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가운데)이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언론중재법 개정안 의결을 두고 다투는 더불어민주당 박정 간사(오른쪽)와 국민의힘 이달곤 간사를 중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강성 지지층 요구만 의식한 언론 입막기 법안

일부 조항 수정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취재-보도 위축 우려

입법 독주의 오만 심판받은 4.7 재보선 참패의 교훈 망각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언론중재법)이 야당의 강력한 반대와 저지에도 불구하고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해 잠시라도 문체위 통과를 늦추려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형제당’인 열린민주당의 김의겸 의원을 야당 몫 조정위원으로 인선하는 꼼수로 대응하며 야당의 지연 시도를 무력화시켰다. 그래서 안건조정위원회가 구성된 직후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안건조정위가 구성되면 최대 90일 간 활동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규정은 별 의미가 없게 됐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문체위 처리가 예고된 19일 아침부터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문체위 위원들을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나서 회의장 앞에서 피켓 항의시위도 하고 표결 처리 때 상임위원장석을 둘러싸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의 만장일치 찬성 속에 법안은 문체위를 무난히 통과했다.

지난해 4.15 총선 이후 계속된 입법 독주 정국에서도 그랬듯이 현재 국회 의석 지형에서는 야당이 아무리 반대한들 모든 법의 통과가 여당 마음대로 가능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이렇게 문체위를 통과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조만간 법사위를 거쳐서 오는 25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될 것이 확실시 된다.

이미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신속히 처리하겠다”며 강력한 처리 의지를 밝힌 상태다. “국민을 해하는 가짜뉴스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가짜뉴스 피해구제법 처리를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결의였다. 야당과 언론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칼을 뽑은 이상 언론중재법을 최단시간 내에 본회의 통과까지 마치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확고한 입장이다.

민주당이 숱한 반대 목소리를 외면하고 이렇게까지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언론개혁을 그토록 외쳐왔는데 야당과 언론계의 반대가 있다고 해서 여기서 멈춘다면 더 큰 정치적 부담이 따를 것으로 판단한 모습이다. 어차피 입법 독주에 대한 부담이 따르는 일, 시간을 끌어 대선 주자들에게 부담을 넘길 것이 아니라 현 지도부가 일단락 짓겠다는 판단을 했을 법하다.

그리고 강성 지지층을 유난히도 의식하는 민주당으로서는 여기서 후퇴해 언론중재법이 표류하게 됐을 때 언론개혁에 대한 민주당 지도부의 소극적 태도를 비난할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우려했을 법하다.

대선정국에서 강성 지지층의 결집과 활약을 기대하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그러한 내부 반발을 막기 위해서도 계속 강경한 입법 독주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하는 쪽으로부터 어느 정도 욕을 먹더라도 지금 무리해서라도 언론중재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대선을 치르는데 한결 좋은 언론환경을 만드는 길이라는 실리적 판단도 있을 것이다.

격한 대치를 낳고 있는 언론중재법은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이토록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일까. 김용민 민주당 의원 등이 공동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원안의 골자는 이렇다. 개정안은 고의·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른 피해자는 인정되는 손해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 배상을 언론사 등에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만약 법원이 손해액 산정이 어려울 경우에는 해당 언론사의 전년도 매출액을 고려해 손해액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언론사의 매출액이 클수록 배상액이 커지게 돼 있으니까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사를 상대로 수시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압박하고 나선다면 언론은 겁을 먹을 수밖에 없게 되는 내용이다. 작성한 기사 가운데 혹여라도 사실이 아닌 것이 있게 되면 언론사로서는 그야말로 망하게 될지 모르니, 언론의 취재와 보도 활동은 몸조심 속에서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지 언론사들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심각한 제약을 낳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문제는 ‘허위·조작보도’나 ‘고의·중과실’에 대한 정의가 대단히 모호해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징벌적 손해배상 요건인 고의·중과실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그 기준이 모호해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민주당은 원안에서 일부 수정한 내용으로 통과시켰다.

문체위를 통과한 수정된 개정안은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 ▲허위·조작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정정보도·추후보도가 있었음에도 해당 기사를 충분한 검증 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를 조합해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까지 4개 항목으로 원안보다 다소 축소·조정했다.

