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요즘 재계에서는 그런 말을 하면 구닥다리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인내심이 적절히 조화된 감성 리더십으로 재계를 호령하는 여성 CEO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적이고 강한 카리스마를 내세워야만 했던 창업주, 2세들이 활약했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다양한 사업 분야와 유동적인 트렌드에 대한 적응력이 필요한 요즘은 특히 여성형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최근 들어 재벌가 딸들의 거침없는 행보가 자주 회자되곤 한다. 물론 동네 빵집처럼 상대적으로 만만한 사업에 발을 들이는 이들도 있지만 그룹의 핵심 사업을 운영•관리하며 입지를 굳힌 여성들 또한 다수다. 대표적인 인물로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가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인 정 전무는 그룹의 중책을 담당하며 경영 능력을 쌓아가고 있다.

광고장이 꿈꿨던 학창시절

널리 알려진 바대로 정 전무는 광고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서울대에서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로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대학원에 다닐 때는 지각이나 결석을 거의 하지 않고 매 수업 열심히 임했다. 대학원 시절 함께 공부했던 이들은 입을 모아 "재벌가의 딸이라는 것을 전혀 모를 정도로 겸손하고 예의를 갖춘 학생이었다"라고 정 전무를 평가할 정도다.

정 전무의 대학원 석사 논문 제목은 '광고와 퍼블리시티의 시너지 효과 연구'이다. 광고와 퍼블리시티(신문•방송 등을 이용, 광고주가 누구인지 모르게 선전하는 방법)를 동시에 사용할 경우에 광고효과의 차이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연구다. 대학원을 졸업한 정 전무가 처음 들어간 직장도 외국계 광고회사였다.

아버지 타계로 그룹 이사

출신과는 상관없이 광고장이의 꿈을 이뤄가던 정지이 전무의 삶을 180도 바꿔놓은 사건은 믿고 의지하던 아버지 고 정몽헌 회장의 타계였다. 고 정 회장 사후 그룹을 이어받은 어머니 현 회장마저 그룹의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며 어려운 상황에서 현대그룹에 입사했다.

2004년 현대상선 재정부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정 전무는 2005년 대리를 거쳐 회계부 과장을 지낸 뒤, 2006년 현대유엔아이 기획실장 상무로 승진, 2007년에는 전무에 올랐다. 승진이 빠른 재계 3세 가운데서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음은 물론이다.

정 전무가 몸담고 있던 기간 현대유엔아이의 실적 상승세도 놀라울 정도다. 2005년 설립 당시 매출 103억원이었던 현대유엔아이는 5년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뤘다. SI그룹의 특성상 현대상선 등 그룹 계열사와의 거래가 많지만 비 그룹 계열사와의 거래 비중을 40% 내외로 늘려가며 경영의 폭을 확장하고 있다. 물론 기업의 호실적이 모두 정 전무 때문만은 아니지만 기획실장으로 현대유엔아이의 사업계획과 방향을 이끈 장본인임에는 부인할 수 없다.

어머니 곁에서 경영수업

현대그룹은 지난 2003년 고 정주영 회장의 5남인 고 정몽헌 회장의 타계후 미망인인 현정은 회장이 이끌고 있다. 정지이 전무는 그간 어머니 현 회장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다가 그룹의 총수에 오르며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던 현 회장이 가장 의지하는 것은 정 전무다. 장녀답게 책임감이 강한 데다 누구보다 현 회장을 잘 이해해주는 까닭이다.

현 회장은 외부 활동 시 정 전무와 동행하는 일이 잦다. 공식은 물론 비공식 행사장에도 어김없이 정 전무를 데리고 다닌다. 현 회장은 경영권 분쟁 당시 정상영 KCC 명예회장 등 시댁 어른들을 만날 때나 대북사업과 관련해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대면할 때도 늘 정 전무와 동행했다. 정•재계의 거물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정 전무의 시야가 넓게 트였음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이다.

또한, 정 전무는 현 회장의 계획아래 입사 때부터 착실하게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정 전무가 해외지사가 많아 글로벌 마인드를 키울 수 있는 현대상선 그것도 회사 흐름에 대해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재정부에 배치된 것에도 현 회장의 의중이 읽힌다.

격의 없는 소탈한 성격

정지이 전무에 대한 동료 직원들의 평은 소탈함으로 압축된다. 정 전무는 입사 직후 2004년 수련회 때 다른 신입사원들과 똑같이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장기자랑도 마다치 않아 좋은 평을 들었다. 사내식당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고 2010년 월드컵 때는 직원들과 함께 호프집에서 응원했을 정도다. 릴레이 마라톤 대회, 경복궁 돌보기 운동 등 사내외 활동 및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 전무의 소탈한 성격은 현 회장의 방임형 교육방침으로 만들어졌다.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고 행동을 이해한다는 것이 현 회장의 교육 지론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정 전무는 재벌가에서 자란 티를 별로 내지 않고 폭넓은 교우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격의 없는 정 전무의 모습은 주변 직원들로 하여금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정 전무는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각별한 사이였다고 알려져 있다. 첫 방문 때 "안경을 쓰면 아버지와 똑같겠다"라고 친근감을 표시한 김 위원장은 이후 만남에서도 바로 옆자리에 앉아 기념촬영을 하는 등 정 전무를 딸처럼 대했다는 후문이다. 미혼인 정 전무에게 "빨리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길 바란다"며 정감 어린 덕담을 건넨 것도 유명하다.

순탄치 않은 앞날 행보는?

현대그룹은 요즘 들어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금강산사업이 중단되고 현대건설의 인수가 불발됐다. 최근 야심차게 준비했던 제4이동통신사업 참여도 철회했다. 정지이 전무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부자간 대물림이 보편화된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 듬직한 장녀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는 정 전무의 향후 행보에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