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0일 서울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1마리에 5000원하는 통닭을 사기 위해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12월 16일, 바로 故통큰선생이 서거하신지 1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지난 겨울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신 故통큰선생, 우리는 당신의 그 위대한 정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지난 16일 SNS, 포털사이트 등은 통큰치킨의 1주년을 기념하는 네티즌들의 목소리로 봇물을 이뤘다. 지난해 말 영세상인 생계침해 논란을 일으키며 유통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통큰치킨이 네티즌 사이에서 아직도 회자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특히 지난해 '최저가' 경쟁을 벌였던 대형마트3사는 통큰치킨 이후 변화된 마케팅전략으로 점유율 전쟁 중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통큰치킨이 남긴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통큰치킨의 탄생배경

올해 대형마트3사 경쟁의 판을 새로 짜게 한 통큰치킨은 그 탄생부터 판매중단까지 숨 가쁘게 전개됐다.

원래 통큰 마케팅은 지난해 10월 28일부터 롯데쇼핑 창사 31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행사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롯데마트는 '통큰 경품'을 통해 자동차를 비롯한 경품들을 추첨을 통해 증정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이에 새롭게 치킨발매를 기획하고 있던 식품팀에서 '통큰'을 따와 이름 붙였다는 후문이다.

지난 19일 서울 봉래동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모델들이 '통큰 LED TV'를 선보이고 있다. 롯데마트는 80㎝(32인치)크기의 풀HD LG디스플레이 패널을 탑재한 '통큰 LED TV'를 49만9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월 9일부터 900g을 5,000원에 판매하기 시작한 통큰치킨은 처음부터 반향을 일으켰다. 출시 전부터 BBQ 등 프랜차이즈업체를 비롯한 치킨업계 영세상인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음에도 발매 당일부터 치킨을 사러 온 소비자들로 장사진을 이룬 것이다. 소비자들은 롯데마트 개장 한두 시간 전부터 아예 줄을 서서 기다렸고 판매개시 20여 분 만에 당일 판매분인 300마리의 예약이 끝나는 경우도 흔했다.

치킨업계 반발로 판매중단

그러나 치킨업계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출시 직후 한 업자가 원가를 공개하는 초강수를 둔데 이어 영세업자들 사이에서 롯데그룹 불매운동까지 일어났다. 급기야 한국프랜차이즈협회에서는 부당 염매(경쟁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원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행위)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하겠다는 뜻까지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정치권에서도 발 벗고 뛰어들었다. 통큰치킨 발매 한 달 전 'SSM(기업형슈퍼마켓)법'이 통과하는 등 당시 '대•중소기업상생'이 화두였던 탓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정진석 정무수석은 자신의 트위터에 "생닭, 튀김용 기름, 밀가루 값 등을 생각하며 원가가 6,200원 정도라 결국 한 마리당 1,200원씩 손해보고 파는 것"이라며 "영세 닭고기판매점들이 울상지을만하다"고 올렸다.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이 글을 추천하며 롯데마트 측을 압박했고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는 "통큰치킨은 몸무게 100kg대의 헤비급 선수가 50kg도 안 되는 플라이급 경기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며 "이는 반칙도 아니고 폭력일 뿐"이라고 힘을 실었다.

결국 롯데마트는 발매 5일 만에 통큰치킨 판매를 중단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원래 가치 있고 품질 좋은 상품을 판매해 서민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준비했던 행사였다"라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 반영하는 차원에서 판매를 중단한다"고 전했다.

통큰마케팅에 나선 롯데마트

결과적으로 발매 1주일도 안 돼 판매중단을 맞았지만 롯데마트는 통큰치킨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통큰치킨이 일으킨 반향이 예상보다 훨씬 컸던 까닭이다.

가장 큰 효과는 대형마트로서 가장 필요한 저가 이미지 획득이다. '통큰=가격경쟁력=롯데마트'라는 이미지로 롯데마트에 대한 기존 인식이 180도 뒤바뀐 것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통큰치킨 한방으로 롯데마트가 경쟁업체보다 저렴하다는 인식이 생겼다"며 "올해 롯데마트의 선전은 '통큰'이 뒷받침한 것과 다름없다"고 해석할 정도다.

롯데마트는 통큰치킨 발매중단 직후까지만 해도'통큰'이라는 단어가 대두되는 것에 부담스러워했다. 노이즈마케팅 논란이 너무 컸던 데다 평소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신격호 회장의 성정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롯데마트가 저가제품을 선보일 때마다 언론과 네티즌들은 '통큰' 명칭을 붙여 불렀다. 실제로 통큰치킨 발매중단과 동시에 판매에 나선 20만원대 넷북을 비롯, 갈비, 모니터, 등산배낭 등에 '통큰'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음에도 해당 제품들은 '통큰 00'라고 입소문을 타며 불티나게 팔렸다.

