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이마트셀프주유소. 한 푼이라도 기름값을 아끼기 위한 소비자들로 셀프주유소는 밤늦게까지 붐빈다.
정부가 높은 기름값의 주범인 정유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알뜰주유소'라는 날 선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정유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데다 정부로서도 유류세라는 카드를 포기하기는 어려운 터라 기약 없는 대치상태에 들어섰다. 정부·시민단체의 압박으로 머지않은 시간 내에 결판나리라는 것이 중론이지만 정유업계 또한 '인하여력 부족', '일선 주유소들에 대한 형평성 침해'라는 근거를 내세우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알뜰주유소 도입 난항 중

기름값 인하를 목적으로 정부가 추진해왔던 알뜰주유소 도입 계획이 난항에 빠졌다. 22일로 예정됐던 재입찰 날짜마저 미뤄지면서 12월 중 알뜰주유소를 열겠다는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기 때문이다.

앞서 15일에 있었던 첫 입찰 때는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SK에너지, GS칼텍스, S-Oil 3사가 써낸 석유제품 공급 가격이 정부가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해 결국 유찰됐다.

첫 유찰 이후 재입찰 계획마저 기약 없이 연기되면서 업계 내외에서는 "정부가 두세 번 물밑 접촉을 통한 가격조정마저 실패한 이후 다른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미심장한 소문이 돌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압박에 정유업계 긴장

정유업계의 거센 반발에도 알뜰주유소 추진을 향한 정부의 의지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기름값 인하에 대해 열성적인데다 알뜰주유소 설립 계획을 주도했던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사임한 상태지만 후임인 홍석우 신임 장관의 의지도 최 전 장관에 못지않다. 홍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정부 정책에는 연속성이 중요하다"며 "환경기준을 완화해 해외로부터 수입해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확고한 태도를 보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정유업계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있지 않겠냐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부가 야심차게 진행했던 'L당 100원 인하안'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을 알뜰주유소 설립으로 만회하려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올해 초 이명박 대통령의 '묘한 기름값' 발언 이후 최 전 장관을 비롯한 정부의 압박이 심해지자 이에 못 이긴 정유업계가 결국 지난 4월부터 3개월 동안 'L당 100원 인하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당시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 방안임에도 정작 소비자들은 크게 체감할 수 없었던 데다 인하기간이 끝나자마자 높은 폭으로 공급가를 올린 정유사들 때문에 정부 측 심기가 불편한 상태다. 심지어 정유사들은 공급가격 부풀리기를 한 후 100원을 인하했다는 의심까지 받았다.

이번에 정유업계의 협조를 받지 못하면 결국 논란의 중심이 유류세로 옮겨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정부 측의 강한 압박이 예상되는 이유다. 정부로서도 전체 세수의 10%를 차지하는 유류세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압박이 예상되면서 당장 시장점유율 1위인 SK에너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그룹 전체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정부의 기름값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SK에너지는 정유업계 중 공급원가가 가장 높아 집중적인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정부가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던 현대오일뱅크에 대한 페널티를 준비 중"이라는 말까지 돌고 있어 나머지 정유3사로서는 이번 입찰이 더욱 부담되는 실정이다.

인하 여력 정말 없나?

일각에서는 50원의 인하여력이 없다는 정유업계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기름값 인하를 충분히 하고도 남을 만큼 호실적을 거두고 있을뿐더러 실제로 원가공개를 하지 않는 이상 정유업계의 말을 그대로 신뢰할 수는 없다는 반응이다.