국민의힘 이달곤 간사(오른쪽)와 의원들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의결을 앞둔 전체회의에서 도종환 위원장의 회의 진행를 막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는 언론계의 우려와 비판을 마지막 단계에서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이고 정치적인 법 운용에 대한 우려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허위·조작보도라는 추상적 정의에 입각해 법을 만든 것도 문제고, 더욱이 그것이 고의·중과실에 따른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영역의 것이라 그러하다.

따라서 ‘고의’ ‘악의’ ‘허위·조작보도’ 같은 개념과 기준이 모호하고 고의·중과실 요건은 권력에 의한 ‘전략적 봉쇄조치’로 악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 야당과 언론단체·시민단체들의 비판이다.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줄을 이어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지금도 언론의 허위 보도로 인한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도 피해액의 5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추가하는 것은 과도하고 중복된 규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점에 대해 야당과 언론계로부터 많은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논란의 핵심인 징벌적 손해배상 자체는 그대로 살아있다.

다만 수정된 개정안에서는 고위공직자,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및 그 주요주주, 임원 등은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했다. 공익침해행위 관련 보도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언론보도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권력과 대기업들이 언론을 압박해 입을 막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지적을 반영해 범위를 축소한 것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조국 전 장관 같이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하지만 현직에 있지 않은 사람을 상대로 의혹 제기나 비판 기사를 쓰는 일이 무척 위험하게 되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손해액의 구체적인 금액을 산정하기 어려울 경우 언론사의 전년도 매출액 1만분의 1에서 1000분의 1을 곱한 금액 등을 고려한다는 원안의 조항은 ‘언론사 등의 사회적 영향력과 전년도 매출액을 적극 고려하여’로 수정됐다.

‘적극 고려’라는 지극히 모호한 법규정은 이미 이 법안이 누더기가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만하다. 또 기사 열람차단청구권과 관련해 열람차단이 청구된 기사에 해당 사실이 있었음을 표시하도록 한 조항은 삭제했다.

애당초 열람차단 청구만 해도 기사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만들려던 원안이 상식에 어긋난 것이었기에, 이런 수정을 갖고 개선됐다고 생색을 낼 일도 아니다. 당초 원안보다는 완화된 내용들이 눈에 띄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언론의 취재와 보도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김용민 의원은 “법원의 소극적 손해배상액 산정 경향에 허위·조작정보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있다”며 “허위·조작정보로 취득한 이익을 박탈한다면 예방이 효과적일 것”이라며 법안 발의 배경을 밝혔지만 과도한 입법이라는 반론은 확산되고 있다. ‘예방’을 위해 아예 입을 막아버리는 법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법안에 대해서는 조금 과장하자면, 민주당만 빼고는 다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언론에 재갈을 물려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며 절대불가 입장을 진즉부터 밝혀왔다. 특히 국민의힘은 이 법이 대선정국에서 여당 쪽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막기 위한 ‘재갈 물리기’라는 강한 의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 가운데서 한겨레의 ‘별장 성접대 의혹’ 오보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얘기는 눈길을 끈다. 그는 “최근 언론 오보의 최대 피해자는 저 윤석열이었으나 이 법에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을 옥죄는 악법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자, 그러면 윤석열 성접대 오보를 낸 언론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비아냥이 회자된 점을 감안하면 그의 반대 입장은 나름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윤 전 총장은 그러면서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언론을 감시’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말로 강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물론 언론의 진실 보도에 대한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윤석열의 말대로, ‘권력이 언론을 감시하는’ 방식은 언론의 자유를 제약할 수밖에 없다.

보수야당뿐 아니라 진보야당인 정의당도 분명한 반대 입장으로 결론을 내렸다. “언론중재법은 평범한 시민이 언론보도로 인해 받게 될 피해를 막는 일에는 무기력한 반면, 우리 사회의 주요 권력 집단에겐 자신들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막을 목적으로 악용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며 “우리는 현재 상태의 민주당 언론 중재법에 반대한다”는 것이 정의당의 입장이다.

