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종인 재등판론 ‘솔솔’...민주당, 이해찬이 직접 해결사 나서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여야 경선 국면이 ‘과열’과 ‘혼탁’을 오가며 뜨거워지면서 당내 분위기가 ‘사분오열’로 찢어지는 구태만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이 난장판으로 변질돼 가자 ‘카리스마’를 앞세운 정치 원로들의 역할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해찬 전 대표가,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소환되는 모양새다. 공교롭게도 두 원로의 등판 시점도 거의 같다.

녹취록 파문 일자 김재원 “이번 대선에 김종인 도움 필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 열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국민의힘은 최근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립 국면에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까지 참전하면서 제2의 ‘봉숭아 학당’ 사태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당 대표와 경선 예비후보들의 신경전이 폭로전으로 확대돼 진흙탕 싸움 양상을 보이는 탓이다.

이 대표와 윤 전 총장 측의 갈등 문제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예비후보 토론회를 정책비전발표회로 대체하면서 봉합 수순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이 대표와 원 전 지사의 통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다시 당을 뒤집어 놓았다. 이 대표의 ‘저거 곧 정리된다’는 발언을 원 전 지사가 폭로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뇌관이 터져 버린 것이다.

원 전 지사는 지난 1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저거’는 ‘윤석열’을 지칭한 것이라면서 녹취록이 아닌 녹취 음성 파일 전체를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이에 이 대표가 “딱 네글자다. 딱합니다”라고 반박하고 전체 파일 공개에 응하지 않았다. 원 전 지사는 이 대표가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면서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겠다면서 일단락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권주자들은 두 사람의 책임공방을 놓고 다시 갈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태경 의원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이 된다는 사람이 사적 통화내용을, 그것도 확대과장해 공개하고 뒤통수를 칠 수 있느냐”며 “원 전 지사는 대선 경선 후보를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논란이 됐다면 그 내용에 대해 국민들이 우려하지 않도록 사실 그대로 밝히는 것이 공인으로서의 도리”라면서 녹음파일 공개를 요구했다.

대표와 예비후보들의 갈등이 계속 확산되자 ‘어른론’이 등장하면서 김 전 위원장의 재등판론이 거론됐다. 김 전 위원장을 소환한 당사자는 지도부 일원인 김재원 최고위원이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김 전 위원장의 도움을 받지 않고 대선을 치를 생각이었는데 최근 이 생각이 바뀌었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최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에 어른이 없구나. (갈등을) 조정할 분이 없구나 하는 걸 너무 많이 느꼈다”며 “아예 어른을 모셔와서 좀 앉혀 놓고 호통을 좀 듣더라도 그게 훨씬 낫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실상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이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되지만 김 전 위원장의 재등판론을 내세운 것 자체는 의미심장해 보인다.

마침 김 전 위원장은 이른바 ‘무릎 사과’를 한 지 꼭 1년 만인 지난 19일 다시 광주 5.18 민주화 묘지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공식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비대위원장 시절의 행보를 연관시키는 일정을 소화한 것 자체가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본인의 정치적 존재감이 부각되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절묘한 타이밍의 등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녹취록 공방’ 관련 질문에 “정당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 개인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며 “곧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당 대표는 사소한 일에 크게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고 이 대표를 향해 훈계성 훈수를 둔 것과는 다소 결이 다른 톤이었다.

문제는 김 최고의원의 의도와 상관없이 앞으로 국민의힘 당내 내분이 다른 형태로 다시 격화될 때마다 ‘김종인 재등판론’ 요구는 더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해찬 직접 나서자 황교익 ‘자신 사퇴’ 결단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친노·친문 원로' 이해찬 (사)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이 21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DMZ 포럼'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민주당에서는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된 황교익 맛칼럼리스트와 이낙연 전 대표 캠프 측의 ‘친일’ 공방이 난타전으로 확산되면서 이해찬 전 대표가 해결사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황교익 씨가 이해찬 전 대표와 통화 후 자진사퇴를 결단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황교익 씨는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소모적 논쟁을 하며 공사 사장으로 근무를 한다는 것은 무리”라면서 “경기관광공사 사장 후보자 자리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지사의 ‘보은 인사’ 논란이 불거진 지 일주일 만이다.

황 씨는 이어 “제 인격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 막말을 했다. 정중히 사과를 드린다”며 “그럼에도 이해찬 전 대표가 저를 위로해주었다. 고맙다”고 했다. 그는 전날에도 “뜻하지 않게 이해찬 전 대표의 위로를 받았다”며 “동지애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처음에는 울컥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고민을 하게 됐다”고 심경을 전한 바 있다.

민주당의 ‘상왕’으로 불리는 이해찬 전 대표가 직접 수습에 나서면서 ‘황교익 리스크’는 일단락이 됐다. 하지만 ‘이해찬’의 등장은 민주당 내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다. 이낙연 전 대표측이 유발한 황 씨에 대한 공격이 ‘반(反) 이재명’ 전선으로 확산될 수 있는 기폭제로 자칫 작용할 여지가 있었던 탓이다. 황 씨가 이낙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을 끊는데 주력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고 나서자 송영길 대표와 윤건영 의원 등 중립적 성향의 의원까지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황 씨의 임명권자인 이 지사 입장에서는 곤혹스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해찬 전 대표가 수습에 나서면서 이 지사는 덫에서 빠져나온 셈이다. 이낙연 전 대표는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 채 후유증만 남게 됐다. 물론 당 원로인 이해찬 전 대표 입장에서는 혼탁한 경선 분위기가 전통적 지지층의 분열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감에서 직접 나서 사태를 수습한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이 지사가 곤란한 처지의 ‘늪’에서 벗어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김 의원은 2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이해찬 전 대표 경우에는 사실 기억해보면 이재명 지사가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는 수호천사 같은 분”이라면서 “이재명 지사 구하기에 어제 민주당이 총동원됐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해찬 전 대표는 일찌감치 이 지사를 측면에서 지원했다. 이해찬 전 대표의 조직 ‘광장’을 이어받은 이 지사의 지지모임 민주평화광장 공동대표를 5선의 조정식 의원이 맡았다. 민주평화광장은 전국적 단위의 이 지사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는 선봉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이해찬의 등장이 앞으로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또 다시 내부 분열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어떤 형태로 해결사로 나설지, 그 경우 어떤 후보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지를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