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노른자땅’ 용산 정비창 개발사업…주택공급 or 글로벌기업 유치 신경전

지난 7일 용산역에서 바라본 용산 정비창 부지. (사진=이재형 기자)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지난 10여년간 방치돼 있던 용산 정비창이 국제업무지구 개발 청사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달 중 서울시가 용산 정비창 부지의 개발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다. 주택 공급 규모를 놓고 서울시와 정부의 협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앞서 8·4 대책에서 이곳에 주택 1만 가구를 공급하기로 못 박았지만 서울시는 글로벌 기업 유치 등 목적을 감안하면 주택 공급은 이보다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세훈 서울시장 입장에서는 과거 서울 르네상스 계획의 일환으로 야심차게 준비했다가 좌초했던 사업을 복원할 기회다.
국토부 “1만 가구 공급” vs 서울시 “30% 수준으로 축소”
서울시에 따르면 용산 정비창 부지를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이 이달 중 공개될 전망이다. 가이드라인은 도시개발계획을 수립하기 앞서 지침적 성격의 자료다. 서울시는 지난해 1월 구성한 전문가 포럼(자문단)의 의견을 수렴해 지난달까지 가이드라인을 도출할 계획이었지만 시장 보고 단계에서 보완이 필요해 한 차례 미뤄졌다.
서울시는 앞서 오 시장이 강조해온 미래 교통수단이나 지하 공간 개발 등 구체적인 설계를 보완 중이다. 개발계획에는 미래형 교통수단인 도심항공교통(UAM·수직 이착륙 비행체 활용)과 자율주행차가 운행하는 미래도시의 그림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쟁점은 정비창 내 주택수다. 정비창 내 확보할 주택수를 놓고 국토부와의 갈등이 예상된다. 국토부는 정비창 부지에 1만 가구를 전부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는 이를 수용할 경우 본래 계획이었던 국제업무지구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020년 8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공급확대TF회의결과 브리핑에서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확대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향후 개발계획수립 단계에서 주택 공급량을 놓고 국토부와 조율해야 한다. 국토부는 지난 2020년 발표한 8·4공급대책에서 용산 정비창에 주택 1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 추산에 따르면 정부 계획대로 1만호를 수용할 경우 정비창 부지 절반을 주택으로 채워야 한다.
서울시는 국제업무지구의 개발 취지를 감안하면 주택으로 활용할 수 있는 땅은 부지의 약 30% 수준으로 고려하고 있다. 대신 전자상가 부지 등 정비창 내외부, 주변 면적도 포함해 1만호 가구수를 맞추는 방향으로 국토부와 논의 중이다.
오세훈 시장, 용산 정비창으로 한강 르네상스 사업 숙원 풀까
용산정비창은 용산역 뒤편인 용산구 한강로3가 40-1 일원에 위치한 51만2138㎡(약 15만4921평) 면적의 국공유지로 토지의 69.8%는 한국철도공사, 25%는 국토교통부, 4.4%는 한전이 소유하고 있다. 남쪽으로 한강을 바라보고 서울 한 가운데 위치해 서울에 마지막으로 남은 대규모 ‘노른자 땅’으로 거론된다. 자산평가 금액만 무려 5조7000억원에 달한다.
용산 정비창은 오 시장이 과거 미완에 그쳤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미련이 남은 지역이다. 오 시장은 지난 2007년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의 일환으로 서부이촌동과 용산 정비창에 111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을 포함한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추진했었다. 삼성물산컨소시엄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하고 드림허브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를 설립했다. 민간 금융·건설 재벌 27곳이 투자자로 참여했고 총 사업비는 31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개발 계획 발표와 함께 인근 땅값이 급격하게 뛰어오르면서 정비창 부지는 일대 투기 광풍의 복마전으로 비화했다. 개발에 눈먼 분위기 속에서 강제 철거가 자행됐고 그 유탄으로 빚어진 피해가 ‘용산 참사’였다.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 4구역 재개발지역 건물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009년 1월 19일 당시 용산4 재개발 구역에서 보상 문제로 갈등을 빚고 농성을 택한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들이 경찰특공대가 대치하다가 주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당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2013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로 국제업무지구 시행사인 드림허브가 부도를 선언하면서 지구 지정이 해제됐다. 부동산경기 침체와 자금난 등 악재 끝에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의 꿈은 희생자만 남긴 채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끝났다.
용산구의원·주민모임 “주택공급 대신 국제업무지구 개발 해야”
10여년간 방치돼 있던 용산 정비창이 길었던 동면을 깨고 지역 랜드마크로 탈바꿈할지 주목된다. 오 시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올해 서울 최상위 도시계획인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발표한다"면서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을 본격 추진하고 한강을 포함한 75개 지천의 수변공간을 활성화해 서울의 공간 구조를 개편하겠다"고 강조했다.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2월에는 용산전자상가와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연계해 미래 신산업 실리콘밸리를 형성하겠다고도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용산구와 지역 주민 여론도 긍정적이다. 8·4 대책 당시 지역에서는 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을 복원해달라는 지역 여론이 거셌다. 용산구의회는 지난 2020년 8월 21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1만 가구 주택 건설 계획에 유감을 표명한 뒤 기존 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대로 주택 비율은 낮추고 중심상업지역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했다.