언론중재법 강행처리 중단을 요구하는 정의당과 언론단체. (사진=연합뉴스 제공)
야당들이 일제히 반대하는 가운데 언론계의 반대 목소리도 계속 확산되고 있다. 관훈클럽·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신문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한국기자협회 등 6개 언론단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언론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이들 단체는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처리에 대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입법 독재로 규정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저지할 것을 다짐한다”고 강경한 저지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평소 민주당의 우군 역할을 해왔던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조차도 소위를 통과한 법안 내용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해 눈길을 끌었다.

민언련은 “이번 언론중재법 대안은 시민 언론피해구제 강화라는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권력자의 배액배상제 악용 가능성에 대한 대응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한다”면서 “배액배상제 부분을 수정 보완해 언론중재법 대안이 권력집단의 악용을 막고 진정한 시민의 언론피해구제 강화를 위한 법안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의 입장에 동조하는 곳은 형제당이라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 빼놓고는 없는 상황이다. 언론중재법에 관한한 민주당이 고립되다시피 한 상황이다. 이토록 야당은 물론이고 언론계, 시민단체들도 일제히 반대하고 있는 언론중재법을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우선 강성 당원·지지자들과 함께 가고 있는 강경파 ‘친문’(친문재인) 정치인들의 신념이다. 그동안 이들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문재인 정부 최대 국정과제라도 되는 듯이 줄곧 강조해왔다. 그 가운데서 검찰개혁은 어느 정도 이뤄진 것으로 판단하는 모습들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물러나고 친정부적 검사들이 중용되면서 검찰은 정권에 의해 사실상 장악됐다. 공수처도 설치됐고 검·경 수사권 조정도 이뤄졌다. 성에 차지는 않더라도 검찰개혁은 이쯤에서 매듭짓고 다음은 언론개혁을 완성할 때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이제는 언론개혁’이라는 구호가 일상화됐다. 그런 신념의 바탕에는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이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을 중심으로 한 보수언론들이 만든 언론지형의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언론들의 불공정한 보도로 인해 문재인 정부가 큰 피해를 입어왔고 언론을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인식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주관적인 것이다. 우선 지금의 언론환경은 결코 야당이나 보수정치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여당 쪽의 피해자 코스프레와도 같은 것이다. 방송의 예를 들어보자. 그동안 MBC, KBS, TBS 같은 공영방송들이 여당 편향적인 방송을 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 검찰개혁을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 터져 나온 채널A 사건에서 한동훈 검사장 관련 보도, 정경심 교수 재판 관련 보도라든가 지난 4.7 재보선 때 있었던 ‘생태탕’ 보도 등은 일방적으로 여당의 편이 된 공영방송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심지어 정부기관인 K-TV까지도 정경심 교수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만 출연시켜 편파방송을 함으로써 국정정책홍보 방송의 궤도에서 이탈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공영방송들이 든든한 지원세력이 되어주고 있는데도 여당이 언론환경 탓을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보수언론의 불공정 보도를 말하지만 진보언론들도 여당 편에 서서 그 이상의 불공정 보도를 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니 ‘기울어진 운동장’ 주장은 그동안 민심이 등 돌리게 만든 자신들의 실정에 대한 성찰 없이 공연히 언론환경 탓만 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는 이유로 꼽고 있는 가짜뉴스 문제만 해도 그렇다. 허위사실을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가짜 뉴스는 당연히 추방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가짜뉴스가 보수 언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짜뉴스는 보수-진보, 여-야 불문하고 자리하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다. 여당 쪽에서는 마치 자신들이 보수언론들의 가짜뉴스의 일방적인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 또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야당 성향의 가짜뉴스도 문제이지만 여당 쪽 편에 서 있는 가짜뉴스들은 그 이상으로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 그토록 가짜뉴스 탓을 하는 여당 정치인들이 TBS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이 유포했던 뉴스에는 그토록 관대한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정권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압박하던 시기에 나왔던 한겨레의 ‘윤석열 성접대 의혹’ 같은 가짜뉴스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김건희 씨를 음해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치매 어머니’ 인터뷰, ‘쥴리 뮤직비디오’ 같은 유튜브 방송들에서 유포되는 가짜뉴스와 흑색선전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는 여당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이다.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에 박힌 들보는 보지 못하는 모습이다.