이후 롯데마트는 아예 '통큰' 이미지를 활용하기로 나섰다. 지난 4월 노병용 사장은 '신 상품전략' 기자간담회를 열고 "물가안정에 초점을 맞춰 기존가보다 가격을 대폭 낮춘 '통큰' 상품을 출시하겠다"라고 밝혔다. 발표 즉시 등갈비에 '통큰 립'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통큰치킨 당시의 논란을 다시 겪지 않으려는 듯,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도 강조했다. 중소기업들과 손잡고 출시한 제품에 '손큰'이라는 상표를 달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롯데마트, 통크게 대박

현재 '통큰' 상표를 달고 판매 중인 PB제품(Private Brand)은 '통큰 카레, '통큰 팝콘', '통큰 지퍼백' 등 총 26종(식품류 19개, 비식품류 7개)이다. 성과도 좋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상당수의 '통큰' PB제품들이 NB제품(Nation Brand)보다 판매량이 많다"며 "구체적인 품목을 밝힐 수는 없지만 26종 중 17종이 해당상품군에서 1위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큰치킨 이후 전체적인 시장점유율도 크게 늘었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대형마트 판매액 17.5%를 차지했던 롯데마트는 올해 3분기 기준 18.8%로 증가했다. 매출 또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예상되는 롯데마트 매출액은 6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5조9,000억원 수준보다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변화된 대형 3사 전략

통큰치킨은 롯데마트만이 아닌 대형마트 시장 전체를 변화시켰다. 시장포화 상황에서 기존의 가격인하 경쟁만으로 한계를 느끼던 대형마트3사에게 참신한 명칭을 통한 마케팅의 중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정용진 부회장이 전면에 나선 지난해 초부터 이마트가 '신 가격정책'을 내세우며 시작된 대형마트 '가격 전쟁'은 삼겹살, 우유, 라면 등 전장을 확대하며 이어졌다. 이마트가 인기상품의 가격을 동결하거나 인하하면 홈플러스, 롯데마트가 동일한 수준으로 맞추는 형국이었다. 대형마트3사는 경쟁업체의 가격 변동 상황을 주시하며 실시간으로 가격을 조정했다. 그러나 '10원 전쟁'을 벌이며 이마트의 가격인하에 즉각 대응했던 홈플러스, 롯데마트는 "무분별한 가격 대응은 이제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이후 이마트는 소비자들에게 '물가가 올라도 예전 가격 그대로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이후 다른 전략을 궁리하던 롯데마트에게 통큰치킨은 큰 전기를 마련해줬다. 통큰이라는 미사여구와 그에 걸맞는 상품을 내놓게 된 것이다. 실제로 롯데마트를 찾는 소비자 사이에는 다른 것들은 몰라도 '통큰' 상표가 붙은 상품들은 싸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는 전체적인 매출상승효과를 가져왔다.

홈플러스 또한 롯데마트와 유사한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통큰치킨 이후 노이즈마케팅에 대한 부담으로 한동안 통큰 상표를 사용하지 않았던 롯데마트는 홈플러스의 반격에 직면했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창립 1,000원짜리 착한생닭을 내놓았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점포당 250마리(일부 점포 150마리)를 1인당 2마리 선착순으로 한정판매한 것이다. 착한생닭은 통큰치킨과 마찬가지로 15분 만에 완판되는 등 소비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후 홈플러스는 콩나물, 두부, 한우 등 지속적으로 착한 마케팅을 전개했다. 노병용 롯데마트 사장이 통큰 상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자사를 모방한 홈플러스의 착한 마케팅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롯데마트의 통큰 마케팅과 홈플러스의 착한 마케팅 사이에도 차이는 존재한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우리는 한정상품을 기획한 것이 아니다"라며 "수요가 최대공급량을 초과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통큰치킨의 경우 점포당 시설, 구조적으로 판매 가능한 최대 마릿수가 300마리일 뿐이지 더 공급할 수 있음에도 제한했던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판매에 제한을 둔 홈플러스 착한생닭과의 차이점을 부각한 것이다. 실제로 통큰 상표를 붙인 제품들은 한시적 판매가 아닌 일종의 전략적 상시 저가형 PB상품 형태를 지니고 있다. 반면, 홈플러스 착한 상품에는 콩나물, 두부처럼 상시판매 제품도 있지만 한시적, 한정판매를 통해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미끼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통큰치킨은 사라졌지만 그 영향력은 아직도 남아있다"며 "대형마트 3사의 마케팅 방향이 다변화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저가형 PB상품들 품질 저하 우려

■ 통큰치킨 이후 문제점은?