당시 용산구의원 12명은 공동발의한 결의문에서 “이미 청파동과 삼각지 일대에 청년주택 공급 계획이 있음에도, 용산정비창과 캠프킴 부지에 1만3100가구의 주택을 건설하는 것은 단순히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도구로 비쳐질 가능성이 크다”며 “용산 정비창 개발은 역사적, 경제적, 미래적 관점을 폭넓게 반영하여 개발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에는 용산구 주민 모임인 용산비상대책위원회가 '용산 개발 정상화'를 내걸고 서명운동을 벌였다. 정비창 부지를 업무·상업지구가 아닌 공공임대가 포함된 주거지역으로 개발하는 데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당시 마찬가지로 8·4 대책으로 추진된 과천정부청사의 주택공급 계획안(4000가구)이 주민 반발로 무산되면서 반대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CES 2022 서울관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오 시장은 지난해 보궐선거 출마 당시 태릉 CC와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등의 지역에 대한 정부의 공공주택 공급 계획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DMC 역시 2009년 오 시장이 지상 133층 규모의 랜드마크 빌딩을 건립하기로 했지만 부동산경기 침체 등으로 사업이 무산됐던 곳이다. DMC 개발과 관련해 ‘랜드마크부지 도시관리계획수립’ 용역을 통해 용도와 개발 방향 등을 검토했다.
오 시장은 신년사에서 "창동과 상계동 지역은 복합문화시설을 갖춘 신경제중심지로 완성하고 수색과 DMC, 마곡 일대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신경제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용산 정비창의 향방은 오 시장이 시도하려다 좌초됐던 랜드마크 개발의 부활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민간개발 일변도인 오 시장이 시장의 투기 심리를 자극해 용산 참사를 초래했던 과거를 극복하고 무주택자의 주거대책을 함께 보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 오 시장이 임명한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의 반값아파트 공약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김 사장은 지난해 11월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토지는 공공이 보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이른바 ‘반값아파트’를 올해 초부터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용산구 용산정비창과 서울시 강남구 세텍(SETEC), 수서역 공영주차장, 은평구 혁신파크 등이 당시 부지로 거론됐다.
제2의 ‘대장동’ 우려…시민단체 “오 시장의 실패한 투기 될 것”
한편 성남시 대장지구에서 시행사인 화천대유자산관리가 민관 합작 도시 개발사업을 통해 수천억원의 아파트 분양 차익을 확보한 대장동 게이트를 들어 용산 정비창 등 개발사업을 ‘제2의 대장동’ 사업으로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용산 정비창 등 개발은 민간 토지를 수용한 대장동과 달리 공공 토지를 활용하기 때문에 사안이 다르다는 입장이지만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아직 미흡한 대목이 많다.
지난해 10월 시민단체 빈곤사회연대는 서울 용산정비창 부지를 점거하고 “주거·부동산 불평등에 대한 분노는 ‘영끌’(영혼까지 끌어 대출)과 ‘패닉바잉’이라는 각자도생 부동산 투기로 내달리게 하고 있다”며 공공주택 공급 확대를 촉구했다.
용산정비창 개발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2일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개발이익 분석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용산정비창 개발이익을 6조 2천억원으로 추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참여연대는 지난달 22일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이익이 6조200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용산정비창에 공급 예정인 주택 1만호 중 6000호를 민간사업자가 일반분양할 경우 코레일이 택지매각으로 3조6000억원, 민간사업자가 분양수익 6000억원, 개인 수분양자가 시세차익 최소 2조6000억원을 각각 챙기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중 민간사업자 개발이익은 택지비·건축비·가산비로 구성된 분양금액(추정치)에서 토지비·건축비·판매비·부대비·금융비 등 비용을 제해 추산했다. 개인 수분양자가 챙기는 시세차익은 분양가상한제 적용 시 추정되는 분양가가 평당 약 3672만원이고 현재 용산정비창 인근 주택 실거래 가격이 3.3m2당 약 5000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해 계산한 수치다. 전용면적 109㎡ 가구당 4억4000만원, 83㎡는 3억3000만원, 66㎡ 는 2억6000만원의 이익을 얻는 것으로 예상됐다.
참여연대는 "국공유지에서 발생한 엄청난 개발이익이 민간에게 돌아가면 용산정비창은 제2의 대장동이 될 수 있다"며 "용산정비창을 100% 공영개발하고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을 통해 100% 공공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6일 용산정비창공대위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정비창 국제업무지구 개발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빈곤사회연대 제공)
이런 우려에 힘입어 참여연대와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등 2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용산정비창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지난달 16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과거 재임 시절 추진하다 실패한 투기 개발”이라고 비판했다.
공대위는 “공공 토지를 개발해 기업 소유로 귀결시키는 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제2의 대장동과 같이 투기와 불로소득을 부추길 뿐이다. 개발 폭주는 용산 일대의 땅값과 집값 등 부동산 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한다”며 “일부 정치인들은 아파트값 수호를 외치는 일부 소유주들을 부추기며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선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