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관계자가 11월 11일 서울 율곡로 보건복지부 브리핑실에서 수거 명령이 내려진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위해성이 확인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한빛화학), 세퓨 가습기살균제(세퓨),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용마산업·롯데마트 PB상표부착 상품),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용마산업), 아토오가닉 가습기살균제(에스겔 화장품), 가습기클린업(글로엔엠)이다. 김주성기자
최근 심각한 폐 손상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분과 동일한 물질이 시중에 파는 공기청정기 필터에도 사용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해당 물질이 사용됐던 가습기 살균제는 지난 4월부터 18명의 사망자(총 피해건수는 91명)를 내며 현재까지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쟁점이 위험물질의 '흡입'이었던 만큼 같은 물질이 공기청정기 필터에 첨가되어 있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상태다. 특히, 해당 공기청정기 필터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잘 비켜났던 SK케미칼이 개발•공급한 살균물질이 처리된 제품이라 추후 문제가 어떻게 불거질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흡입이 문제

지난 11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원인미상 폐 손상을 일으키는 물질로 지목된 가습기 살균제 가운데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들에 대해 강제 수거명령을 내렸다. 강제 수거 대상은 '옥시싹싹 New 가습기 당번', '세퓨 가습기 살균제',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 '아토오가닉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클린업' 등 6종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동물 흡입독성실험 결과 이들 제품에 포함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olyhexamethylene guanidine: PHMG)과 올리고(2-에톡시) 에톡시에틸구아니디니움(Oligo(2-(2-ethoxy)ethoxyethyl guanidine chloride: PGH)이 폐 섬유화와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물질은 피부 접촉이나 섭취 시 독성이 다른 살균제에 비해 1/5~1/10 정도로 적은 데다 살균력이 뛰어나고 물에도 잘 녹아 가습기 살균제를 포함하여 샴푸와 물티슈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된다. 특히 PHMG의 경우 국내에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국립환경연구원에 유독물이 아닌 물질(고유번호 97-3-867)로 등록되어 있다.

문제는 이들 물질을 '흡입'했을 때 어떤 위험이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성환경연대 고금숙 팀장은 "이 물질을 먹거나 피부에 발랐을 때의 안정성은 확보돼 있지만 분자 상태로 흡입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한 연구사례는 거의 없다"라며 "외국의 경우 초음파가습기를 사용하지 않아 문제가 불거지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흡입'에 대한 안정성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재까지 91명의 피해자(사망자 18명)를 발생시킨 만큼 위험성은 충분히 증명된 상태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이 11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이들은 피해자대회를 열고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폐질환 사망자 14명의 명단이 추가로 공개됐다. 연합뉴스
공기청정기 독성물질 필터

주간한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번에 문제가 된 두 물질 중 PHMG가 공기청정기 필터에도 적용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해당 공기청정기는 청풍생활건강에서 판매하는 제품들(MUGU 2000 SERIES)이다. 청풍생활건강 홈페이지에 따르면 가습기능까지 포함된 이 제품들에는 살균기능이 포함된 SK케미칼 SKYBIO처리 필터가 탑재됐다.

본 필터에는 당시 SK케미칼 내 SKYBIO팀에서 개발된 PHMG 처리가 되어 있다. SK케미칼은 2005년 7월 이 제품(상품명 Guacil TX)으로 친환경 섬유용 유럽인증인 'Oeko-Tex standard 100'를 취득했다.

그러나 개발 당시 친환경 인증을 받았던 본 필터 또한 '흡입'으로 인한 안정성은 확보되어 있지 않아 논란의 여지가 크다.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과 관계자는 "PHMG에 오랜 시간, 많이 노출될수록 원인미상 폐 손상이 발생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발표했지만 적게 쓴다고 안전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며 "많이 쓰지 않아도 이 물질 자체가 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이상 가까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거듭 위험성을 강조했다.

SK케미칼, 다시 논란속?

이번 사안이 확대될 경우 가습기 살균제 논란에서 한발 비켜났던 SK케미칼로서는 큰 부담이 예상된다.

앞서 보건당국이 강제수거명령을 내린 가습기 살균제 6종 중 SK케미칼이 원료를 납품했던 '애경 가습기메이트'는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SK케미칼 관계자는 "애경에 공급했던 가습기 살균제 관련 사업은 이미 지난 3월 철수했고 주요 판매점에서 회수조치가 된 상태"라며 "사회적 파장과 인명 피해가 발생한 만큼 도의적인 책임은 질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PHMG 처리 필터가 탑재된 공기청정기의 경우 현재 판매 중인 데다 가습기 살균제 때와 같이 '흡입'으로 인한 위험성이 높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규홍 안정성평가연구소 흡입독성시험연구센터장은 "해당 공기청정기에 대한 직접적인 실험을 해보지 않은 상태라 단정할 수는 없다"며 "흡입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100%가 아니면 안전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원리상으로는 무해할 가능성이 높지만 제품 자체의 오작동 등 사용조건에 따른 변수를 감안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이에 SK케미칼 관계자는 "PHMG처리 살균제를 청풍생활건강에 납품하는 필터 회사에 테스트(test) 용으로 공급한 사실은 있으나 실제로 판매하지는 않았다"며 "그동안 우리 회사 이름을 내세워 홍보하고 있던 사실을 몰랐던 터라 현재 그쪽(청풍생활건강)에 연락해 홈페이지에서 관련내용을 내려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케미칼이 이번 사안의 책임소재에서 자유로워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청풍생활건강이 최소 5년 이상 홈페이지와 보도자료를 통해 'SK케미칼 SKYBIO처리 필터 탑재', 'SK케미칼이 인증한 Guacil TX(PHMG 처리된 필터의 상품명)을 사용' 등의 내용으로 홍보해왔던 사실을 SK케미칼에서 전혀 몰랐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이에대해 SK케미칼 관계자는 "필터는 테스트 용일 뿐이니 청풍 쪽에 알아보라"며 즉답을 피했다. 관련 답변을 듣기 위해 여러 번 전화통화를 시도한 끝에 어렵게 연결된 청풍생활건강 관계자는 "지금은 어떤 사실도 확인해드릴 수 없다"라며 말을 아꼈다.

●용어정리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내의 미생물 번식과 물때 발생 예방 목적으로 사용하는 화학약품. 가습기 물에 첨가하는 방식이며 보통 한 달에 한 차례 사용한다.

Oeko-Tex= 섬유 관련 유럽 내 기관들이 모여 만든 인증기관으로 환경에 무해하다는 인증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짧게는 6개월 안에 결론"

●가습기 살균제사태 마무리 언제쯤?

보건당국이 지난 11일 가습기 살균제 6종에 대한 강제수거명령을 내리고 모든 종류의 제품을 의약외품으로 지정•관리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갈등은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제조 기업들로부터 어떠한 금전적 보상은 물론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한 까닭이다.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은 아직까지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등록돼있지 않은 까닭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폐 이식 등의 수술을 받기 위해선 1억원이 넘는 비용이 필요하고 한 달 약물치료비는 350만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사망자 가족을 비롯, 폐질환 환자들은 신체적,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는 상태다.

현재 피해자들은 환경•시민단체와 연대, 한국 소비자원 집단분쟁조정을 절차에 들어갔고 일부 건에 대해서는 공정위에 제소할 방침이다. 여성환경연대 관계자는 "집단분쟁조정의 경우 짧게는 6개월 안에 결론이 날 수 있어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신청했다"라며 "개별적으로 30여 가구는 소송준비에 나선 상태"라고 전했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모임에 따르면 현재까지 알려진 피해자는 91명(사망자 18명)으로 정부가 확인한 피해자 수 34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