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중도층 선택에 달린 대선 승부…여야 모두 중도확장성에 한계 드러내

윤석열-최재형의 보수행보…국민의힘 중도확장성 위태로워

‘강성 친문’과 손잡는 이재명-이낙연…중도층 외면으로 본선 경쟁력 차질

야권 대선 선두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말했던 ‘경선버스 출발일’인 오는 30일보다 훨씬 빠른 것이고, ‘윤석열-이준석’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지난 2일 예정일보다도 앞당겨진 것이었다. 윤석열의 입당을 촉구해왔던 이준석조차도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다”고 토로할 정도로 그의 입당은 번개처럼 진행됐다.

무엇이 그렇게 윤석열로 하여금 입당을 서두르게 한 것일까. 후문에 따르면 이미 윤석열-이준석 사이에 ‘8월 2일 입당’에 대한 소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일정에 보안이 새나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김이 빠져버렸다. 윤석열에게는 입당 일자를 묻는 질문이 연일 이어졌고, 대체 언제냐는 피로증이 유발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들어갈 것, 공연히 시간을 끌 상황이 아니라고 윤석열은 그날 새벽에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그런데 타이밍이 좋지는 않았다. 마침 윤석열 지지율이 하락하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던 무렵이었다. 당 밖 제3지대에서 지지층을 더 넓혀서 대선판을 주도할 힘을 과시하며 입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율 하락의 긴급 피난처를 찾아 서두른 것 아니냐는 시선을 받게 됐다. ‘호랑이인줄 알았더니 고양이더라’는 얘기까지 나오게도 됐다.

예상보다 빠른 윤석열의 국민의힘 입당은 당 밖에서 중도층과 탈민주당층 지지를 얻은 이후에 입당을 하든, 야권 후보단일화를 하든, 자신이 판을 주도하며 선택하려던 구상이 일단 실패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그런 선택지를 열어놓고 가기에는 이미 윤석열 자신이 너무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진영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한 후보로 평가받았다.

출마 선언 이후 그는 연일 천안함과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을 말하며 우향우 행보를 보여줬지만, 정작 중도층과 탈민주당층이 매력을 느낄 만한 콘텐츠를 보여준 것은 거의 없었다. 아무리 “중도층과 탈진보층의 지지를 얻어 압도적 승리를 거두겠다”는 다짐을 입으로 한들, 행동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한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실망하기 시작한 중도층들은 “여기도 아닌가 봐”라는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만큼 지지율은 하락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윤석열을 무너뜨리려는 여당과 그 지지자들의 공격은 거세졌다. 민심에 부응하는 쪽으로 방향만 제대로 잡고 있다면 그까짓 거두절미된 ‘부정식품’ 동영상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지하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거리를 두고 관망 모드로 들어간 상황에서는 조그마한 악재에도 크게 흔들릴 수 있는 것이 대선판이다.

이제 관심은 ‘윤석열은 국민의힘 입당에도 불구하고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확장성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로 향한다. 다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에 들어간 중도층 향배는 대선정국의 승부를 가르는 최대 변수가 되고 있다. 사실 국민의힘 입당 이후 중도층 향배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윤석열 자신일 것이다. 그동안 국민의힘 입당에 유보적인 태도를 유지해왔던 것은 국민의힘에 대해 비호감 정서를 갖고 있는 중도층 이탈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 점을 의식한 윤석열은 “보수와 중도, 진보를 아우르는 빅텐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중도나 진보에 계신 분들과 어떤 교감이나 양해, 상의도 없이 전격적으로 국민의힘에 입당을 했다”면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나라의 정상화를 바라는 많은 국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올바른 생각이란 판단에 예상보다 좀 더 일찍 입당을 하게 됐다”고 자신이 전격적으로 입당을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래서 입당하면서도 “외연 확장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던 그는 실제로 중도확장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입당 다음 날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잇따라 만났다. 알다시피 두 사람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윤석열에게 국민의힘 조기 입당이 좋은 선택지가 아님을 말해왔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 인물들을 윤석열이 입당 직후에 만난 것은, 그들의 생각을 껴안고 함께 가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다.

