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앞세워 야권 정계개편 주도 시도하나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을 떠나서도 연일 독설을 퍼붓고 있다. 김 위원장이 국민의힘을 ‘아사리판’, ‘흙탕물’ 등에 비유하며 거친 말을 쏟아내자 국민의힘을 향한 ‘모두까기 인형’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정치권에서는 김 전 위원장의 이어지는 독설을 특유의 정치행보로 풀이하는 시각이 많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야권 개편의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 아니겠냐는 것이다. 특히 김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잇단 호평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윤 전 총장을 지렛대로 삼아 대선 정국의 판을 짜려고 한다는 분석이 잇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마디씩 ‘툭툭’…국민의힘은 ‘들썩’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사진=연합뉴스)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을 떠났지만 존재감은 그대로다.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따금 내던지는 말들이 국민의힘을 뒤흔들어 놓는다. 사실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을 떠날 때부터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8일 퇴임사에서 그는 “지난 1년 간 국민의힘은 근본적인 혁신, 변화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아직 부족한 점 투성”이라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내부분열과 반목”이라고 말했다. 또 “민생 되찾을 수권 의지는 없고 당권에 오로지 욕심에 부리는 사람 아직 국민의힘 내부에 많다”고 지적했다.
이때까지는 김 전 위원장의 말을 국민의힘을 위한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그 뒤로 갈수록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재보궐선거가 끝난 지 6일 후인 지난 13일 <매일경제>와 인터뷰를 한 그는 국민의힘을 ‘아사리판’에 빗대면서 “의원들의 입법활동이 전혀 안 보인다”며 “국민의힘으로 대선을 해볼 도리가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지난 20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특정 의원들을 직접 거론하며 거친 말들을 내뱉었다.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겨냥해 “안철수 서울시장 만들려고 뒤에서 안철수와 작당한 사람”이라고 저격했다. 또 장제원 의원을 “홍준표 의원의 꼬붕”으로 비하했다. 앞서 장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을 ‘노욕에 찬 기술자’라고 비판한 바 있다.
특히 윤 전 총장 관련 발언을 할 때에 국민의힘을 향한 비판 수위가 높았다.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 등을 묻는 질문에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들어가 흙탕물에서 같이 놀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며 “백조가 오리밭에 가면 오리가 돼버리는 것과 똑같은 게 된다”고 비유했다.
국민의힘 일부 인사들은 발끈했다. 장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김종인 꼬붕이 아니라 자랑스럽다”며 김 전 위원장을 ‘노태우 꼬붕’이라고 응수했다. 김 전 위원장은 노태우 정권에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대위원장은 하루 뒤 <한국일보>와 전화에서 “(김 전 위원장이)어린 애 같다”며 “어른스럽게 얘기하라”고 했다.
尹 향해 사실상 ‘원 포인트 레슨’
마크롱 모델도 제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사진=연합뉴스)
이처럼 거친 독설 행보가 이어지자 정작 김 전 위원장의 속내가 무엇인지를 놓고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하다. 정치권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차기 대선에서 야권발 정계개편을 직접 주도하기 위해 분위기를 조정하면서 갈라치기에 나서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 중심에는 윤 전 총장의 존재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관측이 대다수다. 김 전 위원장이 정계 개편을 통해 윤 전 총장의 킹메이커로 나설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에 대한 ‘원 포인트 레슨’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다. 국민의힘을 흙탕물에 비유하면서 지금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일축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특히 지난 19일 과의 인터뷰에서는 윤 전 총장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모델로 해야 한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마크롱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특정 세력에 속하지 않고 줄곧 ‘중도주의’를 표방한 인물로 유명하다. 대선 직전 ‘낡은 정치 타파’를 기치로 한 정당 ‘앙마르슈’의 조직을 주도, 중도 성향 정치인들을 결집시켜 집권에 성공했다. 이에 비춰 김 전 위원장의 마크롱 발언 역시 윤 전 총장을 중심으로 한 중도세력을 구축하는 모델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은 제3지대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한때 금태섭 무소속 전 의원이 주도하는 제3지대 신당에 참여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지난 16일 금 전 의원과의 조찬 회동 이후 제3지대 불가론을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의 선택지로 거론될 수 있는 국민의힘과 제3지대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면서 사실상 만류하는 모양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김 위원장이 국민의힘 초선의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전 위원장은 최근 국민의힘 당권 경쟁과 관련해 “당이 근본적으로 변하려면 차라리 초선을 당 대표로 뽑는 게 대선을 위해서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초선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쇄신과 재보궐 승리의 일등공신이 김 전 위원장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배경에서 김 전 위원장의 지원사격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권의 정계개편의 동력으로 국민의힘 초선의원들과 이해관계가 맞는다면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당내 주류와 대립각 세운 56명 초선들이 변수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이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최근 국민의힘 내부가 김 전 위원장의 영입 전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는 듯한 양상도 심상치 않다. 김 전 위원장의 자리가 비워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박근혜 탄핵’ 부정론이 대두되고 전직 대통령 사면론이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최다선인 서병수 의원(5선)이 불을 지폈다. 그는 지난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저를 포함해서 많은 국민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잘못되었다고 믿고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될 만큼 위법한 짓을 저질렀느냐”고 일갈하면서 촉발됐다.
서 의원의 이 같은 주장은 당내는 물론 지지층에도 분열을 일으켰다. 주 대표 대행이 “개인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으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김종인이 떠나니 도로한국당이 됐다’는 식의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그렇다 보니 김 전 위원장이 앞으로도 국민의힘 내부 갈등을 부추길 것이란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당권 경쟁에 돌입한 국민의힘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문제 등을 놓고 당내 주류세력과 초선의원들 사이에 분열이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TK) 등 영남 지역 기반의 정당 탈피 등을 촉구한 초선 의원들과 이 지역에 기반을 둔 기존 주류세력 간의 갈등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전체 의원 102명 중 절반이 넘는 56명이 초선이다. 김웅 의원을 필두로 초선들이 당 대표 경선에 실력행사를 하고 나선 것도 그 연장선이다. 이를 두고는 국민의힘이 소위 ‘강경보수’의 체제를 이어갈지, 2030청년세대를 비롯한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할지 갈림길에 놓였다는 지적도 따른다.
이와 관련 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은 김 전 위원장의 잇단 ‘독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 2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 전 위원장이 딱 필요한 메시지를 던졌기 때문에 당을 흔들 수 있었던 것”이라며 “내부총질한다고 할까 봐 차마 말을 못했지만 김 전 위원장이 당을 나간 다음 정확하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