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가 범현대가 지분을 잇달아 정리하며 그 배경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M&A, 자금 선순환 등 각종 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지난해 말 있었던 삼성에버랜드 주식 매입과 연관 짓고 있다. KCC가 범현대가의 그늘을 떠나 범삼성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다. 사업상 밀접성, 그룹 2~3세 간의 친분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등 지분 팔아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KCC는 지난 13일 보유하고 있던 현대중공업 주식 가운데 절반인 249만주를 6,972억원에 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처분했다. 이는 2010년 말 기준 자기자본(5조8,749억원)의 12.0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날 거래로 KCC가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율은 6.29%에서 3.12%(236만9,393주)로 대폭 낮아졌다.

현대중공업 주식 매각 이외에도 KCC는 1년 안팎의 짧은 기간 동안 보유하고 있던 범현대가 기업들의 지분을 연달아 정리하고 있어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2010년 5월과 지난해 7월 두 차례에 걸쳐 만도의 주식을 전량 매각한 KCC는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 주식 111만5,000주를 2,397억원에 정리했다. 2010년 12월에는 보유 중이던 현대상선의 우선주와 보통주 163만여주를 548억원에 매각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주식 또한 2010년 12월(108만1,347주 2,632억원)에 이어 두 번째 매각이다.

잇따른 지분정리로 KCC에 남은 범현대가 주식은 현대종합상사 268만주(12.0%), 현대중공업 237만주(3.12%), 현대상선 372만주(2.11%), 현대자동차 223만주(1.01%), 현대산업개발 188만주(2.5%)로 떨어졌다.

투자금 회수? M&A 준비?

KCC가 범현대가의 주식들을 잇달아 매각하며 그 배경에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KCC는 지분을 정리할 때마다 공시를 통해 단순 "투자자금 회수" 차원이라고 밝히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범현대가 주식 매각이 반복됨에 따라 그 속내에 이목이 쏠리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증권가에서는 저마다 여러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중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대형 M&A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는 KCC가 범현대가 주식들을 팔아치우면서 막대한 지분차익을 챙긴 것과 무관하지 않다.

KCC가 이번에 매각한 현대중공업의 투자이익은 장부가 기준 6,300억원 가량이다. 9년 동안 거의 11배에 달하는 차익을 얻은 셈이다. KCC는 지난해 만도와 현대자동차 매각을 통해서도 큰 폭의 이익을 얻었다. 만도 주식으로는 3년여 만에 5,100억원을 벌어들였고 현대자동차 주식으로도 7배가 넘는 수익을 냈다. 웬만한 자산운용사 못지않은 투자성과다.

지분투자의 성공으로 막대한 자금도 쌓였다. 지난해 현금화한 자금 가운데 8,000여억원이 아직 현금으로 남아 있고, 2011년 9월 기준 1조8,000억원대의 주식과 4,500억원에 달하는 자본잉여금, 3조6,000억원이 넘는 이익잉여금까지 감안한다면 KCC는 총 6조6천억원이 넘는 현금동원능력을 지녔다. 뭘 해도 할 수 있는 실탄을 보유한 셈이다.

KCC가 미래성장동력으로 삼고 지속적인 투자를 진행해왔던 폴리실리콘 사업의 중단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도 막대한 현금동원력과 함께 M&A설을 뒷받침한다. 올해 대규모 설비투자 계획이 없는 상황이니만큼 남아도는 현금 유용을 위해서라도 신규사업을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다.

일련의 범현대가 주식 매각과 관련해 단순히 불필요하게 묶여 있는 자금의 선순환을 위함이라는 해석도 있다. 수조원에 달하는 범현대가 지분은 자산으로서의 의미는 존재하지만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한다는 큰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해당 주식들의 시가배당률 또한 은행예금 이자율만도 못했던 터라 굳이 주식을 부여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견해다. 실제로 지분매각 이후 KCC는 자기자본수익률(ROE) 상승과 그에 따른 주당순이익(EPS) 개선 등 각종 지표의 호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에버랜드 지분 매입 왜?

상당수의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지난 일년여간의 범현대가 지분정리는 반드시 지난해 말 있었던 삼성에버랜드(이하 에버랜드) 주식의 매입과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계속되는 지분매각 과정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들였던 것이 에버랜드 주식이니만큼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는 내용이다.