하지만 입당을 결심한 윤석열의 판단이 무엇이든, 야권 후보단일화라는 대형 이벤트가 사라지게 된 것은 야권으로서는 큰 손실이다. 거대 정당 후보와 제3지대 후보의 단일화 과정이 가져올 시너지 효과는 우리 선거에서 여러 차례 나타난 바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단일화를 성사시킴으로써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노무현은 판세를 일거에 반전시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양보 압력을 받던 오세훈 후보가 역전극을 펼치며 서울시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오세훈-안철수’ 야권 후보단일화 덕분이었다. 김종인이 윤석열에게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것보다 오는 11월에 후보단일화를 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 이유도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윤석열은 그때까지 버텨낼 힘이 없음을 스스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 윤석열에게 입당 이후 지지율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중대한 관심사였다. 그런데 그의 입당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일단 지지율이 반등한 ‘입당 효과’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7월 30∼31일 18세 이상 남녀 1013명에게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그림1 참조)를 물은 결과, 윤석열은 32.3%로 전주보다 5.4% 포인트 올랐다. 이재명이 1.4%포인트 오른 27.4%를 기록했으니, 윤석열은 2주 만에 30% 대를 회복하며 이재명과 격차를 0.9% 포인트에서 4.9% 포인트로 벌렸다.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데 따른 ‘컨벤션 효과’가 보수층 호응을 받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윤석열도 우려했던 입당 후 중도층 이탈은 여론조사에서 아직 특별히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입당 후 지지율 하락 여부에 대해 노심초사했던 윤석열로서는 일단은 안도할 상황이다. 하지만 중도층 이탈 가능성에 대한 불안은 윤석열에게 여전히 남아있다. 그 불안이 해소되고 있지 않은 일차적 원인은 처가 리스크도, 쥴리 벽화도 아니요, 윤석열 본인 리스크다.

사실 그의 가족들을 둘러싼 네거티브 의혹 공세들 영향은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모 최모 씨에 대한 1심 선고와 구속은 연좌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국민정서 덕분에 비교적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쥴리 벽화 파문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힘이 6주 만에 지지율이 반등하며 민주당을 앞지르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7월 26∼30일 전국 18세 이상 2525명에게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도가 전주보다 1.5% 포인트 오른 35.2%로 집계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민주당은 1.5% 포인트 내린 33.6%로 조사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홈페이지 참조)

이러한 지지율 변화는 윤석열 입당이 조사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 쥴리 벽화를 둘러싼 논란의 영향인 것으로 분석된다. 쥴리 벽화에 대한 비판적 여론, 민주당의 소극적 대처에 대한 실망 등이 작용하면서 오히려 야권에게 유리한 여론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결국 윤석열에게 있어 장모 리스크나 쥴리 리스크는 미미하거나 오히려 유리한 여론 지형을 만들어주고 있다. 오히려 윤석열에게 심각한 문제는 다름 아닌 윤석열 리스크다. 그가 거침없이 쏟아내는 말들은 연일 논란거리가 되곤 한다.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7월 8일, 스타트업 대표들과의 대화)

“코로나19가 대구에서 시작됐기에 잡혔다. 다른 지역이었으면 질서 있는 처치가 안 되고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 (7월 20일, 대구방문)

“프리드먼은 ‘그것(퀄리티)보다 더 아래라도, 완전히 먹어서 사람이 병 걸리고 죽는 것이면 몰라도, 부정식품이라고 하면 그 아래라도 없는 사람은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7월 19일, 매일경제 인터뷰)

“페미니즘이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 남녀 간 건전한 교제 같은 것도 정서적으로 막는다는 얘기도 있다.” (8월 2일, 국민의힘 초선 의원 모임)

물론 문제의 발언마다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 큰 문제라 하기 어려운 내용의 것들이긴 하다. 말 실수만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한 여당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의 말 꼬리 잡기와 과장된 해석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정치인이 자신의 진의를 참모들의 입을 통해 다시 설명해야 하는 화법은 분명 문제가 있다.

정치인은 따로 번역기나 해설가가 필요하게 말을 하면 안 된다. 거두절미한 상대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럴 소지 자체를 주지 않는 것이 정치인의 능력이다.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들리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게 말해야 하고, 말이 꼬이면 바로 그 자리에서 스스로 발견하고 정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에게는 그것이 없다.

윤석열은 ‘시무7조’ 조은산 씨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은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과 같은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맞아가면서 KO승을 노리다가 도중에 먼저 쓰러지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생각할 일이다. 잇따른 발언 실수들로 인한 비판들이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맷집이 좋은 정치인은 없다. 앞으로 유의하겠다고 했으니 달라지는지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윤석열에게 말 실수보다 뼈아픈 것은 방향 자체에 관한 것이다. 윤석열이 확장성을 갖겠다면 국민의힘보다 왼쪽에 서는 것이 맞다. 그래야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 층의 지지까지 얻는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윤석열이 서 있는 위치는 국민의힘보다도 오른 쪽이다. 그 지대는 이미 국민의힘 이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는 곳이다.

