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보다는 실용…MZ세대의 표심 ‘파급력’ 확인

지난 3일 서울역에 마련된 서울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30세대,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우리나라 선거 공식을 깨뜨려버렸다. 2030세대는 진보에 가깝다는 것이 한국사회의 통념이었다. 전체 투표율이 높아질수록 2030세대의 투표율이 증가해 보수 정당에 불리하다는 일반화된 공식도 존재했다. 2030세대와 40대의 동조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도 우리나라 선거의 특징 중 하나였다.

이 같은 고정관념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4·7 재보궐 선거에서 MZ세대는 선거판을 좌우하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MZ세대는 1980년~90년 중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를 가리킨다. 이들은 한국 정치를 양분해왔던 지역주의나 진영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특정 정당,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투표권 행사를 통해 정권을 심판하는 새로운 세대가 탄생한 것이다.

앞장 서 세운 촛불정권, 직접 심판한 MZ세대
일시적인 반란이었을까. 2030세대, 이른바 MZ세대의 민심이 뒤집어졌다. 불과 4년 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킨 주역은 MZ세대였다. 지난 7일 투표직후 발표된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를 보면 20대의 47.6%, 30대의 56.9%가 문 후보에게 투표했다. 하지만 올해 4·7 재보궐 선거 결과는 달랐다. MZ세대의 표심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특히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의 수장을 뽑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의 55.3%, 30대의 56.5%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은 95% 신뢰수준에 허용오차 ±1.7%포인트, 부산은 95% 신뢰수준에 허용오차 ±2.3%포인트)

MZ세대의 표심은 변동폭이 큰 만큼 영향력이 상당하다. 정치권이 MZ세대의 표심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들은 이슈에 따라 자기 목소리를 낼 뿐 무조건 특정 정당, 특정 인물을 지지하지 않는다. 촛불 정국 때 당시 문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해서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도 반드시 민주당을 선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백경훈 하우스(정치문화플랫폼) 사무국장은 “MZ세대를 기존 보수·진보 프레임으로 해석하면 안된다”며 “MZ세대의 정치적 판단에는 실용주의 성향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MZ세대는 민주당에 등을 돌린 것일까. 이번 선거는 ‘미니 대선’, ‘대선 전초전’이라 불릴 만큼 정권 심판의 성격이 강했다. 양당의 청년 당원들은 민주당의 패배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백 사무국장은 “이번 선거는 집권여당의 위선, 무능, 내로남불이 축적된 결과”라며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전세값 과다인상 논란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은 쌓여 있던 분노가 표출되는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현태 민주당 서초을 청년위원회 부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인해 무너진 국가의 헌정질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조국 사태, 윤석열 사건 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현 정부 및 민주당이) MZ세대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며 “당헌·당규를 바꾸면서 서울·부산 시장 후보를 냈던 것 역시 패착이었다”고 지적했다.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떠오른 MZ세대, 향후 대선 주도권 잡아
물론 이번 선거에서 MZ세대가 국민의힘을 선택했다고 해서 다음 대선에서도 국민의힘에 투표하리란 보장은 없다. 백 사무국장은 “MZ세대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이지 국민의힘을 지지하게 된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김재섭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도 “이번 선거 결과로 MZ세대가 국민의힘을 온전히 지지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이 합당과 전당대회로 씨름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만일 문 대통령의 임기 후반 레임덕이 심화돼 대통령 탈당 사태로 혼란이 이어진다면 국민의힘의 골든타임은 더 연장될 수도 있다. 그에 앞서 국민의힘은 MZ세대의 견고한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백 사무국장은 “MZ세대만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면 다른 세대와의 공평성에 어긋난다”며 “정당이 지지층을 ‘갈라치기’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정당을 표방해야 한다”며 “이번 전당대회에서 MZ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개혁적인 인물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MZ세대가 ‘공정’, ‘정의’ 등의 가치에 따라 움직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비대위원은 “MZ세대는 부조리에 항거하고 불공정을 비판하는 세대”라며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정치인,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덕목들을 실천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우선시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MZ세대를 위한 한두 가지 정책만으로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며 “그들의 의견을 대변할 인물이 당 지도부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현상은 MZ세대가 독자적인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정치 세력으로 부각됐다는 점이다. 기존에 같은 진영으로 분류됐던 범민주 및 진보연합 대오에서 탈이념ㆍ탈진영 현상이 가속되면서 자기 생존을 위한 세포분열이 가시화된 것이다. 1년도 채 안 남은 대선에서도 이들 MZ세대의 표심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MZ세대가 여야를 뛰어넘는 ‘심판론’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이 새로운 정치구도를 만들고 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