지난달 말 각각 발표된 잠정실적에 따르면 SK에너지의 모회사격인 SK이노베이션과 S-Oil은 대폭 상승한 3분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SK이노베이션의 3분기 영업이익은 8,619억원으로 지난 분기(4,518억원)에 비해서는 90.8%, 지난해 같은 기간(3,950억원)과 비교하면 118.2% 증가했다. 정유사업을 담당하는 SK에너지의 영업이익도 2,539억원으로 전분기(971억원)에 비해 대폭 늘었다. S-Oil도 3,68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지난 분기(2,416억원)와 지난해 같은 기간(1,998억원)보다 각각 52.7%, 84.7% 개선된 수치를 기록했다. 비상장사인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의 영업이익도 큰 폭으로 개선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는 L당 100원 인하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던 2분기와 비교해 조금 나아졌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알뜰주유소에 제품을 공급하게 된다면 또다시 나빠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일부 관계자들은 당초 2분기 실적악화에 기름값 인하가 끼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유업계 총매출 중 휘발유 내수판매가 차지하는 비율이 10%에 불과한 터라 전체 영업이익 악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오히려 국제유가상승으로 인한 정제마진 급증으로 최대 실적을 거둔 1분기와 비교한 탓에 2분기 실적이 떨어져 보였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알뜰주유소 도입계획에 난색을 보인 정유업계를 대상으로 원가공개 논란도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인하여력이 없다고 말만 하지 말고 속 시원히 원가를 공개하면 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정유업계는 그동안 계속됐던 시민단체의 원가공개 요구에 산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해왔다. 원유에서 휘발유, 경유, 등유, 벙커C유 등 다양한 제품이 나오는 데다 그때마다 생산되는 비율도 달라 원가추산이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미 세전가격이 형성돼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원가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영업이익률이 적기 때문에 인하하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려면 원가공개를 통해 L당 얼마만큼의 마진을 얻고 있는지 근거를 대라는 것이다.

주유소 입장 반영? 현실은…

정유3사가 알뜰주유소 설치에 대해 반박근거로 내세우는 또 하나의 큰 원인은 형평성 부족으로 인한 일선 주유소들의 반발이다. 정부 측의 요구대로 알뜰주유소에만 40~50원 낮춘 가격으로 공급하면 자영주유소들이 도산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내용이다.

알뜰주유소 논란이 불거지자 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자영주유소협의회는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협의회는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정유사들이 자사 상표를 사용하는 일선 주유소보다 알뜰주유소에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하겠다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이어온 거래관계를 무시하고 정부의 압박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직접 확인한 결과 30원 가량 저렴한 농협주유소 근처에서 이미 영업 중인 상당수의 일선 주유소들은 알뜰주유소 설치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SK에너지 자영주유소를 운영 중인 A씨의 경우 불과 1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저렴한 농협주유소가 생겼지만 영업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고 전했다. A씨는 "휘발유 값이 심하게는 50원 차이가 날 때도 있지만 농협주유소에 비해 품질이 좋을 것이라는 인상 때문인지 손님이 크게 줄지는 않았다"며 "알뜰주유소가 70~80원 싼 가격에 기름을 팔아도 개인폴 형태로 운영된다면 아무래도 신뢰감이 떨어져 많이 찾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포천시에서 GS칼텍스 자영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B씨 또한 가까운 농협주유소의 영향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B씨는 "그보다는 올해 초부터 100원 인하했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며 "당시 정유사에서 100원 인하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공급가는 그보다 비싸 애꿎은 우리만 피해를 봤다"고 전했다.

충남 태안군에서 현대오일뱅크 자영주유소 사장으로 있는 C씨는 심지어 알뜰주유소가 생긴다면 지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C씨는 "농협 이외에도 주변 5km 내에 7~8개의 주유소가 몰려있는 터라 사실상 적자상태"라며 "홍보나 판촉 측면에서 도움 안 되는 정유사 폴주유소로 있느니 차라리 기름값 지원되는 알뜰주유소로 편입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세금 46.7%… 美·日보다 높아

●우리나라 기름값 세율은 OECD에서 어느 위치?

기름값 인하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부가 집행하는 유류세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다. 관세, 수입부과금 등까지 합치면 전체 휘발유 가격의 절반 수준에 달하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인 오피넷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11월 셋째주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 1,982.98원 중 유류세 등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966.82원으로 전체의 48.76%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유류원가(806.53원, 40.67%), 주유소 유통비용 및 마진(136.98원, 6.91%), 정유사 유통비용(72.66원, 3.66%)이 그 뒤를 따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유류세는 OECD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오피넷에 따르면 14일 기준 우리나라의 휘발유 가격은 공장도가격 1057.1원과 세금 926.2원을 합쳐 1,983.3원을 기록했다. 유류세를 포함한 세금의 비율은 전체의 46.7%다. 같은 기간 OECD 평균 휘발유 가격은 공장도가격 1013.0원과 세금 1137.6원을 더한 2150.6원이고 이중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52.9%에 달한다. OECD국가 중 세금의 비율이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미국, 일본 등 몇 개 되지 않는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한국과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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