징벌적 손배법 반대투쟁 릴레이 시위 현장 방문한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가짜 뉴스 추방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면 자신들을 지지하는 쪽에서 나오는 가짜뉴스부터 발본색원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 지금 민주당의 모습은 우리 편의 가짜뉴스는 나 몰라라 하고 상대 쪽의 가짜뉴스만 다스리겠다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그러니 언론중재법의 진의가 의심받고 편파적인 법 집행에 관한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이 최소한의 사회적·정치적 합의도 없이 법안을 쫓기듯이 처리하려는 모습은 대선용이라는 의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민주당은 지금 당장이 아니면 언론중재법을 통과시키기 어려워진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여야 합의에 따라 국민의힘에 상임위원장을 내주기로 한 7개 상임위 중 하나가 언론중재법 소관 상임위인 문체위이다.

그래도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새 상임위원장들을 선출하고 나면 언론중재법의 상임위 통과가 어렵다는 판단을 민주당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에 묶어 쓸 수는 없는 법, 이렇게 졸속적인 법안을 수의 힘만 믿고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4개 언론단체는 공동 입장문을 통해 “독소조항 일부에 대한 지적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춰 강행처리 명분으로 삼는 것은 신뢰를 저버린 반민주적인 처사”라며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실질적인 피해구제와는 동떨어진, 언론 통제 및 언론 자유 침해로 직결될 여지가 크다. 원점에서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밀어붙이기는 일단 여기서 멈춰야 한다. 언론의 자유 문제와 직결된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아직 여야는 물론이고 언론계와의 최소한의 공감대도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이렇게 시한을 정해놓고 쫓기듯이 해치울 일이 아니다. 그러니 대선을 앞두고 언론을 길들이고 입을 막으려는 의도라는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대선정국이 시작됐다. 그런 마당에 대선용이라는 반발을 낳고 있는 법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면 정말로 대선용 아닌가라는 의심을 갖게 만들 수 있다. 이 법안은 대선이 끝난 이후에 정말 이런 내용의 개정이 필요한 것인지부터 원점에서 재론하는 것이 낫다. 여야 합의도 필요하고 언론계 당사자들 의견도 수렴하면서 판단할 일이다.

민주당의 언론개혁 법안 밀어붙이기는 언론중재법 하나로 끝날 것이 아닐 모양이다. 민주당은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 뉴스 편집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신문법 개정안과 국민이 참여하는 언론 영향력 평가 결과로 다음 해 언론사에 대한 정부 광고 집행에 반영하는 내용을 담은 미디어바우처법을 다음 수순으로 정해놓았다. 이들 ‘언론개혁 3법’을 다음 달 말까지 통과시켜 언론개혁을 완성하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구상이다.

하지만 다른 두 개의 법안도 논란거리다. 특히 미디어바우처법은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특정 세력들이 인기 투표식 조직적 대응을 통해 마음에 드는 기사를 띄워주는 반면, 자신들의 정치적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사나 기사에는 ‘좌표’를 찍어 불리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언론의 공정성을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자칫하면 언론사들이 여야 강성 지지층에 의해 휘둘리는 환경을 만들게 될 위험이 크다.

민주당은 언론개혁이라는 구호 아래 너무도 위험한 법안들을 밀어붙이는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또 다시 국회 의석수의 힘을 앞세운 입법 독주의 모습을 보일 때가 아니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거둔 압승에 도취된 나머지 수의 힘을 앞세워 입법 독주를 계속하다가 불과 1년 만에 4.7 재보선에서 심판을 받는 상황으로 뒤바뀐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입법 독주의 유혹에 갇힌 모습이다. 야당과 언론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코 강행 통과시킬 태세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박정희 정권이나 5공 시절에나 어울릴 법안을 2021년에 밀어붙이겠다는 여당이 ‘촛불’을 입에 달고 지냈던 정당이라는 사실은 참담한 일이다. 민주당이 이래서는 안 된다. 언론중재법을 둘러싼 야당과 언론계의 비판이 확산되는 시점에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기자협회 창립 57주년 축하 메시지에서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그 기둥을 무너뜨려서는 안 될 일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