수는 “국민의힘이 특별히 잘했다기보다 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를 밀어붙이는 등 독단적으로 나갔기 때문에 이 같은 선거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의힘 당내에서도 오만함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8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이번 선거 승리에 대해 "자신들(국민의힘)이 승리한거라 착각하면서 개혁의 고삐를 늦춘다면 당은 다시 사분오열하고 정권교체와 민생회복을 이룩할 천재일우의 기회는 소멸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아직 부족한 점이 투성이"라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내부분열과 반목"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권교체는 요원해진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주호영 원내대표 역시 같은 날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은 국민의힘이 잘해서, 예뻐서 지지한 것이 아니다. 민주당과 정권이 워낙 민심과 어긋나는 폭정을 해 심판한 것"이라며 "승리에 도취하지 말고 정신 차리고, 낮은 자세로 열심히 하라는 충고, 겸손하라는 충고를 받았다"고 의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당내 초선의원들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결코 우리 당이 잘해서 거둔 승리가 아니다”라며 “우리의 승리가 아닌 문재인 정권의 패배”라고 이번 선거를 평가했다.

이에 대해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대선은 전국 단위의 선거이기 때문에 서울과 부산에서 치러진 보궐선거와는 결과가 다를 수 있다”며 “현재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대선 때도 높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보궐선거 승리만으로는 대선 승리를 도모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범야권 정계 개편이 필요하다”며 “헤쳐모여식 통합신당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정당 지지율에 윤석열 지지율, 안철수 지지율을 더하면 차기 대선의 승리를 도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승민, 원희룡 기지개…홍준표는 복당 기회 잡아
국민의힘은 두 갈래 길에 놓여있다. 야권 인사로 분류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영입할 것인지, 당내 인사를 대선 후보로 배출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현재 야권의 차기 대선 후보군의 지지율은 바닥 수준에 머물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했던 윤 전 총장의 지지율도 최근 하락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5~7일 실시한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18%로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로 24%의 지지율을 보였다. 1위와 2위의 격차는 6%포인트다. 그밖에 국민의힘 소속 차기 대권주자들의 지지율은 매우 저조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3%, 유승민 전 의원이 2%,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0%로 뒤를 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일찍이 대권 도전을 선언한 유 전 의원은 최근 들어 몸풀기를 시작하며 대선 주자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좋아하는 술과 담배도 끊었다면서 결의를 보이기도 했다. 유 전 의원은 지난 8일 김무성 전 의원이 이끄는 마포포럼에 강연자로 나서 “지금의 지지도가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남은 11개월간 국민이 어떤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지 생각할 기회가 있을 텐데 재보선을 계기로 지금부터 제 생각을 열심히 알리면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윤 전 총장과 황교안 전 대표, 홍준표 무소속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모두) 다 검찰 출신이 대선 주자인 상황에서 경제와 안보, 복지 등 민생 문제에 대안을 갖고 계획할 수 있는 후보는 저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원조 소장파 중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로는 원 지사가 있다. 원 지사는 3선 의원이자 재선 도지사로, 정치와 행정 능력을 모두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인지도에 비해 지지율은 낮은 편이다. 지난해부터 각종 현안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꾸준하게 내고 있지만 지지율 반등 효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야권의 유력한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향후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홍 의원은 불편한 관계였던 김 전 위원장이 물러남에 따라 복당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복당 이후 대선 후보였던 경쟁력과 특유의 추진력을 앞세워 재기를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앞서 홍 의원은 복당을 위한 분위기 모색에 나섰다. 김 전 위원장을 향해 보궐선거 승리의 공적을 높이 산 것이다. 홍 의원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록 노선은 달랐지만 총선 참패 이후 혼란했던 당을 수습하고 양대 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그분의 역량은 대단했다"면서 김 전 위원장을 향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건강 유의하시고 재충전하신 후 다시 대한민국을 위해 일해 주실 것을 믿어 마지 않는다”는 덕담도 남겼다. 복당 이후 대권 경쟁에 대비해 김 전 위원장에 화해의 여지를 남기는 듯한 모양새를 보인 것이다. 홍 의원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잡음이 생기자 "김종인의 몽니”, “제발 좀 빠지라”며 김 전 위원장을 향해 날을 세운 바 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