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참패 반성은 뒤로 하고 생존 위한 편가르기 답습
여당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자들 사이의 해묵은 ‘친문-비문’ 계파 갈등으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반면 야권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국민의힘 입당과 관련해 국민의힘 내부에서 벌써부터 ‘친윤-비윤’이라는 새로운 계파 갈등이 노출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 더불어민주당은 4.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뒤 국민을 향해 고개를 숙인 교훈을 잊은 듯하다. 여야는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와 뼈를 깎는 쇄신을 약속했지만 공염불에 그친 채 ‘그들만의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민주, ‘원팀’ 강조했지만 ‘이재명-이낙연’ 충돌 여전
‘이재명-이낙연’ 양강 구도가 이어진 민주당의 대선경선 구도는 당이 중재에 나설 정도로 두 진영이 거세게 충돌하고 있다. 특히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향한 네거티브전이 가열되면서 이 지사측도 맞대응에 나서기 시작해 혼탁한 양상이 펼쳐지는 중이다.
민주당의 예비경선판을 뒤흔든 이 지사의 ‘바지 발언’이후 ‘영남 역차별’, 백제가 동원된 ‘영남 역차별’ 등의 논란이 이 지사의 공격 메뉴가 됐다. 이에 따라 각 진영은 상대방의 징계를 요구하는 등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지사는 지난 26일 문제의 백제 발언이 담긴 인터뷰 녹음파일 전체를 공개한 뒤 이낙연 전 대표를 향해 “지역감정을 누가 조장하느냐”고 반박했다.
이 지사측 캠프 수석대변인인 박찬대 의원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 전 대표를 겨냥하면서 “도둑을 잡았더니 ‘담장이 낮아서 자기 잘못이 아니다’라며 집주인에게 성내는 꼴”이라며 “늦기 전에 이낙연 후보가 직접 나서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고 역공에 나섰다. 박 의원은 또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낙연 캠프에서 낸 논평을 취소하지 않으면 우리도 여러 가지 취할 조치가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개인 의견을 전제로 당에 징계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이 전 대표도 직접 반격에 나섰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맥락이 무엇이든 그것이 지역주의를 소환하는 것이라면 언급 자체를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정체성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일갈이다. 이 전 대표 캠프측도 당 지도부에 징계 등의 조치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 지사는 지난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논란을 들어 이 전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전 대표의 탄핵 표결 논란과 관련해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게 문제”라며 “똑 같은 상황에서 이중플레이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없는 사실을 지어내거나, 있는 사실을 왜곡해 음해학 흑색선전하면 안 된다”며 “친인척, 측근, 가족 등 부정부패는 국민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 전 대표를 향한 의혹을 내비치기도 했다.
급기야 당 지도부가 나서 지난 28일 6명의 경선 후보들의 ‘원팀 협약식’을 갖고 선의의 경쟁을 촉구했다. ‘이-이’ 두 후보의 충돌이 위험수위에 이르자 네거티브 공방을 지양하고 정책 개발 협력에 뜻을 모으자는 취지를 내세웠다.
하지만 원팀 협약을 가진 같은 날 저녁 MBN과 연합뉴스TV의 경선 첫 토론회에서 이 지사와 이 전 대표의 신경전은 계속 이어졌다. 표현 수위를 애써 조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상대방에 대한 기존 의혹제기와 논란을 공격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야권도 편가르기 현상이 진행되면서 갈등 양산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윤 전 총장이 불씨를 당겼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전직 의원과 전현직 당직자를 대거 캠프에 영입한 것이 발단이다.
국민의힘 입당 후 입지를 다지고 있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측이 포문을 열었다. 최 전 원장 캠프에서 상황실장을 맡은 김영우 전 의원은 지난 27일 TBS 라디오에서 “언제 입당할지 알 수 없는 당 밖 주자의 캠프에 당협위원장들이 간 것은 원칙을 어긴 일”이라며 “욕심이 과했다”고 쏘아붙였다. 이는 윤 전 총장이 입당을 지연시킨 채 몸값 올리기에 열중하는 과정에서 당내 인사들의 지원을 받는 모양새가 불공정하다는 문제 의식에 따른 것이다.
최 전 원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대출 의원은 “정당 정치의 기본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윤 전 총장을 비판했다. 대선주자인 하태경 의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당사자들이 유감 표명과 당직 자진사퇴로 결자해지하고 수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은 30일 전격적으로 국민의힘 입당을 선언해 사실상 징계 절차를 밟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문제는 윤 전 총장의 입당 후 당내 대선주자들 진영의 내홍이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 전 총장 캠프에 참여한 일부 인사들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같이 일한 점을 지적하면서 ‘김종인 배후설’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김종인-윤석열’ 조합으로 당내 다른 대선 주자들을 갈라치기 할 수 있다는 의구심이 그 배경에 깔린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도 친윤-반윤 구도가 형성됐다. 홍준표 의원과 친분이 깊은 배현진 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당내 주자들에 대한 형평성 문제나 시비 논란이 없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승민 전 의원측도 언론 매체 등을 통해 윤 전 총장의 행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반면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윤희숙 의원은 윤 전 총장을 방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 지사는 “윤 전 총장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비판하면 그게 자가당착”이라고 했다. 윤 의원도 “윤 전 총장을 견제하거나, 입당을 압박하거나, 이에 반발해 분열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원 지사와 윤 의원은 각각 윤 전 총장과 식사를 같이 한 공통점이 있다.
지난 29일 국민의힘 대선주자 11명이 처음으로 모인 자리에서도 윤 전 총장을 둘러싼 공세가 이어졌다. 당사에서 소집한 ‘대선 경선후보 간담회’에서다.
유 전 의원은 작심한 듯 경선 과정에서 후보자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당에서 검증위원회를 만들어 이명박·박근혜 후보에 대한 검증을 직접 했다”며 “그렇게 치열하게 검증을 하고 나니 본선에서 이기는 게 굉장히 쉬었다”고 말했다.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와 안상수 전 인천시장은 윤 전 총장을 겨냥해 계파 정치의 부활을 우려하는 주장을 펼쳤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