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단지서 나후보 지지 호소부산 동구선 '관심도 체크'문재인 장외 연설 데뷔전안철수 '장막 뒤 정치'대선 향한 치열한 '1차 대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지원에 나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동 서울관악공용지원센터를 찾아 나경원 서울시장후보와 함께 이동하고 있다.
10ㆍ26 재보선의 막이 본격적으로 올랐다. 13일부터 시작된 공식 선거운동은 26일까지 13일간 사활을 건 여야 혈전으로 그려지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를 비롯해 전국 42개 지역에서 열리는 이번 재보선은 각 후보간 격돌은 물론이거니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야당연합군으로 일컬어지는 야권 주자들간의 장외싸움으로 더욱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여당의 유력한 주자인 박 전 대표 한 명과 야권의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노회찬 전 진보신당 상임고문에다 선거 막판 무소속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할 것으로 보이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까지 포함한 ‘야권 연합군’의 격전이 시작된 것이다.

한나라당 대 반(反) 한나라당 연합세력간 승부, 보수 대 진보의 충돌, 기성 정치권 대 야권 및 시민사회세력의 대결, 여기에 단기 필마로 움직이는 박 전 대표를 상대로 야권 주자가 총출동해 벌이는 일 대 다(多)의 격돌이란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선거로 기록될 전망이다.

전투복 차림으로 나타난 박근혜의 개인전

박 전 대표는 13일 서울 구로구의 벤처기업단지 내 관악고용지원센터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 유세를 시작으로 재보선의 한 복판에 섰다. ‘선거의 여왕’ 박 전 대표가 선거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를 위해 지지를 호소하는 장면이 2007년 대선 이후 4년 만에 연출됐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전10시30분쯤 자주색 상의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나타나 나 후보의 손을 잡았다. 평소 치마를 즐겨 입는 박 전 대표에게 바지 차림은 흔히 ‘전투복’이라고 불린다. 17대 국회에서 당 대표시절 박 전 대표는 여야가 중요한 법안 처리를 놓고 격돌하거나 주요 선거 지원 유세를 나갈 때 바지를 입곤 했다. 이 때부터 박 전 대표에게 바지 차림은 ‘전장에 나가기 위한 전투복 착용’으로 인식됐다.

박 전 대표는 “나 후보를 평가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동안 특히 장애아동에 대해 힘썼던 따뜻한 마음이… (평가될 만 하다)”라면서 “서울시정도 그런 따뜻한 마음으로 이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후 오후 6시까지 구로구와 금천구 일대 벤처기업협회와 중소기업 업체 등 7곳을 잇달아 방문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한 친박계 의원은 “한나라당 천막당사 시절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전국의 마을 곳곳을 파고들었던 모습이 연상된다”면서 “오랜만에 박 전 대표의 열정적인 행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행보는 한 때 ‘나경원 비토론자’로 알려지기도 했던 박 전 대표가 이런 이미지를 불식시키면서 선거 기간 나 후보 지원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여야 대선주자들이 총출동했다는 것은 내년 대선 전초전 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측면에서 해당 후보를 지원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자신의 위력을 가늠해보면서 향후 자신의 선거를 위한 사전 득표전에 나선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표가 선거 지원의 첫 일정을 벤처기업 단지로 정한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젊은 층과의 소통 강화라는 의미에다 차기 지지율 조사에서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염두에 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박 전 대표는 실제 이날 벤처기업 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절반 가량은 나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면서도 절반 정도는 자신이 직접 벤처 기업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애로사항을 전해 듣고 문제점 해소를 위한 노력을 약속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였다.

박 전 대표는 공식 선거운동 이틀째인 14일에는 아침 일찍 부산으로 내려갔다. 동구청장 보궐선거 지원을 위해서다. 서울시장 선거가 ‘손학규+정동영+유시민+노회찬+안철수’와의 싸움이라면 부산 동구청장 선거는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과의 장외 대결이다.

박 전 대표는 하루 종일 부산 동구 지역에 머물면서 유권자를 상대로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자신에 대한 관심도도 우회적으로 체크했다. 박 전 대표는 양일간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도 이전처럼 한나라당 의원들을 대규모로 이끄는 방식이 아니라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만 대동한 채 거의 혼자서 움직이다시피 했다. 마치 이번 재보선을 자신의 선거로 생각하면서 열과 성을 다하는 분위기다.