어차피 국민의힘 후보를 찍을 사람들을 위해 중도 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멀게 만드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은 이제 프리드먼 얘기는 그만 하는 게 낫다.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집 하나 사고 파는 데도 깨알같이 ‘감시 아닌 감시’를 받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설파하는 것도 의미는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코로나 시대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나 삶의 위기 같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는 없다.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이라면 이제는 프리드먼 얘기는 줄이고, 사회적 약자들도 함께 껴안고 가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자신이 말하는 확장성을 갖는 길이다. 입당 이후에도 윤석열의 행보에서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전해지지 않는다. 프리드먼 얘기의 반의 반만 하더라도 균형의 추는 가능해질 수 있다.

대선까지의 시간은 아직 무척 길게 남아 있다. 여야 불문하고 판이 몇 번이나 출렁일지 알 수 없는 시간이다. 윤석열이 자신이 드러내고 있는 문제들을 직시하고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당장 몇 달 뒤 그의 위치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중도층이 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이상으로 윤석열에게 절박한 과제는 없다.

대선 출마 선언하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 (사진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제공)
지난 4일 출마선언을 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윤석열 이상으로 오른 쪽에 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장 경제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 ‘노조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 ‘확고한 한미동맹을 축으로 한 안보 태세 구축’,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평화통일’을 말하던 그는 마침내 “우리나라 대통령 중 헌법 가치를 가장 잘 지킨 대통령은 건국의 기초를 놓았던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말로 이어졌다.

사사오입 개헌과 4.19의 역사조차 잊은 듯한 그의 말은 말실수가 아닌 확고한 신념이었다. 가족들이 모여 애국가 4절까지 부르는 사진을 굳이 홍보용으로 방출한 캠프의 신념이 비로소 이해될 수 있었다. ‘파도파도 미담’만 알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강한 우파적 가치를 추구하는 최재형의 모습이 무척 낯선 것이었다.

국민의힘 밖에 있던 유력 주자들이 당에 부족했던 중도확장성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힘보다 더 오른 쪽에 위치하는 상황은 국민의힘으로서도 곤혹스러울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4.15 총선 참패와 올해 4.7 재보선 압승을 거치며 중도확장성이 선거 승패를 좌우함을 깨달은 모습이다. 그런 국민의힘에게는 윤석열과 최재형이 예상보다 강한 보수성을 드러냄으로써 자칫 중도층이 등을 돌릴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게 될 법하다.

물론 중도확장성에 대한 고민은 민주당 대선 주자들에게도 해당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든 이낙연 전 대표든 누가 대선 후보가 된들, 중도층 지지를 얻는 본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대선 승리가 불가능함을 자신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송영길 대표가 들어선 이후로 ‘친문’(친문재인) 일색의 당에서 탈바꿈하려는 모습도 민주당이 그저 ‘친문당’으로 인식되어서는 대선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위기의식의 결과물이었다.

그가 선도한 부동산 세금 완화, 강성 지지자들을 향한 ‘대깨문’ 비판 등도 확장성 없는 친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군분투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친문들의 사고나 정서를 거슬리는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송 대표도 비난과 공격의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강성 지지자들이 권리당원의 중심이 돼 있는 민주당 구조에서 좀처럼 넘어서기 어려운 일이다.

확장성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은 민주당의 구조적 한계는 민주당 대선 주자들에게 딜레마의 상황을 조성한다. 당내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친문과 손잡아야 하고, 본선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친문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딜레마가 그것이다. 당장 이재명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는 친문이 아니라는, 오히려 친문들이 비토하는 후보라는 점에서 중도층의 지지를 적지 않게 받아왔다.