KCC는 지난해 12월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주식 17%(42만5,000만주)를 7,739억원에 매입하며 2대주주에 올랐다. 당시 KCC는 에버랜드 지분 취득 이유에 대해 "삼성의 5대 신수종사업 중 바이오제약과 재생에너지사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는 에버랜드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봤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대외적인 이유와는 별개로 KCC가 에버랜드 주식을 인수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크게 없는 상황이라 실제 이유에 대해서 온갖 구설에 올랐다.

우선 KCC가 에버랜드 지분을 인수해도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에버랜드는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이다. 삼성그룹은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의 순환출자 구조를 지난 7년간 이어 왔다. 현금 흐름과 수익구조에서 에버랜드는 삼성그룹의 처음과 끝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KCC가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을 매입함으로써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끊어졌다. 대신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지배구조가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기능하게 되는 에버랜드 지분의 46.03%를 삼성그룹 오너일가가 보유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25.1%,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각각 8.37%씩,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3.72%씩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삼성카드 등 5개 계열사가 지닌 22.12%의 지분까지 감안한다면 2대주주인 KCC가 경영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에버랜드가 기업공개(IPO)를 앞둔 기업이 아닌 까닭에 범현대가 주식 때처럼 지분차익을 통한 투자수익도 기대하기 어렵다. 당초 에버랜드 지분에 관심을 나타냈던 후보들은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 상장차익에 초점을 맞추고 삼성그룹에 바이백 옵션을 요구했었다. 에버랜드가 2~3년 내 상장이 되지 않으면 삼성그룹 계열사가 지분을 되사달라는 옵션이다. 그러나 KCC는 이 또한 요구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분 매각을 통한 현금확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삼성그룹으로서도 그다지 이득이 되는 거래는 아니었다. 에버랜드 주식을 너무 값싸게 내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공시에 따르면 삼성카드는 에버랜드의 주당 지분가치를 214만원으로 평가했음에도 KCC에는 15%(약32만원) 할인된 주당 182만원에 매각을 결정했다. 시장기대치가 300만원까지 올라갔던 것을 감안하면 완전 헐값에 내놓은 셈이다. 실망한 투자자들로 에버랜드 지분매각 이후 삼성카드 주가는 7%나 하락했다.

이처럼 특별한 이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KCC가 자사 시가총액의 1/4가 넘는 7,700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것과 삼성그룹이 값싸게 주식을 건넨 배경에 대해 재계에서는 "양사 간에 모종의 밀약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짐작하고 있다.

KCC-삼성그룹 노림수는?

KCC와 삼성그룹 간의 밀약에 대해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KCC 이외에 달리 에버랜드 주식을 넘길만한 곳이 없었던 삼성그룹과 범현대가의 영향권을 벗어나려는 KCC의 이익이 일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버랜드 지분 처리 문제는 삼성그룹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었지만 여러 민감한 사안이 걸려있어 마땅한 인수주체를 택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삼성카드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즉 '금산법'에 따라 올해 4월까지 에버랜드 지분율을 대폭 줄여야 했다. 현재 금산법에는 '금융회사는 비금융회사 지분을 5% 이상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정이 포함돼 있는 탓이다.

그러나 삼성그룹으로서는 마땅한 지분매수자를 찾기 어려워 고민이었다. 우선 1조 가까운 막대한 현금을 확보한 회사들이 많지 않은데다 물망에 오르는 범삼성가, 이를테면 CJ, 신세계, 한솔, 보광 등은 더 이상 삼성그룹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과거의 편법 상속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않았던 삼성그룹은 경쟁그룹인 범현대가 출신의 KCC를 끌어들임으로서 특혜시비나 그들만의 잔치라는 비난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KCC가 삼성그룹의 가려운 등을 긁어준 셈이다.

KCC는 범현대가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KCC는 지금도 자동차용 도료 및 유리, 선박용 도료, 건자재 등 매출의 절반 이상을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범현대가에 의존하고 있다. 지금껏 범현대가의 우산 아래서 비교적 수월하게 사업확장을 해왔지만 이제 독자노선을 걸어야 할 때가 왔다는 판단이다

핏줄보단 새 파트너 필요

이런 KCC의 판단에 대해 일각에서는 2005년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정몽진 KCC 회장이 부친이자 창업자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 때와는 사뭇 다른 실제적인 파트너십을 강화하기 위한 조처로 해석하고 있다. 단순히 혈연을 넘어선 사업상 파트너십의 강화라는 측면이다.