선거에서 이기면 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수준으로 더욱 탄탄히 입지를 굳히는 것이고, 지더라도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 후보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 ‘잔다르크’로서의 이미지를 재 각인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들어있는 것 같다.


총 출동한 야권 주자 연합군의 단체전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무소속 박원순 후보 선거 출정식에서 “박 후보와 하나 되는 범 민주진영을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분히 한나라당 대 범 민주진영을 아우르는 연합세력간의 대결이란 점을 부각하려 한 것이다.

손 대표 입장에서는 박 후보의 패배는 곧 본인의 정치생명 단축을 의미한다. 이미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야권 통합경선에서 패함으로써 대표직 사퇴 소동까지 겪은 바 있다. 만일 박 후보마저 여당에 패한다면 손 대표로서는 갈 곳이 없는 처지다. 박 후보의 승리를 기반으로 야권통합에 일조한 뒤 여기서 대선으로 가는 승부를 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문재인 이사장도 이날 부산에서 상경해 박 후보의 유세에 동참했다. 이어 부산에서는 동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의 지원을 위해 바닥을 샅샅이 누빌 태세다.

특히 한번도 거리 유세를 해본 적이 없는 문 이사장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를 통해 장외 연설 데뷔전을 갖는 셈이다. 문 이사장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야권 후보 지원에 적극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이사장 입장에서는 부산 동구청장 선거 결과가 최대 관건이다. 여기서 이기면 문 이사장은 부산ㆍ경남(PK)지역의 새로운 맹주로 급부상하면서 손 대표와 안철수 원장과 함께 박 전 대표의 대항마 트로이카 체제를 굳히게 된다.

하지만 부산 선거에서 지면 문 이사장도 대선주자 반열에서 뒤편으로 밀려나게 된다. 때문에 부산 선거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과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진보신당 노회찬 전 상임고문 등은 일단 서울시장 선거에 주력하되, 간간이 지방을 돌며 자당 후보 및 야권 후보의 선거운동에 힘을 보탤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일단 전체적인 정치권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야권 후보의 승리를 바라지만, 전면에 나서 있는 손 대표나 문 이사장에 비해 그리 절박한 상황은 아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새롭게 야권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원장의 선거 지원은 어떻게…

역시 이번 선거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안철수 원장의 등장 여부다. 손 대표를 비롯해 야권 관계자들은 안 원장이 막판 박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어떤 식이라도 행보를 보일 것을 기대하고 있다. 정가에서도 안 원장이 박 후보 지원과 관련,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적절한 타이밍을 재고 있는 것이란 분석이 많이 나오고 있다.

현재 뚜렷한 입장 표명을 삼가고 있는 안 원장은 마치 4년여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으면서 기자들과 국회 복도 같은 곳에서 만나 드문드문 자신의 입장을 비치고 사라지던 박 전 대표처럼 ‘장막 뒤 정치’를 즐기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안 원장의 고민도 역시 선거 결과와 맞닿아 있다. 안 원장의 막판 지원에 힘입어 박 후보가 이긴다면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에 안 원장이 톡톡히 일조한 것으로 국민에게 각인될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지원 사격을 받고 있는 나 후보가 이긴다면 안 원장에게도 큰 치명타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야권 진영에서도 박 전 대표를 뛰어넘기 위한 ‘제2의 안철수’를 찾아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일 서울에서 박 후보가 지고,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가 이긴다면 야권 지지층에서는 안 원장에게 보였던 관심을 문 이사장에게로 급격히 돌릴 수도 있다.

안 원장이 이전의 박 전 대표처럼 ‘부자몸조심’을 거듭하는 이유다.

박 전 대표와 야권 주자 연합군은 일단 각자 여야 후보의 승리를 위해 매진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세부적인 결과에 따른 후유증과 파장을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서울에서는 박풍(朴風ㆍ박근혜 바람)과 안풍(安風ㆍ안철수), 부산에서는 박풍과 문풍(文風ㆍ문재인), 전국적으로는 박 전 대표 대 야권 연합군의 내년 대선을 향한 치열한 1차 대전을 벌이고 있다.



염영남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