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인사의 계절

인사의 계절이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적의' 인사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또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와 조직 쇄신 차원에서 '물갈이'를 화두로 삼고 있다. 주요 기업들의 인사 시기는 연말인 12월이 대부분이다.

올해 인사에서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끝자락에 있는 1962년생들의 임원 승진 여부가 관심을 모은다. 헤드헌팅 전문기업인 유니코써어치는 "금융업과 공기업을 제외한 매출액 100대 기업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011년 신임 임원 평균연령이 50.4세였다"며 "올 연말 인사에서 비슷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내년에 만 50세가 되는 1962년생이 신임 임원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삼성전자는 임원 승진 나이가 평균 47.5세, 현대자동차는 52.1세, SK텔레콤은 48.1세, LG전자는 48.5세였다. 유행에 민감한 정보통신, 유통 등은 임원 승진이 빠르고, 노련미를 요하는 건설 조선 등은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다.

삼성 금융 분야서 큰 태풍 불수도

"한 번 믿으면 끝까지 쓴다"는 이건희 회장의 지론에 따라 1년 단위의 정기인사를 해온 삼성이지만 올해 들어서는 기조가 크게 달라졌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이 즐겨 사용하는 '수시 인사' 바람이 삼성에도 불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경영 일선에 전면 복귀한 이 회장은 강도 높은 경영진단을 통해 비효율과 비리를 들어내고 있다. 지금까지 이 회장은 사장 인사만 4번이나 단행했는데, 그 성격은 문책성이었다.

이 회장은 지난 6월 대대적인 감사 끝에 삼성테크윈 사장을 교체했고, 7월에는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삼성전자 LCD 사업부장(사장)을 경질했다. 또 지난달에는 윤순봉 삼성석유화학 사장을 삼성서울병원 지원총괄사장에 앉혔다. 일부 의사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이 회장은 윤 사장에게 '삼성서울병원을 초일류로 만들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한다.

계열사 사장들의 전격 교체가 많았던 만큼 연말 정기인사에서는 인사 폭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금융 분야 등을 대상으로 더 큰 태풍이 몰아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등 상대적으로 발걸음이 더딘 5대 신수종 사업과 소프트웨어 부문의 경우 대대적인 교체 또는 보강이 점쳐진다. 또 최근 들어 중용되고 있는 여성들의 약진도 예상된다.

CJ, 현대차 홍보·마케팅 강화 주력

30대 그룹 중 가장 먼저인 지난달 30일 단행된 CJ그룹의 부사장(6명)과 상무(12명) 인사에서는 재무 출신이 1명도 보이지 않았다. 인사 출신도 조성형 부사장 1명뿐이었다.

대신 마케팅 홍보 전략 기술 출신들이 '전진 앞으로'를 외쳤다. 정길근 상무대우는 홍보실장인 권인태 부사장과 함께 그룹 홍보를 책임지게 됐고, CJ오쇼핑의 장영석 부장도 이번 인사를 통해 CJ제일제당 홍보담당 상무보로 승진했다.

현대자동차 그룹도 지난 7월 조직개편에서 2실이었던 홍보실을 3실로 늘리면서 언론계 출신의 공영운 상무를 1실장에 임명했다. 이로써 현대차 그룹은 언론담당, 홍보지원, 지방언론과 사내홍보 등으로 홍보 업무를 세분화했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중시하는 현대차 그룹은 사상 최대 수익을 올린 올해도 연말 정기인사에서 실적 위주의 인사가 예상된다. 한편으로는 불투명한 내년 자동차 시장 등을 감안해서 안정에도 비중을 둘 것으로 관측된다. 인사 폭을 떠나 홍보와 함께 마케팅에도 큰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CJ와 현대차 인사에서 홍보, 마케팅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진 것은 재무, 인사 출신들이 우대받았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기업들의 경영 투명성이 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재무, 인사 출신들의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SK텔레콤, 한화 보다 '큰 그림' 구상

하이닉스 반도체 인수를 눈앞에 둔 SK텔레콤은 당장 새 판을 고민하고 있다. 하이닉스를 맡아야 할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을 추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SK텔레콤의 인사는 보다 '큰 그림'에 무게가 실린다. 전체적인 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SK텔레콤은 지난 9월 조직 개편에서는 마케팅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플랫폼 사업 중심인 SK플래닛이 출범하면서 사내독립기업(CIC) 부문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통신사업 운영을 책임지는 '사업총괄'과 전사(全社) 최적화와 효율화를 지원하는 '코퍼레이션 센터' 체계로 전환했다.

태양광 등 신 성장동력 육성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한화는 인사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지난달 중소기업형 사업에서 철수를 선언한 만큼 한화 출신 인사들의 거취도 관심이다.

LG, 롯데, GS, STX, 대한항공 정중동

전망이 가장 어려운 곳이 LG다. 휴대폰 사업에서 삼성전자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LG전자는 이미 인력 재배치, 자회사 발령 등으로 분주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대규모 인사도 예상되지만, 전통적으로 LG그룹의 인사는 보수적이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소폭 인사에 그칠 수도 있다.

올해 초 '신동빈 체제'가 본격 출범한 롯데는 조직 안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관측된다. 신 회장의 승진과 함께 정책본부 주요 인사들도 한 단계 위로 올라선 만큼 인사 요인은 예년에 비해 크지 않다.

GS그룹, STX그룹, 대한항공도 큰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STX는 지난해 말 역대 최대 인사를 단행했고, 대한항공도 2009년과 지난해 대규모 인사가 이뤄졌다. GS그룹은 보수적인 스타일의 인사를 선호하는 편이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