1958년 KCC(옛 금강고려화학)의 모태인 금강스레트공업을 세운 정 명예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내동생으로 현재 범현대가의 맏어른 격이다. 정 명예회장은 2003년부터 범현대가 주식들을 사들였다. 겉으로는 단순 투자 목적을 내세웠지만 이면에는 범현대가 결집이라는 큰 명제를 내세운 정 명예회장의 속뜻이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범현대가가 2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며 각종 문제가 불거지는 상황에서 단순히 혈연에 의존한 사업 협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지분 투자 방식으로 범현대가 결집을 꾀했던 것으로 보인다. 집안 어른으로서 조카들의 경영권 안정을 돕는 백기사 역할을 자임한 셈이다.

KCC 또한 끈끈해진 범현대가의 그늘 하에서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의 도료납품을 전담하며 매출3조원의 거대기업으로 큰 것이다. 그러나 내수중심기업으로서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과 신성장동력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파트너를 필요로 했던 KCC로서는 이번에 범현대가가 아닌 삼성그룹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KCC가 삼성그룹과 손을 잡게 될 경우 우선 범현대가에만 집중돼있던 도료 납품을 범삼성가까지 확장할 수 있다. 그간 KCC는 국내 도료 분야 1위 기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의 계열사들과 거래가 없었다. 이번 기회는 KCC에게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삼성건설, 삼성물산 등 대규모의 매출처를 뚫을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할 예정이다.

삼성그룹과의 새로운 파트너십이 형성되면 업황악화로 지난해 말께 무기한 공장 가동을 중단한 폴리실리콘 사업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높은 제조단가(톤당 1억4,330만원 업계 1위인 OCI의 톤당 제조단가는 8,750만원)를 지닌 KCC의 폴리실리콘 사업은 설비증설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정적인 폴리실리콘 수요처이자 사업파트너인 현대중공업은 태양광 사업에서 발을 빼고 있는 실정이라 KCC로서는 새로운 파트너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태양광 수직계열화에 착수 중인 삼성그룹은 KCC에게 최적의 상대다. 자사가 만든 폴리실리콘을 삼성그룹이 구매하는 식의 사업적 이해관계가 형성되면 KCC로서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된다. 설비증설에 필요한 실탄은 충분히 확보돼있는 터라 신성장동력으로써 다시 작동할 수 있다.

KCC의 미래먹거리로 일찌감치 폴리실리콘 사업을 선택한 주체는 바로 정 회장이다. 그만큼 해당 사업에 대한 애정이 큰 수밖에 없다. 2세이니만큼 범현대가의 좌장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아버지와도 입장이 다르다. 1960년생으로 범현대가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을 만큼 젊기도 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의 친분도 돈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정 회장이 삼성그룹과의 딜 과정에서 상당 부분 관여한 이유다.

범현대家의 마지막 자존심

● 정상영 KCC 명예회장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하 왕회장)의 막내동생이다. 왕회장의 형제나 자식들이 대부분 기업체를 떼어 받아 운영한 것과는 달리 정 명예회장은 자신의 힘으로 기업을 일으켰다. 동국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시절 왕회장의 유학 권유를 뿌리치고 금강스레트공업을 시작한 정 명예회장은 이후 도료, 유리, 실리콘 등 건축•산업자재 분야에 매달려 큰 성공을 거뒀다.

2000년 그룹 경영을 장남인 정몽진 KCC 회장에게 넘겨준 정 명예회장은 정인영 전 한라그룹 회장이 작고한 이후 좌장으로서 범현대가를 책임져왔다.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범현대가의 중심을 잡던 왕회장을 대신해온 셈이다. 그 과정에서 불명예도 얻었다. 2003년 조카며느리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그룹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다툼 끝에 물러섰다. 당시 '삼촌이 조카의 그룹을 통째로 삼키려 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2008년 만도를 범현대가인 한라그룹에 돌려주는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등 맏어른으로서의 역할을 놓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KCC는 산업은행PE, 국민연금사모펀드(H&Q)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바 있다.

범현대가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 때도 그렇고 만도 때도 그렇고 정상영 명예회장의 관심은 오로지 현대가의 자존심을 세우는 데에 쏠려 있었다"라며 "정씨가 아닌 다른 이들이 범현대가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전했다. 범현대가의 지분을 일부라도 보유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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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