통큰치킨이 대형마트를 변화시키면서 나타난 부정적인 영향도 적잖이 지적되고 있다. 이들 중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히 반응하는 것은 저가형 PB상품들의 질적 저하다. 해당 제품을 선보이기까지 최소 3개월 이상은 준비해왔다는 대형마트들의 발표가 무색하게 허위•과장광고, 상품결함 등이 수차례 나타났기 때문이다.

롯데마트는 지난 6월 통큰자전거 8,500대 전량을 리콜하기로 결정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리콜사유는 납품업체인 '바이크올데이'가 판매 당시 KC인증을 실효했음에도 재인증을 완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판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업계관계자들은 "통큰자전거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제품 불량에 대한 항의를 지속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조립불량 등으로 제동장치 및 안장이 흔들리거나 앞바퀴에 바람이 빠지는 등 심각한 문제들이 구입하자마자 발생, AS 및 환불을 받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특히 롯데마트가 통큰자전거를 선보인 날은 이마트가 7만9,000원짜리 저가 자전거를 출시한 날과 동일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제품을 서둘러 내놓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라는 의심을 받았다. 이후 롯데마트는 통큰자전거 리콜에 대한 자료를 배부하며 '통큰'이라는 단어를 빼고 '접이식 자전거'라는 명칭으로 불러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눈총도 받았다.

홈플러스 또한 지난 3월 착한LED모니터를 출시했다가 허위•과장광고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3,000대 한정으로 대우루컴즈 23.6인치 LED모니터를 선보이며 "모니터 양쪽에 2와트 출력 스테레오 스피커를 갖췄다"라는 발표했지만 실제로 스피커가 탑재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홈플러스 측은 "상품 공급과 관련한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이같은 혼선을 빚었다"라며 서둘러 사과했지만 이미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통큰치킨 발매 당시 문제가 됐었던 영세업체와의 동반성장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저가마케팅을 하는 품목이 몇 개 되지 않을지라도 기존에 그 품목들을 취급해왔던 영세업체들이 받을 부담은 막심하기 때문이다. 통큰치킨 출시를 강하게 반대했던 치킨업계 관계자는 "만약 통큰치킨이 일정 기간을 정해 놓고 기획된 미끼상품전략이었다면 우리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문제는 당시 롯데마트가 지속적으로 싼값에 공급할 계획을 드러냄으로써 마치 기존 치킨사업자들이 파렴치하게 과다한 이윤을 내왔던 것처럼 여겨질 가능성이 컸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이어 "거대유통망을 지닌 대형마트가 특정한 품목을 지속적으로 저가에 공급한다면 영세사업체들은 절대로 맞설 수 없다"며 "최근 이어지는 통큰, 착한 마케팅은 관련 중소업체를 고사시킬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저가형 PB제품을 납품하는 중소업체의 피해도 작지 않을 것이라 지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판매수료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판매대금을 상품권으로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며 "통큰, 착한 상품들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여타 납품업체보다 훨씬 더 큰 부담을 지지 않겠냐"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지난 3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발간한 '대규모 소매점과 납품 중소기업 거래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중 16.7%가 불공정거래행위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공정거래 유형으로는 특판행사 참여 강요(36.0%),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34.0%) 등이 있었다.

얼리어닭터 닭세권 버뮤닭삼각지대

■ 통큰치킨이 남긴 신조어들

지난해 말부터 큰 이슈가 되며 삼성경제연구소를 비롯한 다수 연구소와 언론에서 꼽은 '2011년 10대 히트상품'에 선정된 통큰치킨은 그 인기만큼이나 많은 신조어들을 남겼다.

가장 인기를 끈 신조어로는 얼리어닭터가 있다. 이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남들보다 먼저 신제품을 사서 써보는 사람)의 패러디로 통큰치킨 구입을 위해 아침부터 롯데마트 앞에 줄 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개천절(開天節)을 본뜬 계천절(鷄天節)도 있다. 롯데마트가 통큰치킨을 최초로 판매하기 시작한 날인 12월8일을 일컫는 명칭이다.

기차나 지하철 역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주변 거주자가 분포하는 범위라는 뜻의 역세권을 본뜬 닭세권도 흥미를 끈다. 통큰치킨을 판매하는 롯데마트에서 도보, 자전거 등을 이용해 5분 이내 갈 수 있는 권역을 뜻한다. 북대서양 특정 지역에서 수많은 항공기와 선박들이 사라진다는 전설로 유명한 버뮤다삼각지대의 패러디, 버뮤닭삼각지대도 등장했다. 인천시에 위치한 롯데마트 부평점, 삼산점, 부평역점 세 곳을 꼭짓점으로 연결시켜 형성된 곳을 지칭하는 버뮤닭삼각지대 내의 영세 닭집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위기라는 뜻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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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