희한한 것이 이재명 역시 민주당 주자임에도 그가 정권을 잡으면 정권교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이재명 정부’를 문재인 정부의 연장으로 생각하지 않는 반응들이었다. 이재명은 문재인과는 다르다는 인식은 그가 여당 선두 주자로 올라서는데 큰 힘이 되었지만, 당장의 경선 승리를 위해서는 친문과 손잡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들어 이재명이 박주민, 이재정 의원 등 ‘강성 친문’들과 이근형 기획단장을 캠프에 영입한 것도 친문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임을 보여주려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강성 친문들에 둘러싸인 이재명의 모습이 내년 3월 본선에서 어떤 방향으로 작용할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 전 대표의 경우는 ‘친문 리스크’에 보다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다. 그는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지라, 여권에서는 본선에서 중도층 지지를 확장하기에 좀 더 나은 인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낙연에게는 태생적인 ‘친문의 굴레’가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구속 수감을 앞두고 있을 때, 이낙연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김경수가 “대통령을 부탁드린다. 잘 지켜달라”고 당부하자, 이낙연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대통령을 잘 모시겠다. 잘 지켜드리겠다”고 답했다. 단지 인사치레의 말로만 들리지 않는 것이 실제로 이낙연은 퇴임 후의 문재인 대통령을 가장 잘 지켜줄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물론 친문으로 분류됐던 당내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재명 캠프로 몸을 실었지만, 그래도 이낙연은 여전히 다수의 친문들이 밀어주고 있는 후보다. 문재인 정부의 총리 자리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게 된 이낙연은 문 대통령과의 정치적 의리를 저버릴 수 없는 처지다. 굳이 말로 다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이낙연에게 문 대통령은 지켜줘야 할 존재임에 분명하다. 이는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기가 어려운 이낙연의 태생적 딜레마다.

여야 유력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이재명 경기지사.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입당으로 비게 된 제3지대 공간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거취도 변수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사이의 통합 협상이 무산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당 쪽에서는 안철수 독자 대선출마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민의힘에 흡수통합돼 존재감을 상실하느니, 일단은 안철수의 힘이 살아있음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물론 안철수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 몇 % 정도의 지지율은 나올 것이니, 야권표의 분열을 막기 위한 통합 협상이 추후에 재개된다면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로서는 당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당헌까지 고쳐가며 야권 분열을 초래한다는 야권 지지층의 비판에 직면할 것이고, 선거만 있으면 나간다는 시선을 받을 수도 있어 쉬운 선택은 아니다.

안철수 이상으로 주목할 인물은 김동연이다. “진영과 이념으로 나눠진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그는 말 그대로 중도층이 매력을 가질 만한 제3지대형 인물이다. 진보와 보수 간 진영 대결에 식상해 그런 정치를 극복할 인물을 기다리는 중도층에게 과연 김동연이 얼마나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다만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이미 진영 대결로 압축된 선거구도에서 자기 혼자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그의 한계다. 대선판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대표하는 진영 간 대결로 굳어질수록 그 밖에 있는 중도 성향 후보들이 힘을 받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다. 다만 이들은 박빙의 판세에서라면 승부를 가르는 캐스팅 보트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선은 언제나 중도층 지지를 누가 더 받는가를 겨루는 대결이다. 어떤 후보든 ‘집토끼’ 지지만으로는 이길 수 없고, ‘산토끼’ 지지까지 얻어야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대선의 승부를 가르는 것은 결국 ‘스윙 보터’(swing voter)라고 불리는 중도층이다.

이들은 어떤 정당이나 인물에 대해서도 고정적인 지지나 반대를 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지지와 반대 의사를 드러낸다. 그래서 정당들에게는 가장 까다로운 존재이면서, 가장 긴장하게 만드는 층이다. 선거마다 승부를 가르는 열쇠를 쥐고 있는 중도층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진영 이해를 넘어서는 더 나은 정치를 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 전쟁’이라는 책에서 미국 진보세력이 선거에서 실패하는 이유를 프레임 부재와 실패에서 찾고, 도덕성과 진정성을 무기로 프레임을 재정비하라고 조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진보 진영 후보자는 중도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흔히 약간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성을 잃는 것이며, 유권자들이 모를리 없다.” 진정성 없는 중도화에 대한 레이코프의 지적은 한국에서는 여야, 보수-진보를 불문하고 해당되는 얘기다.

평상시에는 극단의 정치를 추구하다가 선거 때가 되면 표를 얻기 위해 중도성을 강화하는 모습은 일종의 눈속임 같은 것이다. 그러니 중도를 자처하는 시민들이라면 그들의 겉모습 뒤에 있는 진짜 모습이 무엇인가를 보기 위한 수고를 감당할 일이다. 중도층은 여야 대선주자들을 향해 자신들의 까다로운 요구들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진영의 포로가 돼 있는 여야 정당들과 대선 주자들이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중도층 마음을 얻지 못하는 후보에게는 필패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정답을 찾기 어려운 혼돈의 대선판에서 과연 중도층은 어디로 갈 것인지, 조금씩 흐름이 드러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